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71화 (171/200)

[171] 시상식 시즌(4)

최근 한국에서 더 관심이 많아진 미국의 축제.

GRAMMY Awards 시상식장.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블루숄츠가 스테이지에 등장하자 반응은 뜨겁게 타올랐다.

-와아아아아─!!!

관객들과 아티스트들은 한마음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정말 대단하군요."

"네. 뭐...."

핀 브라운은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사내를 슬쩍 바라봤다.

영국에서 잘 나가는 공연 디렉터, 다니엘.

웸블리 스타디움의 관계자 중 한 명이었다.

소속 아티스트 레이븐의 요청으로 어렵게 초청했는데.

"음, 저는 솔직히 K팝 아티스트는 관심 밖이었는데요."

"아, 블루숄츠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까?"

"네. 빅보스 사운드에서도 연락이 자주 오거든요."

"...."

방금 전, 레이븐 무대와 비교했을 때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반응.

'둘 다 텄네.'

다니엘은 극찬할 때 욕설이 먼저 튀어나오는 사람.

정말 흥분했을 때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레이븐은 끝난 것 같고....'

이렇게 된 이상, 솔라 메타로 간다.

솔라는 그래미의 유력한 신인상 후보였으니.

"다니엘 씨, 다음 무대도 K팝 아티스트인 거 아십니까?"

"아, 빌보드 1위에 오른....?"

"네! 솔라입니다. 요즘 핫하죠. 하하."

"흐음."

별로 관심이 생기지는 않는 듯했다.

사실, 빌보드 차트에도 원히트원더는 매년 꾸준히 나오니까.

현재 성적표가 아니라, 그동안 낸 앨범을 보면 살짝 아쉬웠다.

"일단 블루숄츠 무대부터 보시죠."

"...."

역시, 쉽지 않겠네.

핀 브라운은 시선을 돌려 정 대표를 바라봤다.

블루숄츠의 압도적인 무대를 그저 즐기는 모습.

'무슨 생각일까.'

오늘 솔라가 부를 노래를 확인했을 때.

선곡을 보자마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Look at me only, 나만 봐.

'대체 왜....?'

정 대표는 왜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데뷔곡을 선택했을까.

영미권 시청자의 감성에 맞는 곡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나.

물론 의미는 있겠지.

데뷔곡 때보다 지금 실력이 많이 늘었으니까.

서로 으쌰으쌰 하려고 선곡한 건 아닐 거 아냐.

'후우, 모르겠어.'

무대를 봐야 알 것 같다.

곧이어, 블루숄츠가 공연이 막을 내렸다.

어마어마한 함성이 그녀들에게 쏟아졌다.

공연에 우위를 가늠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 어렵겠어.'

그래도 어떤 무대가 더 대중적인지는 판단할 수 있었다.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할 기회.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확률.

물론, 아무나 역사적인 콘서트장에 오를 수는 없었다.

"역시, K팝 아티스트들은 화려한 퍼포먼스가 압권이군요."

"동의합니다."

"핀 브라운 씨 초청 덕분에 좋은 무대 구경했습니다."

"...."

진짜 괜히 데려왔다.

영업으로 승부할걸.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MC는 다음 무대를 소개했다.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른 솔라의 퍼포먼스를 감상하시죠!

그래도 복권을 긁기 전에 모르는 법.

아직 솔라 무대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후우, AMA 솔라의 무대는 다시 봐도 레전드예요."

"네. 저도 봤습니다. Save The Earth."

"정말 가슴 따뜻해지는 명곡이죠."

"흐음."

극한의 영업력을 발휘하는 핀 브라운.

순간, 실내 모든 조명이 동시에 꺼졌다.

파팟─!

태양처럼 뜨거운 불빛이 스테이플스 센터의 천장을 비추고.

이내, 솔라 멤버는 한 명씩 하늘에서 내려왔다.

얼마나 연습했는지 와이어 액션은 부드러웠다.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몽환적인 선율.

곡을 부르기도 전에 귀를 사로잡았다.

'아, 데뷔곡 먼저였구나.'

장르를 초월하는 알 수 없는 매력이 느껴졌다.

도하나와 에일리, 하이엔드 곡의 느낌도 있고.

스윽─

그때, 다니엘은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무대에 집중했다.

'먹혔어....!'

고급스럽고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부드럽게 흩날리며.

서서히 내려오는 여신들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데뷔 때보다 한결 성숙해진 소녀들.

부드러운 미소와 숙련된 무대 매너.

음악이든 영화든, 모든 예능계에는 공통적으로 3초룰이 존재한다.

전주를 마치고, 메인보컬이 마이크를 드는데 1초.

감미로운 음성이 공연장 내부에 울려 퍼지는데 1초.

청중들이 첫 소절을 듣자마자 솔라에 빠지는데 1초.

관객들은 환호를 지르는 것도 잊은 채 무대에 눈과 귀를 사로잡혔다.

"홀리 쉣! 미쳤어!!"

다니엘의 입에서 실로 오랜만에 극찬이 튀어나왔다.

* * *

이거 좆된 건가.

콘서트장은 오직 솔라의 음악 소리만 들려왔다.

객석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1절이 거의 다 끝났는데 호응이 없어.

'이거 몰카야, 뭐야?'

무대는 괜찮은 것 같은데 왜 반응이 없지.

나 혼자서라도 우윳빛깔 솔라 외쳐야 하나.

멤버들은 꿋꿋해서 다행이네.

그래도 우리 애들이 멘탈은 정말 강해요.

이런 상황에서도 음정이 나가지 않으니까.

잠시 후,

「나만 봐」 1절이 끝나는 찰나, 분위기는 급변했다.

다들 최면에 풀린 듯 어마어마한 함성을 쏟아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마치 이 순간만을 일부러 기다린 사람들처럼.

이내, 환한 미소로 화답하는 멤버들.

아마 나처럼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브릿지 파트에 이어, 2절 도입부를 시작하고.

관객들은 1절에서 학습한 후렴구를 써먹었다.

곡이 싸비 파트에 진입하는 동시에.

-나만 봐! 나맘 봐아! 나망 봐아!!!!

-솔라, 솔라, 솔라, 솔라─!!

-나 망 봐아아아!!!

무슨 뜻인지는 알고 따라 부르는 거 맞나.

가슴 속에서 서서히 국뽕이 차올랐다.

내가 키운 걸그룹이 이렇게 성장했네.

이어지는 후속곡.

「Save The Earth」의 인트로가 흘러나오고,

관객들은 입을 모아 떼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빌보드 핫 100 차트의 정점을 찍은 솔라의 최대 히트곡.

분명히 블루숄츠도 빌보드 1위 곡이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관객들의 호응을 받아내진 못했다.

그래미 어워드에 태양빛 팬들이 단체로 찾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 찢었다.'

나도 모르게 관객들과 함께 솔라의 명곡을 부르고 있었다.

대표가 아니라 한 명의 팬이 된 것처럼.

솔라 멤버들 한 명 한 명에게 푹 빠졌다.

공연이 끝나고,

솔라가 무대 뒤로 사라질 때까지 관객들의 박수는 멈추지 않았다.

피날레 순서도 아니고, 중후반 무대에 불과했지만.

관객들은 솔라의 무대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잠시 후,

MC는 올해 그래미 신인상 후보를 한 팀씩 소개했다.

올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레이븐과 솔라.

그 외,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후보에 올랐는데.

-솔라! 솔라! 솔라! 솔라!

-솔라! 솔라! 솔라! 솔라!

-솔라! 솔라!

관객들은 작정하고 솔라의 이름을 외쳤다.

오늘 무대의 임팩트가 그만큼 컸다는 뜻일까.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르고,

MC의 입에서 솔라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객석에서는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AMA에 이어, 그래미에서도 신인상을 탔다.

오늘 무대를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정수호 대표님."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했는데.

"오오, 핀 브라운 씨."

"반갑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레이븐도 참석했구나.

AMA에서 솔라와 신인상 후보로 경쟁했던.

"조금만 빨랐으면 소개해 드렸을 텐데요."

"네?"

"혹시 제가 데려올 걸 예상하셨습니까."

"누구요?"

"다니엘 디렉터 말입니다."

"...."

그게 누군데요.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AMA와 그래미에서 동시에 신인상을 수상했으니.

오늘 공연은 객관적으로 축하받을 만한 무대였다.

"생각보다 무덤덤하시네요."

"아뇨. 저도 심장이 두근두근하네요."

"그렇군요."

다른 아티스트들이 못 한 건 절대 아니었다.

솔라 멤버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훔친 거니까.

"대표님, 그럼 다니엘 씨 연락을 기다려봅시다. 번호 넘겼으니까."

"아니, 그분이 누군데요."

"하하하. 농담에는 소질이 없으시네."

"???"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럼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

누군지 말해주고 가라니까.

* * *

며칠 뒤.

솔라 멤버들과 함께 한국에 복귀했을 때.

인천국제공항은 수많은 인파로 마비됐다.

안전 상의 이유로 국가에서 경찰 인력을 지원해주었다.

태양빛 팬들은 멤버들과 함께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정수호! 정수호!"

".... 그만."

"정수호! 정수호! 정수호!"

"...."

국위 선양하고 귀국한 스포츠 스타가 된 느낌이다.

직원들과 함께 간신히 인파를 뚫고 밴에 올라탔다.

"와아, 오늘 장난 아니야!"

"그러게."

"하아암, 졸려."

나는 조수석에 앉아 멤버들 머릿수를 세었다.

"다섯 명 다 왔네. 출발."

"출발!"

소미는 오늘도 개인 방송으로 열심히 소통했다.

"여러분! 우주갓스타 소미에요! 쏴리 벗고 팬티 질러!!"

"아."

우리 소미는 개인방송을 본인 실드용으로 쓰나 봐.

언니들 영화 촬영할 때 심심하지 않게 해줘야겠다.

"으아, 채팅창 너무 빨라. 좀만 천천.... 천천히!"

"...."

그냥 무시하는 게 건강에 이롭겠다.

무대 위에서는 진짜 개멋있었는데.

'다른 멤버들은....'

세 명의 배우들은 대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계속 대본만 봤으니.

하여튼, 시키지 않아도 잘하네.

톡, 토톡─

멤버들을 뒤로한 채 솔라와 관련된 뉴스를 확인했다.

《그래미 어워드 신인상의 주인은 솔라, 이미 월드 스타의 반열에....》

《외신들의 극찬이 쏟아진 솔라의 공연, 관객들과 하나가 되어....》

《올해 그래미 어워드 최고의 무대로 선정된 솔라의 데뷔곡....》

《유럽 7개국 음원 차트에 진입한 「나만 봐」는 한국어 가사로....》

똥촉의 힘은 위대했다.

'이번엔 좀 크네.'

미국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글로벌 기업의 광고 모델 섭외는 당연했고.

"오빠!"

이내, 지유는 신호 대기 중에 나를 불렀다.

"우리 오늘 파티해야 하는 거 아냐!?"

"파티?"

"응!"

글쎄. 시간이 없는데.

사극 영화 「왕의 품격」 크랭크인이 임박했다.

아카데미 시상식까지는 미뤄준다고 하셨지만.

"우리 바빠. 내일 미팅도 준비해야지."

"히잉."

촬영 들어가기 전에 해야 할 작업이 많았다.

대본 리딩, 표지 촬영, 고사 지내기.

그 외 다양한 프로모션 활동도 있고.

"오빠는 일밖에 몰라!"

"됐고, 운전에 집중해."

"알겠어."

잠시 후,

솔라 멤버들과 함께 회사에 복귀했는데.

지유는 일부러 파티를 언급한 모양이다.

퍼엉─!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폭죽이 터졌다.

"신인상 축하합니다!"

"으음?"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솔라 멤버들을 축하해주는 회사 직원들.

루나와 이클립스, 여배우들도 전부 모였다.

다들 스케줄을 미루고 여기 온 것 같은데.

솔라 멤버들은 각자 머리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왕관을 썼다.

"누가 보면 우리 회사 가족 같다고 생각할 듯."

"대표님!"

"???"

우에다 아이는 허리에 손을 두르고 소리쳤다.

"우리 회사가 족같다뇨!"

"갑자기?"

"사과하세요!"

"...."

그래. 내가 미안하다.

"우리 회사 욕하지 마쎼용!"

"아니."

당신 회사는 일본에 있어요.

여기 잠깐 머무르는 거에요.

"아무튼."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그냥 하루만 쉴까.

"직원분들, 아티스트 분들 지난 1년간 고생하셨습니다."

"와아아아─!"

새해 인사가 늦었지만.

그동안 많이 바빴으니까.

"올해도 열심히 뛰어주세요."

"...."

그때, 소미는 손을 번쩍 들고 내게 말했다.

"대표님, 저 공약 하나만 걸어주시면 안 돼요?"

"무슨 공약?"

"저 올해 고3 됐으니까요."

"아 그렇지."

머리도 좋은 친구라, 수능 잘 봐야 할 텐데.

"수능 올 1등급 받으면 뭐든 다 해줄게."

"진짜요? 약속했어요!"

"응."

대충 막 던진 약속이었다.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올 1등급이 말이 되나.

이내, 소미는 스마트폰을 들고 씨익 웃었다.

"여러분! 다들 들으셨죠!?"

"...."

소미야, 너도 여우였냐.

* * *

얼마 후.

스탭들은 연기자들을 기다리며 대본리딩을 준비했다.

영화 「왕의 품격」의 대본리딩 현장.

한 제작사 직원은 카메라를 설치했다.

사극 장르 특성상, 원로 배우들을 많이 캐스팅했는데.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허허, 그래요."

조감독 유영찬은 주조연 배우들과 인사하며 현장을 살폈다.

'분위기가 조금....'

다들 조금씩 날이 서 있다고 해야 할까.

보통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김찬수 감독님.'

오늘따라 많이 예민하셨다.

덕분에, 현장 분위기에 긴장감이 감도는 건 당연했다.

원래 영화판에서 감독님의 권위는 무소불위였으니까.

'주희 씨가 걱정하시는 건가.'

솔라의 티켓 파워는 충분하지만.

아직 연기력 검증이 안 됐으니.

이번 영화의 성패는 솔라의 연기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솔라의 어마어마한 성공과 인지도.

그에 걸맞은 연기 실력을 갖췄을지.

무엇보다, 무대 준비하느라 대본 숙지할 시간이 부족했을 터다.

"이학수 배우님 오셨습니다!!!"

한 스탭의 외침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내, 이번 영화 최고의 원로 배우가 현장에 들어왔다.

감독을 포함한 전 스탭들이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오셨습니까!"

"무슨, 대통령 왔어? 다들 앉아."

"아하하."

이학수 배우의 가벼운 농담에 분위기는 가벼워지는가 싶었는데.

"김 감독, 너무 궁금해서 참기가 힘들었어요."

"네?"

"양주희 씨, 오늘 연기 데뷔하는 날이라며."

"...."

이내, 분위기는 다시 푹 가라앉았다.

마침내, 현장에 도착한 솔라 멤버들.

"김예지, 장은서, 양주희 배우님 오셨습니다!"

"...."

연기로 검증받지 않은 양주희를 포함한 솔라 멤버들.

특히, 사극은 라이징 스타도 무덤석이 되곤 했으니까.

'.... 중간만 가자.'

조감독은 두 손을 모으고 하늘에 기도했다.

대본리딩을 앞두고, 긴장감이 감도는 현장.

"실례가 안 된다면...."

이학수 배우님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주겠나? 돈도 많을 텐데."

"....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지.

"농담이야."

분위기를 풀고자 하는 원로 배우의 처절한 무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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