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To The Top(3)
스카이 엔터는 정수호 대표에 대한 의존도가 비상식적으로 높았다.
그의 선택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믿음.
전부 성공하고 성적표로 증명했으니.
구현식 팀장은 스마트폰으로 지올 브랜드 판매 사이트를 확인했다.
"반나절 만에 완판."
"와아."
장은서가 입고 런웨이에 오른 패션 아이템은 전부 품절이었다.
같은 날 런웨이에 오른 모델들과 비교가 안 되는 성적.
역시, 정수호의 천재적인 안목은 패션업에서도 통했다.
"대표님."
구 팀장은 기쁜 소식을 들고 대표실을 찾았다.
"정말 존경합니다!"
"그냥 은서가 잘한 거죠."
"...."
역시, 오늘도 그는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팀장님, 걸스 오퍼레이션 소식을 들었죠?"
"아, 네! 한 팀 정도 도하나 프로듀싱을 받고 싶다고...."
"메일 보내셨나요?"
"네. 연습생들 프로필 전부 메일로 보냈습니다."
"고마워요."
마음도 부자시네.
어찌보면 경쟁자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전혀 거리낌 없이 부탁을 받아들였다.
딸깍, 딸깍─
마우스를 움직여 프로필을 확인하는 대표님.
빌보드 프로듀서가 맡아주기에는 과분했지만.
'그래도 A조 정도면....'
「걸스 오퍼레이션」에서 어벤져스 조라고 불리는 팀.
그들은 걸스온탑 이클립스 데뷔조 때와 폼이 비슷했다.
"이중에선 F조가 좋겠네요."
"네?"
"한 명 괜찮은 친구가 있어요. 문제아도 없고."
"...."
구현식 팀장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직접 보냈기에 F조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인기 연습생을 거르고, 최후에 남은 멤버로 구성한 쩌리조.
빌보드 프로듀서가 맡아주기에는 너무 과분한 팀이 아닌가.
"구 팀장님?"
"네? 아, 네!"
구 팀장은 정신을 차리고 대표님께 물었다.
"그, 서태성 프로듀서님께 그렇게 보고할까요?"
"네. 그렇게 하시죠."
"...."
프로필을 대충 보고 스타성을 발견한 건가.
그것도 대중픽을 한참 벗어난 쩌리조에서.
'F조에 뭔가 있을 거야.'
그 팀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셨을까.
이전까진 전혀 없던 흥미가 생겼다.
"아무튼."
정수호 대표는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팬미팅 진행하고, 바로 한국으로 가는 겁니다."
"네. 준비하겠습니다."
미국 지부를 해체할 이유는 없었다.
당분간 양국을 오갈 예정이었으니.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솔라와 스카이 엔터.
현역 아티스트 중 이적을 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조만간 미국 현지에서 활동할 아티스트도 뽑아보시죠."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네. 팀장님."
한편, 정수호는 구 팀장에게 눈을 떼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오늘 뭐 먹지.'
한국처럼 배달 음식이 잘 되는 나라가 없다.
멤버들이 돌아가고 싶은 눈치라 다행이었다.
"저기, 대표님."
"네?"
"엄청 고민이 많으신 듯해서."
"그렇긴 하죠."
"오오...."
구 팀장은 깊은 상념에 빠진 수호를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어떤 고민을 하시길래....!'
걸스 오퍼레이션 팀 선정보다 중요할까.
그저 대표님의 생각이 궁금할 따름이다.
"한국에 돌아가서 뭐할지 고민하시는 거죠?"
"네. 역시 한국이 좋네요."
"하하하."
한국에서 또 어떤 스케줄을 잡으시려고.
벌써 한국에서 들어오는 섭외 요청은 한가득이었다.
미국 예능에서도 먹히는 걸 알았기에 넥플렉스에서.
"지금 들어온 프로그램 명단 뽑아올까요?"
"아뇨. 지금은 할 일이 있어요."
"아, 네!"
역시, 대표님은 항상 바쁘시구나.
"점심 뭐 먹을까요."
"그건 제가!"
"네?"
그런 자잘한 문제까지 고민하게 할 순 없지.
"제가 알아서 사오겠습니다!"
"...."
구현식 팀장은 대답도 듣지 않고 대표실을 벗어났다.
물론, 메뉴는 대표님께서 제일 좋아하는 양식이었다.
* * *
며칠 뒤.
미국 팬미팅을 앞두고 사인지에 사인을 하는 멤버들을 확인했다.
멤버들마다 사인도 제각각이었다.
예지는 정성스럽게 10초씩 걸리고.
"소미야, 좀만 더 진지하게 사인하자."
"엥, 열심히 한 건뎅."
".... 3초컷이?"
"헤헤."
웃지 마라. 궁서체다.
미국과 한국, 양국에서 잡은 팬 사인회.
앨범 수천 장을 사 주신 찐팬분들인데.
"사인할 때 진지한 마음으로, 오키?"
"오키."
소미는 이제 한국 돌아가면 학교 다녀야겠네.
여름방학 덕분에, 그렇게 결석이 많진 않았다.
"나는 끝!"
"???"
그때, 다이애나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저는 1초컷!"
"...."
도하나는 소미보다 심하네.
"다이애나, 잠깐 나 좀 볼까?"
"네? 아, 넴."
아마 구 팀장님께 전달받았겠지만.
그래도 내가 따로 말해주고 싶었다.
"걸스 오퍼레이션 소식 들었지?"
"네. F조 맡게 됐다고."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저는 좋아요."
"응?"
다이애나는 금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대표님 선택이니까요."
"아, 그래."
누가 나보고 솔라를 혼자 키웠다고 하던데.
이렇게 나를 믿어주니까 가능한 게 아닐까.
잠시 후,
약속 시각에 맞춰 미국 팬들이 객석을 채우기 시작했다.
한국과 달리 거의 소녀팬이 주류였는데.
대부분 앨범 천장씩 구매한 팬들이었다.
"지유야, 저기 한 명은 어디서 본 것 같은...."
"나도 보고 있어."
"캐시제이!?"
미국 팝스타가 왜 객석에 앉아 있는 걸까.
주변의 팬들은 그녀를 곁눈질로 훔쳐봤다.
이내, 힙 스튜디오 측 매니저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팬미팅 분위기를 해쳤다면 죄송합니다."
"아뇨.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똑같은 조건으로 앨범 구매해서 티켓도 얻은 거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상대 매니저는 멋쩍은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캐시제이, 굿버스킹 보고 완전히 꽂혀버렸거든요."
"아, 넵."
미국 내 인지도는 솔라보다 높은 아티스트.
이렇게 팬심을 드러내면 감사할 따름이다.
"콜라보 하죠."
"오, 정말요?"
앨범 발매는 미국과 한국, 양쪽에서 하겠지만.
"대신 당분간 한국에서 활동할 예정입니다."
"하하, 저희는 아주 좋죠!"
"그럼 한국에서 뵙는 걸로."
"좋습니다!"
이어서, MC는 마이크를 들고 팬미팅 순서를 진행했다.
현재 빌보드 차트에 있는 Losing Star를 부르고.
한 명씩 무대에 올라와 악수와 사인지를 건네고.
솔라 멤버들 표정을 천천히 살폈다.
'다들 행복해 보이네.'
그때, 예지와 우연히 눈을 마주쳤다.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별을 집어넣은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미소 짓는 그녀.
어쩌면, 슬슬 내 마음을 정리할 때가 온 것 같기도 하고.
"오빠."
그때, 지유가 나를 부르며 분위기를 상기했다.
"은서 언니가 찾았대."
"뭐를."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갈 사람 필요하다며."
"오, 누군데?"
"그건 비밀이래!"
"???"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비밀이지.
* * *
얼마 후.
우리는 미국에서 팬미팅을 마치고 한국에 복귀했다.
인천공항을 가득 채운 팬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와아아아아─!!!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인 팬들의 환호성.
마치 콘서트장에 온 듯 열기가 뜨거웠다.
"이게 금의환향인가 봄."
"그러게."
끝없이 이어지는 팬들의 행렬과 플래카드.
솔라 멤버들을 챙겨서 게이트를 벗어났다.
"본부장님."
오랜만에 인사 하는 박철민 본부장님.
결혼하시더니 머리에서 윤기가 흘렀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나야, 뭐."
"일단 빨리 나가죠."
"그래야지."
오래 머무르면 다른 시민분들께 피해를 끼칠 테니.
나는 급하게 움직여 멤버들과 함께 밴에 올라탔다.
"예지야, 다 탔지?"
"네!"
"출발할게."
다행히 택시를 타고 따라오는 극성팬은 없었다.
지유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조수석에서 일정을 정리했다.
'일단 소미는....'
여름방학도 진작에 끝났으니 학교에 가야 하고.
"대표님."
그때, 예지가 뒷좌석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우리끼리 팬 서비스 생각한 게 있거든요."
"팬 서비스? 그게 뭔데?"
"몰래카메라!"
멤버들은 각자 한 마디씩 팬들을 향한 몰래 카메라 계획을 풀었다.
팬들을 초청해 예지가 눈앞에서 노래를 불러주거나.
헬스하는 남자 팬을 불러서 양주희랑 팔씨름도 하고.
과학고 친구를 불러서 소미랑 두뇌게임을 하는 컨텐츠.
"팬미팅 같은 거 말하는 거야?"
"네! 좀 색다른 방식으로."
"...."
바쁜 와중에도 팬 서비스를 생각했구나.
'기특하네.'
순간, 뒤통수에서 묵직한 신호가 왔다.
팬미팅 대신 진행해도 괜찮을 듯했다.
"팬서비스로 나쁘지 않겠는데."
"오, 해도 돼요?"
"추진해볼게."
"감사합니다!"
미국 활동을 기다려 준 팬분들을 위한 이벤트.
당연히 영상으로 남겨서 너튜브에도 올려야지.
끼이익─
곧이어, 스카이 엔터 사옥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직원들이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네. 오랜만이네요."
한 명씩 안부를 물으며 사무실에 들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대표님!"
"미연 씨, 잘 지내셨죠?"
"덕분에요!"
근데 내 책상에 포스트잇이 왜 이렇게 많이 붙어있을까.
"이상하다, 한 번씩 청소한다고 들었는데."
"아, 대표님! 그거 오늘 들어온 스케줄이에요!"
"이게 전부 다요?"
"네!"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잇을 하나씩 떼서 정리했다.
몇 개는 뒤통수에서 살짝 반응이 오는 것 같기도.
"저기, 대표님."
그때, 어느 직원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하민준 인턴 프로듀서, 퇴사했습니다."
"그래요?"
"네. 얼마 전에."
"알겠습니다."
뒤통수가 경고한 불안 요소.
사고 치기 전에 떠났나 보네.
"구 팀장님! 2시간 뒤에 대표 회의 열게요."
"아, 네. 전달하겠습니다."
"그래요."
일단, 코앞에 다가온 스케줄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수연이랑 진세은 씨, 악마가 되었다.
다이애나, 걸스 오퍼레이션 프로듀싱.
이클립스랑 류시아, 추석 아육대 참가.
새로운 스케줄을 제외하면 대충 이 정도였고.
'개인적인 스케줄은....'
부모님께서 자꾸 여친 데려오라고 하시긴 하는데.
조만간 은서가 소개해 주는 사람이랑 찾아 봬야지.
"오빠."
그때, 지유가 다가와 내게 소곤소곤 귓속말을 전달했다.
"지금 이클립스 멤버들 얼차려 받고 있어."
"응? 누구한테."
설마, 꼰대 미군필 여고생이 또.
"주희 언니한테."
"양주희? 주희가 왜?"
"아육대 훈련하고 있다던데."
"...."
코치도 아니고, 걸그룹이 무슨 훈련이야.
"무조건 금메달 5개 딸 거래."
"...."
* * *
"랄라라."
엠마는 오랜만에 만나는 언니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했다.
"오네쟝."
데뷔하고 이상하게 부끄러움이 많아진 다이애나.
굿버스킹 때문에 잠깐 미국에 머무르긴 했지만.
"와타시의 진심 꽃다바루...."
"하나!"
"정신을!"
"둘!"
"차리자!"
잘못들어왔데스.
엠마는 연습실 문을 조심스레 닫고 뒤로 돌았다.
"거기, 스톱."
"뎃?"
끼이이익─
소름 끼치는 소음을 내며 문이 열렸다.
미닫이문에서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날까.
"엠마, 지금 뭐하니?"
"헤헷."
빨간 모자를 쓰고 삐딱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양 사마.
문득, 걸스온탑 시절에 겪은 하드 트레이닝이 떠올랐다.
"와타시는 지금 오네쟝이 불러서!"
"네 언니 여깄어."
"뎃?"
엠마는 꽃다발을 들고 연습실에 들어와 엎어졌다.
다이애나는 없었다.
거짓맛쟁이 킷사마.
"이건 얼차려가 아니라 기초체력 훈련이다, 알겠나?"
"네에!"
"목소리 봐라."
"아아악─!!"
"남민지, 열외."
"오오오쓰."
민지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미군필 여고생은 달라."
"예 써!"
"자, 다들 편히 앉고. 지금부터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보겠다."
"아....?"
"남민지, 8번 자세."
"...."
아육대는 모두가 즐기는 축제 아닌가.
이렇게 전투적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
"제군들."
양쭈 멘토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아육대는 무조건 우리 스카이 엔터가 먹는 거야."
"네에."
"금메달 5개 못 따면 내년 설에도 훈련시켜줄게."
".... 잼깐만."
이러면 무조건 금메달 5개는 따야겠는데.
양주희는 한 명씩 맞춤 종목을 부여했다.
"올리비아는 60m 달리기."
"제가요?"
"폐활량이 제일 좋잖아. 할 수 있어."
"으음."
띠리리링─
그때, 양주희 멘토는 대표님께 전화를 받았다.
"나는 잠깐 나갔다올게."
"네에!"
주희가 사라지고, 이클립스 멤버들은 작전 타임을 가졌다.
"우리 어떡하지?"
"어떡하긴, 무조건 5개 따야지."
"금메달이 쉽냐고."
"...."
이내, 멤버들은 남민지를 빤히 바라봤다.
미국 해병대 갔다 왔으면 뭔 수가 있겠지.
"언니들, 사실 나는 관심 병사였어."
"...."
민지의 솔직한 고백에 디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방송은 편집빨인가."
"일단 각자 하나씩 금메달 따자고."
"오키도키."
그때, 권시연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나 그날 스케줄 있어서 아육대 빠지는데."
"아니, 그럼 왜 같이 얼차려 받은 거야."
"말할 타이밍을 놓쳤어."
".... 그냥 말하지."
"쉽지 않음."
그때, 한 선배님이 연습실 문이 열고 들어왔다.
루나에서 제일 잘 나가는 멤버.
회사에서 작곡가로 활동하시는.
"류시아 선배님?"
"애들아, 안녕."
선배님은 곤봉과 공, 리본을 들고 들어왔다.
그녀의 자태는 한 마리의 백조처럼 우아했다.
"이클립스가 5개 따라고는 안 했잖아."
"오, 대박."
이번 아육대 리듬체조 종목은 총 세 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