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솔라빔 프로젝트(4)
솔라빔 프로젝트의 마지막 여행지.
독도 여행을 앞두고, 회사에서 직원들이 대화를 나눴다.
심지어 이번 솔라빔 방송에도 일본 촬영이 있지 않았나.
"우리 대표님, 애국자셨군요."
"오히려 좋아."
엄지유는 구 팀장을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그래서 여태까지 중국 활동을 안 하셨나 봐요!"
"혹시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네. 아마도."
"아아....!"
일본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독도를 방문하는 불굴의 쌉상남자.
딱히 여론이나 팬들을 의식한 선택도 아니었다.
그저 한국인이니까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일 뿐.
'이래서, 예지 언니를 꼬셨나....?'
솔라는 이미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 성공의 비결은 한국의 팬덤.
첫 번째 기반을 잊지 않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진작부터 예지 언니와 사귀고 있었을 수도.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연애 세포를 억지로 누르고.
'아니, 잠깐만! 혹시 예지 언니를 할리우드 여배우로 만든 이유도....?'
미래를 위한 포석.
어릴 때부터 알던, 그 동네 오빠가 맞는 건가.
당시엔 이렇게 치밀하고 유능하지 않았는데.
"지유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아, 네. 팀장님."
"뉴스 떴네요."
이내, 에미상 관련 기사를 보여주는 구현식 팀장님.
《한국인 최초로 Emmy Awards 인기상 수상! 솔라가 출연한 굿버스킹에서는....》
기사에 달린 국뽕 댓글은 치사량을 넘어섰다.
그들은 전혀 모르겠지.
아직 큰 게 남아있는걸.
솔라의 독도 출연 분이 공개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아마 일본 굿즈 판매는 뚝 떨어질 겁니다."
"네. 그렇겠죠."
일반인은 관심 없지만, 일본의 언론은 대서특필할 터였다.
솔라의 행동을 정치적 이슈로 끌고 갈 수도.
수호 오빠는 당연히 그걸 알고 결정했겠지만.
띠리리링─
이내, 구현식 팀장은 홍보팀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우에다 유이.... 씨가요?"
"???"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 구 팀장.
그는 감탄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뱉었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무슨 소리예요?"
"...."
그는 말없이 지유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홍보팀 직원이 입수한 정보.
조만간 크게 터질 기사였다.
《일본의 탑가수 유에다 유이, 스카이 엔터로 이적!? 큐앤지 레이블 때부터 이클립스 한지아와 쌓은 우정은....》
역시, 수호 오빠 상남자 맞았네.
".... 지렸다."
일본의 국민 여동생을 영입하면 그만이야.
독도 가서 꼬우면 여동생 불매해 보시던가.
"솔라빔 시즌3 첫 티저 나올 때쯤 기사 나올 겁니다."
"티저라면....?"
"독도 출연 장면을 공개하는 날이죠."
"세상에...."
설계 미쳤다리.
일본이라고 전부 반한 세력만 있는 건 아니었다.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탑가수가 소속해 있으면.
"수호 오빠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네. 무서울 정도로요."
"...."
같은 회사 직원한테 정보를 좀 공유해주면 안 되나.
수호 오빠와 항상 옆에서 같이 일해도 알 수가 없다.
'그럼 이제....'
1티어 걸그룹 세 팀에 여배우 두 명에 일본의 탑 가수.
정수호 사단의 힘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빅 3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어엿한 중견 기업이네요."
"그런 셈이죠."
물론, 소속 아티스트 규모를 보면 그 이상이었다.
"근데 지금 수호 오빠는 어딨어요?"
"오늘 자택 근무하고 계십니다."
"...."
나는 지금 7시간째 앉아있는데.
다음 생엔 정수호로 태어나야지.
* * *
"억울하네요. 고소합니다."
-스미마셍.
우에다 유이, 혼자서 기자랑 인터뷰했다며 사과하는 소속사.
뭐, 이런 대책 없는 가수가 다 있냐.
처음 만났을 때도 가출 소녀였잖아.
-수호 상, 그러지 말고 협약하시죠.
"협약이죠?"
-네. 유이는 한국에서 활동하려는 의지가 너무 강합니다.
"...."
탑스타 관리가 힘든 건 국적 불문하고 똑같은가 봐.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급이 더 올라갔다.
"죄송하지만, 여력이...."
순간, 뒤통수에서 간질거리는 감각.
거절하지 말라는 명백한 신호였다.
"오케이, 그럼 계약 조건 듣고 생각하죠."
-오오, 아리가또!
"그럼 조만간 뵙겠습니다."
-넵. 찾아가겠습니다!
한국에 와주시면 땡큐죠.
집에서는 좀 쉬고 싶은데, 스마트폰을 던져버릴 수도 없고.
본격적인 해외 활동을 시작하면서 연락이 세 배는 늘었다.
'후우, 머리 아파.'
전화도 (+1), (+44), (+81) 등 글로벌하게 걸려왔다.
당장 내일 아침에 독도 가려면 짐도 챙겨야 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해외 여행 다니는 동안 걸스 오퍼레이션 종영했겠네.
곧장 인터넷에 데뷔조와 추후 활동 계획을 검색했다.
'어휴, 역시는 역시인가.'
아직도 문제 있는 멤버가 남아있는 것 같다.
그 와중에 내가 괜찮게 봤던 친구는 없었다.
"잠깐만, 데뷔조 음악 프로듀싱을...."
하민준 프로듀서가 맡았구나.
우리 인턴, 빅보스로 토꼈네.
무슨 연어도 아니고, 다니던 회사로 돌아갔대.
'빅보스 사장님도 참....'
블루숄츠만 빼고, 뭔가 하나씩 다 어설퍼.
이클립스 호적수로 키우겠다고 했으면서.
띠리리링─
그때, 아랫집 사는 소녀들 중 한 명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뭐야, 다이애나. 안 자고 뭐 해."
-여보시오?
"너 요즘 사극 보니."
-그렇소만.
"...."
곡 쓰는 줄 알았는데 드라마 보고 있었냐.
일단 내일 독도 가야 해서 빨리 자라니까.
"너 내가 전 재산 지켜준 거는 알지?"
-아, 마침 그 내기 때문에 기별을 넣었소.
"말투 바꿔."
-넹.
그래. 훨씬 듣기 좋네.
-제가 톡으로 음원 보내드릴 테니까 들어보쎄용.
"너 혼자 쓴 곡이야?"
-않이요. 멜로디는 시아 언니가 뽑아줬어요. 작사는 예지 언니.
"아, 그래?"
-네네, 편곡은 에일리 언니가 도와주시고.
"...."
소속된 아티스트들이 너무 유능하다.
전부 똥촉으로 빚은 워리어들이었다.
"그럼 곡 보내 봐."
-오케이.
전화를 끊기 전,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여행 스케줄은 안 까먹었지?"
-아 맞다.
"아오, 애들한테 빨리 자라고 전해. 너도 자고."
-알겠어용.
내가 말 안 해줬으면 지유가 고생했겠네.
띠링─
이내, 다이애나는 톡으로 노래를 전송했다.
아직 믹싱, 마스터링도 안 된 싱싱한 음원.
「Save The Earth」
"어떻게 노래 제목이.... 지구를 지켜라?"
-둥, 둥, 둥, 둥─
곡 재생과 함께, 둔탁한 드럼의 하모니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다이애나의 짧은 랩.
예지의 가이드 보컬.
묠니르 OST만큼이나 웅장한 분위기의 사운드.
걸그룹보다는 락 밴드에 어울릴 법한 곡이었다.
'지금 역배각 수준이면....'
하이엔드 최고 히트곡이랑 느낌이 비슷한데.
드림 에이전시 다닐 때 들었으면 질색할 장르.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다이애나는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내게 톡을 보냈다.
[어때요?]
유독 랩 파트가 많은 걸 보니까.
캐시제이 콜라보를 고려한 건가.
톡, 토토톡─
굳이 대박 곡 파이를 나눠 먹을 필요는 없었다.
[다음 앨범 타이틀곡으로 쓰자]
[피처링 빼고 편곡해]
"내 코가 석 자라서."
아니, 근데 다이애나는 빨리 자라니까 말을 안 듣네.
* * *
다음 날.
독도행 승선권을 한 장씩 들고 울릉도 선착장에서 대기했다.
"오늘 날씨가 화창하네요."
"네. 다행입니다."
출항 할 때 날씨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오죽하면 하늘이 도와야 갈 수 있다고 말할까.
"피디님, 잠시만요."
"아, 네."
나는 미리 찾아본 매점에 들러 멀미약 5병을 구매했다.
양주희는 안 먹어도 건강하지만.
멤버들에게 한 명씩 약을 건넸다.
"소미야, 남기지 말고 먹자."
"으아, 너무 써요!"
".... 애기냐."
"응애."
급식이면 애가 맞긴 하네.
"먹여줄까?"
그때, 대답은 소미 대신 옆자리에서 들려왔다.
"저요. 저 먹여주세요!"
"...."
예지는 굳이 양손 가득 가방을 들고 입을 열었다.
"아이코, 제가 손이 이래가."
"그거 놓고 먹으면 됨."
"아이, 빨리요."
"아우, 진짜."
툴툴 거리면서도 예지의 입에 약병을 물려주었다.
"그럼 다 먹은 것 같...."
"저는요."
"...."
은서는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혼자 병뚜껑을 열었다.
"원래 혼자 먹으려고 했어요!"
".... 네."
갑자기 왜 화를 내고 그래여.
휘이이이─
뱃머리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점점 목적지와 가까워졌다.
솔라빔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장식할 여행지.
언젠가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땅.
"드디어 도착했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선하는 솔라 멤버들과 스탭들.
쾌창한 날씨 덕분에 섬의 '허락'을 받고.
결국, 솔라 멤버들은 독도에 발을 들였다.
"아싸 1빠!"
"다이애나, 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
"와아."
순간, 독도를 감싸는 하늘과 바다 풍경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거대한 암석 두 개를 합쳐놓은 자연경관.
자연이 주는 웅장함에 한동안 말을 잃었다.
어젯밤에 다이애나가 보내준 '지구 지켜' 음원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풍경 진짜 대박이다."
"대표님! 바다가 에메랄드 빛이에요!"
"와, 그러네."
소미는 손가락을 치켜들고 양쪽 섬을 가리켰다.
"저쪽을 독도의 서도, 저기 커다란 섬은 동도라고 불러요."
"오, 공부했어?"
"기본이죠. 한국 사람이잖아요."
"...."
몰랐다. 미안하다.
솔라 멤버들은 제작진이 건넨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무슨 의도인지 뻔히 보이지만, 그걸 다 알고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있나.'
사람들이 아는 '천재' 정수호는 똥촉에 의지하는 사람이라.
"오빠."
이내, 지유가 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우에다 유이 씨, 일본 촬영 때부터 계획한 거지?"
"무슨 계획?"
"영입."
그분은 그냥 인생 즐기시는 분이야.
나 같아도 탑스타면 꼴리는 대로 살고 싶을 것 같아.
그쪽 소속사 사장은 완전 아티스트한테 쩔쩔매더라.
"그냥 한국 활동만 우리 회사랑 하는 거야."
"언론에는 그렇게 안 나올 텐데."
"...."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 * *
얼마 후,
MBS는 「솔라빔 시즌 3」 첫 번째 티저를 너튜브에 공개했다.
제작진은 보란 듯이 독도의 한 장면을 삽입했다.
넥플렉스와 동시에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딸깍, 딸깍─
나는 너튜브에 달린 태양빛 팬들의 댓글을 천천히 확인했다.
-솔라 월클 찍자마자 독도에 방문 ㄷㄷ
ㄴ개념 탑재 아이돌
ㄴ평생 까방권 획득
ㄴ타팬인데 이제 입덕할 때가 됐나봄
ㄴ아직도 솔라 입덕 안 했다고?
ㄴ넥플렉스에 올라오면 이제 일본이 선동 못함
ㄴ나라에서 포상 줘라
-양주희 승마 실력 뭐임 ㄷㄷ
ㄴ13년 배웠습니다. 전문가 수준입니다
ㄴㄹㅇ 못하는 게 없네
ㄴ언니 걸크러쉬 ㅠㅠ
ㄴ위험한 거 아님? 소속사 뭐 하냐 ㅡㅡ
ㄴ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니 건강이 더 위험할듯
ㄴ오래 누우면 허리 아프다곸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솔라 일본 활동 못하려나
ㄴ우에다 유이 이적했다는 기사 뜸
ㄴ그걸 어케했누
ㄴ일본에서 송나연보다 잘 나감?
ㄴㅇㅇ 연기+노래 만능임
ㄴ수호 형이 알아서 뭔가 했겠지
ㄴ그분은 천재 맞는듯
심지어, 일본어 댓글 반응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우에다 유이의 이적 기사로 팬덤이 실드를 쳤으니.
'솔직히 살짝 쫄렸는데.'
프렌즈 엔터나 투자사 분들도 간섭 안 하는 걸 보면.
역시, 뒤통수 픽은 항상 옳았다.
반드시 성공하고, 실패를 모르는.
띠리리링─
그때, 예지는 스케줄 중에도 용케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지금 회사에 계세요?
"응. 너는 방송국 아니야?"
-잠깐 쉬는 시간이요.
"아, 그래."
예지는 잠시 뜸을 들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오늘 저녁에 스케줄 없던데.
"응. 그렇지."
-두 번째 데이트, 오늘 해요.
"...."
첫 번째는 카메라 앞에서 전율 궁전에 들어갔다.
그런 공적인 일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니까.
-데이트 코스는 제가 준비했어요.
"응?"
-가, 가볼게요!
뚝
예지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세 번째 데이트 후에는 대답해 달라고 했었나.
"그럼...."
오늘 저녁은 내 마음을 확실하게 정할 마지막 기회인가.
그동안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었으니까.
한 번쯤 진짜 데이트를 해도 되지 않나.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정 대표."
언제 오셨는지, 방 마담께서 나를 빤히 바라보셨다.
"방 마담님, 오셨습니까."
"그냥 할머니라고 부르게. 하하."
"아, 넵."
오늘따라 할머니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이셨다.
"잠깐 얘기 좀 할까?"
"네?"
아무도 없는 회의실을 가리키는 할머니.
편한 마음으로 그녀의 뒤를 따라갔는데.
"자네, 솔직하게 대답해주게."
"네? 뭐를....?"
"어디까지 갔나?"
"???"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은서랑 키스 했냐고."
"...."
제가 왜요.
"자네는 은서한테 처음 생긴 남자친구야, 잘 좀 해주게."
"아, 아하."
와아, 이게 무슨 일이야.
"조만간 은서랑 같이 식사 한 번 하자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고."
"...."
혹시 우리 부모님을 만나신 건가.
시간이 흘러,
오늘 예지와 약속한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연예인과 사적으로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