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남자 대 남자로 묻겠습니다.”
단호한 내 말투에 최 과장은 눈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제 거래처 말입니다. 왜 그렇게 다 빼앗아 가셨습니까?”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나와는 달리, 내 질문을 듣고 최 과장은 동공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대꾸가 없는 그에게 나는 재차 되물었다.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그는 대답 대신 앞에 놓인 소주를 잔에 따라 연거푸 마셔댔다.
“그게……. 하.”
대답을 하다말고 한숨을 내 쉬더니, 대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가 일어난 빈자리를 바라보며 술을 홀짝홀짝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대체 왜 늘 내 거래처를 건드리지 못해 안달이 났을까,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당황하는 표정으로 화장실로 도망갔을까.
한참이 지나서야 귀퉁이 통로에서 비틀대며 나오는 최 과장. 걸음걸이와 표정을 보아하니 취기가 잔뜩 오른 모양이다.
의자를 두 손으로 꼭 쥐고 끌어당겨 자리에 앉더니 그제야 입을 열기 시작했다.
“거래처를 빼앗았다고? 내가?”
“네. 과장님이요.”
“어디 병원?”
“KJ 병원 신 원장님 건부터 시작해서 태신 병원 강 원장님, 하나하나 다 읊어 드려요?”
“…….”
그는 내 대답에 한숨을 쉬는 것인지, 올라오는 취기를 내뱉는 것인지 잇따라 한숨만 내쉬었다.
“처음에는 제가 실수한 줄 알았습니다. 과장님이 먼저 영업하고 계시는데 제가 모르고 끼어들어 영업하려고 한 줄 알고요.”
나는 마치 랩을 하듯 쏟아내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퍼부었다.
“근데 한 번, 두 번, 세 번이 넘어가기 시작하니까 이건 우연도 아니고 제 착각도 아니더라고요.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건데요?”
최 과장은 앞에 놓인 소주잔에 술을 가득 채워 바로 입에 털어 넣었다.
“솔직하게 말하라고?”
그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는 오른팔을 테이블 위에 올려, 검지를 펴고 내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민 대리. 민지훈 너 재수 없어서…….”
“네? 그게 무슨…….”
나는 최대한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최 과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난 회식 때 보였던 만취한 모습의 얼굴색과 표정. 그리고 취했을 때 나오는 특유의 말투를 내뱉기 시작했다.
“손 차장님 말이야, 원래 후임이라고는 나밖에 안 챙기셨거든?”
그는 멍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근데 민 대리가 입사하고부터 달라졌어. 모든 게.”
이전에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그렇다면 내가 언제부터 최준성 과장에게 찍혔던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을 고민하며 예상했던 대답과 다른 이야기에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전부입니까?”
내 물음에 그는 소주를 한 잔 더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회사 3년 정도는 다녀야 대리 다는 거 알지?”
“네.”
“근데 민 대리는 3년이 뭐야, 2년 채우자마자 바로 대리 달았잖아.”
최 과장은 말을 하면서 손으로는 술을 채워 그대로 입으로 직행했다.
“나는… 4년이 걸렸어. 4년.”
“…….”
“영업 따오는 양이. 매출이 적어서 3년을 꽉 채운 것도 아니라, 무려 4년을 풀로 채운 후에야 대리를 달았었다고!”
그는 들고 있던 소주잔을 테이블 위로 턱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서 민 대리가 싫었어. 질투도 났고. 입사 초반부터 실적도 계속 내서 승진도 일찍 했잖아, 그렇게 손 차장님 신뢰도 다 민 대리 쪽으로 기울었지.”
“질투 때문에 제가 거래처에 영업하기만 하면 빼앗아 가셨던 겁니까?”
“어.”
최 과장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더라고.”
그는 과거의 생각이 떠올랐는지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황당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
내가 그렇게 거래처를 빼앗겼던 이유가 최 과장의 질투 때문이었다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을 과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난 후에서야 나에게 거래처를 낚아채 감으로써 표출했다는 게 한심해 보였다.
“과장님. 그럼 더더욱 실력으로 보여주셔야지, 이건 진짜 비겁하신 거 아닙니까?”
그는 눈이 반쯤 풀린 상태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어 물고 나서 입을 열었다.
“미안했다.”
그는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숨을 몰아 내쉬더니, 술병을 들고 내 앞에 놓인 잔에 따르며 말을 이었다.
“다시는 없을 거야. 그런 일.”
그리고는 궁금해졌다. 나보다 영업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도 느끼는데, 대체 어떻게 내 거래처를 빼앗아 갈 수 있었는지.
“그럼 대체 제가 영업 다 해둔 병원에 가서 뭘 하셨던 겁니까?”
내가 예상했던 방법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답변을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금기라도 된다는 양, 그는 입을 꾹 닫고서 술잔만 기울였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이 인간이 말을 해줄 리가 없지.
답답함에 나 또한 알코올로 목을 적셨다.
그러던 그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민 대리 이 자식한테 내가 리베이트한다고 말할 순 없지.]
그의 마음속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
기가 차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무슨 대단한 비법이 있어서 비밀로 하는가 했더니 뒷돈을 밀어주는 거였다니.
“민 대리.”
내가 그의 속마음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하는 그는 꼰대 같이 말을 덧붙였다.
“내가 자네 생각해서 말하는 건데… 민 대리 같은 방식으론 성공하기 힘들어.”
“과장님 생각에선 그렇겠죠.”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오늘 술 한잔해 보니까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저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과장님처럼 비겁하게 살고 싶진 않습니다.”
잠깐이나마 이런 인간과 미운 정을 털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가 한심해질 지경이다.
더 남아있는 건 시간 낭비기에 나는 곧장 외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니, 지금 많이 남았…….”
꼬인 혀로 무언가 나불대는 최 과장을 뒤로하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내가 꼭 이 메디컬 바닥에서 내 방식대로 성공해서 그를 눌러주고 싶어졌다.
아니, 최 과장처럼 더럽고 비겁하게 성공해 가는 인간들 모두를 눌러 주고 말 테다.
* * *
술기운이 남아 있는 상태로 출근을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술과 잠을 이겨내기 위해 곧장 탕비실로 향해 커피 캡슐을 하나 빼내어, 커피 머신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커피가 내려오는 향에 취하고, 커피 머신의 시끄러운 소리가 자장가로 들릴 때쯤 탕비실 문이 열렸다.
“민 대리. 일찍 나왔네?”
눈꺼풀이 살며시 감기려고 하는 순간, 탕비실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남의 것을 훔쳐먹다 걸린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옆을 돌아보니, 다름 아닌 손지혁 차장.
“네, 차장님. 오셨습니까?”
“응. 어제 늦게 들어갔어?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커피 머신이 있는 내 쪽으로 다가오는 손 차장에게 먼저 나온 내 커피를 꺼내 건넸다.
“아닙니다. 차장님 이거 드십시오.”
“근데 술은 어제 최 과장 혼자 다 마셨냐?”
“어제 진탕 마셨습니다. 근데 최 과장이 많이 취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아니, 아까 전화 와서 거래처 직출하면 안 되냐고 전화 왔었거든.”
최 과장이 어제 꽤 취했더니 결국은 아침에 손 차장에게 연락했던 모양이다.
“근데 목소리 들어보니까 최 과장 이놈 술 덜 깬 것 같길래, 병원 꼭 늦지 말고 가서 링거 한 대 맞고 오라고 그랬다.”
그럼 그렇지.
손 차장도 최 과장이 업무 때문에 직출하는 게 아니라 술 때문에 핑계를 댔다는 걸 모를 리 없겠지.
“최 과장, 어제 일 기억은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엄청 취했었는데…….”
“많이도 아니고, 둘이 마시면서 뭐가 그렇게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냐?”
“그러니까 말입니다.”
“민 대리는 아주 술꾼이네, 술꾼. 맨날 이렇게 혼자 멀쩡해?”
“하하. 제가 아직 간이 조금이라도 젊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됐어. 어려서 좋겠다. 가서 일 봐.”
“네. 차장님!”
지이잉.
자리로 돌아오는 데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문자의 발신인은 최준성 과장.
[민 대리, 출근은 잘했어? 혹시 어제 내가 실수 한 건 없지?]
어제 할 이야기, 안 할 이야기 다 했는데 보아하니 역시나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늘 회식 때면 후반부에 최 과장만의 취해 가는 나름의 루틴이 있다. 그런 낌새가 보이기 시작하면 최 과장은 바로 블랙아웃이다.
회식 때마다 대부분은 블랙아웃으로 아무 기억도 못 해서 주변 동료들이 알코올성 치매 조심하라는 얘기도 종종 하곤 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까맣게 잊은 게 분명했다.
책상에 앉아 최 과장의 문자를 보며 생각에 잠긴 와중에 창고 쪽 문이 열리고, 재고부 직원이 다급하게 최권호 부장에게 빠른 걸음으로 쿵쿵 다가왔다.
늘 그랬듯이 재고부 직원이 최 부장에게 다급하게 달려온다는 건 무언가 이상이 생겼다는 얘기이다.
재고부 직원이 영업부인 우리 팀으로 달려온다는 건 물건 재고에 이상이 생겼거나 물건 자체의 이상일 경우가 전부다.
사무실에 여기저기서 울리는 전화 벨소리, 통화 소리, 대화 소리, 여러 소음을 제치고 귀를 기울여 재고부 직원과 최 부장의 대화에 집중해 엿들었다.
“…이렇게 되니까 매출 서류랑 다르다니까요?”
“그러네. 하, 이게 왜 다르지.”
오늘은 전자인 물건 재고가 맞지 않아 온 것이었다. 보통 재고가 맞지 않으면 재고부에서 먼저 매출 서류 담당인 여직원과 확인을 한다.
물건이 나가게 되는 순서는 병원에서 영업부 직원에게 발주를 넣으면, 매출 담당 여직원이 거래 명세서를 작성하고 발행을 한다. 그럼 재고부에서는 발행된 거래 명세서에 맞는 물건을 챙겨 두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재고가 맞지 않는 이유는 이것뿐이다.
샘플 처리를 하기 위해 물건을 빼가고 재고 리스트에 체크를 하지 않았거나, 물건을 몰래 빼가는 것.
회사에서 물건을 빼가는 것은 횡령이고, 한 번도 그런 사건은 없었기에 정답은 단 하나.
바로 우리 영업부의 잘못.
내가 잘못 기입한 게 있었나 싶어 머리털이 순간 쭈뼛 섰지만, 나름 꼼꼼하게 체크하고 납품을 하는 스타일이기에 개의치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최권호 부장 앞에는 재고부 직원이 아닌 신입 사원 백태석이 서 있었다. 손을 배 앞에 가지런히 모아두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혼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최 부장 근처에 있는 내 자리로 걸어가면 갈수록 선명히 들리는 꾸지람 소리.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 재고부 직원이 가져온 재고 명부를 최 부장이 들고 백태석을 향해 소리를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