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최 과장은 내 말을 듣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격양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 인마? 이딴 식?”
“어제 명의 병원은 왜 가셨습니까?”
눈 하나 깜짝 않고 내뱉는 내 질문에 그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이 내 물음에 하나둘 숙덕이기 시작했다.
오래전도 아닌 바로 전날. 내가 명의 병원에 영업 성공을 했다는 걸 회의를 통해 온 직원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웅성대기 시작한 직원들 오디오 틈을 비집고 최 과장이 입을 열었다.
“…어? 그게 왜. 내가 간다는 데, 그게 뭐!”
아주 찰나의 순간 당황한 최 과장은 금세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당당하게 개소리를 시전했다.
그게 뭐?
너무 당당하게 내뱉는 말에 일말의 미운 정마저도 깔끔하게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한심했다. 한심함을 넘어 모멸감이 느껴질 정도.
“명의 병원. 제가 납품까지 다 잡아 놨는데, 그걸 또 가로채시려고요?”
“내가 가로채긴 뭘 가로…….”
최 과장이 대답을 마무리 짓기도 전에 말을 자르고 재차 되물었다.
“아! 최 과장님이 직접 망쳐버린 신비 병원 건 만회 방안이 고작 제가 다 해둔 거래처 가져가시는 거였습니까?”
신비 병원. 그는 마치 자신의 약점을 꼬집힌 듯한 얼굴과 함께 눈을 까뒤집었다.
순간 사무실에는 정적만이 흘렀고 고요한 가운데 그가 소리쳤다.
“아니 근데 이 새끼가!”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 타이밍에 맞춰 사무실 출입문이 열렸다.
“무슨 소란이야?”
굵직하고도 위엄 넘치는 목소리.
김 대표다.
그의 등장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을 닫았다.
“다녀오셨습니까.”
“고생하셨습니다.”
대표는 사무실 문을 열고 대표실에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는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다가온 대표를 향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응. 민 대리, 잠깐 나 좀 보게.”
“…네.”
대표는 내 인사에 어깨를 툭툭 토닥이며 호출을 한 뒤 곧장 대표실로 들어갔다. 순간 감정적이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최 과장이 분을 못 이기고 큰 소리를 냈지만, 밑에 직원인 내가 여기서 그를 따라 언성을 높여 봐야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랄 맞아도 이곳은 회사니까.
얼굴이 새빨개져 있는 그를 뒤로하고 대표실로 향했다.
똑똑.
“대표님.”
“응. 민 대리 어서 들어와.”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충분히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네. 대표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명의 병원 말이야. 손 차장한테 아침에 연락받았는데, 원장님한테 담당자 바뀐다고 했다며? 그게 무슨 소리야?”
손지혁 차장이 나와 통화를 한 뒤 진상을 밝히기 위해 장 이사와 더불어 대표에게까지 물어본 모양이다.
“아……. 안 그래도 저도 그것 때문에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말해 봐.”
“아침에 명의 병원 박 원장에게서 전화가 와서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박 원장은 뭐래.”
“최준성 과장이 다녀갔답니다.”
“최 과장이?”
대표는 자세를 고쳐 앉아 팔짱을 끼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네. 어제 다녀갔다고 하더라고요.”
“하……. 그래서?”
“명의 병원 담당이 자기로 바뀌었다고 얘기하러 왔답니다.”
“뭐?”
그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최 과장 이 새끼가 진짜…….”
김 대표의 눈썹이 찌푸려졌다가 펴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공기는 무거워졌고 한참 동안의 침묵이 이어진 뒤에야 대표는 입을 열었다.
“민 대리.”
“네.”
“우선 무슨 말인지 알았고, 내가 최 과장이랑 얘기할게. 나가 봐.”
* * *
끼이익.
옥상 문을 열자마자 아무도 없는지부터 확인을 했다. 사무실에서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식히러 올라와 다른 사람과 또 다른 대화를 하기가 벅찬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을 깊게 마셔댔다. 대표가 들어오는 바람에 끊긴 최 과장과의 대화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태우던 연초가 잡고 있던 손끝까지 타올랐다.
사무실로 돌아가니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분위기와 최 과장의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자리로 돌아가 앉는 순간, 대표실의 꽉 닫힌 문을 비집고 큰 소리가 삐져나왔다.
정적이 가득한 사무실에 직원들은 대표실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큰소리가 한 번 울린 후, 조용해진 대표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그곳에서 나온 건 역시나 최 과장이었다.
바닥을 쳐다 보며 나온 그는 그대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이후 눈을 모니터에서 떼지 않았다.
띠링.
모니터 화면 오른쪽 하단에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 민 대리. 오늘 퇴근하고 한잔하자.
메신저 알람의 발신인은 다름 아닌 최 과장. 쪽지를 열자마자 내용을 읽고 헛웃음이 육성으로 삐져 나왔다.
이 상황에 내가 최준성과 단둘이?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생각해 답장을 보낼 겨를도 없이, 다음 알림이 울렸다.
- 대표님이 카드 주셨어. 민 대리랑 한잔하고 오라고.
…젠장.
대표가 준 카드와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불편한 술자리가 성사되었다.
카드를 쥐여주면서까지 나와 최 과장의 자리를 만들어준 대표의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에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퇴근이 기다려지지 않는 건 회사를 다니며 처음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 기회에 대체 최 과장이 나에게 그동안 왜 이러는 건지 확인을 해볼 생각에 물어볼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기도 했다.
* * *
최 과장과 회사 앞 삼겹살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니 뭐니 해도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과의 식사 때에는 돼지고기만 한 게 없다.
어색할 때쯤 손을 분주히 움직이며 집게 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로 앞 삼겹살집은 근처에 회사가 많아 시끌시끌하기 때문에 어색함을 느낄 틈이 없어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주문한 삼겹살과 소주가 테이블 위로 세팅됐다.
삼겹살과 함께 나온 가위와 집게. 나는 직원이 테이블에 내려놓자마자 집게를 집었다.
“민 대리, 내가 구울게.”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입사 이후에 최 과장과 단둘이 자리를 하는 게 처음이었다. 게다가 몇 시간 전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까지 더해져 어색함과 불편함이 테이블 위로 가득 차올랐다.
식당 안, 우리를 제외한 모든 테이블의 손님들은 시끌벅적했다. 옆 테이블의 대화 내용이 모두 들릴 정도로.
그 와중에 우리는 신변잡기 대화만 나눌 뿐이었다.
“백태석 씨는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한데, 그래도 열심히는 하는 것 같더라.”
“네. 저한테도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기는 하더라고요. 요즘 신입치고 꽤 열정적인 것 같습니다.”
“응. 괜찮아 보여.”
대화는 해야겠고, 회사 내의 직원들을 한 명씩 돌아가며 얘기를 하기 시작했지만, 몇 마디 오고 가지 않아 뚝뚝 끊기는 대화.
명의 병원 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최 과장은 회사 이야기부터 빙빙 돌려 물꼬를 터 갔다.
어차피 마셔야 될 술, 게다가 최 과장과 몇 시간이고 있어야 하는 자리라면 서로 어느 정도 술이 올라와야 되겠다, 라고 결론을 지었다.
오고 가는 술잔 속에 어색함이 사라질 테니까.
그리고 사라지는 어색함 속에 이 불편한 관계도 어느 정도는 원만해지리라, 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빈 병이 두 병으로 늘어나고, 새로운 소주병을 따서 최 과장에게 따랐다.
그는 소주를 한 모금에 털어 넘기고 입을 열었다.
“민 대리.”
“네. 말씀하세요.”
“저……. 미안해.”
“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요?”
그의 입에서 처음 듣는 낯선 사과에 재차 되물었다.
“응. 명의 병원 가는 것까지는 안 해야 했는데. 사과할게.”
나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술기운을 빌려 물었다.
“대체 왜 가신 거예요?”
“민 대리 말이 맞아. 신비 병원 건 만회하려고…….”
“신비 병원 건 회복하자고 진짜 제가 영업해 온 병원까지 이렇게 건드신 거에요?”
“…….”
“신비 병원을 다시 가져올 생각을 하셔야지. 명의 병원으로 무마하시려고 한다는 게 무슨…….”
“신비 병원도 그렇고, 나도 과장 달게 된 지 꽤 됐는데 명의 병원만큼 큰 성과가 없고. 또 명의 병원에 트라우마 쪽도 영업하면 좋으니까…….”
그는 사과랍시고, 갖가지 변명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시고 싶으신 말이 뭔데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최 과장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술을 연거푸 두 잔이나 비운 뒤에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다시는 민 대리 병원 건드는 일은 없을 거야.”
“네.”
사과에 대한 대답은 해야 했기에 알았다고 말은 했지만 믿지 않는다. 이렇게 한 번의 사과 끝에 3년여간 있었던 일이 모두 무마가 되지 않기에.
앞으로 회사 생활을 하면서 최 과장과 안 보고 지낼 수는 없기 때문에 겉으로는 사과를 받았다.
그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더 변명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이미 사과를 받았으니 더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일까. 이후 최 과장은 명의 병원에 관련해 나와 화해를 했다고 생각하는지, 술이 올라온 탓인지 조금 가벼운 주제를 꺼내며 술잔을 들었다.
“그래서 민 대리는 왜 여자친구 안 만들어?”
죽상을 하고 사과를 할 때는 언제고, 금세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들먹거렸다. 게다가 대화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 여자 얘기가 왜 안 나오나 했다.
“저는 뭐, 아직 일이 더 좋습니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왜 소개라도 시켜줘?”
“진짜 괜찮습니다. 과장님은 왜 여자친구 없으세요?”
“나야, 소개팅도 계속 들어오고 하는데, 아직은 솔로를 즐기려고.”
“아……. 그러시구나.”
최 과장은 술이 올라왔어도 내 대답에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소주를 나에게 가득 부어 주었다.
“근데 과장님. 저 뭐 하나 여쭤봐도 됩니까?”
최 과장은 내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침을 한번 꿀꺽 삼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