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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6화 (16/339)

16화

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니, 며칠 전 명의 병원 박 원장에게 소모품을 소개할 때 들어왔었던 옆방 이명호 원장이다.

“아! 네. 맞습니다. 이명호 원장님 맞으시죠?”

“역시. 지나가는데 옆에 큰 박스가 있길래, 다시 돌아봤습니다.”

박 원장에게 보여주려고 가져온 샘플이 가득 차 있는 커다란 박스를 보고 메디컬 직원임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제 이름까지 외워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원장님.”

“아니, 뭘요. 대리님은 제가 아직 명함 드리지도 못했는데 벌써 제 이름 다 알고 계시네요?”

“그럼요. 다음에 원장님 뵙고 명함 받으러 가려면 미리 외워둬야죠. 이미 원장님은 명의 병원에서 워낙 유명하시기도 하고.”

“유명은요, 뭘. 하하. 승호 만나러 온 거죠?”

“네. 저번에 이 원장님께서 박 원장님 방에 잠깐 들어오셨을 때, 그때 보여 드렸던 소모품들이랑 나머지 물품도 보여달라고 하셔서 더 가지고 왔습니다.”

“안 그래도 저도 그때 그 물건 승호 방에 가서 봤어요. 오늘 스플린트 가져온 거죠?”

“아……. 네. 가져왔습니다.”

“아니, 여기서 이럴 게 아니지. 승호 한 삼십 분은 더 있어야 여유 생길 거예요. 내 방 갔다가 이따 물건 같이 보러 가요.”

“네, 좋습니다.”

“아니. 짐은 여기 앞에 놔두고 가도 돼요. 어차피 외래 간호사들 있어서 아무도 안 가져가니까.”

방으로 옮기자는 말에 벌떡 일어나 짐을 드는 나를 보고 이 원장은 박스를 들지 못하게 막으며 말했다.

“아……. 하하. 지나다니시는데 걸리적거릴까 봐요.”

“이거 여기 놔둘 테니까, 박 원장 나오면 이 짐 주인이랑 내 방에 있다고 말해 줘요.”

이 원장은 외래 진료실 앞 스탠딩 테이블 뒤에 서 있는 간호사에게 샘플 박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 곧 진료 끝나시니까 나오시면 전달 드리겠습니다.”

나와 이명호 원장은 박승호 원장 진료실을 지나 옆방에 위치한 진료실로 향했다.

[이명호 원장]

나는 이명호 원장을 따라 그의 진료실로 들어갔다.

이 원장의 진료실은 그동안 봐왔던 곳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진료실 방이었다. 뭐랄까, 누가 봐도 공부를 진짜 많이 하는구나, 싶은 방?

의사들이라면 누구나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은 알고 의사가 되고 나서도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진료실에 들어오면 진료 데스크 옆으로는 대부분 책장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게 그 책장에는 의사 면허증, 전공 서적, 뼈 모형 등이 즐비해 있다. 그리고 결혼한 의사들의 책장의 필수품인 가족사진 혹은 자녀 사진 액자들. 그런데 이 원장의 책장은 카탈로그로 대부분 가득 차 있다.

카탈로그는 우리 회사에서 쓰는 인공 관절, 트라우마, 소모품은 물론 우리 회사에서 취급하지 않는 다른 제조사의 제품들 자료들도 매우 많이 꽂혀 있다.

의사들은 공부도 많이 했었고, 의사가 된 후에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학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이미 의사가 됐어도 도태될 수는 없기 때문.

여러 의학 제품들이 새로 나오고 새로운 수술 방법들이 나오기 때문에 늘 공부를 해야 하는 건 맞지만 일부의 써전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제조사나 제품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제조사만을 고집하거나 그 제품만을 사용하기도 한다.

보통은 자신이 선호하는 제조사, 제품을 사용하다가 그 제품이 리뉴얼되거나, 신제품이 새로 나오면 그때 가서 그것에 대해 공부를 하고 제품을 추가하거나 바꾸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A 제조사 제품, B 제조사 제품 등 여러 가지 제품들로 수술하며 사용해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제조사마다 수술하는 방법, 순서, 제품의 생김새가 천차만별이기도 하고, 한 제조사 제품으로 수술할 때마다 수술에 대해 엄청난 공부를 한 이후에 수술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환자의 상태가 극명하게 다르거나 특별한 케이스로 다르지 않은 경우에는 자신에게 맞는 제조사의 제품으로만 쭉 사용하며 수술을 한다.

환자마다 같은 수술을 하더라도 각각 상태가 매우 다르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를 보고 제품을 선정하는 게 더 효과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떤 제품이 있는지, 어디 제품이 어떤 상태의 환자에게 좋은지를 알려면 많은 제조사의 제품과 특성에 대해 알고 있어야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 같은 제품을 설명하고 영업을 하는 메디컬 영업직이 존재하는 것.

그렇기에 이처럼 여러 제품의 카탈로그가 있는 이 원장의 방이 생소하고 신기해 보였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요, 민 대리님?”

“아……. 원장님 진료실은 처음이라 구경했습니다. 깔끔하고 좋은데요?”

진료실에 들어와 벽면의 책장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보다가 이 원장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환자용 의자에 앉았다.

탁.

“민 대리님, 드릴 게 이거밖에 없네. 이거라도 마셔요.”

이 원장은 진료실 데스크 뒤쪽, 한편에 마련된 미니 냉장고에서 유리병에 담긴 포도 주스를 하나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내 앞쪽으로 밀어주었다.

“저 포도 주스 좋아하는데 어떻게 아시고. 하하핫. 잘 마시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이거. 저번에 만났을 때 다음번에 준다고 했었는데…….”

이 원장은 내게 주스를 건네주자마자,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명함꽂이에서 명함 한 장을 빼서 나에게 건넸다.

병뚜껑을 열다가 황급히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명함을 양손으로 받아 들었다.

“네. 제가 따로 찾아뵙고 받았어야 했는데, 잘 간직하겠습니다.”

“간직까지야, 하하.”

“원장님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십쇼. 제가 이래 봬도 생각보다 어립니다. 하하.”

“그럴까? 민 대리는 딱 봐도 젊어 보여. 부럽다 부러워.”

“근데 이 원장님. 카탈로그 종류를 엄청 많이 가지고 계시네요? 혹시 어디 제품 쓰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우리? 우리는 문 바이오라고 알지?”

“네. 문 바이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병원이 MG 메디컬에서 인공 관절 쪽은 문 바이오 제품으로 넣어 주고 있어.”

“아……. 저는 IBH 제품 쓰시는 줄 알았습니다. 카탈로그가 많아서요.”

“그랬어?”

“네. 문 바이오 임플란트 쓰시는구나. 근데 인공 관절 문 바이오 거 말고도 다른 제조사 카탈로그가 엄청 많네요?”

“어. 그냥 여기저기에서 자료 받기도 하고, 정형외과 학회 갈 때마다 교육받고, 이 회사 저 회사들 거 보고 관심 있어서 가져온 자료들이야. 민 대리네는 인공 관절 임플란트는 어디 제조사 거로 사용해?”

“저희 인공 관절은 대부분 IBH 거 제품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제조사 제품들도 있긴 한데, 대부분 병원에서 IBH 제품이 사용하시기 더 편하다고 하셔서 주로 밀고 있습니다.”

“아……. 올해 춘계 학회 때 가서 보니까 IBH에서 어깨 인공 관절 임플란트 사이즈랑 제품 추가됐다고 하던데, 꽤 좋다고 하더라고?”

“네, 맞습니다. 되게 잘 아시고 계시네요? 대부분 사용하시는 제품 아니면 잘 모르시던데…….”

“IBH 거 제품 괜찮은 것 같아서, 저번에 MG 메디컬에 물어보니까 거기는 IBH 제품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네. 아마 제가 알기로도 MG에서는 IBH 제조사 제품 안 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게. IBH 거 어깨 인공 관절 한번 사용해 보고 싶었…….”

“어이, 이 원장.”

문이 벌컥 열리면서 박승호 원장이 들어 왔다.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야, 박 원장아. 인간적으로 노크는 좀 하자.”

“진료 없는 거 아는 데 무슨 노크까지. 민 대리 언제 왔어?”

“아까 와서 앞에서 원장님 기다리다가 이 원장님 만나서 있었습니다.”

“너 왜 내 손님 빼앗아 가.”

“뺏긴, 왔으면 챙겨야지. 박 원장이 진료 환자가 워낙 많으셔야지. 내가 민 대리 시간 때워줬다. 그치, 민 대리?”

“하하. 이 원장님 덕분에 잘 있었습니다.”

“아까 우리 간호사한테 들었는데, 샘플 박스 엄청 크던데? 제품 다 들고 온 거야?”

“네. 혹시 몰라서 말씀하신 제품들 사이즈도 대부분 재고 있는 건 다 가져왔습니다.”

“그래? 아니, 민 대리 나 아직 결정은 못 했는데 이렇게 다 가져오면, 나 부담스러우라고 가져온 거야?”

“에이, 원장님. 제가 원장님 부담스러움 느끼시라고 가져왔겠습니까? 하하.”

“많이도 가져왔다, 민 대리.”

그는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방으로 옮겨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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