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3화 (23/339)

23화

“너 이렇게 일 대충 할래?”

최 부장은 백태석 사원을 향해 소리쳤다.

“이딴 식으로 할 거야?”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럼 이건 뭔데?”

“아, 그게…….”

“장부에 왜 날짜랑 수량만 있어? 누가 이렇게 가르쳤니, 홍 대리야?”

“…….”

“대답을 해, 대답을!”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적었던 것 같습니다.”

“이거 봐봐. 태석이 네 이름이 적힌 날짜에 납품 명세서가 없잖아.”

“죄송합니다.”

“죄송한 게 아니라. 하……. 가서 이 날짜에 어디 병원에 왜 빼간 건지 확인해 보고 와.”

“네. 알겠습니다.”

보아하니, 백태석이 재고 장부에 날짜와 수량을 기입하고, 샘플이 아닌 매출로 체크를 해둔 모양. 그런데 매출이라면 병원에 나간 거래 명세서가 분명히 전산상으로 찍혀 있어야 되는데, 그 날짜에 나간 거래 명세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잘못된 부분은 거래 명세서가 누락 됐다거나 혹은 매출이 아닌 샘플에 체크를 했다면 말이 된다.

하지만 거래 명세서가 없이 물건만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정답은 후자일 확률이 백에 가깝다. 그럼 단순히 장부에 매출 칸에 체크 해둔 것을 샘플로 다시 체크하면 된다.

그러나 백태석이 병원명을 기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 어디 병원에 샘플이 나간 지 확인이 되지 않기 때문.

최권호 부장 앞에서 탈탈 털린 백태석은 쥐 죽은 듯이 자리로 돌아갔다. 얼굴이 새빨개지다 못해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백태석은 혼자 얼 타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열어 해당 날짜의 메신저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해답을 못 찾았는지, 책상 위에 있던 달력을 들고 뒷장으로 넘겼다 앞장으로 넘겼다 반복을 하더니 가지고 다니던 작은 수첩을 꺼내어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 직속 상사인 홍찬성 대리도 하필 이럴 때 자리에 없어 백태석은 한층 더 난감해하고 있어 보였다.

안절부절못하는 백태석을 두고 다른 직원들은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고 모두 자기 할 일을 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런 백태석을 보고 있자니 나의 신입 시절이 떠올라 안쓰러운 마음이 끓어올랐다.

“태석 씨, 괜찮아?”

“아, 민 대리님…….”

그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괜찮긴. 그래서 찾았어?”

“아니요. 도저히 기억이 안 나서…….”

“그 날짜에 메모해 뒀던 거 없어?”

“…네.”

“어휴. 어디 날짜랑 품목이 뭔데, 봐 보자.”

“여기 있습니다.”

백태석은 찢어진 이면지에 꾸불꾸불한 글씨체로 누락 된 목록을 적어온 것을 나에게 내밀어 보였다.

“이거 그거 아니야?”

수량과 품목, 그리고 날짜까지 확인을 하니 보자마자 단번에 어디 병원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혹시 아시겠습니까? 정말이요?”

풀이 죽어 연신 아래로만 고개가 향해 있던 백태석은 목록 종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가 내 말을 듣고 놀라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이거 명의 병원 샘플로 뺀 거잖아.”

“아!”

백태석은 펄쩍 뛰며 동공이 두 배는 확장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소리쳤다.

“기억 안 나?”

“…아, 납니다!”

누가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는 백태석.

“어휴. 진짜! 내가 그때 샘플 빼 오라고 해서 네가 박스 포장까지 해서 가져다줬잖아.”

“오! 이제 진짜로 기억납니다!”

그제야 기억이 났는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른 가서 부장님께 말씀드려. 죄송하다고 하고 다음부터는 실수 없게 꼼꼼하게 체크 한다고도 말씀드리고.”

“네. 감사합니다, 민 대리님.”

백태석의 뒷모습에선 마치 학급비를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반장과 같은 안도감이 느껴져 왔다.

“부장님! 찾았습니다!”

“이제야 찾았어? 어디 병원인데?”

“명의 병원입니다!”

“샘플로 나간 거 확실해?”

“확실합니다. 저번에 민 대리님이 지시하셔서 제가 물건 창고에서 챙긴 겁니다.”

“이거 전부다?”

“네!”

“아니. 명의 병원 건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이 날짜 거는 뭔데?”

“아……!”

“아?”

“그건……. 제가 다시 찾아보고…….”

“하아, 너 한 번에 똑바로 안 찾아올래?”

“죄송합니다.”

“내가 지금 너 하나 찾을 때마다 이건 뭐야, 저건 뭐야 하면서 하나하나 읊어주고 물어봐야 되겠냐?”

“…죄송합니다.”

백태석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제자리로 돌아가 나라를 잃은 표정으로 탁상 달력만 멍하니 쳐다보고 앉아 있었다.

한 개 또 누락 된 건 역시 도저히 기억이 안 나는 모양. 이왕 도움을 줄 거 끝까지 도와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최권호 부장에게 향했다.

“저, 부장님.”

“어, 민 대리 무슨 일이야?”

“혹시 재고부 장부에서 어떤 부분이 누락 된 겁니까?”

“그거 태석이 이름이라 찾아보라고 했어.”

“네. 알고 있습니다. 근데 아까 누락 된 건 중 하나는 제가 지시한 거더라고요. 그래서 또 다른 것도 제가 지시한 것일 수도 있어서, 제가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어, 그래. 여기.”

최 부장은 재고 장부를 내게 건넸다.

그의 앞에 서서 건네받은 장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몇 장을 넘겨 누락 된 건을 찾았다.

“근데 민 대리. 그 건이 한 달이 넘어가는 품목이라…….”

당장 얼마 전 명의 병원 건도 못 찾은 백태석이 무려 한 달이나 지난 건을 기억할 리 만무했다.

백태석의 기억력이 결코 짧아서 이런 결과가 초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메디컬에 발을 처음 들이기 시작했을 때의 나, 그리고 뒤의 직원들을 보면 대부분 이런 경우가 많았다.

외워야 할 의학 용어에 수많은 병원명과 써전명, 그리고 더 수많은 기구와 소모품 명칭. 게다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이 상황에 들어오게 되면 처음에 대부분 겪는 현상이다.

목록을 보니 명의 병원 건을 제외하고 누락 된 건은 단 한 건.

수량도 2개에 품목 자체도, 단가도 낮기도 하고 종종 누락 되는 경우도 많아 이건 내가 커버를 쳐줘도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님. 이것도 제가 태석 씨한테 샘플로 넣게 빼다 달라고 한 물건인데 체크를 잘 못 한 것 같습니다.”

“이것도?”

“네. 제가 한 번 더 확인을 시키거나, 제가 체크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야.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주의시키겠습니다.”

“태석이 아직 신입이니까, 교육 좀 잘 시켜라. 이런 거 지금은 한두 건이지만 큰 건이면 난리 나는 거 알지?”

“네. 알죠. 제가 교육 다시 하겠습니다.”

“그래. 가 봐.”

“넵!”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백태석은 곧장 최 부장에게 다시 불려갔다.

“누락 됐던 거, 민 대리가 찾았으니까 여기에 체크 다시 하고 병원명 기재해서 재고부 가져다줘. 다시는 이런 실수 하지 말고!”

“네, 죄송합니다.”

백태석은 최 부장에게 건네받은 재고 장부를 양손에 꼭 쥔 채 나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가왔다.

“민 대리님…….”

“왜!”

“감사, 진짜 감사합니다.”

“됐고, 잠깐 나 좀 보게 따라와.”

“넵!”

백태석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뻘건 얼굴과 긴장이 됐는지 잔뜩 올라간 어깨로 내 뒤를 따라왔다.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백태석은 한 손에는 재고 장부를 꼭 쥐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몇 차례 반복했다.

“대리님. 진짜 감사합니다. 그거 대리님이 지시하셨던 거 아니었잖아요.”

어디 병원이었는지, 샘플인지 매출인지 기억은 못 하면서 내가 지시했던 게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건 또 기억하네?”

“네……. 샘플로 나갔던 게 홍 대리님이 지시하셨던 것 같아서요.”

“얼씨구? 그건 기억하면서 왜 병원명은 기억을 못 해?”

“그러니까요. 저는 대체 왜 이 모양일까요?”

백태석은 세상 근심은 다 가진 얼굴로 고개를 푹 떨구며 말했다.

“됐어. 원래 신입 때는 실수도 좀 하고 그래야 신입다운 거야. 괜찮아.”

“…네.”

“그리고 내가 저번에 얘기한 적 있지? 신입 때 실수 당연히 할 수 있어. 대신 같은 실수를 반복만 안 하면 돼.”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이번 건은 이렇게 넘어가는데, 다시는 똑같은 실수는 하지 마. 영업이 중요한 영업부이긴 해도 어쨌든 우리는 물건을 팔아서 돈 버는 회사잖아?”

“맞습니다.”

“그럼 돈이 되는 물건들 회사에서 크고 작은 거 하나라도 나갈 때에는 체크 잘해야겠지? 이게 한 번 두 번 틀어지다 보면 답이 없어.”

“보니까 보통 물건 하나 단가 자체가 엄청 세더라고요.”

“그래. 의료 기기 자체가 단가가 장난 아니지. 하나 분실하면 월급이 날아가기도 하니까.”

“…한 달 월급이요?”

“그래. 임플란트들 봐봐. 한 개 단가가 월급 정도 할걸?”

“아, 맞네요.”

“그러니까 다음부터 조심해.”

“넵!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민 대리님, 오늘 진짜 감사합니다.”

“그래. 내려가자, 이제.”

폴더폰 접듯 허리를 접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사무실로 향했다.

옥상에서 백태석과 얘기를 마친 후 내려오니.

“민 대리, 어디 갔다 왔어? 얼른 가자. 태석 씨도!”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나와 백태석을 보고 소리쳤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예, 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