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78화 (178/200)

[178] 공연 준비(1)

봄 기운이 만연한 어느 날.

오랜만에 오락실 멤버들과 함께 방송국 나들이에 나섰다.

소미는 당당하게 앞장서 Tvm 사옥 로비를 가로질렀는데.

"때박, 소미다."

"외, 류시아."

"사인받고 싶어."

"...."

방송국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민지는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더니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래요. 제가 오락실 이클립스의 그 남민지가 맞아요."

"???"

오락실 이클립스는 무슨 그룹이야.

"여러분, 사인해 드릴까요?"

"...."

연쇄 사인마가 또.

"소미야."

"넹?"

"처리해."

"예압."

남민지 담당 일진은 냉큼 그녀에게 다가가 팔을 꼬집었다.

"끄아앙."

"죄송해요. 우리 민지가 장난기가 많아서."

"장난 아닌-, 읍. 으읍?"

"안녕히 계세요!"

민지의 입을 막고 납치해 온 소미.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예능국으로 올라갔다.

이내, 남민지는 입술을 쭈욱 내밀고 투덜거렸다.

"치이, 사인도 못하게 하고."

"팬 사인회 열어줄게."

"진짜요?"

"그래."

"기대할게요! 헤헤."

"...."

우리 애들은 정말 단순해서 너무 좋아.

-띠링, 7층입니다.

예능국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나현석 피디님이 냉큼 달려와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예능국 직원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유망주에서 성공한 공신이 됐으니.

"이쪽으로...."

멤버들은 각자 인터뷰 촬영을 위해 사라지고.

나는 혼자서 오락실 제작진과 미팅을 가졌다.

"대표님, 시청률 보셨습니까?"

"네. 그럼요."

국내 모든 예능을 통틀어서 역대급 성적이었다.

넥플렉스 본사에서 따로 연락을 보내주실 만큼.

"추가 촬영분은 넥플렉스 측에서 투자금을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오, 정말요?"

"네. 감사하게도."

원래 본진은 Tvm 방송국.

OTT 입점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었는데.

"투자 덕분에 자금에 여유가 생겼거든요."

"잘 됐네요. 축하드려요."

"그래서 추가 촬영에 스케일을 좀 키우고 싶은데."

"네? 아...."

뭔가 바라는 게 있는 눈치였다.

"혹시 추가 촬영 때 새로운 멤버를 투입해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

이미 흥행한 방송에 어중간한 멤버를 넣을 순 없었다.

루나의 비인기 멤버가 나온다면.

괜히 욕만 먹고 멘탈도 나가겠지.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소미 절친이자 걸스온탑 1위에 빛나는 한지아.

"지아는 어떨까요?"

"오, 좋아요!"

이클립스에서도 가장 인기 멤버였다.

"근데 저희 6인조 생각 중입니다."

"아, 그래요?"

"네. 저는 짝수가 좋아요."

"...."

아마 솔라 멤버가 출연해 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솔라 멤버를 원하시는....?"

"어휴,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에요!"

".... 아직 결정 안 했는데요."

"캄사합니다!"

일단, 영화 촬영 중인 예지랑 은서는 제외되었다.

다이애나는 단체곡 작업 중이라 당연히 바쁘니까.

'그러면....'

이제 남은 멤버는 한 명뿐이었다.

중전을 지키다 곧 사망하는 호위.

"주희는 곧 영화 촬영이 끝날 것 같습니다."

"오오. 힘캐!"

".... 힘캐라뇨. 걸그룹이에요."

"농담입니다."

"...."

농담 아니잖아요.

"아무튼."

주희를 포함한 다섯 멤버들의 추가 촬영 장소와 컨셉을 공유 받았다.

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에서 나왔는데.

다른 Tvm 피디님들이 나를 기다렸다.

당연히 섭외 문의겠지, 이제 전화로는 캐스팅이 어려우니까.

솔라뿐만 아니라, 루나와 이클립스까지 떡상각이 잡혔기에.

"대표님, 저 기억하시죠?"

"그럼요 당연하죠.."

실례지만 누구셨더라.

"아, 맞다. 처음 보네요."

"...."

띠리리링─

그때, 팀장님께 전화가 걸려와 민망한 상황에서 벗어났다.

"전화가 와버렸네요."

"아이고, 전화가 와버리다니요."

"그럼 저는 이만."

"며, 명함이라도...."

"아, 넵."

꾸벅 인사하고 뒤로 돌아가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계획이 성공했습니다.

"네?"

-웸블리 스타디움, 솔라 단독 콘서트요!

"...."

이게 되네.

* * *

영국의 또 다른 여왕.

프레디 머큐리의 상징과도 같은 영국 최고의 콘서트장.

솔라의 웸블리 스타디움 단독 공연이 최종 확정되었다.

한국과 유럽의 주요 외신은 '솔라 열풍'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이엔드 이후 두 번째로 웸블리 무대에 서는 한국인 아티스트.

데뷔일 기준, 최단기 커리어의 아티스트로서 무대에 오르게 되었으니.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왕의 품격」 야외 세트장.

주희의 마지막 촬영을 보기 위해 촬영장에 방문했다.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스탭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내게 인사했다.

무슨 작가님이 오랜만에 방문한 줄 알겠네.

"감독님."

김찬호 감독님도 내게 인사하며 덕담을 건넸다.

"솔라 단독 콘서트 성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네?"

"영화 프로모션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뛰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

영화 홍보보다 공연이 더 중요한데요.

"그만큼 예지 씨와 은서 씨를 위한 마음이 크신 거겠죠."

"네. 그렇다고 봐야죠."

"앞으로 남은 촬영,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넵. 감독님."

감독님의 눈빛에 열정이 가득했다.

안 그래도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피크를 찍었다.

솔라 멤버 중에 세 명이 출연하는 것도 그렇고.

김찬수 감독님의 화려한 전작들은 칸에서도 주목받았으니.

"그럼 촬영 준비하겠습니다."

"아, 네. 준비할게요."

이번 씬은 예지와 주희의 감정 표현이 중요한 장면이었다.

호위무사의 사망과 중전의 각성.

두 사람은 이미 분장 때부터 몰입하고 있었다.

똑, 똑─

일부러 인기척을 내고, 예지와 인사를 나눴다.

"예지야."

"대표님!"

"미안, 몰입에 방해했나."

"아뇨. 괜찮아요."

조금 수척해진 예지가 걱정되었다.

너무 촬영 스케줄이 빡빡한 건지.

"예지야, 뭐라도 좀 먹을래?"

"지금 딱 좋아요."

"알겠어."

방해되지 않도록 비켜줄 생각이었는데.

예지는 내 손을 붙잡고 대화를 이어갔다.

"대표님, 감사해요."

"응? 뭐가."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잡으려고 얼마나 애쓰셨는지 알아요."

"내가 뭘 했다고."

"또 그러시네."

미안한데 진짜로 내가 한 건 거의 없어.

그냥 역배각 나오는 방송에 집어넣은 게 전부야.

"영화 촬영 끝나자마자 공연 준비 열심히 할게요."

"응. 좀만 더 힘내자."

이미 촬영은 중반부를 넘어섰다.

주희의 사망과 함께 중전과 후궁의 전쟁을 시작하는 영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서 사망하는 주요 캐릭터는 극의 몰입감을 더한다.

똑, 똑─

그때, 문밖에서 조연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지 씨, 촬영 준비하실게요!"

"네에!"

잠시 후,

카메라 T바와 엣지를 잡는 현장의 스탭들.

보조 출연자들은 촬영을 앞두고 대기했다.

"롤, 레디."

이내,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액션."

감독님의 지시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배우들.

중전을 시해하기 위해 보인 일련의 자객들.

BGM이 없어도 압도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이내, 주희는 살벌한 눈빛을 번뜩이며 검을 들었다.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픽션을 가미한 장면이었으니.

원테이크 액션.

스턴트 전문 남자 배우도 하기 어려운 연기.

주희는 갈고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무자비하게 갈려나가는 보조 출연자들.

촬영용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와아, 이게 무슨.'

시체로 산을 쌓고 피로 강을 이루는 모습.

실제로 조선에 저런 여성 검사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주희의 우월한 검술 실력이 곧 작품성이고, 개연성이었으니.

감독님이 주희의 출연을 간절히 바랐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와아....'

'미쳤다.'

스탭들의 경외감 섞인 표정이 극의 완성도를 증명했다.

하나둘씩 상처가 쌓이고, 결국 무릎 꿇은 호위.

중전은 그런 호위무사를 보며 눈물을 보였다.

"마마, 소인을 거둬주신 은혜를...."

"...."

그녀의 눈을 감겨주는 예지의 가녀린 손.

손의 떨림은 천천히, 천천히 잦아들었다.

"부디 편히 눈감거라."

예지는 독기를 품고 시산혈해의 현장을 바라봤다.

유약한 중전은 사라지고, 칼을 품은 여인이 남았다.

'예지는 피가 묻어도 예쁘네.'

남자 스탭들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주희 촬영은 오늘로 끝, 좀비물은 아니니까 죽으면 끝난 거지.

비싼 개런티를 주고 중간에 사망한 만큼 임팩트는 대단할 터.

감독님은 한동안 뜸을 들이고 촬영 종료를 외쳤다.

".... 컷!"

스탭들은 그녀들의 열연에 한참 동안 박수를 보냈다.

잠시 후에, 주연 배우들이 몰입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촬영을 마치고, 예지는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얼굴에 피를 묻혀도 미모는 여전히 빛이 났다.

"저 오늘 연기 어땠어요?"

"최고였어."

거짓이 전혀 섞이지 않은 최고의 찬사였다.

* * *

며칠 뒤.

미국 언론에서 특이한 소식이 들려왔다.

《쇼잉글랜드 공연 기획팀장에게 로비하다 걸린 캐피탈 매니지먼트, 키아라를 비롯한 유명 아티스트들이 소속된....》

쇼잉글랭드, 다니엘 디렉터 소속인데.

저 회사도 완전 막장으로 운영하나 봐.

솔라와 최종 경합을 벌인 만큼, 국내 언론에서도 기사가 올라왔다.

"오빠."

그때, 지유가 다가와 결재 서류를 가져왔다.

"오늘 회의는 어떻게 진행할 거야?"

"솔라 멤버 전원. 그리고 프로듀서들."

"알겠어."

잠시 후,

멤버들과 함께 모여 단독 콘서트 회의를 진행했다.

특히, 도하나와 에일리 프로듀서가 주축이 되었다.

"일단, 단체곡은 준비하고 있어요."

"잘하고 있네."

각 멤버 별로 솔로 무대도 준비하면 좋겠는데.

저번에 서울에 단독 콘서트를 열었을 때처럼.

"예지랑 은서는 촬영 때문에 어렵겠지만, 다른 멤버들은 슬슬 준비할 거야."

"공연 준비요?"

"응. 예지랑 은서도 촬영 없는 날에는 참여하고."

"네!"

어렵게 구한 콘서트 기회인 만큼.

뒷말 없는 무대를 보여줘야 했다.

"게스트는 루나랑 이클립스, 맞죠?"

"한 명 더 있지."

"아."

솔라와 콜라보 작업이 예정된 레전드 팝가수.

"비욘세이."

"크으."

솔라 멤버들은 감동한 듯 눈빛을 반짝거렸다.

팝의 여왕과 콜라보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우리 콘서트 게스트로 오신다니!!!!"

"그래. 그러니까 더 잘해야지."

"네에!"

방한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비욘세이님이 단체곡 피처링에 참여해 주시면 좋겠는데."

".... 괜찮을까요?"

솔라도 아니고 단체곡에 피처링.

당연히 거절하실 확률이 높겠지만.

"곡이 좋으면 되는 거 아니야?"

"아, 네. 맞아요!"

비욘세이가 다른 일도 제쳐두고 한국에 달려오게 만들 만큼.

"좋은 멜로디 하나 뽑아볼까."

"...."

현재 회사에 탑 라인을 쓰는 작곡가는 두 명이었다.

루나의 류시아와 이클립스 한지아.

멜로디는 원래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송 캠프 간다고 생각해야겠네."

"아, 오락실 유니버스."

"응. 지아도 오락실 멤버로 합류했으니까."

"좋아요."

"일단 두 사람한테는 비밀로 해야겠다."

"비밀이요?"

본인이 쓰는 멜로디를 비욘세이가 부른다고 생각해 봐.

그것도 그게 루나, 이클립스도 같이 부르는 단체곡이면.

"나올 곡도 안 나올걸."

"그건 맞죠."

그 외, 무대 구성, 장치와 소품을 하나씩 정리했다.

쇼잉글랜드에 보낸 기획안을 기준으로 디테일하게.

콘서트 회의를 마치고,

내 자리에서 나머지 스케줄을 정리했다.

일단, 오락실 유니버스 국내 추가 촬영.

'부산도 가고....'

뭐야, 지리산도 타는 건가.

게임에서 진 팀이 벌칙으로.

또각, 또각─

그때, 이수연 배우님이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이 배우님,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네.요."

"...."

스타카토 창법 뭔데.

"제가 연락해도 매번 안 읽고! 바쁘신 건 아는데 너무 하세요!""

"아, 지금 읽을게요."

"지금 말고, 오늘 술 한잔하시죠."

"아하."

얼마 전부터 계속 후속작 추천해 달라고 하셨다.

아직 뒤통수 간지러운 작품이 없거든.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괜히 미안하네.

"좋아요. 오늘 한잔해요."

"오케이. 콜."

옆에서 듣고 있던 지유는 냉큼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이수연 씨랑 개인적으로 술을 마신 게 언제였더라.

엄지유랑 같이 마셨을 텐데.

단 둘이서는 처음인 것 같다.

"후우, 여배우도 쉽지 않아요."

"그럼요. 저도 알죠."

"대표님, 진세은이 저한테 뭐라는 줄 아세요?"

"뭐라는데요."

"퇴물 여우."

"...."

당신도 진세은이 싸가지 없는 후배라면서요.

"대표님."

수연 씨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했어요."

"네?"

"드림 에이전시 시절에 도움 주지 못해서."

"...."

진심어린 눈빛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팀이 해체될 때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그때는 그럴 만했어요."

"...."

오히려 큐앤지 레이블로 옮기고 팔자가 피었지.

역배각으로 간다.

마인드를 바꾸니까 무슨 일이든 다 풀렸다.

"수연 씨, 탑아이돌 때 MC 보셨잖아요."

"네? 아, 그랬죠."

"솔라 단독 콘서트 MC도 봐주시면 좋겠는데."

"제가요?"

"네. 영어는 좀 하시죠?"

"당연하죠! 헐리웃 진출하려고 제가 얼마나....!"

"...."

헐리웃 진출한다고 말한 적 없는데요.

우리 아티스트들은 다들 꿈이 크시네.

"노, 농담인 거 아시죠?"

".... 예."

농담 아니잖아요.

"제가 미국에서 좋은 작품 있나 찾아볼게요."

"오, 정말요?"

"그럼요."

띠링─

그때, 솔라 단톡방에서 알림음이 연이어 발생했다.

[예지 : 대표님 어디에요?]

[은서 : 여자랑 술 마신다던데 ;;;;]

예지랑 은서는 둘이서 톡을 주고받았다.

[예지 : 대표님 어디서 술 마셔요? ^^]

[은서 : 나도 마심 ㅅㄱ]

[예지 : 안 돼 ㅠㅠ]

[은서 : 같이 마실?]

[예지 : ㅎㅎ]

애들아, 나도 단톡방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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