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63화 (163/200)

[163] 도약(1)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적 해병대를 방영한 ABS 방송국에서 주관하는 연말 시상식장.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들이 레드카펫을 밟고 포토존으로 향했다.

그야말로, 별들의 음악 축제.

"와, 저기 헬보이스."

"나도 봤어."

소미와 다이애나는 팝스타들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싸인 받아도 되나?"

"대표님이 안 된댔는데."

"난 못 들음."

"지금 들었잖아."

"아."

예지는 멤버들의 수다를 들으며 시상식장을 둘러봤다.

'아, 저분이....'

최근 미국에서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뮤지션이 눈에 띄었다.

올해의 New Artist 신인상 후보, 즉, 솔라의 경쟁 상대였다.

"레이븐."

핀 브라운이 키운 아티스트 중 한 명.

칼리 잭슨과 한솥밥을 먹는 사이였다.

"아, 눈 마주쳤다."

예지의 말을 듣고, 다른 멤버들은 레이븐을 바라봤다.

"여기 오는데?"

"...."

상당히 덩치가 큰 남성은 천천히 걸어왔다.

벌크업 상태를 보니 보통 헬창이 아니었다.

"헬로우, 레이븐입니다."

"안녕하세요."

올해 신인상이 유력하다고 평가받는 뮤지션.

굳이 자기소개가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양주희 씨."

"네?"

"3대 몇 치세요?"

"???"

어이 없는 질문을 하는 레이븐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핫,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이상해요."

"솔라빔 몽골 편 재밌게 봤거든요, 주희 씨 팬입니다! 하하하."

"...."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핫, 원래 운동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거든요."

"그건 맞죠."

"오늘 솔라의 첫 번째 무대,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AMA 시상식장에서 처음 선보이는 신곡, 「Save The Earth」.

오늘 하루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연습생 시절보다 더 열심히 연습했다.

"애들아, 준비하러 가자."

"응!"

"지금 대표님도 대기실에 계실 거야."

"아하,"

예지는 멤버들을 챙겨 무대 뒤쪽으로 이동했다.

"저기, 근데."

이내, 소미는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선배님들 만나면 인사하는 거야, 안 하는 거야?"

"아,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보통 음방에서 선배님들을 마주치면 깍듯하게 인사했다.

대표님 체면도 있는데, 그런 걸로 구설수에 오를 순 없지.

미국에서도 당연히 똑같이....

"오, 저쪽에 키아라 선배님."

".... 인사는 생략하자."

"그게 좋겠지? 우리 막 째려봄."

"응응."

그나저나, 대기실에 대표님이 안 계셨다.

'어디 가셨지.'

예지는 근처 복도에서 대화 중인 두 사람을 발견했다.

대표님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에일리 프로듀서님.

인사를 드리려던 찰나.

"제가 키아라의 Royal을 직접 프로듀싱했어요."

"아, 네."

이게 무슨 일이야.

"저 때문에 캐피탈 매니지먼트와 마찰이 있는 모양이네요."

"아뇨, 원래 사이가 나빴어요."

"...."

그럼 에일리 프로듀서는 처음부터 도하나와 동급이었던 건가.

어쩐지, 보통 실력은 아니다 싶더니만.

그래서 대표님이 엄청 밀어주신 거였어.

'대표님 혼자만 알고 계셨구나.'

그동안 말씀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을 터다.

프로모션 없이 곡을 업로드한 것도 그렇고.

'진정성 있는 곡을 부르라는....'

대표님의 깊은 뜻이 아닐까.

예지는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작사를 하면서 놓친 부분을 발견했다.

무위자연.

특히, 이번 곡은 경쟁의 의미가 아니었다.

누군가 내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는다면.

'그게 내 행복이니까.'

* * *

뭐야, 무서워.

예지는 언제부터 도덕경에 심취한 걸까.

당장 무대 올라가야 하는데, 이래도 되나.

"역시, 대표님은 제 뮤즈예요!"

"...."

뮤즈고 나발이고.

"예지야, 무대만 생각하라니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네! 무대에 오르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거잖아요! 결과는 상관없이!"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결과가 제일 중요한데

"대표님! 그럼 우리 금방 올라갔다 올게요!"

"예지야.... 예지야?"

"헤헤. 이제 우리만 믿고 맡겨주세요."

"...."

에일리 프로듀서는 근처에 다가와 내게 말했다.

"예지 씨는 항상 열정적이네요."

"그러게요."

방금 나한테 과거를 털어놓은 에일리.

사실, 똥촉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다.

'만약에 인턴 지원했을 때.'

K팝 가수랑 안 어울린다고 떨어트리면 어쩔 뻔했어.

이래서 내가 사소한 역배각도 놓치기 싫어하는 거야.

-와아아아아아─!!!!

그때, 무대에서 어마어마한 함성이 들려왔다.

무대에 오른 다섯 명의 솔라 멤버들.

대기실 모니터로 그녀들을 확인했다.

코첼라의 헤드라이너와 동급인 AMA의 제너럴급 무대.

"대표님, 이번 곡 라이브 무대는 처음인데 괜찮을까요?"

"네. 연습 많이 했잖아요."

"그래도."

특히, 이번 곡은 K팝이나 걸그룹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아티스트로 거듭나기 위한 멤버들의 도전.

이내, 예지는 마이크를 들고 전주를 불렀다.

-We have different stories. They cannot understand my story.

객석에서 쏟아져 나오는 떼창.

순간, 온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AMA 시상식장에 솔라의 신곡이 울려 퍼졌다.

우리는 그저 홀린 듯 멍하니 무대를 감상했다.

'예지가 아까 말한 게....'

이런 의미였구나.

경쟁이나 부담을 벗어던지고 무대를 즐기는 모습.

메인보컬 덕분에 무대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우리 애들 멋있네.'

내가 키운 걸그룹은 놀라울 만큼 성장했다.

더이상 똥촉의 전사라고 놀릴 수도 없겠어.

월드 스타.

이미 셰계적인 수준이었으니.

"대표님, 뿌듯하시겠네요."

"그야, 뭐...."

에일리 프로듀서는 방긋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신인상, 대중 투표인 거 아시죠?"

"네. 알죠."

"아마 어려울 거예요."

"흐음."

저도 동의합니다만.

뒤통수가 가렵네요.

"아직 몰라요."

"네?"

"솔라는 항상 기적이었으니까."

"...."

결국, 신인상 후보들의 무대를 마치고.

MC는 큐시트를 보며 마이크를 잡았다.

-자, 여기 New Artist of the Year 수상자가 적혀있는데요.

객석에서는 각자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호명했다.

특히, 솔라와 레이블의 이름이 가장 많이 불렸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시간이 지나고.

-올해 뉴 아티스트상의 주인공은 솔라, 축하드립니다!

MC의 말을 듣자마자 긴장감이 탁 풀려버렸다.

입을 떡 벌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솔라 멤버들.

옆 테이블 하이엔드 멤버들은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었다.

아쉽게 탈락한 레이븐과 다른 후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늘 잠은 못 잘 것 같네.'

끝내주게 아름다운 밤이었다.

* * *

미국에서 들려온 국뽕 뉴스에 국내 연예계가 시끄러웠다.

솔라는 올해의 뉴 아티스트.

하이엔드는 올해의 아티스트.

프렌즈와 스카이 엔터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와아, 이게 되네."

팬들이 구름처럼 몰린 인천국제공항.

구현식 팀장은 너튜브로 솔라의 무대를 감상하며 감탄했다.

큐앤지 같은 중소 엔터에서 나올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었다.

'이제 블루숄츠랑 비교해도....'

글로벌 인기로 비등비등하겠는데.

이내, 팬클럽 규모가 궁금해졌다.

[스페이스]

어플에 접속해 태양빛 팬클럽 규모를 확인했는데.

"600만...."

하이엔드보다는 적지만, 블루숄츠나 송나연과 비슷한 팬덤.

솔라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미친 듯이 성장했다.

이제는 월드 클래스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았다.

'하긴....'

솔라는 행사를 최소한으로 뛰었으니까.

그 외 시간에 실력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보통 잘 나가는 걸그룹도 '급' 떨어지기 전에 돈 땡기기 바쁜데.

'솔라는 망할 일이 없어서.'

결국, 대표님의 전략은 AMA에서 빛을 발했다.

단기적인 수익보다 장기적인 플랜에 집중했다.

프렌즈의 하이엔드처럼.

톡, 토톡─

이내, 너튜브에 솔라의 수상 소감을 검색했다.

-항상 저희를 믿고 케어해주시는 정수호 대표님! 우리 매니저 지유, 구 팀장님. 박 본....

이번에는 한 명씩 각각 언급해주셨네.

이 맛에 매니지먼트에서 일하는 거지.

"구 팀장."

"넵."

그때, 현식은 자신을 부르는 본부장의 말에 반응했다.

"이제 슬슬 게이트 쪽으로 몰릴 거야."

"네,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팬들의 규모가 심상치 않았다.

인력을 충분히 준비했음에도.

-와아아아아─!!!

아니야, 다른 사람이야.

-우으으으으─

다른 사람이라고 했잖아.

솔라 멤버들을 반기기 위해 공항에서 기다리는 팬들.

몇몇 홈마들은 대포 카메라를 들고 렌즈를 조정했다.

'조만간 미국 활동 시작할 텐데.'

한국 팬들은 싫어하려나.

이제 정규 2집 앨범 작업은 마무리 단계.

발매 후에는 미국에서 활동할 예정이었다.

'이번엔 어떻게 활동하시려나.'

대표님 특유의 천재성은 방송이나 작품 선정에서 두드러진다.

덕분에, 미국에서 굿버스킹을 비롯한 예능 위주로 활동했으니.

-와아아아아아─!!!!

그때, 누군가를 발견한 팬들의 우렁찬 함성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진짜 솔라였다.

그 옆에 정수호 대표님.

회사 직원들은 서둘러 달려가 아티스트들을 보호했다.

"대표님을 보호하세요!"

"저 말고 솔라."

"대표님을 막아라!"

"아니, 저를 왜 막아요."

직원들은 냉큼 빠져나와 밴에 탑승했다.

한두 번 연습해 본 솜씨는 아닌 듯했다.

"대표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멤버들이 수고했죠."

"아, 넵."

구현식 팀장은 운전대를 잡고 뒤를 힐끔 돌아봤다.

국내 팬들의 뜨거운 반응과 상반되는 조용한 분위기.

대부분의 멤버들을 시트에 누워서 잠에 빠져들었다.

"대표님, 갱생 프로젝트 계약 완료했습니다."

"아, KBC 예능."

"네. 맞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하하."

구 팀장은 어른에게 칭찬받은 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미국에 진출해서 성공한 몇 안 되는 거물이니까.

프렌즈 방 의장님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겠지.

아마 한동안 국내에서 솔라 신드롬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 * *

며칠 뒤.

연말 시즌을 앞두고, 정규 앨범 작업을 완료했다.

내년부터 다시 미국 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왕이면 콘서트나 무대 위주의 활동.

아니면, 역배각 뜨는 예능도 괜찮겠지.

'그보다는....'

미국 활동 전에 한국에서 잡은 스케줄을 먼저 정리해야 했다.

공부 예능, 갱생 프로젝트.

이제 곧 촬영 시작하겠네.

무적 해병대 이후 신소미와 남민지 케미는 보장이 됐으니까.

'학교에서 촬영이면....'

'서광예고에 그렇게 인재가 많다던데.'

아, 그러고 보니.

걸스 오퍼레이션 때 기억에 남는 연습생도 있었지.

그 친구도 나중에 프로필 보니까 같은 학교더라고.

'나도 가끔 따라가 볼까.'

이내, 지유한테 받은 영화 일정을 확인했다.

「왕의 품격」의 캐스팅 소식이 제작사를 통해 공개되었다.

선공개한 타이틀곡의 흥행과 AMA 신인상 수상 덕분일까.

'기사도 엄청 쏟아지네.'

[솔라 멤버 세 명이 출연하는 작품! 김찬호 감독이 7년 동안 준비한 사극 영화....]

특히, '왕' 역할도 솔라 멤버들 못지않게 중요했다.

이왕이면 탑스타에 인성도 바른 사람이면 좋겠네.

"대표님!"

그때, 누군가 나를 부르며 사무실에 들어왔다.

"주희야, 무슨 일이야."

"이게 보세요."

주희는 내게 SNS 계정을 보여주며 인상을 찌푸렸다.

[액션도 못 하면서 멤버빨로 배역 꽂으니까 좋냐]

-좋아요 132, 싫어요 31.2만

뭐냐 이 신박한 어그로는.

싫어요 수는 또 왜 이렇고.

".... 너 얘기야?"

"아마도."

아직도 솔라 욕하는 사람이 있네.

근데 주희는 왜 이렇게 열을 낼까.

"너 원래 이런 거 잘 신경 안 쓰잖아."

"누구 아이디인지 보세요."

"...."

SNS 계정 주인의 이름, 액션배우 최성락.

일전에 정글에 같이 갔던 연예인.

주희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아, 음."

요즘 인기 떨어져서 어그로가 필요했던 모양인데.

"어떻게 해줄까, 변호사 불러도 되고."

"아뇨. 그런 건 됐고."

주희는 눈빛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왕의 품격, 출연한다던데요?"

"그래?"

"네. 제 상대역으로."

"...."

이 질긴 악연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극 중, 주희는 중전을 지키려다 세 명의 암살자와 함께 사망한다.

최씨는 아마 그 중 한 명인 것 같은데, 그나마 비중은 높은 편이었다.

"연기 말고 리얼 버라이어티 액션하려고요."

"왜 그러는 거야."

"비밀."

나한테 비밀 말하지 마라.

"서로 동의하에 하면 되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순간, 뒤통수에서 간질간질한 감각이 밀려왔다.

"어휴, 일단 알겠어. NG는 적당히 내고."

"오케이, 굿."

"고소 안 당할 정도만.... 알지?"

"그게 조절이 되나."

"...."

보통은 조절이 됨.

얼마나 때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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