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찬란하게 빛나는(4) - 본편 完
그래미 시상식, 며칠 뒤.
대한민국 연예계는 소상 소감 하나에 발칵 뒤집혔다.
며칠간 SNS를 강타한 후폭풍.
설마 진짜 연애할 줄 몰랐을까.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미국 지사.
나는 회사에 출근해 인터넷 뉴스를 검색했다.
《세기의 커플이 탄생했다. 그래미 어워드 앨범상을 받은 솔라의 리더와 정수호 대표의 핑크빛 열애설─!!!》
메리드 커플 이전, 한국에서 이미 연애를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은 방송 때문에 사귄다고 오해했다.
'살짝 민망하네.'
가장 조회수가 높은 뉴스의 댓글창을 확인했다.
-인생은 정수호처럼.
ㄴ형이 이렇게까지 행복하길 바란 건 아니었어
ㄴ진짜 ㄹㅇ 개부럽다
ㄴ일과 사랑, 전부 잡은 남자 ㅋㅋㅋ
ㄴ수호 형은 내가 사귀려고 했는데 ㅡㅡ
ㄴ게이게이야....
ㄴ예지가 부럽다 ㅋㅋㅋ
ㄴㄹㅇㅋㅋ
-그래미 어워드 앨범상 GOAT─!!!
ㄴ설마 헬보이스를 이길 줄이야 ㄷㄷ
ㄴ하이엔드랑 국내 투탑임
ㄴ솔라 데뷔한 지 이제 3년 됨 ㅋㅋㅋㅋ
ㄴ될놈될 ㅋㅋㅋ
-그냥 솔라가 잘해서 상 탄 거 아님? ㅡㅡ
ㄴ어휴 아무리 솔라가 잘해도 정수호 없이 앨범상을 어케 탐 ;;;;
ㄴ팩트) 솔라의 모든 방송 출연은 정수호 혼자 관리했다.
ㄴ모든 방송? 영화 캐스팅도?
ㄴㅇㅇ 데뷔 때부터 예외 없이 전부 정수호가 잡은 스케줄
ㄴ와 정수호 폼 ㄹㅇ 미쳤다 ㅋㅋㅋㅋ
ㄴ인생 2회차 아님?
ㄴ회귀했네
-태양빛 임원진은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엄-
ㄴ둘 다 제발 은퇴만 하지 말자
ㄴ정수호랑 솔라는 대한민국의 연예계 보물임
ㄴ두유노 정수호?
ㄴ두유노 클럽 가입했네 ㅋㅋㅋ
거의 우리 연애를 응원해 주는 분위기.
댓글을 보며 출근 시간대를 보냈는데.
똑, 똑─
그때, 솔라 멤버들은 완전체로 대표실에 들어왔다.
시상식 이후, 며칠 푹 쉬고 회사에 출근한 듯했다.
"얘들아, 왔어?"
"네에!"
"다들 혈색이 좋네."
"그럼요!"
하긴,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로 인정받았으니까.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 그래미에서 최고로 치는 상.
올해의 앨범상은 레전드 가수도 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소미는 가장 먼저 다가와 무언가를 건넸다.
"짜잔, 트로피에요."
"아, 이게."
막내의 두 손에 들린 트로피를 조심스럽게 전달받았다.
작은 축음기 모양의 상패를 타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가문의 영광이네."
"회사에 보관해주세요."
"응?"
곧이어, 예지는 생긋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세 걸그룹이 공동으로 탄 상이잖아요."
"그건 맞지."
"우리만 가질 수는 없어요."
"...."
솔라의 공이 가장 크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숙소에 보관해도 될 텐데.
역시 솔라 멤버들은 대인배구나.
"그래도 괜찮겠어?"
"네. 우리가 회사를 떠날 일은 없으니까."
"...."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감동할뻔했다.
소미가 나서서 감동을 깨기 전까지는.
"뭐예요, 대표님 울어요?"
"안 울어."
"에이, 눈물 고였어요. 콧물도 나는데?"
".... 아니라고."
"넹."
오늘 밤 스카이 엔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파티를 준비했다.
「Married couple」 마지막 촬영 뒤풀이 파티 겸.
회사 차원에서 그래미 앨범상을 자축하는 자리.
물론 메리드 커플의 마지막, 결혼식 촬영이 먼저겠지만.
"예지야, 결혼식 준비는 끝났어?"
"그, 그럼요."
얼굴을 붉히는 예지.
벌써 부끄러우면 연애는 어떻게 공개했대.
"조금 있다 촬영 때 보자."
"네에!"
이내, 소미는 손을 번쩍 들고 입을 열었다.
"우리 네 명이 결혼식 축가 불러주기로 했어요!"
"갑자기? 오늘이 촬영인데?"
"피디님한테 벌써 말씀드렸어요!"
"아, 그래?"
"네. 허락도 받았어요."
"잘했어."
행동력 보소.
똑, 똑─
이내, 구현식 팀장은 노크하고 대표실에 들어왔다.
"잠시 후에 다시 들어올까요?"
"아뇨! 우리 끝났어요!"
예지는 마지막까지 내게 따스한 눈빛을 보내고 문을 나섰다.
연습생 때부터 솔라를 업어 키운 소녀 가장.
다른 멤버들은 병아리처럼 예지를 따라갔다.
"대표님, 열애설 이후로 주가가 오히려 올랐습니다."
"네. 확인했어요."
"그래미 어워드도 그렇고, 메리드 커플 방송 영향도 있는 듯합니다."
"...."
어쨌든 다행이네.
"오늘 저녁 파티 준비는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핀 브라운 님 소속 가수분들도 오신다고 했습니다."
"잘 됐네요."
아무래도, 미국 내 음반 유통을 전부 맡으시니까.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우리를 가장 축하해주셨다.
"대표님, 한국에서도 손님이 오고 계십니다."
"네? 누구요?"
"프렌즈 방 의장님입니다. 저도 오늘 보고받아서."
"...."
모기업 의장님이 미국까지 어인 일로.
'솔라랑 협업하러 오시나.'
올해 하이엔드는 군입대 문제로 그래미에 불참했지만.
나중에 전역하면 솔라와 합동 무대를 준비해야 할 수도.
"아무튼, 오늘 메리드 커플 마지막 촬영 준비하죠."
"알겠습니다."
그래미 시상식, 공개 연애 이후.
외부 일정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 * *
「Married couple」 웨딩 스튜디오.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수많은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월드 클래스 솔라와 정 대표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결혼식 세레머니를 위해 꾸민 예식장은 촛불과 꽃바구니로 장식되었다.
"내가 뭐랬어요."
"이게 되네."
메인 피디는 씨익 웃으며 작가에게 말했다.
"우리 방송 끝나면 진짜 사귈 수도 있다고 했죠!"
"대단하십니다."
어쩐지, 방송하면서 점점 가까워지더라니.
'결국 진짜 사귀네.'
다름 아닌, 올해 그래미 어워드의 주인공 아닌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세기의 커플이었다.
방송 흥행을 떠나, 촬영 중간에 슈퍼스타 커플이 탄생했으니.
"직업 만족도 최상이네요."
"네. 저도요."
피디와 작가는 예식장에 도착한 솔라 멤버들을 바라봤다.
그래미 어워드 이변의 주인공.
예지를 제외한 네 명의 멤버들.
'크으, 후광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팀의 리더를 위해 축가를 불러주는 멤버들이라니.
이내, 턱시도를 입고 등장하는 오늘의 남자 주인공.
"헬로, 미스터 정!"
"아, 피디님."
"오늘 멋있으십니다!"
"감사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멋있었다.
그래미 어워드 때만큼이나 멋지게 차려입었다.
"으이그."
"??"
이제 막 사귄 여친한테 멋져 보이고 싶으시겠지.
"연애는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사실, 좀 됐어요. 미국 오기 전부터....."
"으이그."
"???"
부끄러워서 거짓말까지 하시고.
"우리 사이에 뭘 부끄러워하세요! 하하핫."
".... 무슨 사이죠."
"좋은 사이!"
피디는 엄지를 척 올려주고 카메라 감독과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아름다운 인서트 컷.
점점 가까워지는 신부.
한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얼굴 천재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와아....'
그녀의 미모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태양빛 팬들의 질투심이 폭발할 수밖에.
잠시 후,
모든 촬영 준비를 마친 제작진.
곧바로 가상 결혼식을 시작했다.
한편, 솔라 멤버들은 식장에 먼저 들어와 축가를 준비했다.
물론, 진짜 결혼식처럼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세 걸그룹 멤버들 위주로 한마디씩 주고받았으니.
-신랑 입장!
구 팀장은 사회를 보며 신랑을 불렀다.
".... 멋있네."
은서는 정 대표의 입장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대표님."
마음에 남아있던 자그마한 앙금도 훌훌 털어냈다.
분명히 그를 향한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랐다.
다이애나는 자신의 눈치를 살피더니 질문을 건넸다.
"언니 혹시...."
"그런 거 아냐."
"결혼하고 싶구나!!!"
"...."
우리 프로듀서님은 눈치가 더럽게 없네요.
-결혼식의 꽃, 신부 입장 시간입니다.
순백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입구에 얼굴을 비추는 예지.
아름다운 행진곡 음악에 맞춰,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부시게 빛나는 신부의 고운 자태.
항상 같이 살면서 보던 얼굴 아닌가.
루나와 이클립스 멤버들은 정신 못 차리고 소리를 질렀다.
"언니 너무 예뻐요!!!!"
"예지야 사랑해!"
"선배님 날 가져요!"
"꺄아악─!"
그때, 예지 언니와 우연히 눈을 마주쳤다.
아무 말 없이 서로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리더를 위해 솔라 멤버들의 축가를 준비했습니다. 들어보시죠.
월드 클래스 가수답게 풍부한 감정을 담아서.
Every night, we dreamed a dream.
매일 밤마다 우리는 꿈을 꾸었어요.
One day, we must catch the star.
언젠가 우리는 별을 잡을 수 있다고.
Now, it is the moment we waited for.
지금 우리가 기다리던 순간이 왔어요.
Please, please. Don't miss the star you caught.
부디, 부디, 당신이 잡은 그 별을 놓지 마세요.
장난기 없이, 진지하게 노래 부르는 멤버들.
예지는 참고 있었던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누군가의 연애나, 그래미 어워드 수상은 기나긴 여정의 일부에 불과했다.
멤버들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솔라의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정수호 대표님.'
수호신이 있는 이상 솔라의 행보는 영원히 멈추지 않겠지.
"예지야, 나와 결혼해줘서 고마워."
"방송용 대사예요?"
"아니."
김 리다는 활짝 웃으며 자신의 왼손을 내밀었다.
이내, 대표님이 끼워주는 결혼반지를 받아들였다.
"평생 행복하게 해줄게."
"고마워요."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 우리는 늘 함께였다.
* * *
그날 저녁.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미국 지사 단체 파티를 앞두고.
회사에 도착한 방철호 의장님과 급히 미팅을 잡았다.
"저 오늘 결혼했는데."
"어쩔 수 없잖냐."
박철민 본부장님은 민머리를 문지르며 내게 말했다.
"중요한 얘기라고 하시더라."
"그래요?"
의장님이 오시기 전, 가볍게 대화를 이어갔다.
"본부장님, 고마워요."
"응? 뭐가."
"그냥요."
드림 에이전시 때부터 항상 뒤에서 지켜주던 사람.
박 본부장이 아니었으면 이 자리까지 못 왔을지도.
어느 소속사가 로드가 물어온 스케줄이나 곡을 인정해주겠어.
"로드 때 막무가내로 행동해도 뒤에서 백업해주셨잖아요."
"뭔 소리야. 뒤에서 엄청 욕했는데."
".... 예?"
똑, 똑─
이내, 프렌즈 방 의장님이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들 오랜만이야."
"안녕하십니까!"
거의 1년 만에 뵙는 것 같은데.
"오늘 파티가 있다고 들었네만."
"넵! 참석하셔도...."
"아니, 나 같은 사람은 빠져주는 게 요즘 회식 매너라며."
"아하하."
방 의장님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프렌즈는 올해 미국 시장을 공격적으로 집어삼킬 생각인데."
"아, 뉴스에서 봤어요."
"미국 내 엔터 총괄 사업본부를 맡아줬으면 해."
".... 제가요?"
"그럼 누가 하겠네."
스카이 엔터 대표보다 높은 위치인 건 확실했다.
"미국 내 모든 아티스트를 자네가 관리하는 거야."
"그럼....?"
"맞아. 하이엔드가 미국에서 활동할 때도 마찬가지."
"...."
먹이가 너무 크면 삼킬 수가 없을 텐데.
오늘도 뒤통수는 어김없이 신호를 보냈다.
"그럼 스카이 엔터는요?"
"옆에 앉아있지 않나, 박 본부장이 맡아주면 되지."
"...."
프렌즈와 스카이 엔터의 미국지사 통합.
결국, 내가 하는 일은 거기서 거기였다.
"그럼 생각해보고 답변 주게나."
"네. 의장님!"
"그럼. 연락 기다리지."
"들어가십쇼!"
"나오지 말게나."
의장님은 빠르게 등장한 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이게 뭔 일이래."
"그러게요."
나는 본부장님을 슬쩍 쳐다보고, 나직하게 한마디를 뱉었다.
"본부장님."
"으음."
진지한 얼굴로 나를 마주 보는 본부장님.
저 빛나는 민머리에 정답이 있지 않을까.
"행운의 머리 한 번만 만져도 돼요?
"안 돼!"
"까비."
높은 사무실의 거대한 창문.
아름다운 할리우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현재 완공 단계에 접어든 사옥도 시야에 들어오고.
"우리 많이 성공했네요."
"그야, 그렇지."
미국에서 새 꿈을 펼칠 차례가 온 듯했다.
"파티 가시죠."
.
.
.
.
.
그날 저녁.
스카이 엔터 역사상 가장 큰 자축 파티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걸그룹만 세 팀이었다.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조명과 장식품들.
중앙에 5단 케이크와 그래미 어워드 트로피를 두고.
각 팀 멤버들은 한 명씩 나와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
"오빠."
그때, 예지는 내게 다가와 다정하게 물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요?"
"아, 그냥."
"오빠는 걱정할 때 얼굴에서 티 나요."
"아닐걸."
데뷔 때부터 너희 무대를 보면 걱정이 들었어요.
"무슨 일이야?"
"나도 구경 좀."
어느새 솔라 멤버들은 내 옆에 모여들었다.
'우연이 아니라....'
언제나 내 주변을 항상 예의주시했다.
이런 애들만 있으면 열 명도 낳겠네.
"우리가 계속 미국에서 활동하는 게 맞을까?"
"에이, 그 고민하고 있었어요?
"뭐, 그렇지."
미국에서 사업을 확장하려는 프렌즈와 발을 맞춰야 할지.
"대표님."
솔라 멤버들은 오직 나만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우리는 무조건 따를 거에요."
"아."
항상 나를 믿어주는 멤버들.
"소미야, 한국대 붙었잖아. 안 가도 괜찮겠어?"
"그야, 휴학하면 되죠."
"...."
그래미 앨범상 한 번 탔다고 만족할 순 없지.
아직 레전드로 남을 업적을 세운 건 아니니까.
"우리 아직 단독 콘서트 월드 투어도 못했잖아."
"네. 맞아요!"
멤버들의 표정에 묘한 확신이 깃들었다.
솔라의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
"그럼...."
예지의 손을 잡아도, 다른 멤버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게 미국 진출의 전제 조건이었으니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꿈을 키울 차례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저희도요!"
이제 목표는 전 세계 음악계의 전설로 기록되는 것.
내가 연예계를 떠나지 않으면, 언젠가는 가능하겠지.
'앞으로도 계속....'
솔라의 수호로 남을 생각이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