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60화 (160/200)

[160] 돌풍(3)

예능 프로 첫 방송 시청률 19.4%.

각종 플랫폼으로 침체된 최근의 TV 시장에선 보기 힘든 수치였다.

심지어, 벌써 세 번째 시즌의 걸그룹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닌가.

"우리 넥플렉스 글로벌 랭킹 차트인했습니다!"

"벌써?"

"네! 지금 10위권이에요!"

"와아아!!!"

나는 직원들과 함께 오랜만에 회식 자리를 가졌다.

물론, 연예인들은 제외하고 보통 직원들만 모였다.

"스카이 엔터를 위하여!"

"위하여!"

빡빡이 본부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우리 대표님께서 할 말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제가요?"

그런 거 없는데요.

"대표님! 한 말씀 해주시죠!"

"아, 네."

영화 악마가 되었다 이후, 솔라빔 시즌 3의 대성공.

연타석 홈런에 직원들 사기는 끝도 없이 올라갔다.

"앞으로는 계속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오오....!"

몇몇 직원들은 옅은 탄성을 뱉었다.

어찌 보면, 자신감처럼 보이겠지만.

철저하게 과학적인 근거로 작품을 선택할 뿐이었다.

뒤통사이언스는 100%니까.

자신감이 없을 수가 없었다.

"전부 직원분들이 노력으로 일궈낸 성과입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크으."

본부장님은 참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공적인 자리였기에 존댓말을 사용했다.

"대표님, 매일 시장 분석하느라 머리가 빠진다면서요!"

".... 제가요?"

"네. 그래서 매일 뒤통수 긁는 거 아닙니까. 저처럼 되려고."

"아."

빡빡이 형님, 말씀이 심하시네여.

근육만 없으면 옥상으로 불렀다.

"어쨌든, 솔라 정규 2집 준비도 열심히 해서 미국에 깃발 꽂아봅시다."

"와아아아아─!!!"

회식 자리에서 울려 퍼지는 직원들의 함성.

오랜만의 회식이라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다.

"오빠."

이내, 엄지유는 소주 한 병을 가져와 술잔을 채웠다.

"너도 진짜 고생 많았다."

"고생은 무슨."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렸으니.

"너도 휴가 좀 쓸래?"

"아니. 차에서 매일 쉬잖아."

"...."

로드 매니저는 항상 차에서 쉰다.

연예인이 방송하거나 대기할 때.

'지유도 짬 많이 찼네.'

머리로는 알아도 실제로 쉬운 일은 아니거든.

"오빠, 언니들 내일 녹음이야."

"아, 신곡."

"응."

타이틀곡으로 낙점한 「Save The Earth」

강화된 뒤통수 감각으로는 대박곡이 확실했다.

아직 안무나 뮤비도 없고, 녹음도 이제 하지만.

"솔라빔 잘 나갈 때 효과 좀 보고 싶은데."

"아, 루나 언니들처럼?"

"그치."

탑 10 밖으로 밀려났던 루나의 신곡은 다시 1위를 찍었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솔라빔에 출연해서 홍보했으니까.

"그럼 짧게 10초 정도 선공개하면 어때?"

"나쁘지 않네."

정규 2집 타이틀곡 선공개.

"그럼 내가 편집해서 오빠한테 보내줄게."

"그래."

"검사하고 말해줘."

"...."

엄지유는 소미 너튜브 채널에 올릴 영상을 직접 편집했다.

입사 전에, 고등학생 때도 연출부 출신이었고.

주 피디님한테 배워서 실력이 부쩍 늘었으니.

솔직히, 나보다 훨씬 전문가라 '검사'한다고 말하기 민망했다.

"나한테 보내주면 업로드할게."

"오빠도 영상은 확인하고 올릴 거 아냐."

"...."

아니야. 안 보고 올려.

대부분 솔라 멤버들끼리 꽁냥꽁냥거리는 영상.

옛날엔 올리기 전에 당연히 확인했었지만.

뒤통수 강화 이후론 스킵해도 상관없었다.

'솔직히, 영상 보든 말든 똑같아.'

보통 썸네일만 봐도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내 취향이랑 뒤통수가 알아서 걸러주거든.

"내가 너 믿으니까."

"아....!"

지유는 감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녹음 마치는 대로 편집해볼게."

"응. 다이애나랑 같이 해."

"알겠엉."

띠리리링─

그때, 스마트폰에 저장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은서야."

-대표님, 할머니랑 약속 잡았어요.

"그래."

아무리 바빠도 우리 대주주님은 만나야지.

-그럼 셋이서 뵙는 걸로.

"알겠어."

* * *

다음 날, 스카이 엔터 작업실.

다이애나는 헤드셋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주희 언니, 보컬 좋았어!"

"정말?"

"응! 최고야!"

"고마워!"

다들 실력이 뛰어나서 녹음 작업은 금방이었다.

이미 타이틀곡 녹음은 오전 중에 끝나버렸으니.

"지유야, 파일 보내주면 돼?"

"아니, 수호 오빠가 너랑 나랑 같이 하래."

"알겠엉."

아직 후반 작업이 많이 남아있었다.

"작업 끝나는 대로 보낼게."

"응!"

다음은 정규 2집 네 번째 수록곡, 「Ringing Bell」

예지와 우에다 유이의 맑은 음색이 특징이었다.

"그러면...."

다이애나는 대본을 보는 예지 언니를 쳐다봤다.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방해하기 좀 미안하니까.

"소미야, 먼저 할까?"

"좋아."

소미는 들고 있던 가사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막내 보컬 실력은 물이 올랐다.

옛날엔 감정이 안 실려서 아쉬웠는데.

-링, 링, 링잉 벨 내 전화소리를 들으면....

이제는 원 큐에 가뿐하게 소화하는 실력.

다른 그룹이면 충분히 메인 보컬을 맡고도 남을 터다.

솔라에는 압도적인 보컬 천재가 있어서 쉽지 않겠지만.

'예지 언니.'

은서 언니와 함께 「왕의 품격」 미팅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같은 그룹 멤버니까 당연히 연기 실력으로 비교될 수밖에 없겠지.

사실, 두 사람의 필모는 조금 차이가 났다.

은서는 복수소녀와 첫사랑의 메인 여주인공.

반면에, 예지는 로이랜드의 서브 여주인공.

다이애나는 그저 두 사람 다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예지 언니."

"아, 벌써 내 차례야?"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

"아하."

아직 연습용 대본밖에 못 받았을 텐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해?"

"그냥."

배시시 웃는 예지 언니.

이미 드라마 속 여주인공 같았다.

"내 마음속에 언니가 최고야, 알지?"

"고마워."

띠링─

그때, 여동생 엠마가 자신에게 톡을 보냈다.

"오늘부터 한국말 가르친다며."

"응. 우에다 유이 언니랑 같이."

"혼자 할 수 있겠어?"

"오브 콜스 입니다."

다들 왜 그렇게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원래 한국인은 한국어를 배우지 않잖아.

"언니, 가르치는 건 자신 있어."

"아, 응."

얼마 후,

수업 시간에 맞춰 도착한 엠마와 우에다 유이.

한 명은 개념 없는 동생.

한 명은 일본의 탑스타.

다이애나는 두 수강생 앞에서 교편을 들었다.

"자, 애나의 스페셜 레쓴을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오니짱, 멋져!"

스윽, 스윽─

이내, 화이트 보드에 첫 수업 내용을 적었다.

-제1강. 외국인이 한국에서 모르면 손해 보는 말!

"손해가 뭐예요?"

"Loss."

손실이나 낭비라고도 부른다.

"그럼 외국인이 모르면 손해 보는 건 뭔데요?"

"그야 당연히 욕이지."

"아하."

모르면 개손해 봄.

"당신들이 욕 하라고 알려주는 게 아니에요!"

"그럼요?"

"욕 듣고 알아들으라고 알려주는 거죠!"

"알겠어. 똥강아지야."

"???"

벌써 시작한 거냐.

* * *

오늘은 방 마담 할머니 뵙기로 약속한 날.

숙소 앞에 차를 세우고 은서를 기다렸다.

"대표님!"

이내, 내 차를 발견하고 손을 크게 흔드는 그녀.

첫사랑 여배우님은 조수석 문을 열고 탑승했다.

"오, 대표님 개인 차 처음 타봐요."

"그랬나."

보통 태울 일이 거의 없기는 하지.

얼마 전 예지랑 소미를 태운 정도.

"대표님이랑 우리 할머니 뵈러 가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테."

"상견례 하는 것 같잖아요."

"일단 벨트부터 매자."

"아, 그래요."

나는 운전대를 잡고 네비에 찍은 음식점으로 향했다.

방 마담께서 직접 잡은 한식당.

서빙 직원이 한복 입는다던데.

"은서야, 할머니는 얼마나 부자셔?"

"글쎄요. 강남에 건물이랑 땅이랑...."

"...."

그건 소미 채널 팔아도 못 살 것 같은데.

"저한테 물려주실 건물도 있다고 들었어요."

"어우, 부럽다."

"대표님도 부자잖아요."

"그 정돈 아냐."

뒤통수에 머리털 빠지게 일해서 강남에 아파트 정도.

물론,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강남 건물주는 불가능했다.

사실, 본의 아니게 속인 기분이라 죄송했다.

미리 말씀드리기엔 이미 타이밍이 어긋나서.

잠시 후,

나도 처음 와보는 고급 한식당에서 예약자를 확인했다.

"방순자 님께서 예약한, 안뜰 사랑방으로 모시겠습니다."

".... 네."

사랑방에서 밥 먹게 생겼네.

이내, 직원의 안내를 받고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신 방에 들어갔다.

"오, 정 대표 왔는가?"

"네. 안녕하십니까."

"에휴, 손녀 사위 될 사람이 뭐 이리 딱딱해?"

"...."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까.

늦장 부릴수록 손해였다.

"할머니, 죄송해요."

"응?"

명절 때 여자친구를 데려오라는 부모님 말씀이 시작이었다.

당장 은서 할머니께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

"정 대표, 사업은 신뢰가 바탕이야."

"네. 죄송합니다."

"그래서."

"네?"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방 마담.

"지금 사귀는 사람 있나?"

"아뇨. 아직."

"그럼 은서랑 사귀면 되잖아."

"...."

은서도 아이돌이에요.

화가 좀 많아서 그렇지.

"할머니, 그래도 어떻게 갑자기."

"갑자기?"

근데 은서는 왜 도와주러 와서 아무 말도 없....

"에휴, 제가 효녀만 아니면 거절했을 텐데. 어쩔 수 없네요."

"???"

갑자기 무슨 효녀 드립이야.

"할머니, 제가 대표님이랑 한번 사귀든지 해볼게요."

"그려. 잘 생각했어."

"에잉, 나는 옷 잘 입는 남자가 좋은데."

"그 정도는 참아. 정 대표 같은 사람이 어딨나."

"알겠어요."

은서야, 들려.

나도 옆에서 듣고 있잖아.

"할머니, 사업은 신뢰라면서요."

"그렇다고 봐야지."

"그럼 대표님도 저랑 사귀는 수밖에 없겠어요."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

두 사람, 죽이 잘 맞네.

이제 보니까 똑닮았다.

"그려, 아무튼 정 대표."

"네?"

방 마담은 스포츠카 열쇠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이 데이트 잘 허고 들어가."

"???"

정리하러 왔는데 정리당했다.

할머니께서 방을 나가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꿋꿋이 식사하는 은서.

"은서야, 왜 그랬어."

"그러게요. 저는 왜 효녀로 태어났을까요."

"아."

듣는 불효자 불편하네요.

* * *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두 작품.

국내 박스 오피스를 씹어먹고 있는 영화, 「악마가 되었다」.

넥플렉스 글로벌 랭킹이 가파르게 상승한, 「솔라빔 시즌3」.

공교롭게도, 둘 다 스카이 엔터와 연관이 깊었다.

영화에는 여배우만 두 명이 출연했고.

예능은 소속 걸그룹이 전부 등장했다.

"지 실장."

김찬호 감독은 솔라빔 방송을 틀어놓고 제작실장과 대화를 나눴다.

"스카이 엔터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군."

"네. 솔라빔도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영화계와 방송계를 동시에 찢었다.

괜히 정수호 대표가 천재라고 불리는 게 아니구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연예계의 흥망은 철저하게 대중성으로 평가받는다.

한 명의 개인 취향을 알기도 어려운데.

불특정 다수, 수백만 명의 취향을 누가 예측할까.

"감독님, 미리 미팅을 잡아서 다행입니다."

"계약 전에는 방심하면 안 됩니다."

"개런티를 더 올릴까요?"

"네. 아무래도 솔라빔이 이렇게 떴으니...."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비싼 몸값이 껑충 뛰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비트코인처럼.

"그나저나."

김찬호는 솔라빔 방송을 보며 턱을 매만졌다.

"몽골 장면이 재밌네요."

"에이, 그래도 무슨 걸그룹한테 활을 쏘라고 하는지."

"...."

물론, 예고편에 승마 장면 정도는 나왔지만.

"그것도 말을 타면서 쏘라네요."

"피디가 한 술 더 뜨는군."

"그러니까요."

고구려 주몽의 후예도 아니고.

걸그룹한테 기마 궁술을 시키나.

그냥 오락 예능이니까 이해하면서 잠자코 지켜봤는데.

쐐애애애액─!

이내, 과녁에 명중하는 화살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 양주희 씨가 쏜 거 맞습니까?"

"네. 조작 방송이 아니라면."

"이거 원테이크에요!"

"...."

전문가 입장에서는 조작의 정황이 없었다.

솔라빔 제작진도 예상한 듯 자막을 달았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봐 편집 없이 보여드립니다.

아니, 연습으로 이게 된다고?

걸그룹이 아니라 선수도 못 해.

"지 실장님."

"네. 감독님."

김찬호는 왕의 품격 시나리오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여자 호위무사 찾은 것 같은데요."

"...."

물론, 단역이라 대사는 적었지만.

사망 시 임팩트는 영화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었다.

예지와 은서를 둘 다 캐스팅하고 싶다고 제안했는데.

'양주희도 등장하면...."

영화에 너무 솔라만 나오는 거 아니냐.

아예 조선 시대에 걸그룹 음악도 넣을까.

"실장님, 제가 찾던 배우입니다."

"그건 그렇죠."

중전의 호위무사 역.

배우를 찾을 수가 없어서 시나리오를 수십 번씩 수정했다.

눈을 낮추고, 장면을 편집하니 아쉬움이 남는 건 당연했다.

"일단 스카이 엔터 측에 연락드릴까요."

"그렇게 하죠."

단순히 솔라 멤버라서 포기하기엔 캐릭터가 독보적이었다.

캐스팅 마지막 단계에서 꿈에 그리던 여배우를 발견했으니.

'.... 할 수 있어.'

남자 배우도 하기 힘든 역할이지만.

생각대로 영상을 찍을 수만 있다면.

한국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탄생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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