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To The Top(2)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미국에 진출한 지 몇 달 만에 솔라가 이렇게 성공할지.
예능 몇 편 찍고 순식간에 미국 팝스타로 급부상했다.
특히, 예지는 개막식 이후 완전 떡상했다.
원래 로이랜드로 인지도가 높은 편인데.
'이제는 뭐, 거의....'
단독으로 키아라와 견줄 만큼 성장했다.
연예가 한정 무적 치트키 똥촉 덕분에.
이제 솔라 멤버들 실력은 내 눈에도 거슬리지 않았지만.
새로운 곡이나 작품, 예능 프로는 계속 고를 수 있었다.
딸깍, 딸깍─
이내, 마우스로 너튜브 채널에 접속했다.
지유가 직접 올린 Losing Star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무려 2억 5,000만 뷰를 돌파했다.
똑, 똑─
그때, 구 팀장님이 노크하고 대표실에 들어왔다.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구 팀장님도요."
개막식 공연을 끝내고, 한시름 덜어냈다.
팀장님은 개운한 표정으로 서류를 건넸다.
"여기, 오늘까지 들어온 섭외 리스트 가져왔습니다."
"아, 그래요."
"저기, 캐시제이 콜라보는 어떻게 할까요?"
"메일 보냈어요. 천천히 연락하겠다고."
"네. 알겠습니다"
나는 구 팀장님이 가져온 스케줄 항목을 확인했다.
"레미쇼, 엘리스 파티, 힙붐."
"전부 1티어 토크쇼나 예능 프로입니다."
"...."
아쉽지만, 뒤통수 픽은 하나도 없었다.
1티어 토크쇼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애들이 주목받는 게 더 중요하지.
"구 팀장님, 은서 패션쇼 끝나고 팬 사인회 잡죠."
"미국에서 말씀이십니까?"
"두 번 하려고 합니다. 미국이랑 한국에서."
"아, 네. 알겠습니다."
앨범 판매 실적에 팬미팅 만큼 좋은 게 없었다.
일단, 빌보드 차트에는 앨범 판매도 포함이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솔라는 팬 사인회가 적은 편이라 팬들도 반가워할 터다.
"그리고 앞으로는 미국과 한국 활동을 병행할 겁니다."
"멤버 전원 말씀이십니까?"
"네. 애들이 한국 활동을 많이 그리워하더라고요."
"알겠습니다."
역배각 서는 작품이 있으면 미국과 한국을 가릴 이유가 없었다.
사실, 그 외 다른 나라의 일정도 마찬가지.
이미 월드 스타 반열에 한 발 걸쳤으니까.
"아, 대표님."
이내, 팀장님은 씨익 웃으며 내가 출연한 방송을 언급했다.
"오늘 생존 아일랜드 방송 나갔습니다."
"벌써요?"
"네. 베아 그럴스 너튜브 채널에는 이미 올라왔을 겁니다."
"시간 빠르네."
솔직히, 흥행 여부는 관심 없었다.
그냥 어떻게 편집했을지 궁금했다.
양주희, 신소미, 남민지랑 같이 거지꼴로 돌아다녔는데.
나중에 혼자 시간 내서 봐야지.
개인적으로는 민망한 방송이라.
팀장님이 나가고, 스마트폰으로 너튜브에 접속했다.
베아 형님의 5천만 채널에 올라온 영상을 확인했다.
"어우, 썸네일 끔찍하네."
채널 주인이 애벌레 씹어먹는 사진.
내친김에 댓글창을 슬쩍 확인했다.
-소미야, 꽃길만 걸으랬더니 무슨 길을 걷는 거야
ㄴ소미야, 그만 걷자
ㄴ이제 하고 싶은 거 다 하지 말고 물어보고 해
ㄴ코끼리 똥 분석 개웃기네 ㅋㅋㅋㅋ
ㄴ소미 사탕수수 빨아먹는 거 졸귀
ㄴ그 와중에 양주희 캐리 ㅋㅋㅋㅋㅋ
ㄴ걸그룹 맞냐곸ㅋㅋㅋㅋ
-정수호 매니저님 여기서 머하세여
ㄴ매니저 아니고 대표임
ㄴ와 근데 이러고 있음? ㄷㄷ
ㄴ프로 마인드
ㄴ심사위원님 방송 욕심 오짐 ㅋㅋㅋㅋㅋㅋ
ㄴㄹㅇㅋㅋㅋㅋㅋ
다른 영상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조회수.
애들이 열심히 하니까 방송도 윈윈했다.
띠리리링─
그때, 오랜만에 한국에서 부모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어머니."
-수호야, 밥은 잘 먹고 지내냐.
"그럼요. 자주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바쁠 텐데.
어머니께서는 전화한 용건이 있는 듯했다.
-요즘 만나는 여자는 없고?
".... 갑자기?"
-니가 서른을 넘긴 지가 언젠데.
"요즘 서른에 누가 결혼해요."
-잔말 말고, 미국에서 코쟁이라도 데려와라.
"...."
어무니, 그거 인종차별이에요.
-아무튼, 한국에 올 때 데려와라.
"제가 무슨."
뚝.
".... 끊으셨네?"
갑자기 만나는 여자를 어디서 구하냐.
누구한테 여친인 척 부탁이라도 할까.
똑, 똑─
그때, 대표실 문이 열리고 해맑은 미소로 들어오는 엄 양.
"지유야."
"네? 왜여."
지유는 집안끼리 아는 사이라 안 될 것 같다.
대충 상황을 설명하고 지인 소개를 부탁했다.
"내가 한번 아는 사람 찾아볼게."
"오키, 땡큐."
* * *
시간이 흘러,
어느새 지올의 여름-가을 시즌 패션쇼 위크가 다가왔다.
오늘로서 마지막 모델 워킹 수업을 받는 은서.
얼마 전에도 뒤통수가 간지럽긴 했단 말이지.
'.... 사쿠라 상이랑 전화했을 때.'
지금은 왜 그런 느낌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때랑 지금은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내, 모델 선생님께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내게 다가왔다.
"은서 씨, 정말 재능이 있군요."
"좋은 수업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호호."
어디 여성 잡지에서 본 것 같은 모델 센세.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얼굴은 익숙했다.
"이 정도면 엘린 언니랑 비교해도...."
"잠깐만."
살랑─
그녀가 누군가의 이름을 꺼내자마자 뒤통수에 바람이 불었다.
"선생님, 누구라고요?"
"엘린, 지올 전속 모델이요."
"아."
이내, 묘하게 굳어지는 은서의 표정.
"이번 쇼에 엘린 언니 대신 은서 씨가 피날레 무대에 오른다는 소문이...."
"...."
드디어 찾았다.
요즘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사라진 은서의 분조장.
한때, 내 뒤통수 담당 일진이었던 악마를 깨워줄 사람.
"엘린 씨가 그렇게 잘한다면서요?"
"네. 언니는 완전 천재예요."
"오, 기대된다."
"...."
꿈틀─
내 말이 은서의 자존심을 건드린 걸까.
눈썹을 삐딱하게 세우고 나를 째려봤다.
그래. 이 느낌이야.
저 전투적인 표정에서 드러나는 까칠한 눈빛.
은서는 짝다리로 서서 모델 선생님께 말했다.
"수업 좀 더 해요, 쌤."
"아, 그럴까요?"
"네!"
엘린이라는 모델과 경쟁 심리를 자극하니까.
은서의 마음속 깊은 분조장을 콕콕 건드렸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네!"
이전 수업보다 은서의 워킹에 자신감이 붙었다.
패션 고자인 내 눈에는 조금 과하다 싶었지만.
"엑셀런트! 좋은데요?"
"...."
모델 선생님 표정과 말투는 점점 더 밝아졌다.
동시에, 뒤통수에서 살살 느껴지는 간지러움.
'이 정도면 연예계 치트키 맞네.'
패션계에선 안 통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키우는 멤버한테는 다 먹히네.
수업을 마치고,
은서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방금 어땠어요?"
".... 잘하네."
완전 별로였어.
"뭐지, 방금 안쓰러운 표정 뭐에요."
"...."
장 폭스 눈치는 더럽게 빠르네.
"자자, 그럼 진짜로 수업을 마칠게요."
"아, 수고하셨습니다."
내일이면 곧장 비행기 타고 뉴욕으로 가야 했다.
아마 모델 선생님도 우리랑 같이 가면 될 텐데.
"대표님."
이내, 모델 선생님은 내게 다가와 슬쩍 어깨를 만졌다.
"혹시 오늘 시간 괜찮아요?"
"네?"
"오늘 저녁에...."
"선생님!"
그때, 은서가 눈을 반짝이며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놨다.
"저랑 저녁 먹기로 했잖아요."
".... 제가요?"
"네! 기억 안 나세요!?"
"???"
은서는 선생님의 팔짱을 끼고 연습실에서 사라졌다.
'뭐지.'
기분 탓인가, 은서가 블로킹했다.
방금 꼬심 당할 뻔한 거 같은데.
* * *
뉴욕의 유명 건축물, 메이킹 더 하우스.
어두운 저녁 시간대, 은은한 조명이 건물 안팎을 비췄다.
미국 내 수많은 셀럽이 패션쇼를 관람하러 모여들었다.
오늘 쇼의 메인 테마는 화합.
동양인, 백인, 흑인을 비롯한 다양한 모델이 대기실을 공유했다.
말 한마디 없이 적막이 흐르는 실내에 누군가 들어와 인사했다.
"반가워요, 여러분."
사쿠라의 등장과 함께 대기실 분위기에 생기가 돌았다.
"수석 디자이너, 사쿠라입니다!"
은서는 그녀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대표님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다고 주장한 스케줄.
믿고 맡겨주신 만큼, 반드시 결과로 증명하고 싶었다.
곧이어, 스탭들은 오늘 런칭할 의상과 장신구를 하나씩 가져왔다.
대기실을 가득 채우는 패션쇼 아이템.
은서는 자신이 입을 의상을 확인했다.
"은서 씨."
이내, 사쿠라 디자이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총 일곱 번 오르는데, 전부 중요한 패션이에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믿을게요."
여유부리는 시간도 지금뿐이었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촉박했으니.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사실, 모델 워킹은 연기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걸음걸이, 팔 동작, 표정, 눈빛, 자신감.
각각 연기에서도 중요한 요소였으니.
잠시 후, 대기실 바깥에서 사쿠라의 진행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세련된 음악이 흘러나오고.
오프닝 순서의 모델이 입구에 섰다.
'.... 엘린.'
이 바닥에서 구르고 구른 슈퍼모델.
처음부터 그녀를 신경 쓰진 않았다.
선생님께 그녀에 대한 뒷말을 듣기 전까지는.
걸그룹이 패션계를 더럽힌다고 무시했다던데.
'나만 욕하는 건 상관없지만....'
블루숄츠 선배를 비롯한 K팝 아이돌을 싸잡아서 무시했다.
"은서 양, 준비해요."
"알겠습니다."
이내,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다.
첫 걸그룹 데뷔 때를 떠올렸다.
루나 데뷔조와 비교하며 모두가 망할 거라고 예상했던 때.
솔라는 살아남았고, 누구보다 강해져서 이 자리에 서 있다.
터벅, 터벅─
한 걸음씩 내딛으며 런웨이를 걸었다.
눈부신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은 무대와 다를 게 없었다.
연기하듯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와, 오오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관객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거나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
그리고, 엄지를 들어 올리며 응원해주는 사람.
'정수호 대표님.'
모델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앞으로도 느낄 수 없을지 모르는.
'.... 깊은 빡침.'
모델 선생님은 그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은서는 설레는 마음 대신 분노를 키웠다.
'우리 대표님.'
예지 언니도 아니고 또 만들었어?
어디 못 가게 묶어둘 수도 없고....
'.... 나쁘지 않은데?'
* * *
모델이 런웨이 중에 관객을 째려봐도 되는 거 맞냐.
"은서가 자꾸 째려봐요."
"아하, 그건 지금 걸친 패션이랑 컨셉을 맞춘 거에요."
".... 알겠으니까."
"네헤?"
선생님의 느끼한 목소리는 귓가를 간지럽혔다.
"귀에 바람 불지 좀 마요."
"아, 쏴리."
"팔짱도 그만 좀 껴요."
"웁스, 습관."
"...."
쌤이 달라붙을 때마다 은서가 째려보는 것 같다니까.
"아, 그런 거였구나."
"네?"
모델 선생님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 인기 많으시네요."
"???"
뭐야, 뭔데.
"여기 앉으면 어느 모델이 흐름을 탔는지 알 수 있어요."
"관객 반응으로요."
"네. 지금은 압도적으로...."
역시, 앨런이 제일 인기 많구나.
"은서 씨가 분위기를 가져왔네요."
".... 아하."
"당연히 알고 계셨겠지만."
"...."
몰랐어요.
마지막 순서로 피날레 런웨이에 오른 앵그리 은서.
관객들은 최선을 다하는 모델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
.
.
.
.
그날 저녁.
은서와 함께 회사로 복귀하는 길.
공항에서 뉴스 기사를 확인했다.
[천재 디자이너와 천재 모델의 만남, 그들이 새롭게 해석한 패션 철학에....]
"은서야, 뉴스 떴어!"
"그래서요."
"...."
이거 혹시 메소드 연기인가 뭔가 그거냐.
아직 몰입에서 못 빠져나왔네.
워킹할 때부터 계속 화가 났어.
이내, 지유는 편의점에서 사온 간식을 들고 다가왔다.
"과자 먹으쎄용."
"나는 깐쵸."
"그래. 과자는 깐쵸지."
"미국에서도 파네."
"K-스낵."
그래도 은서 입에 뭐가 들어가니까 기분이 조금 풀어졌다.
"오빠, 내가 알아봤거든."
"뭐를."
"오빠 부모님 집에 소개해 드릴 여자친구."
"오, 그래?"
"근데 아직 못 찾았어."
"...."
순간, 은서는 눈을 크게 치켜뜨며 나를 바라봤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요."
부모님께서 데려오라고 하셨다니까.
은서는 설명을 차분하게 듣더니 말했다.
"그럼 제가 한번 찾아볼게요."
"...."
찾기 전에 꼭 확인해야 할 게 있어.
"은서야, 혹시 친구는 있고?"
"진짜 싸울래요?"
"아니야, 농담이야."
"농담 아닌 것 같은데."
".... 아무튼."
이제 패션쇼도 끝났으니까.
양국에 팬미팅 한 번쯤 갖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한국에선 스카이 엔터에 섭외 요청을 서로 넣고 있다던데.
띠리리링─
그때, 한국에서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서태성 프로듀서님.
요즘 그거 찍고 있나.
'.... 곧 망할 방송.'
「걸스 오퍼레이션」, 빅 3에서 제작하는 오디션 프로.
"여보세요. 오랜만입니다."
-정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이내, 서 프로듀서님은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냈다.
"다이애나가 한 팀 정도 프로듀싱 맡아달라는 거죠?"
-네. 괜찮으시면.
"글쎄요."
솔직히, 망할 방송이라 단칼에 거절하고 싶지만.
탑아이돌 때부터 도움도 받았고.
레드와인 쌤도 소개해 주셨으니.
'지뢰찾기 한번 해볼까.'
거의 100명에 가까운 연습생이 전부 문제아는 아닐 거 아냐.
"그럼 팀을 제가 먼저 고를게요."
-아, 인기팀은 이미....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
인기 많은 친구들은 전부 폭탄일 테니까.
오히려 최후에 웃는 건 비인기 멤버겠지.
"저는 비주류를 더 좋아합니다."
-에이, 농담도 잘하시네.
"...."
혹시 똥믈리에라고 들어보셨나요.
"농담 아닌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