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58화 (158/200)

[158] 돌풍(1)

국내와 해외를 오가는 바쁜 일정.

솔라 멤버들은 솔라빔 촬영 이후에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물론, 다이애나와 양주희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도 있지만.

한가로운 주말.

은서는 소파에서 편한 자세로 TV를 시청했다.

아까부터 예지 언니는 방에서 분주해 보였다.

"은서야."

"응?"

이내, 자신을 부르는 김 리다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옷 고르네?"

"응! 좀 도와주라."

"...."

무슨 일정이길래 직접 스타일링을 하나.

평소에 직접 꾸며야 할 일은 없을 텐데.

"나 화장이랑 옷 어때?"

"흐음."

객관적으로 봐도 예뻤다.

패션 감각은 아쉬웠지만.

"그러지 말고, 투 컬러로 가자."

"아 그럴까?"

"응. 패션 고-, 한테는 그게 국룰이야."

"패션 고?"

"...."

네. 당신이요.

패션 고자에요.

이내, 예지 언니의 옷장을 슬쩍 들여다봤는데.

평생 코디님이 입혀주는 옷만 입는 게 좋겠다.

"옷이 이게 다야?"

"응. 왜?"

"...."

소미보다 옷이 없으면 어떡해요.

막내는 아직 급식 먹는 응애라고.

"언니, 일루와 봐."

은서는 자신의 옷장을 열고 예지의 핏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와아, 무슨 옷이 이렇게 많아?"

"보통 연예인들 다 이 정도는 있어."

"그래?"

"언니도 여배우라고."

"아하하."

이내, 괜찮은 착장 세트를 고르고 예지에게 건넸다.

옷걸이가 좋으니까 조금만 손 봐도 느낌이 달랐다.

'이 정도면....'

과하지 않은 화장에 세련된 패션.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화보였다.

"이제 예쁘네."

"정말?"

"응."

은서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는 예지를 빤히 바라봤다.

얼굴, 몸매, 성격, 실력.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구질구질한 연습생 시절엔 느끼지 못했는데.

언제 이렇게 완벽한 아티스트로 성장했을까.

'역시, 대표님 덕분에....'

예지 언니는 원래 그에게 호감이 있었던 듯했다.

항상 대표님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봤으니.

그래서 포기하려고도 해봤는데.

'.... 포기가 안 돼.'

마음 속으로 여러 번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거의 매일 스케줄을 관리하고 마주치니까.

"은서야, 고마워."

"고맙긴."

예지 언니는 옆자리에 다가와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었다.

"너 요즘 무슨 걱정 있어?"

"아, 내가?"

"응. 솔라빔 촬영하면서 계속 느꼈거든."

"...."

언니가 아는 그거 때문이야.

"멘탈에 마구니가 껴서 그래."

"마구.... 니?"

"뭐겠어. 좋아하는 사람 때문이지."

"!!!!"

이 언니는 왜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할까.

내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는 몰랐나 봐.

"아,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응. 그렇지"

"실은, 나도 마찬가지거든."

"...."

그래. 마찬가지긴 하지.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데.

하필이면 이상형 취향이 겹쳐서 문제지만.

헐리웃 스타일로 공유하자고 약속했으니.

"나 오늘 대표님 만나러 가."

"아."

당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내가 옷 안 빌려줬지.

오케이,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두고 봐.

"언니, 여우과였어?"

"응?"

아오 참, 또 순진한 표정 짓네.

이러면 내가 미워하지 못해요.

'뭔가 이상하네.'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겹치는 걸 알면서.

대표님을 만나러 가는데 자신의 옷을 빌려 입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김 리다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나보고 죄책감 갖지 말라고....?'

일부러 한 방 먹인 거였구나!

의도적으로 옷을 빌려 입었어.

"은서야, 나도 네 사랑을 응원할게."

".... 고마워."

"나도 응원해줘"

"...."

세상에, 같은 남자를 좋아하면서 이게 되는구나.

오늘도 예지 언니의 인성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언니,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어."

"그럼 더 분발해."

"...."

띠링─

이내,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내는 예지.

은서는 쿨한 김 리다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내, 예쁘게 차려입은 그녀를 꼭 껴안아주었다.

"언니, 내가 할머니 빼고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언니인 거 알지?"

"뭐야 갑자기 왜 이래?"

"그냥. 잘 갔다 오라고."

"응. 화이팅!"

이 정도면 할리우드 배우 맞네.

그냥 사우디 가서 다 같이 살까.

".... 나 미쳤냐."

끼이익─

그때, 소미는 방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예지 언니 어디 가?"

"대표님이랑 놀러."

"엥, 나도 심심한데!?"

"...."

곧장 외투를 입고 현관문을 나서는 소미.

은서는 씨익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가라, 소미몬."

* * *

누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첫 번째는 아마 가족이고.

두 번째는 솔라가 아닐까.

그래서 예지의 마음을 알면서도 애매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 관계가 틀어질까 봐 두려워서.

애써 내 마음을 숨기려고 했지만.

끼이이익─

숙소에 차를 세우고, 예지가 보낸 데이트 동선을 확인했다.

'준비 열심히 했네.'

인적이 드물면서 드라이브하기 좋은 코스로 잘 잡았다.

이대로 진행하면 저녁 늦은 시간대에 돌아올 것 같은데.

'설마 예지가....?'

에이, 아니겠지.

똑, 똑─

곧이어, 예지는 차창에 노크를 두드렸다.

누가 볼세라 얼른 태워 출발하려는 찰나.

"잠까아아안!!!"

"???"

그때, 아파트 입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미....?"

"같이 가아아아!!"

"뭐여."

예지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일단 태워. 누가 보겠다."

"에엥?"

결국, 소미는 뒷자리 센터에 앉아 고개를 쏙 내밀었다.

"둘이 어디 가세요."

"...."

고딩은 몰라도 돼.

"뭐야, 둘이 장소 헌팅하러 가요?"

"비슷해."

"오, 저도!"

"...."

장소 아니고 예지 헌팅.

"예지야, 어떡할까."

"다, 당연히 같이 가야.... 죠."

"...."

소미는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럼 출발!"

"...."

잼민이, 오랜만에 예능 하나 잡아줘야겠다.

우리 그동안 너무 얌전한 예능만 찍었잖아.

"으으, 대표님. 갑자기 추워요! 히터 좀 틀어줘요!"

"기다려 봐. 곧 따뜻해질 거야."

"너무 약한데요? 이거 비싼 차 아니었어요?"

"너는 왜 군필인데 참을성도 없냐."

"헤헤."

갑자기 분위기 가족 여행인가.

소미는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대표님, 군대 다녀오셨죠?"

"응. 병장 만기 제대."

"오, 저는 하사."

"어쩌라고."

"그냥 그렇다고요. 하하하."

"...."

군필 여고생, 자부심 개쩌네.

예지는 이미 해탈한 듯했다.

"소미랑 같이 가니까 화기애애하고 좋네요."

"진심으로?"

"네. 정글이랑 생존 아일랜드, 저도 가고 싶었거든요."

"말하지 그랬어."

"스케줄 있었잖아요."

"흐음."

원하면 내가 보내줄 수는 있어.

뒤통수 저릿한 예능에 꽂아줄게.

잠시 후,

인적이 드물면서 공기 좋고 경치도 좋은 갈대밭.

소미는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진짜 철근도 씹어먹을 나이네."

"그러게요."

그래도 예지 표정은 무척 밝았다.

사실상, 데이트는 파투난 셈인데.

예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대표님, 제가 많이 좋아하는 거 알아요?"

"아."

갑자기 훅 들어오네.

"대표님께 인정받을 때, 저를 보며 웃어줄 때 행복을 느껴요."

"...."

밀당이나 가식이 없는 솔직한 말.

예지의 진심이 내 마음에 닿았다.

"지금은 안 된다는 것도 잘 알아요."

"그럼....?"

"세 번째 데이트는 많이 늦어도 괜찮으니까."

"...."

예지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그땐 대표님이 먼저 신청해줘요."

"음, 그럴게."

"고마워요."

예지의 새하얀 미소는 햇살처럼 반짝거렸다.

'내가 복 받았네.'

* * *

며칠 뒤,

스카이 엔터 회의실은 오늘따라 북적거렸다.

우에다 유이 소속사 측과 계약을 체결했으니.

"그럼 당분간 잘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

상대 직원은 아쉬운 듯 유이에게 시선을 주고 회의실을 벗어났다.

"프리덤─!!!!!"

"...."

누가 보면 감옥에 갇혀있었던 줄 알겠네.

그냥 얌전히 활동하다 조용히 떠나주세요.

"대표님, 나의 예지 사마는 어딨나요."

"벌써 머리 아파."

"두 분, 혹시....?"

"아니에요."

"하하하. 요캇타!"

"...."

그게 왜 다행인데.

뒤통수 간지럽게 하는 연예인이 또 생겼다.

근데 왜 '히메'가 아니라 '사마'라고 부를까.

아니다, 안 물어봐야겠다.

이상하게 대답할 것 같아.

"유이 씨, 한국에서는 음악 활동 위주로 할 거죠?"

"네. 좋아요!"

"오케이."

우에다 유이는 이클립스 멤버들과 은근히 결이 맞았다.

음악적으로는 한지아와 어울리고.

남민지나 엠마랑도 결이 비슷했다.

"대표님, 지금 솔라 앨범 작업 중이라면서요?"

"네. 타이틀곡 뽑았네요."

"오오, 스피디해요. 나이스합니다."

"...."

당신은 프로듀서가 아니에요.

"저도 솔라 앨범 작업 참여하고 싶어요!"

"글쎄요. 이미 자리가 다 차서."

"에에."

이미 캐시제이 님과 콜라보를 예약해 놨다.

송나연, 하이엔드 피처링 논의도 있었으니.

"그럼 정규 앨범으로 제작하시면 되죠!"

"아니, 그건 좀...."

"제가 도울게요!"

"...."

순간, 뒤통수에서 천천히 퍼지는 감각.

생각보다 스케일이 점점 커져만 갔다.

'벌써 정규 2집이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긴 하지만.

타이틀곡은 이미 나오지 않았나.

「Save The Earth」

사실, 아이돌 음악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의 메세지를 담은 음악.

덕분에, 역배각은 제대로 섰으니.

"그럼 다이애나한테 말해볼게요."

"네에! 스끼 데스!"

"...."

한국어만 하던가, 일본어만 하던가.

이클립스 엠마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드르륵─

회의실을 벗어나는 유이 씨를 보면서 실소가 나왔다.

'일본의 국민 여동생이라더니.'

진짜 여동생 같네.

한 대 때리고 싶어.

소미랑 다른 느낌의 깨발랄한 성격이었다.

"대표님."

그때, 구 팀장님이 다가와 질문을 건넸다.

"계약은 잘 끝났습니까."

"네. 서로 윈윈이죠. 우리는 돈 벌어서 좋고, 저쪽은...."

"...."

저쪽은 유이 등살에 떠밀렸지.

윈윈이 아니라 우리만 좋구나.

"아무튼."

벌써 9월도 끝날 무렵, 수확의 계절이 다가왔다.

당장 코앞에 다가온 빅 이벤트만 해도 굵직했다.

-9월 : 악마가 되었다 개봉.

-10월 : 솔라빔 시즌 3 첫방송.

-11월 :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특히 AMA 시상식에서는 어떤 무대에 설 지도 중요했다.

코첼라 페스티벌처럼 무대마다 '급'이 천차만별이었으니.

'이번에도 마주치려나.'

미국의 캐피탈 매니지먼트.

이제 슬슬 질릴 때도 됐는데.

"대표님, 개봉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네. 악마가 되었다."

"지금 사전 예약 1위 선점한 지 오래됐습니다."

"잘 됐네요."

앞으로, 여배우 두 분이 방송에서 붙어 다녀야 할 텐데.

"이수연 씨, 진세은 씨, 케어 좀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하지 마십쇼!"

"...."

그래도 연예계에서는 나름 프로였다.

카메라 앞에서는 러브샷도 하더라고.

"계속 팀장님이 신경 좀 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악마가 되었다」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프랑스에서 배급받은 영화.

국내외 성적에 따라 연말 수상권도 기대할 만했다.

'물론, 성적만 좋다면....'

내년에 칸 영화제도 노려볼 수 있겠지.

"저기, 대표님."

이내, 구 팀장님은 내게 질문을 건넸다.

"시사회 때 솔라 멤버들은 참석할까요?"

"스케줄 없으면 참석하죠."

"네. 대표님."

우리 회사 여배우가 두 명이나 출연했는데.

중요한 스케줄 아니면 참석하는 게 좋겠지.

"루나랑 이클립스도요."

"알겠습니다."

* * *

「악마가 되었다」 시사회장.

이수연은 대기실에서 예매 현황을 계속 확인했다.

사연 예매 140만 장, 예매율 91%.

개봉 전에 나올 수 있는 수치인가.

그동안 찍었던 그 어떤 작품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이게 된다고?'

다시 한번 정 대표님의 능력을 여실히 깨달았다.

매번 긴가민가하면서도 믿음에 확신을 주었으니.

"수연 씨, 무대 앞에서 대기해 주세요."

"아, 네."

이수연은 대기실을 벗어나 객석을 천천히 둘러봤다.

'저기 계시네.'

정 대표님이랑 술 한잔하면서 친해지고 싶은데.

언제부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정수호 사단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솔라가 90프로였다.

작품은 물론, 예능이나 공연 하나까지 전부 케어받는 정수호의 '진짜' 측근.

따지고 보면, 그녀들보다 자신이 먼저 아니었나.

큐앤지 레이블 이전에, 드림 에이전시 시절부터.

'그때 내가 더 잘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로드 때부터 영혼의 단짝처럼 함께했을 텐데.

'에휴, 후회하면 뭐 해.'

나도 TV 프로그램이나 예능 좀 신경 써주시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더 멀리 오래갈 텐데.

'.... 내가 꼬시면 넘어오려나.'

순간, 정수호 대표의 옆에 있는 두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리더 예지와 둘째 은서.

솔라의 비주얼 멤버들.

대표님, 눈이 하늘까지 높아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리 대표지만 저런 연예인이 대시하진 않을 텐데.

"수연 언니."

그때, 뒤쪽에서 진세은 배우가 자신을 불렀다.

보통 자존심 때문에 먼저 말을 걸지 않았지만.

"그거 알아요?"

"뭐를."

진세은은 한숨을 푹 내쉬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정 대표님, 내가 제일 먼저 알았거든요."

"응?"

"한국대 경영학과."

"아."

너도 한때 한국대 여신이었지.

그럴 거면 그때 꼬시지 그랬냐.

잠시 후,

관객들은 영화 관람을 마치고 박수를 쏟아냈다.

특히, 작중 여배우들 간의 신경전은 일품이었다.

한편, 영화감독 김찬호는 「악마가 되었다」를 관람하고 감탄을 뱉었다.

'재밌어....!'

원래 계획대로 「왕의 품격」이 제작되었다면.

당연히 이 작품과 정면 대결을 펼쳤어야 했다.

현재는 캐스팅도 위태로운 상태.

제작사 쪽에선 급하게 밀어붙이려고 했지만.

투자금이 대거 빠지면서 영화가 엎어졌는데.

"감독님, 저기 정수호 대표님입니다."

"...."

텀블 인베는 투자금을 빼는 이유로 그를 지목했다.

「악마가 되었다」의 경쟁 작품이라는 이유 때문에.

"다행이야, 경쟁했으면 서로 피만 봤을걸."

"네. 맞습니다."

선견지명이라고 해야 하나.

정수호 대표 덕분에 살았다.

이내, 김찬호 감독은 그의 옆에 앉은 예지와 은서를 확인했다.

"캐스팅 제안 넣어봐."

"두 명 다요?"

"가능하면."

우리 영화에 출연해 주시면 좋을 텐데.

"두 분, 엄청 친하시지 않아요?"

"그게 좀 걱정이네."

서로 대립하는 배역이라서.

연기가 잘 나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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