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솔라빔 프로젝트(3)
미국 스카이 엔터 지부.
스페인에 간다던 솔라 일행은 급히 경로를 선회해 미국에 도착했다.
음반 프로모션과 유통 외에 할 일이 없던 회사에 바람이 불어닥쳤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레이첼 씨, 오랜만이네요."
회사에 도착하고, 촬영 장비를 설치하는 솔라빔 제작진.
스카이 엔터 직원들은 관심도 없는 듯 업무에 집중했다.
"그동안 밀린 업무 보고는 언제쯤 할까요?"
"한 시간 뒤에 듣죠."
"알겠습니다."
이 분위기는 대체 뭘까.
태평하다고 해야 하나.
'당연히 놀라야 정상 아닌가?'
미국 TV 쇼 방송계 최고 권위 시상식, Emmy Awards.
백인들의 잔치에 한국 소녀들이 정식으로 초청받았다.
'혹시, 정수호 대표님은 미리 알고 계셨던....?'
처음부터 예상한 결과라면 이런 반응도 이상하지 않았다.
"저기, 대표님."
김선호 피디는 조심스레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시 대화 좀 할까요."
"아, 네."
미국까지 날아왔으니 제작비만큼 뽕을 뽑아야 했다.
"시상식에 참석하는 과정을 촬영해도 괜찮은 거겠죠?"
"당연하죠. 그러려고 왔는걸요."
"그리고 또...."
미션 성공의 최종 보상, 마지막 촬영지.
한 팀에게만 허락되는 혜택을 언급했다.
"독도....?"
앞으로 일본 활동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월드 스타의 독도 방문은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
이 바닥에 10년 넘게 구르다 보니 표정을 읽는 버릇이 생겼다.
'.... 안 되는구나.'
살짝 찡그린 미간과 진지한 표정에서 나오는 거부감.
어떻게 거절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뒤통수를 긁적거리는 모습을 보니까.
사실, 프렌즈나 빅보스에도 진지하게 제안했었는데.
"역시, 안 되겠...."
"가시죠. 독도."
"!!!!"
확신에 가까운 상황에서 예상이 빗나갔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네. 좋은데요?"
좋은 사람 표정이 아니에요.
진짜 하기 싫은 얼굴이에요.
"너어무 행복하겠다. 우리 솔랭이들."
"...."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의 어조엔 묘한 자신감이 깃들었다.
진심으로 독도에 방문하겠다는 뜻.
그리 가벼운 성격도 아니지 않은가.
"독도 들어가려면 미리 날짜 잡으셔야겠네요."
"네, 그럼요. 준비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사람을 대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는데.
'이젠 모르겠어.'
정 대표의 생각은 항상 예상을 빗나간다.
이번 여행을 함께하며 확실히 깨달았다.
"아, 그나저나 스페인이 갑자기 역배각이 뜰 줄은 몰랐네요."
"역배.... 요?"
"미국에 오니까 느꼈어요. 스페인 못 가서 아쉽다고요."
"...."
아쉬운 사람 표정이 아니잖아요.
사고방식 자체가 우리와 달랐다.
특히, 비행기를 탈 때 그의 마이너 취향이 여실히 드러났다.
자주 보는 영화, 즐겨 듣는 음악, 끼고 다니는 소설.
대중성과 거리가 먼 장르만 찾아다니는 힙스터 픽.
세상을 바라보는 정수호의 시선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저기, 대표님."
"네?"
그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
정수호 대표가 엄청 웃으면서 본 영화.
흥행에 실패한 그저 그런 작품 아닌가.
"개미는 오늘도 튼튼, 계속 키득거리면서 보시던데."
"오오! 그 영화 아는 사람 처음 봐요!"
"비행기에서 계속 보셨으니까요."
"네네! 저 그거 10번 봤어요! 혹시 저랑 비슷한 취향!?"
"...."
전혀 아니에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역시 그런 거였군요."
"네?"
이제야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너무 메이저 장르만 파면 고여서 썩을까 봐. 일부러 힙하게 보시는구나!?"
"아뇨. 원래 좋아하는 영환데요."
"오, 원래 마이너 취향까지 잡으려는 욕심쟁이!?"
"...."
소수의 팬까지 잡고 싶으신 거였네.
성공하는 사람은 습관부터 남달랐다.
"김 피디님."
이내, 정수호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도 촬영가셔야죠."
"네, 그럼요. 내일 시상식 의상도 체크하고, 인터뷰 촬영도 있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준비시킬게요."
"알겠습니다."
가벼운 듯하지만 매사에 신중하게 고민했다.
또한, 본인 판단에 대해 확신을 갖고 답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터리 장르 소설.
레게 음악.
"오케이."
그가 자주 찾는 마이너 장르를 따르면.
언젠간 그의 철학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럼 오늘부터...."
개미는 오늘도 튼튼.
딱 10번만 감상하자.
띠리리링─
그때, 스페인에 있던 스탭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진철아, 아직도 철수 안 했냐."
-아, 그게. 한 명이 다쳐서.
"...."
투우사 체험 계약금 아까워서 직접 하다가 다쳤냐.
-오늘 바로 철수하려고요.
"잘 됐네. 그럼 미국 오지 말고 한국으로 돌아가."
-네?
김선호 피디는 사무실 벽에 붙은 솔라 포스터를 보며 말했다.
"독도 가는 배편 알아봐."
-오, 진짜 가는 거예요?
"진짜 가는 거야."
-대박이네요.
솔라가 에미상에서 인기상을 타면 미션 포인트로 몇 점을 줘야 할까.
'대충 10만 점 정도....?'
부루마블 여행은 여기서 종료겠네.
원래 일정대로 진행하면 아마 불참했을 시상식.
월드 스타는 뒤로 넘어져도 국격이 올라가나 봐.
"일단 한국에서 대기해."
-네. 피디님.
내일 에미상 시상식만 마치고 움직일 계획이었다.
* * *
스포트 라이트는 레드카펫을 비췄다.
찬란하게 빛나는 탑스타들이 모이는 프라임타임 에미상.
이번 생중계는 굿버스킹을 방영한 CBC 방송국이 맡았다.
끼이익─
밴이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는 솔라 멤버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얘들아, 떨지 말고 갔다 와."
"네!!"
한 명씩 차례로 밴에서 내리기 시작하는 멤버들.
마지막 남은 은서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에스코트해주시면 안 돼요?"
"안 돼."
"예지 언니만 해주려고."
"둘 다 안 해."
"흐음."
이내, 은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밴에서 내렸다.
찰칵, 찰칵─
레드카펫을 밟고, 포토존에 들어서는 솔라 멤버들.
밴에서 내리자마자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온 기자도 있었다.
창밖으로 나란히 선 멤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데.
"오빠."
엄지유는 운전석에서 나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잘 키운 딸래미들 지켜보는 아빠 같아."
"틀린 말은 아니네."
"우리도 얼른 들어가자."
"그래야지."
우리도 당연히 VIP석에서 시상식을 관람할 티켓이 주어졌다.
솔라빔 스탭은 내부 촬영이 불가능하겠지만.
편집의 힘으로 어떻게든 그림을 만드시겠지.
잠시 후,
나는 지유와 함께 객석에 앉아 시상식을 감상했다.
「오징어 서바이벌」 덕분에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어워즈.
지금쯤 태양빛 팬들은 솔라의 수상을 기대하고 있을 터.
"대표님."
이내, 김선호 피디님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피디님, 오셨어요?"
"네. 밖에서 촬영 장비 세팅하느라 늦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생각해 보면, 솔라빔은 걸그룹 리얼리티 예능이니까.
이런 촬영도 솔라의 일부 아닐까.
음반 작업하거나 드라마 촬영도.
"촬영 중에 시상식을 다오고, 운이 좋았네요."
"운이라뇨. 전부 노력의 결과죠."
"...."
운도 좋았을 걸요.
뒤통수 뽑기 운빨.
"대표님 덕분에 솔라빔 촬영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럼 촬영 끝난 거예요?"
"아뇨. 아직 마지막 여행지가 남았죠."
"아, 그러네."
이내, 인기상 수상 차례가 다가왔다.
이내, MC의 발표와 함께 스크린에 떠오른 솔라 멤버들.
관중들은 그녀들을 보며 격렬한 찬사와 호응을 보냈다.
"벌써 우리 차례군요."
"...."
아무래도, 에미상의 주인공은 드라마 부문이었으니.
후보에 오른 인기상은 초반부에 수상자를 발표했다.
-버라이어티 부문 인기상은 정말 쟁쟁한 후보가 많았군요!
MC의 말을 듣고, 김선호 피디님은 격양된 어조로 말했다.
"대표님, 오늘 확신했어요."
"네?"
"마지막 여행지의 주인공은 솔라밖에 없다는 걸."
"...."
솔라빔이라 당연한 건가.
"글로벌 인지도나 촬영분을 봐도 솔라의 활약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김 피디님은 씨익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번 방송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 좋겠네요."
"저도 그래요."
이제 막 미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솔라니까.
진짜 월드 클래스가 되기 위한 여정의 첫걸음.
"이제 시작이니까요."
넥플렉스랑 MBS에서 동시 방영한다고 했나.
솔라빔 시즌3 촬영도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그럼 이제는....'
슬슬 다음 솔라 앨범도 준비해야겠네.
아직 빌보드 차트를 정복하지 못했다.
-축하합니다!
그때, MC는 이변 없이 수상자로 솔라를 호명했다.
물론, 두 번째 초청까지 있었으니 예상한 결과였다.
-굿버스킹에서 뛰어난 가창력을 보여준 솔라 멤버분들! 특히, 예지 씨는 유니크한 음색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오징어 서바이벌」 이후.
한국인 중에 두 번째 수상.
무대에 오른 솔라 멤버들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소감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장은서.
한껏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이 참, 어쩌죠. 설마 저희가 탈 줄 몰라서 준비를 못 했네요.
장 폭스, 무슨 소리야.
어제 열심히 준비했잖아.
-우선 굿버스킹을 연출하신 프로듀서 레이먼드, 함께 고생하신 스탭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멤버 가족분들....
준비도 못 했다면서 유창한 영어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은서 이후로 한 명씩 마이크를 잡고 소감을 발표했는데.
-우와아아아아─!!!!
예지의 차례에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아마 로이랜드의 팬들이 몰려온 모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가능성을 믿어주신 스카이 엔터의 정수호 대표님. 정말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아니, 왜 수상 소감 하다가 고백을 해요.
예지가 언제부터 이렇게 적극적이었나.
-저도요! 저도 사랑해요!
-그럼 나도.
이내, 소미와 다이애나가 중간에 끼어들며 3고백 스택을 쌓았다.
"대표님."
김선호 피디님은 축하 인사를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렇게 사랑받는 엔터 사장님은 처음 봤어요."
"그런가요."
"정말 부럽습니다!"
"...."
살짝 민망하네.
* * *
스카이 엔터의 걸그룹 세 팀이 귀국한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정수호 대표에게 고백한 솔라 멤버는!?]
-Emmy Awards 인기상을 받은 솔라 멤버들! 수상 소감 중 회사 대표에게 깊은 신뢰와 애정을 드러내....
역시, 한국의 기자들은 어그로에 특화됐다.
언론은 솔라의 수상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허허허."
방순자는 포탈 메인에 걸린 기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언제부턴가 다른 멤버도 손녀딸처럼 아끼는 마음이었다.
"아이고, 우리 애들. 예뻐라."
그러니까, 멤버들이 오기 전에 집 청소도 해주지.
"끄응차."
방 마담은 소파에 앉아 솔라 멤버들의 사진을 바라봤다.
그중에서도, 장은서.
누구보다 귀한 손녀.
올해 초에 개봉한 「첫사랑」은 아직도 국내 영화제를 휩쓸고 있었다.
은서는 바빠서 참여하지 못하지만.
김기춘 감독님이 대리로 수상했다.
이제 세상에 없는 소중한 딸의 '남편'이 쓴 시나리오.
가족의 작품도 못 알아보는 눈으로 투자는 무슨.
현역으로 뛰는 정 대표의 안목은 못 따라가겠다.
'그만 가볼까.'
방 마담은 숙소를 나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 윗층에서 오셨누.'
윗층에서 승강기 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층에 정수호 대표 집도 있을 텐데.
힐끔─
방 마담은 혼자 타고 내려오는 중년 여성에게 시선을 주었다.
"닮은 것 같기도 허고....?"
"네?"
정 대표와 무척 닮은 여인에게 질문했다.
"저기, 혹시 정 대표랑 아는 사이신지?"
"아, 제가 수호 엄마입니다."
"오오, 그러셨구만."
"수호를 아세요?"
"알다마다요."
손녀딸을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만들어 준 은인.
동시에, 현재 가장 크게 투자하는 사업체의 수장.
"제가 은서 할미 되는 사람입니다."
"어, 어, 아....!"
그녀는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눈을 깜박였다.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어요."
"수, 수호 여자친구 할머니!?"
"...."
잼깐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죠.
"아이고, 사돈 어르신."
"????"
은서랑 정 대표가 연인 관계라고 말하는 그녀.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충격에 빠졌다.
'아, 어쩐지.'
은서가 선 보라고 해도 거절하더라.
걸그룹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구만.
어릴 때부터 너무 까칠한 성격이라 걱정 많이 했는데.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돼서 일도 잘하고 연애도 하네.
'우리 손주, 언제 다 컸누.'
방 마담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손잡았으면 결혼해야지."
"그럼요, 사돈어른."
"하하하."
두 여인은 자연스럽게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물론, 정수호와 장은서는 아직 손을 안 잡았다.
* * *
길고 길었던 솔라빔 해외 촬영을 마치고,
스카이 엔터 직원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빡빡한 세계 일주 여행과 글로벌 시상식장을 다녀왔으니.
"대표님,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직 루나와 이클립스 팀은 없었다.
아마 오늘 중으로 전부 도착할 텐데.
"오늘 회의는 생략하고 내일 회의할게요."
"네! 대표님."
띠리리링─
이내, 김선호 피디님께 마지막 촬영 일정을 전달했다.
-대표님, 날씨 좋은 날 잡았습니다.
"드디어 가는 겁니까."
-네. 독도.
한국인의 대표적인 국뽕 코인.
태양빛 팬들 반응이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