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원장님, 그럼 내일도 라이딩 가시는 겁니까? 보통 어디 쪽으로 가시는 거예요?”
“광주 쪽은 달릴 곳이 별로 없어서 보통 근교로 다 빠지지.”
“혹시 보성 쪽으로도 가보신 적 있으세요?”
“전남 보성? 녹차 밭 있는 거기 말하는 거지?”
“네네. 녹차 밭 보성이요.”
“몇 번 가보긴 했는데, 진짜 딱 녹차 밭밖에 없어서 두 번 정도 가고 안 갔던 것 같은데.”
“오, 그러십니까? 그 녹차 밭쪽으로 산 풍경 보면서 쭉 지나면 바로 해안 도로 나오는데, 저는 가끔 차로 드라이브 가거든요. 해안 도로 쪽으로 돌고 나면 솔밭 길도 있어서 너무 좋더라고요.”
“아, 그래? 그렇게 코스 이어지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네. 저도 보성 지인한테 들어서 몇 번 드라이브 가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근데 바이크 라이딩으로는 가본 적이 없어서……. 다음에 기회 되면 원장님 라이딩 가실 때 한번 끼워주십쇼.”
카페 소파에 몸을 기대앉아 있던 박 원장은 몸을 일으켜 내 쪽으로 기울여 앉아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민 대리도 라이딩 진짜 해보고 싶어?”
“제가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아직 한 번도 라이딩을 해본 적이 없어서요. 늘 로망만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말 나온 김에 주말에 한번 같이 가볼래? 코스 소개해 줬으니, 내가 처음 바이크 라이딩 가는 거 입문 시켜줘야겠는데?”
“정말요? 저야 너무 영광이죠, 원장님. 근데 당장 내일이면, 제가 바이크가 없어서……. 대여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놔둬. 내 동호회에 대여점 운영하는 회원 한 명 있어. 거기 가서 입문자용으로 하나 대여해서 가자고!”
“네! 좋습니다.”
바이크는 대학교 시절 용돈벌이를 한다고 배달 아르바이트 꼴랑 몇 개월 해본 게 전부다. 그것도 라이딩용으로 큰 바이크도 아닌, 작은 배달 오토바이.
그래도 그 당시에 오토바이를 탄다고 면허를 따두었던 십여 년 전의 나에게 칭찬해 주고 싶다. 덕분에 이런 기회를 잡았으니까.
저녁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으로 바이크 타는 방법, 바이크 초보자 영상, 너튜브로 볼 수 있는 초보자용 영상은 전부 다 본 것 같다. 이론과 상상 속에서는 이미 라이딩 동호회 회원이 된 느낌이랄까.
띠리링.
꿈에서까지 바이크를 타는 꿈을 꾸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 * *
1시 50분.
박승호 원장과 약속한 시간. 약속한 장소로 나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다리를 떨며 시계를 봤다 핸드폰을 봤다,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이 처음 해외여행을 갈 때 긴장하며 잠을 지새웠었던 그 시절 모습 같았다.
한껏 긴장한 채로 흐르기를 몇 분.
“민 대리!”
도로에서 서 있는 나에게 다가오는 바이크 두 대. 내가 그날 술자리에서 봤을 때도, 바로 전날인 어제 봤을 때와도 너무 다른 느낌의 박 원장.
역시 사람이 사복을 입으면 느낌이 달라진다고들 하더니, 평소에 라이딩을 하고 지나가는 박 원장을 보면 그가 먼저 말을 걸지 않고서야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와, 원장님. 저는 멀리서 보고 원장님 아니신 줄 알았습니다.”
한쪽 다리를 멋들어지게 내려놓고, 머리에 쓰고 있는 헬멧을 들어 올리며 박 원장은 말했다.
“그래? 칭찬 맞지?”
“네, 그럼요. 완전 20대 잘나가는 라이더 같으세요.”
“40대 중에서도 잘나가지. 하하!”
“아, 그럼요. 진짜 멋지세요, 원장님.”
“고마워. 인사해. 여기는 내가 말한 지훈이. 여기는 내가 어제 말했지? 바이크 우리 회원 동생.”
바이크 회원 동생,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외형에 팔과 목에는 반짝이지 않는 노란색 금팔찌와 금목걸이, 그러니까 24K의 두터운 금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걸이 옆으로 삐져나온 문신.
“안녕하세요.”
오른손에 들고 있던 헬멧을 왼쪽 옆구리와 팔목 사이로 끼워 넣고, 오른팔을 뻗어 나에게 손을 내어 보였다.
“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뻗은 손에 다가가 손을 잡아 악수를 하며 인사를 건넸다.
“바이크 라이딩은 처음이라고 하시길래, 초보자용으로 가져와 봤어요. 우선 타는 방법부터 알려드릴게요.”
“앗, 감사합니다.”
한참 설명을 듣고 난 후에야 바이크에 올라탔다.
“민 대리, 우선 보성까지 조심히 따라와 봐.”
“네! 오랜만에 타려니까 좀 떨리는데요, 원장님?”
“아냐. 그래도 타 본 적이 있으니까 금방 적응할 거야. 천천히 갈 테니까 한번 따라와 봐.”
“예. 알겠습니다.”
헬멧을 머리에 욱여넣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손을 살며시 양 손잡이에 올려놓았다.
오른손을 서서히 당겨 돌렸다.
쿠아아!
오랜만에 듣는 바이크 시동 소리. 아니, 오랜만에 듣는 비슷한 소리긴 하지만 배달할 때 들었던 그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
심장 저 아래서부터 단전을 끌어 올라오는 소리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 소리에 사람들이 열광하며 바이크도 타고 스포츠카를 끄는구나 싶은 마음에 살짝이나마 박 원장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소리에 취해 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박 원장의 커다란 바이크와 더 큰 엔진 소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순간만큼은 박승호 원장이 의사가 아닌, 사람 박승호로도 충분히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헬멧을 쓰고 있는 박 원장은 고개를 돌려 한번 끄덕이며, 출발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부아앙―
엄청난 엔진 소리를 내뿜으며 출발하는 박 원장 뒤를 이어 감싸고 있는 오른손을 당겨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생 살면서 뭐든 배워두고 경험해 두면 써먹을 일이 생긴다더니 고작 몇 개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게 이제 와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무려 10년도 더 된 과거지만, 자전거를 한번 배워두면 평생 몸에 익혀져서 탈 수 있는 것처럼 바이크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깜깜한 밤에도 음식을 주문한 집을 향해 일 분이라도 빨리 도착하려 달려 보기만 해서 여유롭게 바이크를 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여유롭게, 또 이런 대낮에 이런 바이크를 타고 라이딩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점점 빌딩과 수많은 차들, 신호등들이 하나둘 적어지더니, ‘어서 오세요. 보성군입니다.’라는 표지판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렇게 진입한 보성 초입.
산뜻한 바람과 흩날리는 낙엽들, 양쪽으로 펼쳐진 푸른 산들을 보며 회사, 일상에서 받은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사소하게만 느껴졌고, ‘힐링이 이런 거구나.’라는 감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박승호 원장과 함께 출발한 라이딩이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바이크의 감성에 푹 빠져있을 때쯤.
“민 대리, 근처에 카페 있으면 잠시 쉬었다 갈까?”
헬멧에 부착한 헤드셋을 통해 박 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좋죠. 조금만 더 가면 카페 하나 있는데 거기로 가실까요?”
“좋지.”
보성의 유명한 녹차 밭을 향해 달리다가 산길을 빠져나와 바다가 보이는 산 높은 카페에 바이크를 주차했다.
박승호 원장도 옆에 일렬로 바이크를 세우고 내렸다.
그의 옆에서 뭔지 모를 자신감을 느끼며 한껏 올라간 어깨를 자제하며 카페로 들어갔다.
“원장님. 코스는 좀 어떠십니까? 괜찮으십니까?”
“어. 너무 좋더라! 여길 그동안 왜 몰랐나 싶어. 차들도 이쪽은 거의 없고, 게다가 라이딩 온 사람들도 거의 없네.”
“마음에 드셨다니까 너무 다행입니다. 여기가 현지인들만 아는 드라이브 코스라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덕분에 좋은 데 알았어. 민 대리는 이렇게 바이크 라이딩 처음 나왔다며, 소감이 어때?”
“원장님……. 진짜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하고 있어요.”
“정말이야? 나는 막상 해보니까 춥고 힘들었다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네.”
“아닙니다. 너무 좋아서 추운 줄도 몰랐어요.”
박 원장은 나보다 더 좋아하고 뿌듯한 표정으로 몇 번이고 좋았었는지를 되물었다.
“몇 번 처음 타는 지인들 데려온 적 있는데, 한 번 타보더니 절레절레하더라고. 그런데 민 대리가 좋았다고 하니까 너무 뿌듯한데? 종종 민 대리랑 와야 되겠어.”
“저야 너무 감사하죠, 원장님.”
“그래. 다음번에 우리 회원들이랑도 한번 같이 타보자고.”
“네, 좋습니다.”
“어쩐지, 민 대리가 처음 온 것치고는 뒤이어서 잘 따라오기도 하고, 꽤 즐기는 것 같더라. 내가 역시 사람을 잘 봤다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
“오늘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네. 이거 마시면서 몸 좀 녹이고, 어두워지기 전에 광주 올라가서 소주나 한잔하자고. 아, 혹시 저녁 일정 있나?”
“없습니다. 있더라도 원장님이 저랑 단둘이 술 한잔 마셔주신다고 하는데 어떤 약속이든 뒷전으로 밀어두고 바로 가야죠.”
“내가 이래서 민 대리가 좋다니까. 하하.”
앞에 놓인 따뜻한 커피에 양손을 가져다 대고 한참이고 손을 녹였다.
조금 남아 있는 커피를 모두 털어 넣고, 박 원장은 일어날 채비를 했다.
“민 대리. 슬슬 광주 올라가 볼까?”
“네!”
빈 컵을 트레이에 올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광주 가서 술 한잔하면서 일 얘기 좀 하자고.”
“네?”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일 이야기요?”
박 원장은 씨익 웃더니 헬멧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을 가로질러 가며 말했다.
“응. 오늘 민 대리 덕분에 나도 재밌었거든. 그래서 할 얘기도 생겼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