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30화 (130/200)

[130] 새 출발(4)

스카이 엔터 작업실.

다이애나는 신인 그룹의 편곡을 진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친동생이 속한 그룹이니까.

역시, 정수호 대표님이 직접 가져온 곡이라 그런가.

세 곡 모두 멜로디가 깔끔해서 작업하긴 좋았지만.

"흐음...."

큐앤지에서 분리한 이후, 거의 모든 편곡을 혼자 도맡았으니.

'나 혼자는 좀 버거운데.'

류시아, 한지아 같은 탑 라이너는 여럿 있는데.

자신 같은 비트 메이커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

혼자 모든 트랙을 작곡할 수는 없었다.

슬슬 솔라 컴백도 준비해야 하지 않나.

일단, 채용 사이트에 공고 올려놨다고 들었으니 기다려봐야지.

띠리리링─

그때, 지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보통 작업 중에 연락을 안 하는데.

"여보세요?"

-다이애나,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

"응, 푹 잤어! 지금 개운해."

-다행이다.

"???"

지유는 조금 민망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다이애나, 지금 급하게 스케줄 잡혔어.

"아, 그래?"

-응. 소미랑 주희 언니도 같이.

"???"

솔라 멤버 중 세 명이면 상당히 큰 건인가 보네.

무슨 또 페스티벌 잡으신 건가.

배우님덜 빼고 3인 행사팟이나.

요즘 개강 초라 대학 축제 시즌이기도 하니까.

"내가 솔로곡 하나씩 준비할까? 헤헤."

-아니, 그냥 여권만 준비하면 돼!

".... 여권?"

-아니다. 나한테 있으니까 그냥 몸만 와!

"오키."

이거, 해외 콘서트인가 보네.

-얼른 나와! 대표님 기다리셔!

"알겠옹."

뚝.

다이애나는 전화를 끊고, 기지개를 활짝 펼쳤다.

"하암, 새 작곡가님은 언제 오시려나."

괜찮은 프로듀서 한 명만 왔으면 좋겠네.

뭐, 세계적인 수준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적당히 나 정도? 헤헤."

잠시 후, SBC 방송국 미팅룸.

다이애나는 영문도 모른 채 작가에게 안전 수칙을 들었다.

"???"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었다.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전갈이랑 독사는 진짜 위험하니까 만지면 안 돼요."

"예?"

제가 전갈이랑 독사를 왜 만져요.

"그래도 아나콘다는 생각보다 공격적이지 않거든요. 건드리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아니, 그니까."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누가 아나콘다를 건드려요.

드르륵─

이내, 미팅룸에 들어오는 소미와 주희 언니.

그녀들의 썩은 표정을 보고 나서 깨달았다.

"와, 정글 멤버가 전부 모였네요! 하하하."

"아...."

이거 한국 속담으로 뭐라고 하더라.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 말하던데.

시봉창.

소처럼 일했는데 정글에 보내는 건 너무하지 않소.

사내 유일한 프로듀서를 너무 막 대하는 거 아니오.

"멤버분들, 여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시놉 가져올게요!"

"네에."

작가님이 사라지고, 소미는 한숨을 뱉으며 말을 꺼냈다.

정글 사태의 책임자.

걱정이 많은 듯했다.

"정글 가도 머리는 감을 수 있는 거야?"

"소미야."

다이애나는 나직하게 팩트를 전달했다.

"너는 원래 가끔 머리 안 감잖아."

".... 이틀에 한 번은 감아."

"매일 감아야지."

"예아."

드르륵─

그때, 작가님은 다시 미팅룸에 들어와 입을 열었다.

"멤버분들, 대표님께 소식 들으셨죠?"

"네? 무슨 소식이요?"

"정글에 직접 따라가시는 거요."

"우리 대표님이요? 정수호 대표님?"

"네. 못 들으셨어요?"

"...."

연예인 못지않게 스탭들도 고생하는 방송이었다.

대표님이 직접 따라올 거로 생각지도 못했는데.

"세 명이나 가니까 직접 케어해야 한다고...."

"아."

이런 게 사랑받는 연예인의 삶인가.

대표가 됐지만, 로드 때와 똑같구나.

예지 언니가 왜 그렇게 대표님을 잘 따르는지 알 것 같다.

세 멤버들은 서로 감동한 얼굴을 숨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이 참, 나 때문에 따라가시나 보네."

"무슨 말이야?"

소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막내잖아. 어떻게 혼자 보내겠어?"

"...."

다이애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하나는 우리 회사 유일한 프로듀서예요."

"근데?"

"얼마나 소중하겠어? 나 같아도 업어 키우지."

"...."

한편, 양주희는 시니컬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작가님, 그 액션배우도 출연하는 건가요?"

"아, 최성락 배우님?"

"네. 그분."

"그럼요! 고정이니까요!"

"음."

방송국 뒤쪽에서 넷째 삼촌을 대놓고 무시했던 사람.

국가대표를 무시할 만큼 대단한 탑스타는 아니었다.

"최 배우님, 우리 정글에서 두 번째 에이스거든요!"

"아, 그래요?"

"식량 구하는 실력은 예술이에요!"

"...."

걸그룹 멤버보다 못하면 실직하실 수도 있겠네.

주희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투지를 불태웠다.

"재밌겠는데요. 정글."

* * *

아마존 출국 D-7.

제작발표회도 마쳤으니, 이제 체념 단계에 들어갔다.

솔직히, 똥촉이고 뭐고 한 번쯤 스킵할 수도 있지만.

"후우.... 그래도 가야지."

나는 솔라가 데뷔할 때 스스로 했던 다짐을 잊지 않았다.

역배각은 반드시 따르기로 했지.

한 번 거르면 계속 쉬고 싶을걸.

"오빠, 여기 대본 들어온 거."

"어, 고맙다."

지유에게 대본을 건네받고 입을 열었다.

"이수연, 진세은 배우님 앞에 들어온 작품이지?"

"응. 맞아."

당분간 예지와 은서는 각종 영화제 스케줄이 잡혀 있으니까.

"6월에 백상예술대상 있는 거 확인하고."

"응. 아영 언니가 의상 준비하고 있어."

"그래."

그러고 보니, 6월에 박 본부장님 결혼식도 있지 않나.

'내 생일도....'

아무튼, 정글 가기 전에 끝낼 건 끝내야 하니까.

"내가 작품 한 번씩 읽어보고 몇 개 추려볼게."

"응. 근데 이클립스 데뷔는 언제쯤 생각 중이야?"

"아, 이클립스."

일단 세 곡 주고 연습시키고 있긴 한데.

아직 똥촉이 강하게 온 곡은 못 찾았다.

"아직 타이틀곡 못 정했으니까 준비한 곡만 연습시켜."

"알겠어."

나는 멀어지려는 지유를 붙잡고 한 마디 덧붙였다.

"지금 신입으로 지원하는 사람 많아?"

"솔라 덕분에 많이 지원했지."

"그럼 작곡가나 안무가, 트레이너는 나한테 맡겨. 내가 면접 볼 거야."

"아, 서류에서 거르지 말라고?"

"그냥 적당히만 걸러."

"적당히가 제일 어려운 건데."

"알잘딱깔센."

"예예."

인사, 홍보 쪽은 몰라도 예술 계통은 직접 뽑는 게 좋았다.

특히, 다이애나는 프로듀서 한 명이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후우...."

멀어지는 지유를 확인하고, 사무실을 천천히 둘러봤다.

박철민 본부장님, 진영호 실장님, 구현식 팀장님.

그외 함께 따라온 직원이 한 공간에 전부 보였다.

굉장히 넓은 사무실에 루나 멤버들도 한 번씩 시야에 보였다.

수평적인 근무 환경은 좋은데, 사생활 보장이 없는 게 흠이었다.

'뒤통수 하나로 멀리도 왔네.'

이러니까 내가 군말 없이 정글도 가지.

띠링─

그때, 은서 할머니께서 내게 톡을 보냈다.

[정 대표, 잠깐 시간 되나?]

투자와 관련된 내용일 터,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왠 일이시래."

이내, 지유가 놓고 간 대본을 확인했다.

우선, 이수연 배우님 앞에 들어온 작품.

김찬호 감독님, 「왕의 품격」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대체역사물.

수연 씨에게 맞는 작품인지 모르겠지만.

'딱히 느낌이 안 오는데.'

개인적인 의견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렇다고 망할 것 같다는 건 아니었다.

그냥 뒤통수에서 반응이 없을 뿐이었다.

감독님 이름값도 있으니, 크게 성공할 수도 있겠지.

촤라락─

그보다는 오히려, 진세은 배우 앞에 들어온 작품.

재미도 없고 취향도 벗어났는데 제목은 심각했다.

"악마가 되었다.... 제목 실화냐."

범죄 액션 느와르.

장르부터 감독까지 아쉬운 구석이 넘쳐났지만.

'똥촉 왔다....!'

간지럽다 못해 따끔거리는 뒷목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번에도 섹시 컨셉이라는 건데.

"이건 무조건 해야지."

아무리 거절해도 무조건 설득해서 출연시키는 게 정답이었다.

문득, 묘한 호승심이 고개를 내밀었다.

똥촉이 거장 감독님을 이길 수 있을지.

국제영화제에 마실 나가는 감독님 작품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 작품이 그렇게 괜찮나?"

"네?"

그때, 뒤쪽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방 마담님.

"아, 할머니. 오셨어요?"

"내가 잠깐 봐도 될까?"

"아, 넵!"

할머니는 눈빛을 번뜩이며 시놉과 콘티를 확인했다.

한동안 작품에 집중하는가 싶더니 슬쩍 입을 열었다.

"역시, 정 대표야."

"네?"

"보석 같은 작품이구먼. 디테일이 살아있어."

"...."

그 정도라고?

"시나리오에 공을 많이 들였네."

"네?"

"사이코패스랑 조폭의 대결 장면 말이야, 이거 미국에서도 먹히는 소재거든."

"...."

처음 들어보는데요.

"과연, 자네 눈썰미 하나는 알아줘야 해."

".... 감사합니다."

방 마담은 근처 의자에 앉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자네, 회사 상장은 생각 없는 건가?"

"아, 네. 아직이요."

주주들 의견에 휘둘리면 내 뜻대로 키울 수가 없었다.

"알고 있겠지만, 은서 때문에 투자한 건 아니야."

"네. 할머니."

프렌즈와 드림 에이전시에서 공동 투자한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도 그쪽에서 여배우나 걸그룹 제작을 의탁할 테니.

"자네는 잘할 거라고 믿네."

"넵. 감사합니다."

"이제 곧 정글 떠난다며."

"네. 할머니."

"고생 길이 훤하누."

"...."

방 마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슬쩍 질문을 건넸다.

"회사에 중고차 하나 알아본다고 하더만."

"아, 네. 지유가...."

"차는 전문가가 봐야지."

"전문가요?"

할머니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 * *

지유는 시뻘건 스포츠카 보조석에 얌전히 앉았다.

방 마담에 대한 전설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아버지께서 투자 회사를 설립하기도 전부터 이 바닥에서 유명하셨으니.

"안전벨트 안 하고 뭐 하나?"

"아, 네!"

은서 언니 외할머니께서 그 전설의 방 마담이었을 줄이야.

처음 들었을 때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깜짝 놀랐는데.

"저기, 우리 어디 가요?"

"차 보러 가지."

"아, 법카 가져왔어요!"

"그래?"

이내, 두 사람은 대형 중고차 매장에 들어섰다.

"어떻게 오셨어요?"

"경차 보러 왔어요!"

"???"

이내, 방 마담은 눈쌀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경차라니."

"아, 톨비도 싸고 할인도 많고...."

"연예인이랑 같이 안 탈 거야?"

".... 네?"

직원들 전용차니까 저렴한 차를 알아봤는데.

"가끔씩 아티스트랑 같이 탈 수도 있어요."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

사고 나면 연예인 말고 직원도 아파요.

"그, 그럼 적당히 준중형차로 갈까요?"

"당연히 풀옵이겠지?"

"넵. 그럼 K 시리즈로...."

"잠깐."

방 마담은 중고차 딜러를 막아서고 계속 끼어들었다.

"K 시리즈 이미지가 좀 양산이란 말이지."

"아, 그래요?"

"풀옵 가격에 500 보태서 세단으로 가자."

"네? 그건 너무 비싸요!"

"우리 은서가 양산차에서 내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그래요."

"아, 음.... 오케이!"

지유는 큰마음 먹고 지오시스 제품을 알아봤다.

"근데 이거 검은색밖에 없나 봐."

"네?"

"이거 봐, 재고가 없잖아. 검정색 안 예쁜데."

".... 그럼 그냥 K 시리즈로."

"역시 차는 벤─쓰지."

"아니."

선생님, 벤쓰 사면 저 진짜 혼나요.

"근데 이럴 거면...."

"또 왜요."

"5천 더 보태서 뽀르쉐 한 대 살까?"

"아, 할모니."

"1억 더 보태서 벤를리로 가자. 아니, 3억만 보내면 람보리가니 우뢰칸도 살 텐데."

".... 벤쓰로 갈게요."

"그래. 소소하게 벤쓰도 좋지."

"...."

엄지유는 한숨을 푹 내쉬고 법인 카드를 집어넣었다.

사실 중소 엔터에선 흔한 일이었다.

자기 차로 회사 업무를 보는 일도.

"그냥 제 카드로 자가용 살게요."

"오, 돈 많네."

".... 오빠 카드에요."

"오빠?"

대판 싸우고 이긴 전리품.

오늘도 2차전 예약이었다.

띠리리링─

카드를 긁자마자 엄마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유야, 이거 꿈인가?

"니 카드 쩔더라."

-?????

홍삼 스틱 사준 거 갚은 셈 치자.

-야, 이런 개....

뚝.

지유는 실수로 전화를 끊고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끊어졌네."

"남매간에 우애가 깊은가벼. 차도 사주고."

"네! 헤헤."

* * *

며칠 뒤.

출국 날짜에 맞춰 「정글」 제작진이 모여들었다.

김병수는 리더답게 출연진을 한 명씩 확인했다.

"우리 태양님들이 아직 안 오셨네?"

"연락받았습니다. 근처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크으, 서 피디 섭외 실력은 진짜 최고야."

"섭외 실력이라기보다는...."

언감생심, 솔라 출연 제의를 먼저 했을 리가 있나.

"정수호 대표님께서 직접 연락해주셨거든요."

"오, 그 심사위원...."

정글에도 가끔 톱스타가 방문하기는 했다.

배우나 아이돌이 홍보하러 오기도 했지만.

'솔라 정도면....'

모든 정글 출연자를 통틀어 최고 티어의 셀럽.

왜 하필이면 빡센 아마존 촬영 때 출연했을까.

'내가 많이 챙겨야겠네.'

옆에서 최성락 배우는 팔짱을 낀 채로 투덜거렸다.

"형님, 초반에 군기 잡죠."

".... 뭐?"

"정글 가면 다 똑같은 사람인데. 스타병은 조기에 치료해야...."

"뒤질래?"

가끔 이 친구 머리에 뭐가 들었나 궁금했다.

"우리 방송 이번 시즌으로 접고 싶냐?"

"아, 아뇨."

"스타병이 아니라 스타야! 슈퍼스타!"

"아, 저도 알죠."

"너 싸가지 안 챙기면 뒤진다."

"...."

그때, 스탭 한 명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솔라 멤버분들 오십니다!"

기존 정글 패밀리는 멀리서 후광이 비치는 세 여신을 바라봤다.

"와, 눈이 부시네."

"등 뒤에 누가 조명 틀었나."

"햇빛입니다."

"아무튼!"

소미는 냉큼 달려와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아효, 반가워요."

제작발표회 이후 두 번째 만남이지만 적응이 안 됐다.

이내, 솔라 멤버들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에 유명한 천재 프로듀서 정수호까지.

코첼라 이후, 대중은 솔라를 블루숄츠와 동급으로 생각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 와중에, 최성락 앞에서 우뚝 멈친 양주희.

"또 보네요."

"응? 제작발표회 때 이미 봤잖아."

"아뇨."

양주희는 피식 웃으며 그의 앞에 섰다.

"저 기억 안 나요?"

스탭들이 듣지 못하도록 조용히 말하는 주희.

김병수는 그녀의 조그마한 입술에 집중했다.

"진짜 기억 못 하시네."

"내가?"

"역시, 피해자만 기억하구나."

"???"

주희는 씨익 웃으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정글에서 열심히 하세요. 쓸모없어지면 안 되니까요."

"...."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오한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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