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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1화 (11/339)

11화

【 창과 방패 】

바이크에 몸을 실어 광주로 넘어오는 내내 풍경은커녕 박승호 원장의 마지막 멘트만이 귓가에 도돌이표처럼 맴돌았다.

“오늘 민 대리 덕분에 나도 재밌었거든. 할 얘기도 생겼고…….”

혹시 명의 병원에 우리 WG 메디컬도 입성할 수 있는 건가?

진입 장벽이 높기로 유명한 명의 병원에 입성을 한다는 것, 그것도 대리인 내가 해낸다면 승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아도 된다.

최 과장의 코를 누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는 생각 때문일까, 보성으로 올 때보다 광주로 가는 시간이 배로 빠르게 느껴졌다.

* * *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직원이 소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마자 바로 집어 들어 뚜껑을 따서, 박승호 원장의 잔에 한 잔 채웠다.

“원장님, 오늘 감사했습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잔을 받은 박 원장은 바로 내가 들고 있던 술병을 받아 나에게 술병을 기울였다.

“나도 재밌었어. 오랜만에 또래 아저씨들이랑만 가다가 젊은 민 대리랑 라이딩 다녀오니까 젊어지는 기분이랄까? 하하.”

“에이. 저야말로 원장님이랑 가서 영광이었습니다. 바이크라고도 하기 좀 그렇지만 지금까지 오토바이로는 배달 아르바이트만 해보다가, 이렇게 처음으로 좋은 바이크 타고 라이딩을 가보다니, 원장님 덕분에 힐링 제대로 했습니다.”

“그랬으면 다행이네. 다음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코스로 같이 한번 또 가보자고.”

“네. 완전 콜입니다, 원장님.”

들고 있던 소주잔을 부딪치고는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역시 소주는 라이딩 끝나고 돌아와서 먹는 게 최고야.”

불판에서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곱창 중 익은 것을 집게로 서둘러 골라 박승호 원장의 앞 접시 앞에 한 점 올려놓았다.

“민 대리, 센스하고는.”

박 원장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내게 흔들어 보이고는 접시 위에 올려둔 곱창을 집어 입에 넣었다.

박승호 원장과 벌써 곱창집에 도착한 지도 어림잡아 한 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

“그래서 요즘 병원에 확실히 인공 관절 수술이 많다니까?”

“네. 아무래도 수술도 계절을 타니까, 이제 추워지기 시작해서 저희도 케이스 중 인공 관절이 가장 많이 나오더라고요.”

할 얘기가 생겼다며 빨리 광주에 가자고 외치던 박 원장은 한 시간이 넘도록 영양가 없는 일상 대화들로만 오디오를 채워 나갔다.

대체 무슨 얘기인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차올랐지만, WG 메디컬 제품에 관한 얘기를 먼저 꺼내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 얼굴에 티가 났는지 박승호 원장이 먼저 화두를 던졌다.

“민 대리. 혹시 할 말 있어?”

“아닙니다.”

“괜찮아. 편하게 이야기해 봐.”

어느 정도 올라와 버린 취기 때문일까.

“명의 병원은 왜 MG 메디컬이랑 전속으로 일하는 겁니까?”

나는 결국 혀끝까지 차올랐던 얘기를 끝내 삼키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내놓았다.

사실, 다른 메디컬과 일하는 걸 물어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애초에 영업직 사원과 의사가 만나는 건 영업을 하기 위함이니까.

다만, 오늘은 그 과정에서 ‘영업’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유대감이 쌓였기에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던 것이지.

“우리가 왜 MG 메디컬이랑만 일 하냐는 거지?”

다행히도 박 원장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이 주제를 꺼내길 기다렸다는 듯한 태도.

“예. 왜 여러 군데 메디컬 물건 비교해서 받으시면서 단가 조정도 하고 경쟁 붙여도 충분하실 것 같은데, MG 메디컬이랑만 한결같이 몇 년을 하시는 건지 늘 궁금했습니다.”

“MG 메디컬…….”

박 원장은 나직이 읊조리더니 잔에 가득 차 있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았다.

“하긴. 우리 인공 관절이며 외상 수술이며, 하물며 소모품까지 전부 다 MG 메디컬에서만 들어오니까…….”

그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민 대리가 한번 열심히 뚫어봐. 아무리 단단한 방패라도 여러 번 찌르다 보면, 한 군데쯤은 금이 가지 않을까?”

금이 간다라…….

무언가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박 원장은 자조적인 목소리를 냈다.

“모르지. 내 쪽에서 먼저 금이 가버릴지…….”

의미심장한 대답과 함께 박 원장은 소주병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반 정도 찰랑거리는 소주잔을 급하게 비우고, 박 원장이 들고 있는 소주병 쪽으로 빈 잔을 가져다 댔다.

“민 대리도 알다시피 우리 명의 병원에서 쓰는 온갖 제품이 MG 메디컬이잖아. 나라고 전부 마음에 들겠어? 우리 병원장님이 ‘MG다.’라고 말하면 MG인 거야. 나라고 별 수 있겠냐. 말이 의사지, 나도 월급쟁이잖아. 민 대리랑 별반 다를 거 없어.”

“원장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처음에 명의 병원에 영업 나가서 대차게 몇 번 까였지 않습니까?”

“그래, 그랬었지. 워낙 우리가 다른 업체 사용을 안 하기도 하고…….”

“네. 그래서 저희 회사 다른 직원들도 그렇고 명의 병원에 물건을 넣어야겠다, 하는 생각이나 목표가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포함이죠.”

“그래서?”

“그래서 신비 병원에 임근수 과장님과 저번에 원장님 함께 뵙기로 했을 때에도 명의 병원 소속이신 박 원장님이 왜 같이 나오시는지 의아하긴 했습니다. 다른 메디컬 제품 안 쓰기로 유명한 병원이라 보통은 자리 자체를 거절하시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원장님과 지금 이렇게 따로 만나서 취미도 공유하고,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친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물론 저희 제품을 사용해 주시게 된다면 감사는 하겠지만, 이 친분을 굳이 영업으로 끌고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박 원장은 오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민 대리가 그렇게 말해 주니까 고맙네. 그러게. 다들 영업하러 많이들 오는데 내가 크게 도움이 안 되겠더라고, 명의 병원에 있는 한 말이지.”

“괜찮습니다. 이렇게 원장님이랑 종종 바이크도 타고, 끝나고 나서 같이 소주도 한잔해 주시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노시다가 생각나면 한 번씩 불러주십시오. 법인 카드로 맛있는 거 먹고 놀면 저도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아이, 그럼 나야 고맙지.”

그는 그제야 후련하게 웃어 보이며 내게 술잔을 들었다.

그렇게 또 얼마쯤 지났을까. 얼큰하게 올라오는 술기운으로 박승호 원장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아, 원장님. 근데 하실 말씀 있으시다고…….”

“내가?”

“네. 아까 보성에서 넘어올 때 할 말도 있고. 라고 하셨었는데.”

“아, 그랬지? 맞다. 민 대리야. 그 욕창 방지 소모품 물건 괜찮은 거 있나?”

“네, 있습니다. 욕창 방지 제품 비급여가 이번에 급여로 변경된 좋은 제품 하나 있거든요.”

“급여로 바뀐 제품이야? 좋네.”

의료 계통 물건은 급여 제품, 비급여 제품, 그리고 산정 불가인 제품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급여 제품은 말 그대로 병원에서 값을 더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국가에서 정해진 급여가가 정해진 품목.

비급여 제품은 메디컬에서 병원으로 들어가는 금액이 정해지지 않아 싸게 줄 수도 있고, 매우 높게도 부를 수 있는 품목이지만, 대부분의 상한가 금액이 정해져 있는 품목.

또 산정 불가 품목은 국가에서 지정된 코드 번호조차 없는, 금액이 얼마인지 파는 사람 마음인 금액 산정 불가 품목으로 나눌 수 있다.

혹자들은 병원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부러 급여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부르는 게 값인 비급여 제품이나 산정 불가 품목을 사용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환자들을 생각하여 급여 제품을 선호하는 병원과 써전들이 훨씬 더 많다.

물론 이와 반대로 간혹 개인 병원 중에서는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급여 품목을 최대한 기피하고 비급여 제품으로만 도배했던 곳도 적지 않다.

여러 메디컬을 비교해서 싸게 받고, 환자들에게는 최대한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겼던 병원들이 이에 해당하지.

결국 개개인의 선택일 뿐, 정답은 없다는 소리다.

“혹시 박 원장님은 급여 품목 찾으십니까?”

“급여 품목이면 좋지. 비급여 제품들은 환자들한테 청구하는 금액도 좀 부담스럽고.”

“하긴, 요즘에는 환자들이 아예 제품명까지 찾아서 온다던데, 원장님네도 그런 환자분 많이 있으십니까?”

“어, 안 그래도 요즘 환자들이 진료 보거나 수술 끝나면 ‘인터넷에 이런 거 봤는데.’라든지 ‘지식인에서는 이 제품을 차야 된다더라.’는 둥 다들 의사야 의사. 제품명이나 사진 가져와서 ‘금액 이 정도라는데, 이 제품으로 주세요.’ 이런다니까?”

“인터넷이 잘 되어 있으니까 많이들 그렇게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급여 제품으로만 골라서 온다고 하잖습니까. 저희 욕창 방지 제품도 이번에 급여로 변경돼서 영업 많이 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많이들 찾으시더라고요.”

“그럼 다음 주쯤에 제품 한번 가지고 들러봐. 봐보게.”

“네. 한번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래. 내가 뭐 개인 병원도 아니고, 비급여 제품으로만 돈 벌 것도 아니고 뭐……. 물건만 한번 우선 봐보자.”

“예.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아직 쓸 건 아니니까 김칫국은 마시지 말고. 하하.”

“그럼요. 명의 병원 진입 장벽이 워낙 높지 않습니까.”

“높지. MG 벽이 높아…….”

술기운 때문일까. 그는 몇 번 말을 되뇌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민 대리만 알고 있어. 사실 MG 메디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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