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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5화 (15/339)

15화

명의 병원 박승호 원장의 문자로 20분이나 일찍 눈을 뜬 후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 준비를 하다 보니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사무실에 도착을 했다.

오늘 아침, 잠결에 생각했을 때에 넘치던 자신감은 출근 후 점점 이성을 찾아갔다.

샘플만 보고 발주를 하지 않을 수도 있을 수도 있기에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고 명의 병원을 가기로 했다.

영업을 하다 보면 기대했던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대다수였기 때문.

특히나 납품 직전에 어그러지는 경우가 제일 기분 나쁜 경우지. 그렇기에 설레발은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

“안녕하세요. 민 대리님 오늘 일찍 나오셨네요?”

“어. 태석 씨도 일찍 왔네?”

“네. 오늘 좀 일찍 도착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누르고 앉아 있는데, 뒤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민 대리님, 커피 드시겠습니까?”

백태석 사원은 탕비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물었다.

“좋지.”

탕비실에 하나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가 타주는 커피를 받아 들었다.

“태석 씨랑 탕비실에서 단둘이 커피 마시는 건 또 처음이네?”

“그러게요. 다들 바쁘시기도 하고, 거의 밖에 계시니까요.”

“그러니까 말이야. 회의 시간이나 회식 때 아니면 서로 얼굴 보고 얘기할 시간도 많지 않잖아. 그나저나 요즘 일은 어때? 많이 적응했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입 사원인 백태석은 아직도 회사에서 뭘 해야 할지, 늘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말이지.

“홍 대리님 따라다니면서 배우고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열심히 쫓아다니기는 하는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태석 씨가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이제 한 달 꽉 채워갑니다.”

“수습 기간 끝나기 전까지는 적응해야 되지 않겠어?”

“네. 열정은 넘치는데, 일을 하나부터 배우지 않고 바로 현장으로 뛰어들어 가니까,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막막하더라고요. 시간이 더 지나서 홍 대리님 빼고 혼자 다닐 생각하면 벌써부터 아득한 느낌이에요.”

“홍 대리님도 그거 알고 있고?”

“아니요. 홍 대리님한테는 아직 말씀 못 드렸는데…….”

홍 대리, 홍찬성 대리는 나보다 입사도 빠르고, 나이도 2살이나 더 많은 직원이다. 내가 입사 시기에 비해 대리라는 직책을 이르게 달게 된 편이라 홍 대리에게는 내가 달갑지 않은 대상일 것이다.

홍 대리는 업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좀 센스가 없달까. 쉽게 설명하자면 좀 마이 웨이의 성향을 띠고 있다.

사무실에서의 사회생활부터 영업을 나갔을 때까지 자기 자신 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스타일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영업을 하나 싶었는데, 그래도 마이 웨이인 만큼 자기가 영업을 다니는 써전에게는 성공할 때까지 다른 거래처, 다른 써전들은 신경 쓰지 않고 직진하는 스타일.

그렇게 영업을 열심히 하긴 하지만 다른 직원들의 비해 실적이 낮기도 하고, 사무실 라인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늘 승진에서 밀리는 편이다.

백태석은 조금 친절함이 부족한 이런 홍 대리를 사수로 만나 눈칫밥을 먹고 있는 게 눈에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든 태석 씨 사수는 홍 대리님이니까 편하게 털어놔. 홍 대리님이 좀 차가운 면이 많아도 배울 점도 많을 거야. 윗사람들은 아랫사람 불편할까 봐 다가가기 꺼려지기도 하거든.”

“네. 다가가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그렇지. 근데 태석 씨가 사회 초년생이기도 하고, 나이도 어리니까 일 끝나고 힘든 날이면 술 한잔 사주세요 하면서 따로 자리도 한번 만들어보고 해.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야.”

“네, 그렇게 해볼게요. 근데 민 대리님은 사수가 누구셨어요?”

“나는 손지혁 차장님. 원래 첫 사수가 중요해. 나도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맨날 어리바리할 때, 그때 손 차장님이 많이 도와주셨지.”

“아, 그렇구나. 민 대리님 일 잘하셔서 어떤 분이 사수였는지 궁금했어요.”

“하하. 태석 씨, 사회생활할 줄 아네.”

“진심입니다, 선배님.”

“여하튼 홍 대리님 따라다니면서 스펀지처럼 알려주는 거 쫙쫙 흡수해서 좋은 거는 잘 가지고 있고, 아닌 거는 듣고 흘리지 말고, 보면서 그런 실수는 안 하면 되니까 잘 봐둬. 꼭 홍 대리님 아니더라도 다른 선임들 하는 것도 보고 물어보고 하면서.”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래. 몇 년 일해 보니까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경험 많이 해보는 게 그렇게 도움이 되더라고.”

“근데 제가 벌써 실수도 했어서…….”

“초반에 실수한다고 너무 기죽지 말고. 실수는 누구나 하잖아. 그런데 같은 실수를 다시 또 안 하는 게 새로운 거 더 잘하는 것보다 중요하니까.”

“아…….”

백태석은 늘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 들고 다니는 작은 수첩과 펜을 꺼내서 내 얘기를 노트에 적었다.

참 열정만은 가득하다니까.

“아, 태석 씨. 그리고 이 얘기는 꼭 해주고 싶었는데. 너무 당연하겠지만 병원 다니면서 써전들 만나서 인사 잘해!”

“네! 홍 대리님 따라다니면서 인사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간호사들한테도 마찬가지고.”

“간호사 선생님들도요?”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당연하지. 꼬박꼬박 인사하고, 이름도 외워주는 그런 사소한 게 생각보다 중요해. 병원 사람들은 우리 같은 여러 메디컬 직원 매일 여러 명 보잖아.”

“아, 그렇겠네요.”

“우리가 그냥 선생님 할 때 보다, 누구 선생님 하면서 이름 불러주는 게 은근히 커.”

“걱정이네요. 수가 너무 많아서 잘할 수 있을지…….”

“자주 가다 보면 금방 외워질 거야. 그리고 내가 병원 돌아다니다 보면 몇몇 메디컬 신입 직원들이 써전들 얼굴 못 알아보는 건지, 인사 안 하고 로비에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해.”

백태석은 자신이 그랬던 적이 있었는지 눈알을 굴리며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써전들이 오히려 먼저 얼굴 알아보고, 나한테 그 직원들 욕하는 것도 몇 번 봤어. 기왕이면 우리 회사 직원들은 안 그랬으면 좋겠더라고.”

“아, 정말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백태석은 노트에 ‘이름 외우기’, ‘인사’를 커다랗게 적고 별표까지 그려 보였다.

“대리님. 다음에 기회 되면, 저도 민 대리님 영업 가시는 것도 한번 따라가서 배워보고 싶어요.”

“나한테?”

“네. 매번 홍 대리님만 따라다니면서 배우다가 저번에 한번 최 과장님 쫓아다니면서 배운 적 있는데, 음……. 이런 말씀드려도 되나……?”

백태석은 끝을 흐리며 말을 했다.

“뭔데?”

“저랑 좀 잘 안 맞……. 아니, 홍 대리님이랑 엄청 다른 분위기였어요.”

백태석은 사회생활이 처음이라 그런지 최 과장보다 밑에 사람인 나에게 최 과장에 대해 저렇게 얘기를 하는 걸 보니, 눈치가 부족한 사회 초년생 티가 나긴 한다.

“그래? 사람마다 다들 영업하는 게 다르니까. 다음에 기회 되면 같이 나가보자고.”

“네. 감사합니다.”

“특히 제일 중요한 건 우리 회사 제품 먼저 익히는 거 알지? 많이 공부는 했어?”

“의학 용어 공부하다가 이제 막 홍 대리님 따라다니기 시작해서… 모르는 게 아직 너무 많아요.”

“재고부 직원들 있지만, 그래도 재고부랑 우리 영업부랑 별개라고 생각하면 안 돼. 결국은 병원 가서 제품 소개하는 건 우리니까.”

“아……. 네!”

“제품을 알아야 가서 소개를 하든, 팔든 할 거잖아. 사무실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부터 틈나면 창고 가서 물건 하나하나 살펴보기도 하고. 모르면 재고부 직원들도 물건 쓰임새 다 아니까 물어보기도 하고 공부해 둬.”

“네! 안 그래도 저한테 홍 대리님이 물건 창고에서 가지고 오라고 하신 적 있어서 창고 몇 번 가봤어요.”

“왜 시키는 줄은 알고?”

“그건 잘……. 재고부 직원들 있는데, 왜 저한테 시키시나 했어요.”

“그건 홍 대리가 하기 싫어서 시키는 게 아니라, 태석 씨 공부하라고 시키는 걸 거야. 그러니까 그냥 글씨 써진 대로 찾아서 들고 오지만 말고, 왜 인공 관절을 했으면 이 제품을 가지고 나가야 되는지를 공부해. 나 곧 창고 가서 물건 챙겨야 하는데, 같이 가볼래?”

“네. 같이 가겠습니다. 오늘 많이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민 대리님.”

“아니야. 힘들거나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네!”

탕비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대화하고 나오니, 직원들이 전부 출근을 한 후였다.

“민 대리. 잠깐 내 방으로!”

나오자마자 장홍석 이사의 호출.

이사실로 바로 향했다.

“이사님. 부르셨습니까?”

“어, 민 대리. 하반기 마감 때까지 예상 매출이랑 상반기 매출 나온 거랑 민 대리 담당 병원 비교해서 PPT 만들어서 보고 올려. 회의 때 발표해야 되니까, 사장님 보시기 전에 내가 먼저 보게 오늘까지 해서 보여줘.”

“네. 알겠습니다.”

“민 대리님. 저 오늘 사무실 근무하라고 홍 대리님이 그러셨는데. 창고 지금 가는 겁니까?”

백태석은 내가 이사실을 다녀오는 동안 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

“태석 씨 어쩌지. 나 지금 파일 작업할 게 생겨서, 좀 바빠. 오늘은 같이 창고 못 갈 것 같은데.”

“그럼 제가 물건 챙겨 올까요? 어차피 공부하러 창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럴래, 그럼? 이거 목록대로 전부 한 개씩 꺼내다 주면 되고, 샘플 처리할 거니까, 재고부 직원한테 얘기하면 돼. 잘 체크해서 가져다줘.”

“네! 빠짐없이 잘 체크하고 가져오겠습니다!”

백태석은 의욕이 넘치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고마워.”

“민 대리님. 목록 주신 대로 챙겨왔어요.”

오전 내 회의 때 발표할 PPT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백태석이 창고에서 먼저 돌아왔다.

챙길 것이 많다 보니 가져갈 샘플만 한 박스가 넘는 양이다.

“고마워. 내가 한 번 더 확인해서 갈게. 고생했어.”

“아닙니다. 고생하십쇼!”

다행히도 백태석은 내가 한 번 더 일하는 일이 없게, 내가 쥐여준 목록 그대로 물건을 모두 맞게 챙겨왔다.

파일 정리를 마친 후 서둘러 회사를 빠져나왔다.

“다녀오겠습니다.”

* * *

명의 병원에 도착해 외래 진료가 한창인 박승호 원장실 앞에서 대기 환자들과 섞여 앉아있었다.

언제쯤 여유가 생기려나.

천천히 시간을 때우고 있던 그때.

“어? 민 대리님?”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 앞으로 누군가 휙 지나가다가 뒤로 돌아와 나를 불렀다.

“WG 메디컬 민지훈 대리님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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