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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40화 (140/200)

[140] 확장(3)

솔라의 미국행 기사는 각종 인터넷 포털을 도배했다.

앨범 활동, 스케줄, 향후 계획.

그 모든 게 기삿거리가 되었다.

국내 팬들 입장에선 아쉬우면서도 기대되는 행보일 터.

서광예고 신입생들은 잘나가는 선배를 무척 부러워했다.

"민지야, 너랑 소미 선배님 엄청 친한 거 아니었어?"

"그야, 둘도 없는 사이지."

"근데 표정이 왜 이렇게 밝아?"

"아 그랬나?"

남민지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친구에게 대답했다.

"선배님께서 큰 포부를 품고 미국에 가시는데 당연히 기쁘지."

"아, 그런가."

"당연하지."

처맞거나 얼차려를 당한 적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소미 멘토 앞에선 숨이 막혔다.

뱀 앞의 개구리처럼 꼼짝도 할 수 없는 일방적인 천적 관계.

'이제 곧 여름방학인데....'

학교도 안 가고 '인기' 연예계 라이프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개꿀."

"개꿀 같은 소리 하네."

"???"

그때, 담임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며 입을 열었다.

"자자, 우리 반에서 전교 꼴등이 나왔어요. 박수."

"와, 누가 꼴등이냐."

"너 말이야. 남민지, 니가 꼴등이야."

"오호."

"오 같은 소리 하네."

이내, 선생은 어이가 없는 듯 민지를 바라봤다.

"소미는 바쁜 와중에도 전교권에서 노는데 너는 왜 그러니?"

"아, 왜 비교를 하고 그러세요."

"요즘 공부 잘하는 연예인이 대세인 거 모르냐?"

"저는 일부러 안 하는 거예요."

"뭐야?"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안 되니까."

"...."

그래도 친구들은 남민지를 열심히 두둔했다.

"선생님, 이클립스 스케줄이 얼마나 많은데요!"

"맞아요. 엄청 바빠요!"

"공부 못할만도 하지."

".... 오."

민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친구들의 사랑을 즐겼다.

그런데, 꼴등 썰은 금세 누군가의 귓가에 들어갔다.

남민지 담당 일진은 소식을 듣고 그녀를 호출했다.

"소미 선배님, 미국 진출 축하드립니다!"

"너 꼴찌 했다며."

"이왕이면 뒤에서 1등이라고 말씀해주세요."

"이런."

소미는 삐딱한 자세로 막대사탕을 빨았다.

아이돌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우상이었다.

"너는 전교 꼴등이 누군가의 우상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선배님, 저는 일부러 공부 안 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개소리세요."

"썬배님!"

눈을 부릅뜨고 뚫린 입으로 지껄이는 남민지.

"저는 기성세대가 만든 학교라는 감옥에 저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습니다!"

"시끄럽고,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도 꼴등하고 있으면 두고 봐."

"왜, 왜요. 어쩌시려고."

"SNS에 니 성적표 공개할 거야."

"아, 왜 저한테만 그러세여."

"...."

너만 꼴찌니까요.

"나 꼴찌랑 말도 처음 섞어 봐."

"진짜 너무해요!"

"니가 더 너무하지. 전교 꼴등인데."

"힝."

소미는 대표님이 주신 「브레인」 예상 문제집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거의 논문 수준의 전문 지식도 있는 미친 시험 범위.

'공부'에 이렇게 진심을 다해보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평소에 웬만한 활자는 훑어보기만 해도 전부 암기할 자신이 있었지만.

'.... 책이 너무 두꺼워.'

이런 책을 네 권씩이나 외우라니.

사법고시 공부하는 학생도 아니고.

"나도 공부하느라 죽겠다."

"...."

최근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문제집만 달달 외웠다.

대표님 생일에 드린 소원권만 아니었으면 거절했을 텐데.

"선배님, 포기하면 편해여."

"너는 너무 편해."

"헤헤."

미국 갔다 왔는데 또 꼴찌 하기만 해봐라.

소미는 민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민지야, 잘 좀 허자."

".... 넹."

한편, 두 사람을 멀리서 지켜보는 신입생들의 눈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전교 꼴등이라고 위로해 주시는구나."

"소미님 스윗한 거 봐."

"와아, 나도 스카이 엔터 연습생으로 들어갈래."

"거기 엄청 빡세."

"그런가."

월드스타와 신입 걸그룹 멤버의 우정이라니.

드라마에서 볼 법한 아름다운 광경이 아닌가.

"민지는 진짜 부럽다."

"그건 인정."

* * *

매니지먼트에서 하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스케줄 관리, 계약이나 개런티 관리.

차량과 매니저, 오디션과 미팅 기회.

그중에서, '좋은' 작품이나 작업물을 선정하는 건 매니지먼트의 역할이 아니었다.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적어도 이 바닥에서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좋은' 작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거의 100%에 수렴하는 내 똥촉이 더욱더 반짝이는 게 아닐까.

'지금 연습생들은....'

어떤 작품에 대입해도 역배각이 서지 않았다.

"대표님, 정리했습니다."

"아, 네."

나는 구현식 팀장님이 가져온 연습생 명단을 확인했다.

"전부 방출입니까?"

"...."

미국에 가기 전, 한국에서 벌인 사업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특히, 아직 데뷔하지 못한 연습생들.

언제까지 희망 고문할 수는 없었다.

"이 중에 실력 있는 연습생들도 많습니다."

"네. 압니다."

지금 스카이 엔터가 키우는 걸그룹은 세 팀.

현재로서는 미국 진출까지 고려하는 마당에.

"연습생까지 관리할 여력이 없네요."

"알겠습니다."

"제 이름으로 다른 엔터에 추천서 작성해 주세요."

"네. 대표님."

회사에서 더이상 역배각에 걸리는 연습생은 없었다.

"당분간 신입보다는 기존 아티스트 케어만 집중하죠."

"네. 대표님."

"팀장님, 미국에서 잡은 미팅 날짜 확인하셨죠?"

"네. 다음 주요."

한때 인기 방송이었지만, 지금은 시들시들한 두뇌 서바이벌.

미국 내에서 인기는 많이 죽었지만.

덕분에, 역배각은 정말 제대로 섰다.

"날짜 맞춰서 애들 여권 모아주세요."

"알겠습니다."

멀어지는 구 팀장님을 확인하고, 서랍을 열었다.

검소한 예지는 명품 시계, 준재벌급인 은서는 낡은 팔찌.

뭔가 이미지가 바뀐 듯한 두 가지 선물을 빤히 바라봤다.

"그게 뭐예요?"

"아잇 깜짝이야."

이내, 내 옆에서 방실방실 웃으며 말을 거는 박아영 씨.

땡그란 안경을 쓰고, 한 손에 두꺼운 책을 들고 있었다.

"아영 씨, 패션이 바뀌었네요?"

"네. 이제 공부를 좀 해보려고요."

"공부요?"

그녀가 들고 있는 책 이름이 특이했다.

".... 제왕학?"

"네. 집에서 공부하라고 해서요."

"...."

박 대표님께서 회사 물려주시려나.

"미국에 따라갈 수 있겠어요?"

"그럼요. 그래서 유학도 갔다 왔는걸요."

"다행이네."

조유미 씨도 실력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배각 뜨는 코디는 진짜 찾기 어렵거든.

"대표님, 근데 미국에서 다닐 헤어랑 메이크업 샵은 찾았어요?"

"몇 군데 알아보긴 했어요."

"아하."

한국에서 지방 내려갈 때면 차로 이동하지만.

미국에선 비행기로 이동하는 게 기본이었다.

"일단 미국에 건너가서 알아봐야죠."

뒤통수가 간지러운지, 내 취향에는 '안' 맞는지.

"사실, 제가 아는 스튜디오가 있거든요."

"아, 그래요?"

"저만큼 실력이 좋아요!"

"...."

그럼 역배각이라는 뜻인데요.

개인적으로 불호라는 뜻이고.

"일단 번호 남겨주세요."

"좋아요!"

띠리리링─

그때, 방 마담께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게 진심으로 미국 진출을 제안하신 분.

"여보세요. 할머니."

-LA에서 임대 건물 한 채 구했네.

"...."

건물 한 채 구하는 게 그렇게 쉽나요.

-왜 말이 없어?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투자하는 건데.

"아, 네."

투자를 받았으면 결과로 증명하는 게 맞겠지.

투자는 하되,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 분이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뚝.

전화를 끊고, 곧바로 미국행 티켓을 알아봤다.

'첫 번째 스케줄은....'

「브레인」 왕중왕전.

두뇌 서바이벌이었다.

* * *

일주일 뒤.

나는 약속 시간에 맞춰 LA의 RSB 음반 제작사에 방문했다.

모든 게 낯선 환경이지만, 자연스럽게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핀 브라운 씨, 또 뵙네요."

"오, 정수호 대표님!"

오랜만에 보고 반갑게 나를 맞이하는 핀 브라운.

주변에 있는 직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그만큼 손님을 보며 반가워하는 경우가 없다는 뜻일까.

"일단 안으로 드시죠."

"좋습니다."

아직 솔라 멤버들은 입국하기 전.

외국인으로서 매니지먼트 사업이 쉽지는 않았지만.

"핀 브라운 씨, 도와주신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리네요."

"친구끼리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아, 네. 그렇죠."

이미 음반 제작과 유통 준비를 전부 마친 상태였다.

뮤직비디오 스튜디오도 마련했지만.

마케팅과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음악을 알릴 창구가 필요했으니.

"브레인 출연 소식은 들었습니다."

"아, 그래요?"

"왕중완전이면 출연자가 100명쯤 될 겁니다. 천재들로만."

"와우."

생각보다 훨씬 많네.

"그중에서 화면에 길게 잡히는 사람은 극소수에요."

".... 나머진 묻히겠네요."

"그렇죠."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소미가 굉장히 열심히 따라줘서 다행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똑똑한 친구니까.

"정 대표님, 그 소식 들었습니까? 브레인에 출연하는 연예인."

"아, 솔라 말고 연예인이 또 있어요?"

"네. 키아라."

".... 코첼라 무대에 같이 오른?"

"맞습니다."

학벌도 좋고, 음악도 잘하는 대표적인 미국식 엄친딸.

실력보다는 곡이나 이미지 메이킹으로 더 유명했다.

"키아라는 브레인에서 솔라만 저격할 겁니다."

"왜요?"

"질투하고 있거든요."

"...."

마음이 좁쌀 같은 사람.

코첼라 무대에서 키아라는 묻혔고, 솔라는 인지도가 생겼다.

그때 일로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을 줄은 당연히 몰랐지만.

"키아라도 요즘에는 폼이 많이 죽었던데요."

"네. 매니지먼트를 바꾼 이후로."

"아, 그래요?"

어쩐지, 요즘 관리를 안 하더라고.

최근에 나온 곡도 예전 같지 않고.

"최근에 톰이랑 연애한다는 찌라시도 돌고 있습니다. 로이랜드 남자주인공."

"아, 그 사람!"

예지한테 고백 공격한 헐리웃 배우.

모르고 있으면 눈탱이 맞을 뻔했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이내, 핀 브라운은 조금 씁쓸한 듯 아쉬운 어조로 말했다.

"키아라를 키운 프로듀서, 자취를 감췄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네. 반드시 포섭하고 싶었는데."

"...."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그 친구, 음반 프로듀싱은 오히려 저보다도 뛰어날 겁니다."

"그 정도예요?"

"네. 음악 천재형이라. 아마 재능은 도하나 프로듀서랑 비슷할 겁니다."

"...."

핀 브라운보다 음반 제작을 잘하는 사람이라.

혹시 그 사람을 만나면 뒤통수가 간지러울까.

"누군지 궁금하네요."

"열심히 찾고 있으니까, 찾으면 말씀드리죠. 하하하."

"네. 좋아요."

이내, 핀 브라운은 분위기를 환기하며 주제를 바꿨다.

"일단 뮤직비디오 촬영장 보러 가시죠."

"오후에 브레인 제작진과 미팅이 있어서요."

"그럼 빨리 가야겠군요."

"네. 그러시죠."

움직이는 동안에도 계속 키아라에 대한 소식을 떠올렸다.

'이 쉑, 누굴 엿 먹이려고.'

「브레인」의 진행 방식은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었다.

공격을 받으면 언젠가는 떨어지는 구조.

그래서 두뇌만큼 정치 실력도 중요했다.

'소미랑 연습해야겠네.'

* * *

「브레인」의 참가자들은 전부 1,000달러를 들고 시작한다.

왕중왕전이었으니 대부분 결승에 오른 출연자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참가자들도 몇 명쯤은 있었다.

미국의 팝스타 키아라, 그리고 걸스온탑의 멘토인 예지와 소미.

특히, 한국 출신 연예인이 출연한 케이스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너무 빨리 왔나."

작년 왕중왕전 우승자 스티븐은 잔뜩 긴장한 채 스튜디오에 입장했다.

로이랜드의 서브 여주와 함께 출연하는 TV 프로그램.

인생 영화의 주인공을 실제로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우승 상금 10만 달러도 전혀 감흥이 없었다.

그저 예지 님을 만날 생각으로 한껏 들떴는데.

"스티븐 씨."

"???"

그때,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캐피탈 매니지먼트에서 나왔습니다."

"...."

최근 미국 연예계에서 급속도로 성장하는 소속사.

굳이 스카이 엔터를 견제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키아라와 팀을 이루자는 제안.

솔직히 별로 감흥은 없었지만.

'.... 솔라?'

예지님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없던 관심이 생겨버렸다.

"솔라를 엿먹이고 싶다고요."

"네. 브레인 왕중왕전에 동양인이 설쳐도 되겠습니까? 우리 밥그릇은 지켜야죠."

".... 저한테 뭐 해주실 건데요?"

"너튜브 채널 운영하고 계시죠?"

"흐음."

스티븐은 관심 있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키아라 씨 SNS로 홍보해 드리겠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인생 영화의 주인공을 건드리려는 악당놈.

스티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봤다.

"계획이 어떻게 되는데요?"

"아하, 그건...."

한편, 같은 시각.

예지와 소미는 미국의 방송국의 거대한 스케일에 입을 벌렸다.

"와아, 스튜디오 엄청 크네."

"그러게."

미국의 새로운 샵에서 예쁘게 치장한 두 소녀.

예지는 소미의 손을 붙잡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대표님이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셨어."

"좀만 더 구경하고 올래."

"안 돼."

미국에서 새로운 샵을 구하는 과정도 일사천리였다.

박아영 언니의 지인이 운영하는 「가챠 뷰티」.

대표님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그곳과 계약했다.

'이름이 조금 이상하지만....'

대표님을 믿으니까.

이내, 예지는 스탭의 안내를 받고 세트장으로 이동했다.

천재들이 모인 곳에 자신이 있어도 되나 고민이 됐는데.

"언니, 내가 캐리할게. 걱정하지 마."

"아, 으음."

"저기 슈퍼스타 오셨네."

".... 키아라."

올해 4월 코첼라 무대에서 한 번 마주친 팝가수.

대표님은 특별히 그녀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아, 저분 옆에는...."

"스티븐, 강력한 우승 후보야."

"...."

벌써부터 팀을 구성한 건가.

정치도 게임의 일부라더니.

그때, 키아라의 옆에 있던 스티븐은 자신에게 윙크를 날렸다.

"저 사람 뭐지."

"캣콜링이야. 무시해."

"방송국에서!?"

"미국이잖아."

"...."

역시, 미국은 무서운 나라였구나.

빨리 촬영 끝내고 돌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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