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솔라빔 프로젝트(1)
올해 MBS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
「솔라빔 시즌3」 제작발표회장에 수많은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이전 시즌을 담당했던 김지훈 피디는 가장 먼저 무대에 올랐다.
"안녕하십니까. 김지훈입니다."
짝짝, 짝짝짝─
객석에서 쏟아지는 박수갈채.
소미와 함께 방탈출 메이즈, 호러 데이즈를 연출한 Tvm 출신 감독.
이후, 함호진 피디와 김선호 메인피디도 스테이지에 올라 인사했다.
"메인급 피디만 세 명이네."
"그러니까."
나는 지유와 함께 무대 인사를 지켜보며 대화를 나눴다.
"일단, 몽골은 김선호 피디님께서 따라오실 거야."
"그럼 루나는 함 피디님?"
"그렇지."
무려, 세 군데 동시 촬영.
김선호 피디님은 촬영 내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했다.
고작 며칠 정도 머무르고 이동하는 타이트한 일정이었으니.
"루나는 본부장님, 이클립스는 구 팀장님이 맡을 거야."
"나는 오빠만 따라다니고?"
"어. 그래야지."
촬영 감독을 포함해 최소 인원만 움직이는 일정이었다.
통역이나 여행가이드, 경호는 현지 업체에서 고용하고.
"저기, 우리 애들 올라온다."
"응. 보고 있어."
이어서, 출연자들이 한 팀씩 모습을 드러냈다.
갓 데뷔한 신인 걸그룹 이클립스.
컴백하자마자 1위를 기록한 루나.
그리고, 솔라빔의 원래 주인공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곧 잔잔하게 터져 나오는 감탄사.
이미 연예인의 연예인이 된 느낌.
"오빠, 솔라 누가 키웠냐."
"내가."
다른 걸그룹이었으면 혼자서도 회사를 먹여 살릴 인재들.
솔라 멤버들을 향해 눈부신 플래시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제작비 감당할 만했네."
"그치. 솔라니까."
이내, 기자들은 감독과 멤버들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류시아 씨, 얼마 전에 컴백하셨는데. 컨디션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네! 회사에서 스케줄을 조정해주고 있어요!"
"그럼 이번 예능에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요? 제목이 솔라빔이라서 질문 드립니다."
"그건...."
그냥 회사가 시켜서 한다고.
그렇게 말할 줄 예상했는데.
"연습생 때부터 사랑하는 친구이자 동생들이었어요."
"...."
순간, 무대 위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데뷔하기 전에는 시아에게 자격지심이 있던 멤버도 있었다.
그만큼 큐앤지 레이블에서 류시아의 입지는 독보적이었다.
어쩌면, 루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동안 솔라를 많이 밀어줬으니.
"저는 솔라빔에 합류하기 돼서 정말 기쁩니다. 대표님 감사해요!"
"...."
두 팀의 멤버들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서로 바라봤다.
불편한 감정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분위기.
이번 계기로 두 팀의 유대감도 끈끈해지지 않을까.
"김지훈 피디님, 소미 씨와 다시 호흡을 맞추는데 그동안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아, 네. 몇 년 사이에 월클이 되셨죠. 하하."
-하하하하.
객석의 기자들 사이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농담 같아도 실제로 월클에 한 걸음 다가섰으니.
"이전 작품이 잘되긴 했지만, 그건 스탭들 공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소미 씨는 기획 의도를 바로 파악하고 템포나 습득 능력이 뛰어나서...."
이내, 정석적인 질문과 대답을 이어가는 기자들.
슬슬 마무리 할 때쯤 누군가 내 이름을 언급했다.
"김선호 감독님, 혹시 정수호 대표님께서 출연할 수도 있을까요?"
"...."
그동안 여기저기 자주 나오긴 했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대답이었는데.
"글쎄요."
이내, 감독님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
원하지 않아요.
원한 적 없어요
'.... 지금처럼.'
역배각이 아닌데 출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려운 뒤통수를 긁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 * *
얼마 후,
솔라빔 제작진은 칭기스 칸 국제공항을 지나 약속 장소로 향했다.
광활한 초원이 이어지는 목초 지대.
양과 말이 뛰어노는 아름다운 풍경.
김선호 피디는 휴식 중인 솔라 멤버들을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 작가님, 통역사는요."
"한 시간 후에 올 겁니다! 우리가 너무 빨리 왔네요."
"그러게요."
촬영 준비도 끝났는데 미니 게임이라도 해야 하나.
"최대한 일찍 와달라고 말씀해주세요."
"네. 피디님."
"그럼 일단 한 시간만 영어로 해결해보죠."
"알겠습니다."
이내, 미리 섭외한 현지인이 다가와 반갑게 몽골어로 인사했다.
"센베노."
영어를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때, 소미가 나서며 입을 열었다.
"어너더르 유 하흐 웨?"
"????"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제작진 일행.
소미는 유창한 몽골어로 오늘 일정을 확인했다.
"감독님! 여기 말 타려고 온 거죠!?"
".... 아."
역시, 정수호 대표는 준비성이 얼마나 철저한지.
머리 좋은 소미에게 미리 몽골어를 가르쳤구나.
김선호는 새삼스레 감탄사를 뱉으며 솔라 멤버들에게 말했다.
"오늘 준비한 컨텐츠는 기마 궁술입니다."
"승마가 아니라요?"
"네. 궁술까지."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는 멤버들.
예측할 수 있는 컨텐츠를 훌쩍 뛰어넘었다.
아니, 알려준다고 해도 어떻게 연습하겠어.
"자, 여기 선생님께서 과녁 맞히는 법을 가르쳐주실 겁니다."
"센베노."
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당연히 준비하면서도 상식을 벗어난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승마만 잘해도 포인트를 줄 계획이었는데.
"저기에 있는 과녁 중간에 맞추면 되는 거죠?"
"네, 그렇긴 한데."
"그럼 안 배워도 될 것 같아요!"
"네?"
양주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소미에게 질문했다.
"여기서 제일 힘 좋은 말이 어딨어?"
"한번 물어볼겡."
"...."
이내, 소미는 초원에 있는 말 한 마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언니, 저 친구가 여기서 제일 품종이 좋은 말이래."
"그으래?"
제작진이 준비한 기마 궁술.
주희는 주변에 널브러진 합성 궁과 화살 통을 주워들었다.
이내, 거친 갈색 말을 몇 번 쓰다듬으며 능숙하게 올라탔다.
'양주희, 뭐하는 사람이야....?'
홀로 초원을 달리기 시작하는 그녀.
김선호는 예측을 아득히 벗어나는 주희를 보며 충격에 빠졌다.
미국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린 걸그룹의 취미가 좀 이상했다.
벌써 두 손을 놓고 탄다고?
일반 사람이 이게 된다고?
코어힘이 얼마나 대단한 걸까, 말 안장을 허벅지로 단단히 고정했다.
끼이이익─
순간, 양주희는 합성 궁을 들고 천천히 시위를 당겼다.
저 소녀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거야.
고대에 태어났으면 이름을 남겼겠지.
"장군이 될 상...."
세계적인 여장군으로 명성을 떨치지 않았을까.
아니,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긴 한데.
슈우우우웅─!!
순간, 화살은 그대로 날아가 과녁을 관통했다.
사람이 맞으면 죽을 줄도 모르고 즉사했겠지.
"바, 방금 찍었어?"
"당연하죠!"
현역 1티어 걸그룹 멤버(물리).
미래의 남편보다 강한 건 확실했다.
바람피우다 걸리면 뚝배기 깨질 듯.
양주희는 사람을 찢어.
이 정도면 걸그룹 멤버를 떠나서 그냥 대단한 거 아닌가.
남자가 오늘 장면을 찍었어도 방송 역사에 길이 남겠지.
다그닥, 다그닥─
양주희는 이미 말과 하나가 되어 제작진 쪽으로 돌아왔다.
오늘 보여준 퍼포먼스는 상당히 임팩트가 강렬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스턴트 대역 연기도 하지 않았나.
'조만간.... 사극 찍겠네.'
이거, 정수호 대표님의 큰 그림이었구나.
양주희의 씨익 웃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영상에 담았다.
남녀를 떠나서 누가 봐도 멋있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피디님, 미션 성공하면 1티어 주사위 주시는 거 맞죠?"
"아, 네. 맞아요."
"오, 그럼 메뉴에 단백질 쉐이크도 있어요?"
".... 없어요."
"까비."
오늘의 잠자리와 저녁 식사를 가르는 복불복.
미션에 성공해 꽝이 없는 주사위를 획득했다.
"자자, 얘들아! 예지 언니! 나를 추앙해요!!"
"양주희! 양주희!"
"그래요. 내가 1티어 주사위를 구했어요."
"...."
방금 그 장군님이 주사위 좋은 거 탔다고 좋아하시는 건가.
'이거, 갭 모에인가 뭔가 그거냐.'
김선호 피디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촬영에 집중했다.
"여러분, 오늘 포인트를 대거 획득하셨습니다."
"그럼 뭐가 좋은데요?"
"세 팀 중 마지막 여행지의 주인공이 되실 수 있어요."
"마지막 여행지?"
"그건 아직 비밀입니다."
독도 여행은 입도 시기가 잘 맞아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직 정 대표님과 협의가 된 것도 아니라.
"혹시 우주여행은 아니겠죠?"
"...."
돈 없어요.
* * *
별이 반짝이는 밤.
몽골은 한국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서울의 도시 야경만큼 아름다운 울란바토르의 풍경을 바라보는데.
"대표님."
나는 예지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그냥 별 보러 나왔지."
"아, 저는 지유가 여기 나와보라고 해서 와봤어요."
"그래....?"
엄지유, 예지랑 밀어준다고 하더니.
솔직히, 아직 내 마음도 모르겠는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지는 옆자리에 사뿐히 앉았다.
"여기 흙바닥인데."
"괜찮아요."
예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대표님 덕분에 예쁜 밤하늘도 보네요."
"...."
너도 예뻐.
예전에는 쉽게 나오던 말도 이젠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마음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까.
"얘들은 지금 뭐 하고 있어?"
"저녁 먹어요. 오늘 주사위 한번 더 굴릴 거래요. 다음 여행지."
".... 누가 굴려?"
"소미요."
"...."
이 정도면 내 똥촉만큼이나 소미 똥손도 문제 아닌가.
걔도 반대로만 하면 되는, 뭐 그런 걸로 성공할 수....
'.... 이미 성공했구나.'
미국 차트에 올랐으면 충분하지.
아직 빌보드 1위는 못 찍었지만.
"대표님! 제 말 듣고 계세요?"
"응?"
"설마 못 들었다고 하시는 건 아니죠?"
"아, 다 들었지."
"그럼 대답은요."
"...."
다른 생각 하느라 못 들었는데.
화제를 돌리려고 입을 열었다.
"예지야, 고마워."
"네? 갑자기?"
"응."
큐앤지 시절부터 매니저 역할을 대신해 준 리더.
'예지가 아니었으면....'
아마 지금의 솔라도 없었겠지.
재능도 뛰어났지만, 멤버들을 포용할 그릇이 있었다.
평소엔 엄마처럼 따뜻하고 연습할 때는 엄격했으니.
"저도 고마워요."
예지는 배시시 웃으며 자연스럽게 내게 팔짱을 꼈다.
"제 마음 알아주셔서."
"????"
그게 무슨 소리야.
마음이 어쨌다고.
"예지 언니이!!!"
그때, 숙소 근처에서 우리를 부르며 뛰어오는 소미.
예지는 막내 눈치를 보며 내가 귓속말을 속삭였다.
"그럼 세 번 데이트 하고 사귀는 거에요."
"엉?"
아니라고. 그런 거 아니야.
예지야, 진도가 너무 빨라.
"오잉, 대표님도 계셨네."
"어. 소미야, 무슨 일이야?"
"이제 다음 여행지 주사위 굴린대요!"
"아, 그래. 일어나자."
"소미야, 가자."
"응!"
나는 멀어지는 두 소녀를 멍한 눈으로 뒤쫓았다.
'세 번 데이트를....'
최대한 나중으로 미뤄야 하나.
* * *
몽골에서 잡은 숙소.
최고 등급의 주사위를 굴린 덕분에 5성 호텔에 머물렀다.
한껏 저녁 만찬을 즐기는 솔라 멤버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대표님, 이것 좀 드세요."
"어, 고맙다."
나는 은서가 건네는 접시를 받고 젓가락을 들었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별 보고 왔어."
"아, 음... 예지 언니도 별 보러 갔는데."
"응. 밖에서 만났지."
"...."
은서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왜 그래.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근데 왜 갑자기 포크로 어깨를 찔러.
"아, 실수로 찔렀다."
"아파."
"호 해줄까요?"
"놉."
"싫음 말구."
오늘은 또 어떤 양주희가 은서를 빡치게 했을까.
"은서야, 주희 활 쏘는 거 못 봤니."
"봤어요."
그럼 싸우지 좀 마. 송장 치를라.
다행히 주희 성격이 유한 편이라.
"자자, 여러분!"
이내, 김선호 피디님은 커다란 주사위 인형을 들고 나타났다.
"다음 여행지 복불복 시간이 다가왔어요."
"벌써요?"
"소미 씨, 이거 받으시고."
"으음."
내일 몽골 시내 여행 이후, 바로 출발하는 다음 여행지.
멤버들은 소미에게 전달된 주사위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번엔 세 걸그룹이 같은 나라에 모이는 거예요!"
"아아."
주사위에는 두 면씩 세 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솔라(몽골)
-루나(영국)
-이클립스(일본)
나머지 두 걸그룹이 따라오는 방식이었다.
즉, 솔라만 피하면 먹고 살만하지 않을까.
"소미야, 솔라만 뽑지 말자."
"우리도 영국이나 일본에 가보자고."
"오케이. 나만 믿어!"
세 걸그룹의 다음 목적지는 오직 소미의 손에 달렸다.
그녀는 잔뜩 긴장한 채 주사위를 쥐었다.
설마 오늘도 3분의 1이 나오지는 않겠지.
"여러분."
이내, 김선호 피디님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직하게 말했다.
"차라리 몽골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뽑아 보면 아실 거예요."
"...."
벌써 던졌는데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뭐 하는지도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저 이미 던졌는데여."
"아이고."
높이 던진 주사위는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이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주사위는.
"일본."
현재 이클립스 멤버들이 여행 중인 국가.
김선호 피디님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오호, 이번 여행은 정말 다채롭네요."
"그러게요."
"대표님께서도 출연하시죠."
"제가 왜요."
멤버들은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느 도시로 가는 거예요?"
"지금 이클립스는 오사카에 있으니까, 다음 여행지는 도쿄."
"거기서 미션은 뭐예요?"
"도쿄에는...."
김선호 피디님은 씨익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율 궁전이 있잖아요."
"아."
세계적인 공포 테마 파크.
소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게 무서워?"
이내, 다이애나는 피식 웃으며 쫄보들을 바라봤다.
"거기 하나도 안 무섭대요!"
"누가 그래?"
"엠마요."
일본에 세 걸그룹이 모이는 일정.
뒤통수에 간지러운 감각이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