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영국에 뜨는 태양(2)
영국 런던에 위치한 어느 연습실.
나는 멤버들의 연습을 지켜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이내, 구 팀장님은 서류 뭉치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대표님."
"수고하셨어요."
"아닙니다."
고작 일주일 앞두고 외부에서 새로운 무대 감독을 데려올 순 없었다.
기존의 스탭 중 한 명을 감독으로 올려야겠지.
일단, 프로필을 보고 미팅을 할 생각이었다.
"해밀턴 감독을 교체하시는 겁니까?"
"네. 어쩔 수 없어요."
"일주일 앞두고 무대 감독을 바꾼다니까 쇼잉글랜드 측에서 걱정이 많습니다."
"괜찮아요."
정확히는, 안 바꾸면 안 괜찮다.
지금 내 뒤통수 똥촉이 그래서.
"시간 없어서 오늘 안에 미팅 잡을게요."
"역시, 대표님은....!"
"리허설 시간 맞추려면 급해요."
"네. 맞습니다."
뒤통수 원툴이니까.
사람을 평가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별로다 싶으면서 뒤통수가 가려우면.
'.... 역배각.'
필모가 몇 줄 뿐인 연출팀 7년 차 직원.
그를 보며, 짜릿한 감각에 미소를 지었다.
"연출팀에 숨은 보석이 있었네요."
"루이, 7년 차 직원이군요."
"네. 미팅 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었다.
해밀턴 감독만 문제가 아니었어.
역배각이 아닌 정배각.
공연 디렉터 외에도 몇몇 스탭들이 촉에 걸렸다.
실력과 별개로, 무슨 문제가 있는 이들이 아닐까.
"이렇게 세 명도 배제합니다. 다른 스탭 투입하죠."
"네. 대표님"
속전속결로 감독 문제를 해결하고 무대로 넘어갔다.
어차피 중요한 건 성공적인 콘서트.
문제는 제거하고, 역배는 안고 간다.
과연, 성공 확률 100% 뒤통수만 있으면 막힐 게 없었다.
"아, 팀장님."
멀어지려는 구 팀장을 붙잡았다.
"게스트 아티스트들은 언제 도착하나요?"
"오늘 저녁 중으로 도착할 겁니다."
"오락실 유니버스 제작진이랑 같이요?"
"네. 맞습니다."
"좋네요."
나현석 피디님, 영국에서 또 무슨 촬영을 하시려나.
람보르가니 우뢰칸 사주려면 기둥 뽑아야 할 텐데.
"대표님!"
그때, 예지는 쉬는 시간에 맞춰 내게 다가왔다.
"우리 공연 끝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요?"
"오락실 촬영도 좀 하고."
"아으, 영국에서 쇼핑도 하고 구경도 해야죠."
"그런가."
며칠 오락실 촬영하고 돌아갈 건데.
소미는 어느새 대화에 끼어들었다.
"놉!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이카루스냐."
"비슷해요."
"좋은 생각 났다."
"뭔데요?"
오늘 저녁에 오락실 제작진도 오니까.
그 성격에 틀림없이 게임을 하시겠지.
"람보르가니 우뢰칸 타면 자유시간 더 줄게."
"그건 어떻게 타는 건데요?"
"글쎄. 퀴즈 아닐까."
"오케이. 스포츠카도 타고 자유 시간도 타고, 개꿀이넹."
"소미야, 걸그룹이 개꿀이 뭐니."
"개이득!"
"아니, 개를 빼라고."
"쌉이득!"
"...."
한국 돌아가면 예능에서 번지점프 한 번 시켜줘야겠다.
"아무튼, 콘서트 때 실수하면 올해 자유 시간 없다."
"실수 안 해요!"
"자세 좋네."
너는 다 외워버리니까 실수 안 하겠지.
당황하지만 않으면.
"자자, 다시 연습 시작!"
김 리다의 디렉팅 아래, 멤버들은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국내 가수 중 라이브 실력이 가장 좋은 걸그룹 중 한 팀.
다가오는 리허설 무대가 기다려졌다.
* * *
한편, 쇼잉글랜드 본사.
다니엘 디렉터는 교체된 감독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계약상, 고객은 무대 스탭을 마음껏 교체할 수 있다.
실제로 일주일 남기고 바꾸는 사람은 처음이었지만.
'루이 감독이라....'
외주 직원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루이 감독이 케빈 클럽 연출팀 출신이었다고?"
"네. 맞습니다."
비틀즈가 공연한 클럽.
보통 그 클럽 출신들은 필모에 경력을 적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멤버의 이름을 가슴 속에 품기 위해서.
'근데 중요한 건....'
정수호는 프로필에도 없는 이력을 어떻게 알았을까.
스탭들 뒤를 한 명 한 명 조사하진 않았을 거 아닌가.
"저기, 다니엘 감독님."
이내, 다른 부하 직원이 다가와 서류를 건넸다.
"해밀턴 감독이 도망갔습니다."
"뭐?"
"방출된 스탭들도 잠적했습니다."
"...."
솔라 공연의 디렉팅을 맡은 감독 및 스탭.
그들의 계좌를 건네며 대화를 이어갔다.
"해밀턴 감독 포함, 직원 세 명의 계좌에 큰돈이 들어왔습니다."
"액수가 어마어마하네."
"뭔가 이상합니다."
"...."
그들만큼 이상한 건 정수호 대표님.
어떻게 미리 알고 콕콕 찍어냈을까.
'뒷돈을 받은 이유는....'
상상하고 싶진 않지만, 솔라 무대를 망치기 위해서라면.
정 대표는 자신보다 먼저 그들의 공모 사실을 파악했다.
'.... 빚졌네.'
그것도 큰 빚을 졌다.
어떻게 진상을 파악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사건을 일어났고, 원인을 밝혀야만 했다.
"계좌 추적하고, 도망간 놈들 소재도 계속 알아보죠."
"네. 알겠습니다."
문득, 정 대표가 얼마 전에 올린 인터뷰 영상이 떠올랐다
-클린한 공연 문화를 지양합니다.
이제 보니, 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어떤 의미로 그런 인터뷰를 했을까.
다니엘은 도망간 감독과 스탭 명단을 예리한 눈으로 훑어보았다.
심지어, 이번 공연은 비욘세이와도 연관이 있었다.
전 세계에 WAA를 상대로 소송에서 이길 존재가 있을까.
'정 대표님, 문제를 키울 생각이 없군.'
큰 뒷돈을 받은 스탭들의 비리를 언급도 하지 않는 정수호 대표.
언론에 터트리면, 쇼잉글랜드가 받을 타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이번 공연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돈으로 보상하길 바랐으면 티를 냈겠지.
그럼,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지니스 관계에서 공짜는 절대로 없다고 아버지께 배웠으니까.
'최소한....'
이번 콘서트 수익은 포기해야겠다.
뚜루루루─
다니엘은 쇼잉글랜드의 대표를 건너뛰고 회장님께 곧장 전화를 걸었다.
공연 기획 회사만 다섯 개를 경영하는 오너.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뭐여, 골프 치느라 바빠.
"...."
지금 골프 칠 때가 아니에요.
* * *
단독 콘서트 D-2
새로운 무대 감독, 루이는 리허설 공연을 준비했다.
현재 자신의 커리어에 말도 안 되는 기회가 주어졌다.
기존 감독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무대 연출 부분에서 내심 불만이 많았다.
['무조건 성공한다.'
인생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공연을 준비했으니.
근 며칠 동안 잠도 줄여가며 공연을 준비했다.
"대표님 오셨습니다."
"아."
무대 감독과 적폐 3인방을 전부 날려버린 정수호.
사전 미팅 때도 별다른 평가도 없이 자신을 선별했다.
그저, 자신에게 커다란 기회를 줘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헬로우."
루이 31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에게 인사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아, 루이 감독님. 멤버들 준비 끝났습니다."
"네, 그렇군요."
정 대표는 부드러운 미소로 꾸벅 인사했다.
감독을 단칼에 잘라버린 그 사람이 맞는지.
"우리 애들 무대 잘 부탁드립니다."
"넵, 걱정하지 마십쇼."
"저는 그럼."
솔라의 아버지는 솔라의 무대에 정말 진심이구나.
'오직 나만 믿고 솔라를 맡긴 거야.'
루이의 표정에 뿌듯함과 책임감의 감정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조연출과 함께 무대 장치를 확인하고 조명과 음향을 점검했다.
"감독님, 준비 끝났습니다.'
"그럼 시작하지."
곧이어, 솔라 멤버들은 오프닝 무대를 시작했다.
리허설이지만 실전처럼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다.
'나만 봐.'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돌풍을 일으킨 무대.
그 당시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역시, 명곡이 많다니까.
첫 곡부터 무대를 찢었다.
'복장을 보니....'
예지는 솔라빔 시즌 3, 4화에서 입었던 재킷에 장신구는 AMA에서 썼네.
소미는 오락실 국내 편 2화부터 저 헤어를 고집하고 있고, 드레스업은....
스윽, 슥─
그때, 옆에서 메모를 지켜보던 조연출이 입을 열었다.
"가, 감독님. 그걸 다 기억하세요?"
"당연한 거 아닌가?"
"...."
또각, 또각─
첫 무대 이후, MC는 큐시트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오늘 Solar in England 공연의 진행을 받은 MC 이수연입니다.
한국의 배우답게 딕션이 굉장했다.
영어 발음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고.
'탑아이돌 때랑 서울 단독 콘서트도 그렇고....'
항상 우리 솔라의 전담 MC를 맡아준 고마운 사람.
"조감독."
"네, 감독님."
"지금 수연 씨 목마르시다, 챙겨드려."
"네?"
탑아이돌에서 저런 손짓을 하면 꼭 물을 마셨다.
한동안 솔라의 무대를 진행했다.
이어서, 솔라 커리어 최고 히트곡.
「Save The Earth」를 락 버전으로 편곡했다.
그래미 어워드 무대 이후 두 번째 편곡이었다.
'이건 귀 닦고 들어야 해.'
영국인들이 락에 진심인 건 또 어떻게 알고.
이렇게 청량한 보컬로 귀를 정화해주시는지.
"크으, 역시 도하나 프로듀서는...."
"명불허전이네요!"
"그게 뭔데."
"대충 좋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말해."
"넵."
이어지는 오늘의 하이라이트 공연.
「하늘 소리」
리허설이니까 뮤직비디오는 가볍게 스킵하고,
예지는 미친 성량으로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루나와 이클립스도 참여하는 단체곡.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순서가 다가왔다.
팝의 본고장에서 팝의 여왕으로 불리는 뮤지션.
비욘세이는 마마즈 백업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춤 실력과 가창력.
둘 모두 전 세계 정상을 찍은 아티스트가 아닌가.
솔라 멤버들은 바로 옆에서 공연을 진행했는데.
"우리 솔랭이들 안 밀려!"
"솔랭.... 이요?"
"아, 흠흠. 아니야."
역시, 솔라는 월드 클래스.
솔직히, 솔라의 무대를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이미 솔라의 매력이 너무 깊이 빠져버렸으니까.
'우리 솔랭이들....!'
루이 감독의 목에 은빛 목걸이는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태양빛 팬클럽을 가입 후, 2년 뒤에 살 수 있는 굿즈 목걸이.
루이 감독, 만으로 31세.
그는 덕 중의 덕, 양덕이었다.
* * *
리허설 공연을 마친 멤버들.
본무대를 이틀 앞두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를 기다리는 게임왕.
"나 피디님, 오늘은 좀 쉬어요."
"그럴까요, 그럼?"
멤버들을 뒤로한 채 스탭들과 가벼운 맥주 타임을 가졌다.
회사 직원들과 오락실 제작진.
이제는 제법 사이가 끈끈했다.
"나 피디님, 그럼 이제 말씀해 주시죠."
"네?"
"람보르가니 타는 방법."
"아하."
그는 씨익 웃으며 계획을 설명했다.
피날레 무대, 관객들이 날리는 종이비행기.
원래 이번 단독 콘서트 일정 중 하나였는데.
"그러니까, 그중에 하나를 주워서...."
"관객이 말할 내용을 미리 맞추면 됩니다."
".... 그냥 안 준다고 하세요."
"미션 성공하면 드린다니까요?"
"...."
관객 수가 9만 명인데 어떻게 그 생각을 맞춰요.
각자 솔라한테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쓸 텐데.
"아마 백지도 많을 걸요."
"그럼 백지라고 예상하면 됩니다."
"...."
그건 더 이상하지.
"아무튼, 콘서트 끝나고 촬영 날 빼뒀습니다."
"오, 좋네요."
"영화 프로모션 부탁드릴게요."
"아, 왕의 품격."
"네. 김 감독님께서 연락 주셨네요."
"알겠습니다. 하하."
콘서트 끝나면 한국에서 영화 홍보도 시작해야겠지.
왕의 품격, 프랑스랑 미국에서 상영관 확보했다던데.
'경쟁 작품도....'
여배우 계희연 주연.
「퍼스트 아포칼립스」는 이미 홍보를 시작했다.
개봉 날짜가 일주일 차이로 겹치는 블록버스터.
누가 웃을지 두고 보면 알겠네.
"오빠아아아!!!"
그때, 엄지유는 소리를 지르며 내게 다가왔다.
오늘 리허설 중간에 사라져서 어디 갔나 했네.
"너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오빠, 그게 사실이야?"
"뭐가."
지유는 내게 뉴스 기사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거, 오빠가 했다던데."
《솔라 단독 콘서트는 자선 공연!? 수익을 전액 기부하기로....》
뉴스를 보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어떤 미친놈이 가짜 뉴스를.....'
어떤 사업가가 적자를 보면서 공연을 기획하나.
스탭들, 대관료, 공연 준비하면서 드는 비용까지.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수익을 다 기부하겠다는 건가.
"이거, 가짜 뉴스니까 신경 쓰지 말...."
엄지유에 이어, 구 팀장이 들어오며 나를 불렀다.
"대표님."
나 피디 일동은 이미 카메라를 들고 나를 찍고 있었다.
"쇼잉글랭드 측에서 연락 왔습니다."
"뭐라고요."
"대표님과 솔라 멤버들 이름으로 콘서트 수익을 기부한다고 했습니다."
"...."
그니까 왜요.
"그럼 쇼잉글랜드 측 수익만 기부하는 거네요."
"네. 맞습니다."
그럼 가짜 뉴스가 아니었네.
"저기, 혹시 우리 스카이 엔터도 기부하는 겁니까?"
"아니요."
"만약, 저희 직원들 때문에 꿈을 포기하시려는 거면...."
"무슨 말씀이세요."
제 꿈은 돈 벌어서 강남에 건물 살 건데요.
기부 안 할 거니까 카메라 좀 치워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