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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8화 (18/339)

18화

회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자마자 사무실로 급하게 달려 올라갔다.

마치 어릴 적 받아쓰기 100점을 받고 엄마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하교 후 집에 달려갈 때의 그 느낌.

“다녀왔습니다.”

사무실로 복귀를 하니 다들 퇴근 준비가 한창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문이 열리고 복귀하는 나를 향해 몇몇 직원들이 인사를 했다.

“차장님! 다녀왔습니다.”

손지혁 차장은 책상에 앉아 서 있는 나를 보며 검지와 중지를 들고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대며, 담배를 피우러 가자는 손짓을 보냈다.

“차장님. 드디어 명의 병원에 입성했습니다.”

손지혁 차장은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가져다 대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진짜 고생했다.”

손 차장은 그제야 한껏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라고 하든? 욕창 방지 물건 넣어달래?”

“욕창 방지뿐만이겠습니까? 제가 누굽니까, 스플린트도 발주 받아 왔습니다.”

“자식. 엄청 신났네.”

“그럼요. 차장님. 크으. 무려 명의 병원입니다, 명의 병원!”

“그래. 그 험난한 명의 병원을 우리 민지훈 대리님께서 가져오셨네. 대견하다, 대견해.”

“다 차장님 덕분입니다. 차장님이 조언해 주셔서 뚫을 수 있었습니다.”

영업을 다니면서 거래처를 뚫게 된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다.

이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내 힘으로만 거래처를 가져왔을 때의 그 날, 그 감정을 잊을 수 없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체감상 그때보다 더 뛸 듯이 기쁘다.

아직은 꼴랑 물건 한두 품목이 전부지만, 비루한 창으로 어떤 것도 막아내는 방패를 찔러 금을 냈다는 게, 그리고 그게 나라는 게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내일 오전에 주간 회의 있는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오늘 들어가서 푹 쉬고, 내일 어깨 한껏 올려서 회의 들어와라.”

“넵!”

이제까지는 늘 돌아오는 회의 시간이 무의미했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회의 시간이 기다려지다니.

대리를 달고 나서 큰 건을 따내온 게 없었는데, 이렇게 큰일을 해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명의 병원과의 거래에 대해 보고할 때, 최준성 과장의 표정을 보고 싶기도 하다.

* * *

“안녕하세요. 대리님 오셨어요?”

“대리님 안녕하세요.”

“네. 좋은 아침입니다.”

오전에 있는 회의 때문에 영업직 직원들은 병원과 중요한 약속이 잡히지 않은 한 모두 사무실로 먼저 출근을 했다.

9시 25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향했다. 나 역시도 금주의 영업 활동 및 차주 계획을 적은 다이어리를 들고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회의실로 들어오니 백태석이 테이블 위에 사람 수 만큼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올려두고 있었다.

“태석 씨, 홍 대리님은?”

“오늘 홍 대리님 병원 원장님이랑 오전에 약속이 잡히셔서, 바로 병원으로 출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태석 씨는 같이 안 가고?”

“네. 홍 대리님이 오전에 병원 들렀다가 사무실 오시면, 업무 지시해 주신다고 해서 사무실에 있으라고 하셨어요.”

“자, 다 왔나?”

백태석과의 대화가 오고 가던 중, 장홍석 이사가 들어왔다.

“네!”

“홍 대리는 나한테 얘기했고, 나머지는 다 온 거지? 태석 씨, 가서 대표님한테 말씀드리고 와. 오시라고.”

“예!”

“민 대리.”

백태석이 김 대표에게 회의를 알리러 나가자마자 장 이사가 나를 불렀다.

“네. 이사님.”

“이번에 큰 건 하나 했다며?”

“아……. 네!”

“고생했네.”

“아닙니다. 하하.”

“잘했어. 나도 아침에 손 차장한테 들었어. 이따 회의 때 대표님한테 보고 드려.”

“네. 감사합니다!”

손지혁 차장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장 이사에게 보고를 한 모양이다. 그러나 밝은 분위기도 잠시.

“안녕하십니까.”

“어. 다들 앉아. 뭘 일어나기까지 해.”

“네!”

김 대표가 회의실로 들어오자마자 분위기는 급격히 다운됐다. 딱히 잘못을 한 건 없지만 회사에서는 대표가 오면 늘 분위기가 가라앉고는 한다.

지은 죄는 없어도 경찰이 가까운 곳을 지나가면 ‘내가 혹시 무언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 듯 회사에서는 대표가 엄숙한 분위기로 다가오면 같은 느낌을 받고는 한다. 없는 죄도 생기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해서 차주에는 좀 더 소모품 영업에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힘만 쓰지 말고, 결과로 좀 가져와라.”

“네…….”

“다음?”

앉은 순서대로 보고를 하다 보니, 벌써 내 차례가 다가왔다.

“네!”

“어, 그래. 민 대리 얘기해 봐.”

“네! 명의 병원 신규 개설 관련하여 보고드립니다.”

명의 병원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내 목소리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고 그 단어에 적막하던 회의실의 여러 직원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

대표는 멈칫하더니.

“명의 병원?”

볼펜으로 노트를 끄적이느라 숙이고 있던 김 대표는 적잖게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벌떡 들고 나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네! 명의 병원입니다.”

“어, 그래. 우선 계속해 봐.”

“명의 병원 박승호 원장과 미팅 결과, 욕창 방지 제품과 스플린트를 이번 주에 납품 예정입니다.”

김 대표 옆에 앉아 있던 최권호 부장이 큰 소리로 물었다.

“우리 제품을 쓰겠대? 명의 병원이?”

“네. 그렇습니다.”

“거기 MG 메디컬이 꽉 잡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래서 소모품 종류 몇 가지만 지금 넣기로 했습니다.”

“와. 그 명의 병원을 뚫었다고? 민 대리 대단한데?”

“감사합니다.”

“그래. 명의 병원에 드디어 우리 회사가 들어가다니… 고생했다, 진짜.”

“네. 감사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명 한명 축하와 칭찬을 해주기 시작했다.

딱 한 명.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최준성 과장을 제외하고.

“자. 다들 민지훈 대리 큰 건 따왔으니까, 박수 한번 치자고.”

짝짝짝.

오랜만에 듣는 회의실에서의 박수 소리.

지난번 최준성 과장이 KJ 병원의 신 과장 영업에 성공을 했을 때 이후에 오랜만에 듣는 박수 소리다.

영업직을 하다 보면 거래처를 따오는 건 당연한 일이기에 정말 큰 거래처나 큰 거래 건이 아니면 이런 훈훈한 분위기의 회의가 나오기는 어렵다.

나 역시도 입사하고 처음으로 거래처를 따왔을 때 이후에 몇 년 만에 받는 박수와 칭찬 세례에 뿌듯함이 온몸에 퍼져나갔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민 대리, 명의 병원은 이제 막 넣기 시작했으니까 앞으로도 물품 폭 넓힐 수 있도록 힘써주고.”

“예!”

“그리고 명의 병원에 물건 납품하거나 영업할 때 어려운 점 있으면 얘기해. 나한테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 있으면 사수가 손 차장이니까, 손 차장이 확인해서 나한테 얘기해 주고.”

“네. 알겠습니다.”

손지혁 차장은 김 대표의 말에 대답을 한 뒤, 나를 쳐다보며 웃어 보였다.

모두들 축하하는 분위기로 회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아까부터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노트만 끄적이고 있는 최준성 과장을 빼고.

“그리고 다들 민 대리처럼 성과 좀 내도록 해. 대리가 이렇게 일하는데 다들 뭐하고들 있냐?”

“네…….”

“예. 알겠습니다.”

곳곳에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세등등하던 내 어깨는 김 대표의 마지막 멘트 때문에 괜히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옆에 한껏 위축되어 있는 최 과장을 보니 이렇게 뿌듯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다음?”

김 대표는 내 옆에 앉은 직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네. 보고드리겠습니다.”

내 옆자리에는 하필 최준성 과장. 며칠 전 신비 병원 일로 인해 쥐 죽은 듯이 회사를 다니던 최 과장이다.

나를 아니꼽게 생각하는 최 과장이 내가 이렇게 칭찬 세례를 받는 이런 날, 하필 신비 병원으로 깨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째질 듯했다.

“응. 얘기해 봐.”

“…이렇게 해서 다음 주에는 북구 쪽으로 돌아보려고 합니다.”

“음……. 그건 그렇고, 신비 병원 대책은 가져왔어?”

“아……. 신비 병원은 아무래도 단가를 낮춰서 들어가는 게…….”

“뭐? 단가를 낮춰? 며칠 내내 생각해 온 해결 방안이 고작 단가 하향 조정이야?”

“백상 메디컬에서 단가를 낮춰 버려서 저희가 더 낮춰서 들어가 봐야 승산이…….”

김 대표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의 최준성 과장의 말을 칼처럼 잘라버리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우린 뭐 땅 파서 장사해? 최 과장, 장난해 지금?”

“…….”

금세 사무실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집에 뭐 우환 있어?”

“아닙니다.”

“근데 대체 왜 그래 요즘? 선한 병원에도 발주 한 건 누락 됐다며.”

“아……. 그게…….”

“잘 좀 하자. 최 부장, 네가 최 과장 대신 신비 병원 대책 생각해서 나한테 따로 보고 올리고, 하…….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네. 이번 주 중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권호 부장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을 했다.

김 대표는 최 부장의 대답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벗어났다.

“다들 나가서 일 봐.”

싸해진 분위기 속에서 장홍석 이사는 한숨을 크게 내 쉬며 얘기를 했고, 하나둘 회의실을 나가기 시작했다.

“최준성. 나 좀 보자.”

“네. 정리하고 나가겠습니다.”

최 부장은 최준성 과장을 노려보며 얘기하고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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