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72화 (172/200)

[172] 걸그룹의 품격(1)

배우의 연기력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발성. 딕션. 호흡. 눈빛. 표정. 자세.

그런 기술적인 부분은 기본이었다.

명품 배우와 평범한 배우를 가르는 가장 핵심적인 요건.

'대본 분석.'

김찬수 감독은 이번 시나리오를 수백, 수천 번 검토하고 집필했다.

장면 전환, 카메라 초점, 세트장과 배우들의 이미지까지 고려했다.

그 후에도 수정과 수정을 거듭한 완성본.

중요한 건, 배우가 자신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얼마나 대본을 분석했고 캐릭터를 연구했는지.

오늘 대본리딩 때 배우들이 보여줄 연기에서 답을 찾을 생각이었다.

스윽─

김 감독은 시선을 돌려 세 명의 소녀들을 확인했다.

음악으로 세계 시장에서 노는 솔라 멤버들.

스탭들은 주희의 연기를 가장 걱정했지만.

'예지 씨랑 은서 씨....'

당연히 메인 캐릭터의 연기가 훨씬 더 중요했다.

정통 사극 연기는 두 사람 모두 처음이었으니까.

이내, 주요 배역들의 가벼운 인사말과 소감을 발표하고.

조감독은 대본리딩의 첫 번째 씬의 나레이션을 읊었다.

"조선 중기, 백성들은 기근에 시달리고 사대부의 권위는 하늘을 찌른다. 왕의 눈과 귀를 멀게한...."

첫 번째 장면, 왕 역할을 맡은 정상훈은 신하들과 합을 주고받았다.

'역시, 안정적이야.'

원로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자 주인공의 연기도 훌륭했다.

이내, 예지와 은서가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모든 스탭과 배우들은 두 명의 여배우에게 시선을 모았다.

"마마, 왕실의 체통이 말이 아닙니다."

"희빈, 말씀을 삼가세요."

"제가 틀린 말을 했습니까. 세자는 제정신이 아니에요."

"...."

중저음의 중후한 음색과 날카로운 미성.

사극에 어울리는 목소리.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연기는 부드럽게 이어졌으니.

'후우, 나쁘진 않네.'

다행히 사극에도 잘 어울렸다.

그냥 딱 그 정도면 만족했는데.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정수호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온 멤버들은 각성했다.

쉬는 시간 이후의 현장 분위기는 급변했다.

두 여배우는 정신 교육이라도 받고 온 걸까.

"희빈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겁니다."

"중전, 시대가 변했어요."

"뭐라고 하셨소?"

서슬 퍼런 음성으로 날을 세우는 두 사람.

가벼웠던 현장 분위기에 칼바람이 불었다.

'그래, 이거야....!'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모든 대사와 연출에 추가적인 의미를 내포했다.

조선에 불어올 피바람을 예고하는 중요한 장면.

두 사람의 언쟁은 피를 부르고 조정을 뒤흔든다.

스탭과 배우들은 두 사람의 장면이 끝나는 동시에 참고 있던 숨을 뱉었다.

"파하아."

"와아."

장면을 마치고, 두 여인은 뒷자리를 힐끔 쳐다봤다.

그 시선의 끝에는 뒤통수를 긁는 한 사내가 있었다.

'정수호 대표였구나!'

정 대표에게 정신 교육을 받고 오니 연기 실력이 두 배는 늘었다.

'무슨 말을 들었길래....?'

그가 없을 때도 만족스러운 실력을 보여줬지만.

그의 교육과 동시에 날카로운 연기를 선보였다.

과연, 정 대표가 솔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소문은 들었지만....'

멤버들의 대표에 대한 의존도는 어마어마했다.

아마 호위무사 역, 양주희도 큰 차이는 없겠지.

"브라보."

원로 배우 이학수 선생님은 주저하지 않고 칭찬을 뱉었다.

"두 분, 아카데미 후보에 오를만했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마 다른 사람은 눈치를 채지 못한 듯했다.

솔라 멤버들에 대한 정수호 대표의 영향력을.

잠시 후,

김찬수 감독은 대본리딩을 마치고 수호를 따로 찾아갔다.

"대표님, 혹시 촬영 중에도 따라오십니까?"

"아마 매니저가 따라갈 것 같습니다."

"...."

그게 당연하겠지.

어느 엔터 사장이 촬영장에 매번 따라올까.

"실례지만, 대표님께서 촬영 때 자주 들러주셨으면 합니다."

"네? 제가요?"

"네. 계속 교육해 주셨으면 해서요."

"무슨 교육을....?"

"멤버분들 짧은 레슨이라도 해주신 거 아닌가요?"

"전혀요."

그럴 리가 있나.

연기의 폼이 달라졌는데.

"그래도 가끔 촬영장에 들러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네.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미국 LA와 프랑스 전역에 배급을 진행 중인 영화.

김찬수는 이번 영화를 위해 영혼까지 전부 걸었다.

* * *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꽤나 길었던 시장식 시즌을 마치고 다시 공백기가 찾아왔다.

AMA와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신인상.

연말 시상식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회사 직원들과 함께 올해 계획 중인 프로젝트를 논의했다.

당분간 여배우들은 스케줄을 잡을 수가 없었다.

물론, 주희는 조연에 금방 사망할 캐릭터였지만.

"먼저, 소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네요."

"아, 네. 맞습니다."

"올해 고 3이죠."

올해는 가능하면 수능 공부할 시간을 확보해 줄 생각이었다.

"스케줄 하면서도 올 1등급이 자신 있다고 하네요."

"크으, 지니어스."

알아서 수능 치를 자신이 있다고 하니까.

올 1등급은 아니라도 적당히 잘 보겠지.

"아무튼, 솔라 5인조로 광고 하나 들어왔는데."

"무슨 광고입니까?"

"스마트폰 광고요."

"아하."

사과폰과 함께 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스마트폰.

사실 역배각은 아니지만, 광고 하나 찍을 때 됐지.

'이젠 당연한 건가.'

스마트폰 광고를 찍게 됐는데 동요하는 사람이 없었다.

솔라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였다.

콘서트 한 번에 억 소리 나게 버니까.

"왕의 품격 촬영 들어가기 전에 날짜 잡아볼게요."

"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예지랑 은서, 아카데미 시상식 날짜랑 안 겹치게 부탁해요."

"네! 대표님."

"그럼 다음으로...."

솔라에 이어, 루나와 이클립스의 일정을 정리하면서.

구현식 팀장이 건네준 스케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류시아, 남민지, 엠마, 그리고 소미.

총 4명 앞에 들어온 예능 프로그램.

"이거 무슨 조합인가요."

"아, 그거 예능 들어온 겁니다."

"...."

섬에 들어가서 직접 밥 지어먹고 퀴즈도 푸는 방송.

"아, 그 스타 피디님 방송이구나."

"네. 나현석 피디님."

"예전부터 계속 연락 들어왔었죠?"

"맞습니다."

그동안 역배각이 안 떠서 계속 거절한 피디님이었다.

사실, 스타 피디님이라 뒤통수가 가려운 게 이상하지.

'역배가 아니라 정배잖아.'

류시아를 제외하면 전부 예능캐.

뭔가 원하는 그림이 있는 듯했다.

"워낙 네임드라 방송이 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한데."

소미는 이제 최대한 방송을 보류할 생각이었는데.

살랑─

순간, 뒤통수에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대표님, 혹시 출연에 관심 있으십니까?"

"글쎄요."

역배각이 떴으니, 없던 관심도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직원들도 한 명씩 자신의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류시아는 신비주의 컨셉을 원할 텐데요."

"맞아요. 리듬체조도 그렇고."

"...."

솔라보다 못 나갈 때도 항상 당당한 친구.

데뷔하기 전부터 떡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제가 한번 설득해 볼게요."

"네. 대표님!"

싫어하지만 않으면 방송하는 게 좋겠지.

소미나 이클립스랑 케미도 꽤 좋으니까.

그동안 류시아의 의견을 존중해서 신비주의 컨셉을 유지했다.

태양 여신과 대비되는 달빛 여신.

특히, 솔라의 작곡가로 유명해서.

"시아랑 다른 멤버한테도 따로 물어볼게요."

"네. 대표님."

회의를 마치고,

나는 자리에서 「오락실 유니버스」의 시놉시스를 천천히 확인했다.

스타 피디의 예능 방송에 역배각이라.

확실히, 아직 재미 포인트를 모르겠다.

'게다가....'

매니저가 출연할 수도 있다는 말이 계속 거슬린다.

'나현석 피디님이면....'

이 바닥에서도 장난기 많은 걸로 유명하신데.

설마 나를 저격해서 컨셉을 잡은 건 아니겠지.

요즘 길바닥에서 잼민이들 마주치면 댄싱머신이라고 놀린다고.

"지유야, 지금 시아는 어딨어?"

"아마 연습실에 있을걸."

"그래?"

한번 가봐야겠네.

* * *

루나의 리더.

솔라의 수많은 명곡들을 만들어낸 작곡가.

저작권 재벌에겐 말 못 할 고민이 있었다.

'우리도....'

활동하고 싶어요, 대표님.

톡, 토톡─

류시아는 스마트폰으로 톡을 세 번째 썼다가 지웠다.

이내, 루나의 다른 멤버들은 시아에게 질문을 건넸다.

"언니,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응? 아, 아니야."

솔라에 이어, 스카이 엔터에서는 2군인 루나.

멤버들도 더 높이 올라가려는 욕망이 있었다.

"저기."

둘째 멤버, 지연이가 슬쩍 입을 열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신비주의 컨셉 유지하는 걸까?"

"응?"

"언니가 신비주의를 원하는 건 우리도 이해해."

"???"

무슨 소리야.

누가 신비주의를 원해.

"그래. 우리도 솔라 작곡가 이미지 중요한 건 알아."

"아니, 그런 거 아냐."

"괜찮아. 언니, 우리도 다 이해하니까."

"...."

진짜 아니라고.

"그동안 왜 미리 말을 안 했어."

"그야, 언니 힘들까 봐."

"...."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회사 직원들도 걸그룹보단 아티스트로 봤으니.

"그래도 우리 활동하고 싶어."

"나도!"

"나도 나도!"

"....."

나도 그래.

사실, 그동안 솔라가 너무 떠서 주눅이 든 느낌이다.

그냥 하고 싶다고 말했으면 시켜줬을 텐데.

아육대에 리듬체조로 출전하는 노력도 했건만.

"그래도 우리 잘 된 건 전부 시아 언니 덕분이야!"

"맞아, 맞아."

"솔라 작곡가니까."

"크으. 류 리다!"

"...."

모두가 자신의 멘탈이 강하다고 칭찬했다.

직원들부터, 대표님, 같은 루나 멤버들까지.

'나도 뜨고 싶어요.'

지금도 떴지만, 무지막지하게 더 많이 뜨고 싶다.

나약한 멤버들을 캐뤼할 수 있을 만큼 뜨고 싶다.

잠시 후,

류시아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마침 정 대표님께서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대표님!"

"아, 다들 모여 있었네."

"네?"

정수호 대표님은 다정한 말투로 자신에게 말했다.

"시아야, 예능 하나 할래?"

"저 혼자요?"

"응, 일단 루나에서는 너만."

"...."

동생들은 아기새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예스라고 말해!'

'언니가 뜨는 게 우리를 위한 길이야!'

'루나는 일심동체니까!'

한국에서 걸그룹 리더 하기 정말 어렵다.

"시아야, 네가 신의주의 컨셉을 원하는 건 알지만...."

"아닌데요."

"그래도 우리 힘내보자."

".... 녜."

안 되겠다.

이번에 예능 나가서 이미지 세탁 좀 해야겠어.

멤버들조차 자신을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

'한번 해보자고.'

솔라 멤버들에게 기죽은 루나를 대표해서.

"저 말고 누가 더 출연해요?"

"소미랑 엠마랑 남민지."

"아."

그저 숨만 쉬어도 예능감 넘치는 친구들.

그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럼 화이팅 하자고."

"네. 대표님!"

대표님이 사라지고, 멤버들이 한 명씩 입을 열었다.

"오오, 기회 왔다."

"이건 제2의 소미각이다."

"언니가 제일 잘하겠네!"

"...."

오케이. 내가 성공해서 캐뤼한다.

* * *

「왕의 품격」 표지 촬영장.

나는 포털에 올라오는 기사를 하나씩 확인했다.

《솔라 김예지와 장은서의 차기작, 왕의 품격은 촬영을 앞두고....》

《양주희의 연기 데뷔, 차세대 액션퀀이 될 수 있을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두 사람 덕분일까.

기자분들은 알아서 프로모션을 해주셨다.

'공짜로 홍보하네.'

시선을 돌려, 예지와 은서의 촬영 모습을 확인했다.

조선 시대 왕실의 옷을 입은 채 마주 보는 두 사람.

'한복도 잘 어울리네.'

어떡하면 두 사람 모두 행복할 수 있을까.

은서의 마음을 알고 나서 고민이 깊어졌다.

"대표님."

그때, 뒤에서 구 팀장님이 나를 불렀다.

"Tvm, 나 피디님과 미팅 잡았습니다."

"아, 그래요?"

"네. 많이 반기는 분위기였습니다."

"잘 됐네요."

소미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에겐 좋은 기회였다.

'물론, 소미도....'

역배각이 떴으니 나쁜 기회는 아니겠지.

요즘 OTT 시장에선 국내 예능도 먹혔다.

멤버들의 표지 촬영이 끝나고, 나갈 준비를 하던 찰나.

띠리리링─

낯선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정수호 대표입니다."

-헬로우. 저희 쪽에 먼저 연락 주셨죠.

"누구....?"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는 경우가 있다.

뒤통수 감각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종종 경험했다.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디렉터 다니엘입니다.

"아."

아무리 연락해도 긍정적인 반응은 없었는데.

-그래미 무대를 보시고, 회장님께서 만족하셨습니다.

"그럼....?"

-캐피탈 매니지먼트와 함께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

그 회사랑은 경쟁이 끊이지 않는구나.

캐피탈 매니지먼트.

가수 키아라 소속사.

"그럼 최종 선발을 위해서는...."

-공연 순서와 기획안을 메일로 보내주시면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 언제까지 보내드리면 될까요?"

-날짜는 톡으로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곧이어, 그의 톡을 확인하니 아직 날짜는 충분했다.

그럼 함께 오를 게스트도 중요하겠구나.

당연히 루나와 이클립스를 생각했는데.

".... 키우면 되지."

예능으로든, 음악적으로든.

다른 걸그룹도 볼륨을 키울 때가 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