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시상식 시즌(3)
대중상과 청룡영화상을 시작으로,
스카이 엔터 소속 아티스트들은 올해 연말 시상식을 휩쓸었다.
엔넷 마미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은 이클립스.
올해의 가수상, 음반상 2관왕을 차지한 솔라.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을 수상한 루나까지.
공중파 MBS, SBC 방송연예대상에서도 각종 예능상을 탔으니.
"숙소에 트로피 놓을 데가 없다."
"그러게."
"찬장 하나 살까."
"그것도 자리 차지해."
"...."
이내, 멤버들은 구석에 있는 주희의 운동기구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으아아, 절대 안 돼애!!"
".... 눈치 무엇."
양 팔을 벌려 몸으로 막는 근육몬.
은서는 주희를 보며 한숨을 뱉었다.
"어휴, 어차피 헬스장에 기구 다 있잖아."
"그거랑 홈트는 다르지. 내 아가들 건드리지 마."
"...."
운동기구가 왜 당신 아기에요.
"차라리 소미 크리스마스트리를 치우자."
"안 돼! 아직 크리스마스 안 됐거든!"
"...."
이거 혹시 21세기 걸그룹 버전 님비, 핌피현상인가요.
"이제 겨우 이틀 남았잖아. 그냥 미리 치우자."
"아니, 먼저 치우는 게 어딨어!"
"산타는 없다니까."
"알아! 안다고!"
힘 좋은 친구와 머리 좋은 막내의 고품격 대화.
장은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뱉었다.
"와, 귀에서 피 난다."
한편, 다이애나는 금발을 쓸어내리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영국 귀족처럼 우아하게 포도를 하나 들고 입에 가져갔다.
"오우, 씨 봐."
".... 오늘도 평화롭네."
"그러게."
장은서는 도하나 프로듀서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이제 나만 봐 편곡도 끝난 거지?"
"응. 언니 덕분에 요즘 반응이 핫하더라."
"내 덕분이라니?"
"태양 여신."
"아."
청룡영화상 수상 소감 때 예고한 컨셉을 뜻했다.
이제 정말 코앞에 다가온 그래미 시상식.
블루숄츠 포함, 팝스타들이 모이는 무대.
"태양 여신...."
데뷔곡 당시의 추억이 떠오르는 솔라의 아이덴티티였다.
삐, 삐삐삑─
그때, 김예지는 개인 스케줄을 마치고 숙소에 들었다.
"언니, 왔어?"
"응!"
오늘도 그녀의 표정은 세상 밝았다.
대표님과 스케줄 다녀와서 그런가.
즉, 현재 대표님은 윗집에 돌아오셨다는 의미였다.
크리스마스 약속을 잡지는 않았겠지.
오늘 스케줄은 지유와 함께 갔으니까.
"끄응차."
은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은서야, 어디가?"
눈치 빠른 예지 언니의 견제구가 훅 들어왔다.
오늘만을 위해 연기를 공부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흐음, 입이 좀 심심해서 편의점에 갔다 오려고."
"그래? 혼자 괜찮겠어?"
"아, 선글라스에 모자 쓰고 가면 괜찮아."
"으음."
좋았어. 자연스러웠어.
"언니, 나도!!!! 나도 같이 가!"
"아."
눈치 없이 대화에 끼어드는 소미.
아무래도 타이밍이 아닌 듯했다.
"그냥 지금 말고 조금 있다 가야겠다."
"엥. 시무룩."
"...."
예지 언니는 뭔가 눈치 챈 듯 소파에 앉았다.
"언니, 겉옷 갈아입고 오지?"
"아니야. 여기 조금 추운 것 같아."
"그럴 리가."
"...."
이내, 자리에서 스윽 일어나더니 다시 나가려는 김 리다.
"언니, 어디 가?"
"응? 아 물 마시러!
"물은 부엌에서 마셔야지."
"아 그러넹."
"...."
자강두천. 숨 막히는 눈치 싸움.
누가 먼저 대표님과 약속을 잡을까.
올해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내는 사람이 승자가 아닐까.
'.... 안 되겠다.'
살짝 치사하지만,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리다의 눈치를 살피며 그에게 슬쩍 톡을 보냈는데.
띠링─
그의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만 있었다.
[그날 약속 있어 ㅎㅎ]
싸울까.
* * *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나는 구 팀장님께 「왕의 품격」 일정표를 전달받았다.
보통 촬영 직전까지 계속해서 수정하는 게 정상이었다.
"약간 당겨진 건가요?"
"네. 대표님."
"그래도 많이 배려해주셨네요."
"맞습니다."
그래미 어워드와 아카데미 시상식.
두 시상식 직후에 촬영을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영화는 예지랑 은서의 신경전이 중요한 작품이었으니.
두 명이 싸울 일이 있을까.
둘이 얼마나 사이가 좋은데.
'그래도 둘 다 나한테....'
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잠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뻔했다.
"왕의 품격 경쟁작이 액션 버스터라면서요."
"네. 계희연 배우님 주연."
"...."
청룡영화상에서 은서한테 개처발리고 표정이 싹 바뀌시던데.
"대표님, 이번엔 쉽지 않겠죠....?"
"글쎄요."
불안해도 뒤통수 믿고 가봐야지.
그렇다고 인제 와서 캐스팅을 물릴 수는 없으니까.
우리 멤버들이 그저 열심히 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오스카상 후보는 오늘 발표 맞죠?"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보통 12월에 후보작을 선정한다.
사실, 연말에 개봉한 작품이 시상에 유리했지만.
로이랜드는 미국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았으니.
"그럼 그래미 프로듀싱 무대는요."
"아, 잠시만요."
"???"
구 팀장님은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 하나를 전송했다.
솔라 멤버들이 편한 복장으로 연습하는 영상이었다.
"이번 프로듀싱 최종본입니다."
"...."
드디어 나온 건가.
방 의장님을 포함한, 최정상급 프로듀서 진이 제작한 무대.
동작 하나, 악기 소리, 무대장치까지 전부 심혈을 기울였다.
상식적으로 이런 무대가 별로일 수는....
".... 있네."
"네?"
월척이다.
바뀐 안무와 비트에서 오는 강렬한 똥촉의 기운.
간질간질한 뒤통수 감각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크으, 이거거든!"
"오오."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팀장님께 말했다.
"그래미 시상식 일정 맞춰서 비행기 표 예약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전까지는 계속 연습하는 걸로."
"아, 넵."
솔라의 경쟁 상대는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팝스타들이었다.
블루숄츠, 키아라, 레이븐.
그 외, 정상급 가수들까지.
웸블리 스타디움의 공석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
그들 중 상당수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럼 저는 이만...."
"오빠아아악!!"
순간, 지유는 회사에서 소리를 지르며 내게 달려왔다.
"예지 언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어!"
"와, 역시 로이랜드."
"근데 한 명이 아니었어!!"
"???"
이내, 스마트폰을 들이대며 내게 보여주는 지유.
성적이든 전문가 평가든, 후보에 오를 만했는데.
"지금 첫사랑이 후보에..."
"응!"
"오스카상, 국제영화상 후보에 올랐다구!"
"...."
기억났다.
과거, 예지 덕분에 LA에서 따낸 「첫사랑」의 배급권.
그날 예지는 로이랜드 여주인공과 함께 찾아왔었다.
'이걸 김 리다가....!?'
역시, 큰일은 리더가 해낸다.
* * *
처음에는 가벼운 바람이었다.
「탑아이돌」이라는 작은 프로그램에서 유명세를 얻은 걸그룹.
이젠 돌풍을 넘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태풍으로 성장했다.
솔라가 이렇게 클 줄 누가 알았을까.
데뷔할 때 견제하지 않은 게 후회됐다.
"후우...."
빅보스 사운드 대표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뉴스 기사를 확인했다.
"솔라, 대단하네."
《아카데미 후보에 함께 오른 김예지와 장은서, 솔라의 여배우들이 선택한 차기작은 사극 영화 「왕의 품격」으로....」
연기와 음악, 예능까지 전부 잡은 걸그룹.
꿈에서나 존재하는 아이돌을 제작하다니.
'정 대표는 정체가 뭘까.'
물론, 블루숄츠가 솔라와 비교해 밀린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아직은....'
그들의 미친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똑, 똑─
그때, 비서가 들어오자 대충 재떨이에 담배를 지졌다.
"들어와."
이내, 비서는 대표실에 들어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결재 서류입니다."
"흐음."
걸스 오퍼레이션 데뷔조.
애초에 7인조로 기획한 팀이었는데.
사고 치는 멤버를 제외하다 보니까.
"이제 3인조네?"
"네. 대표님."
".... 야발."
갑자기 개빡친다.
처음 데뷔조에서 4명이 빠지는 게 말이 되냐.
방송 중에 학폭 터진 연습생은 제외했는데도.
'이클립스는 지금....'
마미에서 신인상도 타고, 훨훨 날아다녔다.
남민지는 빅보스 연습생 출신이었다더니만.
"아! 레미라는 친구는 아깝게 떨어졌잖아. 4인조로 어떻게든...."
"그 친구는 이름 바꾸고 다른 기획사에 들어갔습니다."
".... 빠르네."
접을까 그냥.
"DK 뮤직이랑 턴업 레코즈 반응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손 떼고 싶은 눈치입니다."
"쯧, 양아치 새끼들."
"...."
현재 하민준 프로듀서 혼자 열심히 뛰고 있었다.
정수호 대표한테 접근하라고 심어놨던 스파이.
스카이 엔터에서 인턴 생활만 하다 끝나버렸다.
"하민준한테 이번 프로젝트는 올스톱 한다고 전해."
"저기, 하 프로듀서가 많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럼 3인조로 데뷔시킬까?"
"...."
역시, 믿을 건 블루숄츠 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한 이번 그래미 어워드 무대.
아마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공동의 목표가 있을 터였다.
"웹블리 스타디움은 계속 접촉하고 있지?"
"네. 근데 상대 측이 최대한 미팅을 미루고 있습니다."
"그러겠지."
그래미 어워드 무대를 보고 판단하겠지.
개인적으로 이번 무대를 솔라와 진검승부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상대방도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서 준비할 텐데.
"우리 무대 다음 순서가 솔라였나?"
"네. K팝 가수들이 연달아 무대에 오릅니다."
"흐음."
아마 Losing Star와 Save The Earth.
가장 성공한 히트곡들로 경쟁하겠지.
씨익─
빅보스는 미소를 지으며 블루숄츠의 곡들을 확인했다.
「Shot The Hero」와 「Blue whale」.
솔라를 저격하는 음악 선정이었다.
그들이 부를 것으로 예상한 두 곡과 같은 코드와 박자.
관객은 같은 노래를 두 번씩 들은 듯한 기분이 들겠지.
'우리가 살려면 어쩔 수 없어.'
같이 K팝으로 묶인 이상 경쟁은 불가피했다.
프렌즈에 이어 국내 2인자 엔터의 위치.
스카이 엔터라는 신생 회사에 빼앗길 수는 없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이 열리는 현장에 도착했다.
"얘들아, 리허설 준비하자."
"네에!"
이내, 예지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게 물었다.
"저기, 박아영 코디님은 왜 미국에 안 따라오신 거예요?"
"...."
본인이 요청해서 최대한 늦게 밝히기로 했다.
멤버들이 시상식 무대에 집중하기를 바랐다.
이제는 숨길 수가 없었다.
"이제 조유미 씨가 다시 맡아주실 거야."
"네? 그럼...."
"아영 씨는 퇴사하고 드림 에이전시로 이직하셨어."
"아."
다른 멤버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모여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
그동안 정이 너무 많이 쌓였나 봐.
소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너무해애앵."
"그래. 아쉽겠지만, 본인 선택을 존중하는 게...."
"대학생 때 연애 기술 가르쳐준다고 했는데!"
"...."
이상한 거 배우지 마.
그분도 모솔 아니었냐.
이내, 예지는 소미의 어깨를 토닥거리고 내게 말했다.
"그럼 이제 못 보는 거예요?"
"아니, 종종 회사에 들르기로 했어."
"다행이에요."
오늘 무대 의상은 박아영 씨가 준비한 마지막 코디였다.
"아영 씨도 너희 무대 지켜보실 거야."
"하늘에서요?"
"...."
안 죽었다고.
잘살고 있는 사람 죽이지 마라.
"아무튼, 빨리 리허설 준비하자."
"네에."
공연을 준비하는 멤버들을 뒤로한 채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리허설 무대에 오르는 팝가수들.
누구 하나 만만한 상대가 없었다.
대부분 이름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아티스트들 뿐이었으니.
어느새, 솔라의 앞에서 무대에 오르는 걸그룹.
블루숄츠의 무대를 감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는 역시네.'
솔라와 함께 대한민국 걸그룹 투톱.
괜히 이 자리에 올라온 게 아니었다.
'오늘 귀 호강하는 날인가.'
그러고 보니, 우리 히트곡이랑 코드 진행이 똑같구나.
원래 머니 코드는 전 세계적으로 다 거기서 거기니까.
'그래도 뭔가....'
생각보다 비인기 곡들이라 신기했다.
제일 잘 나간 노래를 들고 올 줄 알았는데.
* * *
한편, 같은 공간에 있던 구 팀장은 충격에 빠졌다.
"세상에...."
구현식은 믿기 어렵다는 듯한 눈빛으로 수호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었지만.
'.... 전부 예상하신 거야.'
앞 순서의 블루숄츠가 어떤 곡을 들고 올지.
저들의 예상에 따라 선곡을 정했으면 얼마나 당황했을까.
이렇게 평온한 표정으로 음악음 감상하고 있을 순 없겠지.
대한민국 연예계의 기둥을 모시는 게 얼마나 영광인가.
그저 서 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천재의 아우라.
모두가 천재라도 해도 완강히 부인하는 겸손함.
"저기, 대표님."
"아, 구 팀장님 오셨어요?"
"네."
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블루숄츠, 비인기 곡도 정말 잘 뽑혔네요."
"!!!!"
설마,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현식은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 몸을 떨었다.
얕은수를 관대하게 넘어가는 대인배의 그릇.
"오늘도 배웠습니다."
"???"
연예계 최고의 천재 프로듀서.
차세대 리더의 자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