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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4화 (14/339)

14화

“원장님.”

“왜?”

“진짜 멋있으십니다.”

“멋있긴, 뭘.”

그는 민망하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지금까지 그러지 못한 게 좀 한이었달까? 그동안 나처럼 시도하다가 떠난 써전들도 많기도 하고, 이런 패턴에 만족하는 써전들도 많아서 비판이나 비난은 못 하지.”

“그렇죠. 정답은 없으니까.”

“근데 내가 생각하는 건, 적어도 환자들이 원하는, 특히 정형외과 쪽 인공 관절 수술 쪽은 더더욱 그렇잖냐. 사실 젊은 사람들은 인공 관절 수술이라는 걸 할 일이 없어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인공 관절은 말 그대로 관절이 다 닳아 인공으로 관절을 바꿔주는 수술이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수술을 하는 일은 정말 드문 일이다.

“근데 그 환자들이 젊은 사람들처럼 인터넷이나 주변에서 급여, 비급여 알아보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병원에서 비싼 제품 쓰라고 하면 이게 비싼 건지 싼 건지도 모르고, 나오는 병원비 꼬박꼬박 다 내면서 다니잖아. 가끔 힘들어하시는 어르신들 보면 안쓰러울 때도 많아.”

“네. 수술 비용보다 수술 후에 쓰는 소모품들 중에는 비급여 제품이 수두룩하다 보니 부담스러워하는 환자들이 많긴 하죠.”

“그럼. 내가 나가서 차리기 전까지는 한번 판도라도 바꿔보려고 노력은 해야지. 언제까지 모른 척하고 계속 이렇게 생활하겠어.”

“원장님. 진짜 너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원장님이랑 친분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박승호라는 사람한테 반할 것 같습니다.”

“에이, 징그럽게. 반하지 마. 나 남자 안 좋아해.”

“하하. 진짜 존경스럽습니다, 원장님.”

“그래. 그럼 계속 존경받으려면 내가 민 대리 실적도 많이 올려줘야겠네. 그래야 더 존경해 주는 거 아니냐.”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럼 평생 존경하면서 살아야죠, 원장님. 하하핫!”

“넉살은. 아무튼 제품 몇 가지는 무조건 들어올 거니까. 민 대리도 그렇게 알고는 있어. 내가 물건들 한번 봐보고 연락할게.”

“네, 원장님. 고생하십쇼. 들어가 보겠습니다.”

* * *

명의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사무실로 복귀를 했다.

“손 차장님. 저 보고 드릴 게 있는데.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

“어, 가능해.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오자.”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손지혁 차장과 옥상으로 향했다.

“차장님. 저번에 말씀드렸던 명의 병원 박승호 원장 있지 않습니까?”

“그래. 어떻게 되어 가는 중이야?”

손지혁 차장은 나에게 물어보는 동시에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나는 그에게 불을 붙여주기 위해 라이터를 가까이 가져다 대며 말했다.

“저 명의 병원 영업 성공할 것 같습니다.”

손 차장은 불을 막 붙인 담배를 바로 떼어내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로?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설명 좀 해봐.”

“명의 병원에 MG 메디컬이…….”

명의 병원과 박승호 원장과 내가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동안 손지혁 차장은 들고 있던 담배를 한 모금도 피우지 않고, 내 얘기에 집중해 불이 붙은 연초가 다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래. 나도 얼핏 들어서 가족이라고 했던 것 같긴 하네. 대부분 병원들이 메디컬이 가족으로 이루어진 거면 애초에 덤비는 것조차 하지 않아. 워낙 견고한 관계니까 말이야.”

“네. 요즘은 실제로 영업 오는 거래처도 많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치. 그러면 오히려 금방 뚫려 버릴 수도 있는데… 다들 그걸 모르고 시도조차 안 하지. 잘했다. 많이 컸네, 민지훈. 명의 병원같이 큰 병원에 도전해 볼 줄도 알고.”

“아, 저도 이번에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몇 번 까이다 보니 명의 병원은 생각도 못 하긴 했었거든요.”

“녀석, 겸손은. 운도 실력이야. 고생 많았다.”

“감사합니다. 아직 납품한 건 아니긴 한데. 빨리 차장님께는 보고 드려야 될 것 같아서요.”

“그래. 중간에 어그러질 수도 있는 거지만, 명의 병원에 시도해서 이렇게까지라도 갔다 온 것만 해도 잘했지. 명의 병원에 납품 못 한다고 해도 박 원장이랑 친분 생겼으니까, 언제 박 원장이 개인 병원 차릴지도 모르는 거고. 한번 잘해 봐.”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응. 그래도 명의 병원에 박 원장 있을 때 잘 지켜보기는 해. 명의 병원에 한 써전만 뚫리게 되면 박 원장 라인 사람들은 다 이어서 받을 수도 있거든. 이번에 뚫기만 하면 올해 민 대리 인센티브는 확실하게 걱정 없겠다.”

“인센티브 바라보고 한 건 아니지만, 벌써 기쁘긴 하네요. 대리 달고 나서는 요새 그렇다 할 만한 실적이 없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었거든요.”

“실적도 중요한데, 인센티브도 중요하지. 안 그러냐. 우리 다 먹고살기 위해 돈 벌려고 다니는 회사인데. 하하.”

나는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또 그렇기는 합니다. 제가 명의 병원 뚫려서 인센티브 받게 되면, 차장님께 거하게 한턱 쏘겠습니다.”

“내가 뭘 해줬다고, 나한테 한턱 쏘냐.”

“그거야 차장님이 늘 제 뒤에 든든히 계셔 주시지 않습니까. 차장님 없었으면 제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차장님께는 늘 감사하죠. 얻어먹은 것도 너무 많고요.”

“그래. 그럼 이왕 쏠 거 인센티브 어마어마하게 받아서, 크게 쏴라.”

“네!”

“김칫국 마시지 말고, 다 되면 기뻐하자고.”

“하핫. 네, 알겠습니다.”

“아무튼, 지금이 제일 많이 신경 써야 될 때야. 딱 이러다가 어그러지는 게 대다수니까. 되도록 시간 나면, 아니 시간 내서 명의 병원 자주 찾아가. 도움 필요하면 말하고.”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급여 제품 필요하다고 해서 무조건 급여 제품만 넣을 필요는 없어. 비급여만 나오는 품목 종류들 있잖아. 그런 건 어쩔 수 없이 비급여로 사용해야 되니까, 그중에서 물건 괜찮은 거 들고 가서 같이 영업해.”

“아, 네. 안 그래도 제가 오늘 급여 제품만 들고 갔었는데, 비급여도 괜찮은 걸로 정리해서 가져가 봐야겠네요.”

“그래, 그러니까 중간에 잘 끼워서 영업해 봐. 이번에 붕대 제품 본사에서 내려온 거 알지? 리뉴얼된 거거든? 그것도 한번 들고 가봐. 내가 오늘 병원 몇 군데 가져가 봤는데, 꽤 반응 좋더라.”

“그렇습니까? 내려가서 붕대 한번 다시 봐보겠습니다.”

“그래. 먼저 내려가서 퇴근해. 나 담배마저 피우고 갈게.”

“네, 차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 * *

지이잉.

아침부터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진동 소리에 눈이 떠졌다. 시간을 보니 아직도 알람이 울리기 20분 전이었다.

하. 대체 이 시간에 누가 문자를 보낸 거야.

잠이 덜 깬 얼굴로 실눈을 뜨고, 핸드폰 잠금 화면을 풀어 문자 발신인을 확인했다.

[명의 병원 박승호 원장]

혹여나 어제 총무과에서 납품을 막았다거나, 아니면 명의 병원 원장장의 극심한 반대로 납품을 막았을 거란 불길한 기운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손지혁 차장에게 온갖 설레발을 떨었는데, 납품이 안 된다고 하면 뭐라고 하지.

최준성 과장의 코를 드디어 납작하게 해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모든 게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발신인을 확인하고, 눈이 번쩍 떠지다 못해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켜 앉아 문자 수신함을 클릭했다.

제발……!

[민 대리. 아침 일찍이라 전화 대신 문자 남겨. 어제 가져왔던 자료 중에 스플린트 종류들 한 개씩 다 들고 오늘 좀 와줘.]

나이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됐다!

불과 10초 전까지 머릿속을 채웠던 불길한 생각들이 모두 사라지고, 밀려드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제 가져갔던 자료들 중 스플린트. 즉, 보호대 종류만 해도 13가지이다.

하물며 각 보호대 중 사이즈가 최소 2가지에서 5가지로 세분화되어 있어 납품만 하기 시작한다면 개수는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

인공 관절도 마찬가지로 사이즈가 전부 다르지만, 소모품은 인공 관절과는 다르게 어떤 수술을 하더라도 정형외과에서는 뼈에 관련된 수술을 한다면 필수로 착용해야 하는 필수품이다.

발목이 부러지면 수술 후 발목 보호대를 필수로 착용해야 하고, 손목, 무릎 등 미착용으로 환자가 다닐 수 없기 때문.

또 병원에서는 보호대 종류를 여러 회사 제품을 두지 않고, 한 군데의 회사 제품만 구비해 둔다.

같은 발목 보호대라도 어떤 환자는 ‘A 제품’, 다른 환자는 ‘B 제품’을 판매한다면 제품의 특성을 잘 모르는 환자들이 입원실이나 병원에서 오다가다 누구는 얼마짜리를 판매했네, 다른 환자 제품은 더 좋은데 가격이 저렴하다는 둥 말이 수도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자의 성별, 키, 몸무게에 따라 사이즈가 다 다르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전 사이즈를 보유해야 한다. 따라서 보호대는 한두 가지 종류로만 납품을 시작해도 발주량이 어마어마해진다.

아직 납품을 하기로 한 건 아니지만, 샘플을 보자고 한 후에 물건에 큰 흠이 없는 한은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확률이 높다는 것뿐, 여전히 확실한 상황은 아니다. 언제든 마음을 틀어 납품 확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설레발을 접어야 하는 걸 알지만, 지금 당장 기쁜 감정은 주체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알람 대신 문자 알림음에 깨어나서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이런 알림음이라면 매일 들어도 행복하게 눈을 뜰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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