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59화 (159/200)

[159] 돌풍(2)

스카이 엔터는 명실상부 중소 엔터였다.

짧은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보유 아티스트는 고작 스무 명 남짓.

하지만, 모든 작품이 실패하지 않고 계속 성공하기만 하면 어떨까.

'악마가 되었다처럼....'

구현식 팀장은 흥행 돌풍의 중심에 선 작품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고작 일주일 만에 300만 관객을 찍고 날아오른 작품.

벌써 연말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후보로 거론됐다.

딸깍, 딸깍─

오늘 올라온 뉴스 기사를 확인했는데.

《악마가 되었다, 흥행을 부르는 3가지 공식은? 여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오락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잡은 수작, 이수연의 파격 변신과 진세은의 섹시미를....》

《올해 청룡 영화상과 대종상, 평론가들은 올해 수상작을 예측하며....》

감히 누가 이렇게 성공할 줄 알았을까.

아니, 우리 회사에 한 명쯤 있기는 했다.

'정 대표님은 대체....!'

이 바닥에서 신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사람.

음원, 안무, 드라마, 예능.

장르를 가리지도 않았다.

이제 고작 30대 초반에 얼마나 안목이 뛰어난지.

대한민국 연예계 역사상 최고의 천재가 아닐까.

"구현식 팀장님."

그때, 갓수호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셨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솔라 정규 2집을 제작하려고요."

"아, 미니 앨범이 아니고요?"

"네. 정규 앨범, 미국이랑 한국 동시 발매."

"알겠습니다."

현재 회사에 소속된 작곡가는 총 네 명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멜로디를 쓰는 탑라이너는 류시아와 한지아.

편곡을 맡는 프로듀서는 에일리와 다이애나.

퍼블리싱 회사에 외주까지 맡기면 늦지 않게 끝낼 수도 있었다.

"피처링 후보 정리됐나요?"

"아, 네. 잠시만요."

정 대표님은 현재 계약 중인 협업 아티스트를 나열했다.

"현재 캐시제이, 하이엔드, 송나연, 우에다 유이 씨까지 네 팀입니다."

"와아, 화려하네요."

"네. 제안서는 제가 작성하죠."

"아뇨!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해도 되는데."

"에이."

하루종일 스케줄 조율하느라 바쁘실 텐데.

이런 잡무라도 아랫사람이 신경 써줘야지.

"저한테 맡겨주십쇼! 금방 처리하겠습니다."

"아, 그럼 난 뭐 하지."

"...."

농담도 잘하시네.

"흐음, 그럼 저는 연습실 가서 멤버들이나 구경-, 아니, 점검할게요."

"알겠습니다."

"아, 근데 얼마 전에 영화 대본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네! 맞습니다."

김찬호 감독님께서 집필한 시나리오.

조선 궁궐에서 일어나는 판타지 사극.

"잠시만요!"

구 팀장은 냉큼 달려가 「왕의 품격」 수정본을 가져왔다.

이전과 같은 제목이지만 내용이 많이 달라졌다.

특히, 여인들의 궁중 암투를 비중 있게 다뤘으니.

"피플 프로덕션에서 정식으로 들어온 캐스팅 제안입니다."

"대본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던데."

"맞습니다. 일단 보시고 판단해 주십쇼."

"그래요."

솔라의 핵심 멤버 두 명의 캐스팅을 원하는 제작사.

아마 정규 앨범 발매 이후에 촬영이 있을 텐데.

음반 활동과 병행하려면 고생을 좀 할 것 같다.

'아니, 대표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경험상, 대표님 걱정은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일이었다.

여태까지 항상 그랬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잘하시겠지.

* * *

이번 영화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다.

올해 초에 개봉한 「첫사랑」과 비슷한 스코어.

이러면 연말 시상식 때 누가 웃을지 모르겠다.

"뭐, 아무튼."

MBS 솔라빔 시즌 3 방송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뒤통수 느낌만 볼 때는 「악마가 되었다」 이상인데.

".... 까봐야 알겠지."

매주 넥플렉스에 같은 속도로 풀린다고 했으니까.

기다려 보면 분명히 좋은 반응이 올 거로 확신했다.

드르륵─

이내, 연습실 문을 열고 솔라 멤버들을 확인했다.

"은서야."

"대표님."

은서는 활짝 웃으며 내게 손을 흘들었다.

"뭐야, 왜 혼자 있어."

"소미는 학교 갔죠. 주희는 헬스장."

"아."

예지는 지유가 스케줄 데려갔고.

다이애나는 작업실에 있을 테니.

"너는 혼자 뭐 하고 있었어?"

"요가요."

은서는 특유의 '보면 모르겠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 그래 보이네."

"같이 하실?"

"아니."

너만 요가복 입고 있잖아요.

'그나저나....'

최근에 은서는 내 앞에서 화를 낸 적이 거의 없었다.

일이 잘 풀리니까 분조장이 튀어나올 상황도 없는지.

'초심 잃었네.'

장은서 분조장은 국밥처럼 든든한 똥촉 제조기였는데.

요가 같은 거나 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가지면 안 되지.

"은서야, 마인드를 바꿔보자."

"무슨 마인드요."

"욕해봐."

"???"

아, 그건 다이애나 레퍼토리고.

"요즘 왜 나한테 화를 안 내지?"

"네?"

"참으면 병 생겨."

"...."

은서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여자 취향? 장난 아니시네요."

"그런 거 아니야."

"됐고, 제가 맞춰 드릴게요. 엎드려 뻗치세요."

"...."

나를 빡치게 하면 어떡함.

네가 화를 내야 한다니까.

"근데 대본 가지고 오셨네요."

"아, 이거."

".... 왕의 품격."

"맞아."

오면서 잠깐 봤는데 아직 뒤통수에서 느낌은 오지 않았다.

좀 더 보다 보면 똥촉이 생각 수도 있고.

어떤 '조건부'로 역배각이 뜰 수도 있겠지.

물론, 끝까지 안 뜨면 이번 작품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너 읽고 예지한테도 보여줘."

"아, 언니랑 경쟁이에요?"

"...."

순간, 야수처럼 눈빛을 번뜩이는 장 폭스.

동시에, 뒤통수에서 '그' 신호가 발생했다.

"경쟁은 아니고, 둘이 같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아하."

배역 상, 두 여인의 궁중 암투가 메인이니까.

두 명의 경쟁심을 부추기는 게 해답이었구나.

'근데.... 무슨 수로?'

은서는 연습생 때부터 예지랑 항상 붙어 다녔다.

평소에 사소한 다툼도 없는 두 사람 아닌가.

특히, 예지는 진짜 욕심이 1도 없는 친구라.

'쉽지 않네.'

이런 건 동시에 좋아하는 남자 한 명만 있으면 바로 컷인데.

에이, 나도 모르겠다.

일단 답은 찾았으니까.

'대본 읽고 나한테 의견 말해줘."

"알겠어요."

문득, 은서를 보며 방 마담님이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은서야, 할머니께 죄송하네."

"죄송이라뇨?"

"우리 어머니 만나셨나 봐. 나를 네 남친으로 알고 계시네."

"...."

처음 듣자마자 오해를 풀어 드렸어야 했는데.

"미안.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어."

"그럼 그냥 사귀면...."

"응?"

은서는 갑자기 급발진하며 소리쳤다.

"아잇, 그래서 요즘 나한테 매일 대표님 안부 묻잖아요!"

"미안하다, 야."

"그럼 이제 어떡하시려고요?"

"조만간 뵙기로 했어. 그때 말씀드려야지."

"흐음."

은서는 묘한 미소를 짓더니 살며시 입을 열었다.

"우리 할머니 엄청 보수적인데요."

"나도 보수적이야."

"사귀다 헤어지는 거 인정 못 하실 텐데?"

"사귀긴 누가 사겨."

"대표님 귀 완전 빨개졌어요."

"아오."

이게 머리 컸다고 대표 놀리네.

"우리 할머니 만나러 가실 때 저도 데려가요."

"그래. 그럼."

"오해는 같이 풀어야 제맛이죠."

".... 제맛?"

"예압."

근데 지금 내 뒤통수는 왜 간지러울까.

* * *

스카이 엔터테인먼트는 한동안 숨 가쁘게 굴러갔다.

루나와 이클립스는 활동을 지속했으며.

솔라는 정규 2집 앨범 준비에 집중했다.

특히, 이번에 주목받는 두 여배우의 스케줄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정규 2집은 열 곡 정도면 될까.'

모든 멤버가 함께 제작하는 자급자족 앨범.

예지는 작사, 주희는 안무 창작에 참여했다.

"오빠!"

엄지유는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듯 내게 다가와 말했다.

"오늘 첫 방송인 거 알지?"

"아, 솔라빔."

"뭐야, 까먹고 있었어!?"

"...."

솔라 말고도 케어해야 하는 아티스트가 얼마나 많은데.

"오늘 우에다 유이 씨, 녹음 있는 거 알지?"

"응. 알지."

"이따 작업실에서 보자."

"알겠엉."

아, 근데 한국에서 계속 활동할 거면.

"유이 씨 한국어 선생님 좀 알아볼까."

"잘하시던데."

"지금보다 더 잘해야지."

"아."

지유는 뭔가 떠오른 듯 누군가를 언급했다.

"엠마도 아직 서툴러서 이상한 일본어랑 섞어서 말하잖아. 같이 가르치면 어떨까."

"그래. 한국어 선생님은...."

"제가 가르칠게요."

그때, 사무실 뒤에서 다이애나가 천천히 걸어왔다.

"대표님 덕분에 여동생이랑 친해졌어요."

"내 덕분에?"

"네. 일본이요. 전율 궁전에 가고 나서부터."

"음, 다행이네."

다이애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저도 한국어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오히려 이론은 제가 한국인보다 나을 걸요?"

"바쁘진 않고?"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낼 수 있죠."

"그래, 그럼."

엠마는 친동생이기도 하고.

우에다 유이 씨도 친하니까.

'아니지, 잠깐만.'

이러다 두 명이 방송 중에 욕이라도 하면.

갑자기 뒤통수가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 아니지?"

"네?"

다이애나는 세상 순수한 얼굴로 두 눈을 깜빡거렸다.

사파이어처럼 푸른 눈동자.

이국적인 혼혈 미인 마스크.

이런 천사 같은 얼굴로 쌍욕을 가르치진 않을 거야.

얘도 잘못 배워서 그렇지.

일부러 욕한 건 아니잖아.

"도하나, 진짜 너만 믿는다."

"믿고 더블로 가요!"

"...."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지유에게 말했다.

"오늘 휴게실에서 다 같이 본방 보기로 했다고?"

"응. 벌써 몇몇 기다리고 있던데."

"그래?"

이내, 사무실을 벗어나 휴게실을 방문했다.

아직 방송까지 한 시간도 넘게 남았을 텐데.

"신소미, 남민지."

"대표님! 설레서 어제 못 잤어요!"

"뭘 설레."

우리 회사 걸그룹 세 팀이 참여한 예능.

해외여행 제작비를 물 쓰듯 펑펑 썼으니.

'이거 망하면....'

MBS 방송국은 한동안 자린고비 아닌가.

물론, 역배각이 떴으니 망할 일은 없었다.

잠시 후,

현재 스케줄이 없는 아티스트들이 집합했다.

솔라 뿐만 아니라, 세 팀에서 전부 모였으니.

'이렇게 보니까 엄청 많네.'

각자 좋은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솔라 멤버들.

루나의 류시아와 아이들.

이클립스의 막내즈까지.

이내, 은서는 내 옆자리에 앉더니 눈을 마주쳤다.

"뭘 봐요."

"...."

전생에 고양이였냐.

왜 오자마자 시비 걸어.

"자자, 이제 시작할 것 같으니까 정숙 하시고!"

"네에!"

말 잘 듣는 성인 유치원에 온 것 같다.

소곤소곤 조용히 떠드는 애들도 있고.

'예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대본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왕의 품격」이 마음에 들었나 본데.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걸 보니.

* * *

인기 많은 남자를 따라다니는 건 피곤한 일이었다.

하물며, 그게 첫사랑이면 말 다했지.

이번 작품에 들어온 배역이 그러했다.

여러 후궁을 거느린 왕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전.

시비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했다.

'중전마마, 불쌍해.'

어느새 눈물이 또르르 떨어뜨릴 만큼 대본에 몰입했다.

결국 모함을 받고 왕비 자리를 박탈당하는 중전.

재색을 겸비한 후궁에게 왕비 자리를 내어준다.

영화에서 중전은 왕의 사랑을 단 한순간도 받지 못했다.

"예지 언니."

"아."

이내, 양주희의 목소리를 듣고 대본에서 벗어났다.

"울었어?"

"아니, 그냥 대본이 너무 슬퍼서."

"시작했다고."

"아."

그녀의 말대로, 솔라빔 시즌 3 첫 방송은 전파를 탔다.

-소미는 참지 않아요.

주사위를 보자마자 던지는 막내.

불운의 신이 그녀와 함께하는지.

주사위를 굴리는 족족 '꽝'만 당첨되는 모습을 편집해서 보여주었다.

스윽─

이내, 시선을 돌려 정수호 대표님을 바라봤다.

벌써 마음을 표현했지만, 기다리겠다고 했으니.

'괜히 말했어.'

자존심도 없이 계속 고백할 자신 있는데.

"언니."

주희는 자신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우리 대표님, 아까부터 은서랑 같이 앉아있더라."

"흐음."

이제와서 옆에 가면 이상해 보이려나.

"언니, 대표님이 차고 계신 팔찌 보여?"

"응?"

"은서 아버지 유품이야."

"...."

주희의 말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소중한 물건을 선물할 수 있다는 건.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은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하지 않았나.

당연히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배우나 아이돌을 생각했는데.

"주희야."

세상은 항상 상식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은서 쉬는 날에 주로 뭐해?"

"그냥 회사에서 운동하고, 회사에서 쉬고, 회사에서 밥 먹고...."

"회사에서."

예지는 멍하니 대표님과 은서를 바라봤다.

웃을 때마다 대표님의 어깨를 터치하는 그녀.

밖에서 다른 남자 만날 시간은 있지도 않았다.

'하필이면....'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겹쳐버린 걸까.

그동안 은서와 나눴던 대화가 필름처럼 떠올랐다.

'.... 많이 힘들었겠네.'

내 마음을 알고 있었구나.

그동안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래도 계속 가야지.'

이제 포기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여러분!"

그때, 소미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소리쳤다.

"평균 시청률 19프로 찍었어요!"

"허업."

"와아아아....!"

"실화냐."

아깝게 20프로를 찍지 못해서 그런가.

정 대표님 표정에 안타까움이 스쳤다.

'19프로면 초대박인데....!'

만족을 모르시는구나.

김예지는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대표님조차 만족할 수 있는 연기로 인정받고 싶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결국, 영화는 배우들이 만드는 결과물이 아닌가.

은서와 같은 작품에 들어가면.

반드시 연기로 비교당할 테니.

'솔라의 리더가....'

연기력이 아쉽다는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김 리다의 눈빛에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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