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28화 (128/200)

[128] 새 출발(2)

코첼라 무대를 하루 앞두고,

예지는 너튜브에 올라온 블루숄츠 무대를 감상했다.

코첼라 축제에서 레전드 무대를 갱신한 선배님들.

관객들의 엄청난 함성과 열기는 실로 압도적이었다.

"와아, 진짜 잘하네."

"언니!"

"아, 소미야."

어느새 옆에 다가온 소미가 슬쩍 말을 걸었다.

"그거 보고 있구나."

"아, 응."

"걸스온탑하면서 썸머님이랑 많이 친해졌어."

"응. 대단하시지."

장르는 많이 달랐지만, 주희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브레이킹을 제외하면 오히려 주희보다 우위에 있겠지.

"우리도 드디어 내일이네."

"으음, 떨린다."

"우리 열심히 했잖아."

"응. 그치."

데뷔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한 꿈의 무대.

그것도 게스트나 스테이지 무대가 아니라.

'서브 헤드라이너....!'

솔라 멤버들 중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데뷔 2년 만에 그런 무대에 오를 거라고.

매번 무슨 마법을 부리는지 모르겠지만, 정 실장님이니까.

연예계에서 보여주는 그 수완이나 안목은 거의 완벽했다.

"소미야, 우리는 은혜를 입은 거야."

"나도 알아."

"그러니까 재계약 조건 동결한다고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아이 참, 내가 어린이도 아니고."

"...."

고등학교 2학년이면 어린아이 맞아.

"새 회사에서도 실장님 말씀 잘 들어야 해."

"언니도 나처럼 군대랑 정글 가면 생각이 달라질걸."

"...."

그건 참 유감이야.

"으음, 나, 나도 보내시면 가야지!"

"정말?"

"주희야, 너도 그렇지?"

"엉?"

옆에서 맨몸운동을 하던 주희는 고개를 돌렸다.

"모가?"

"...."

요즘 주희 몸에 근육이 너무 붙었다.

"주희야, 근육 좀 빼자."

"아까운데."

"...."

아까운 게 아니라 과하다니까.

최근 큐앤지에서는 몸매를 간섭하지 않았다.

이제 곧 다른 회사로 옮긴다고 생각한 건지.

"이제 실장님도 대표가 되실 텐데. 우리가 알아서 잘해야지."

"흐음, 그럼 좀 줄일게."

".... 조금 말고 많이."

정 실장님 성격에 모진 말을 못하시니까.

"언니, 그러다 나랑 같이 정글 갈 수도 있어."

"내가? 설마."

소미는 씨익 웃으면서 주희의 어깨를 꾹꾹 눌렀다.

"정글 가서 근육 좀 빼고 오라고."

"에이, 무슨 그런 이유로 보내시겠냐."

"그건 모르징."

"...."

주희 피지컬이면 정글에서도 혼자 살아남을 것 같다.

그냥 인간 자체가 강하니까.

숨만 쉬어도 근육이 붙잖아.

"근데 은서는 어디 갔어?"

"응? 그러네."

이내, 예지는 숙소를 두리번거리며 은서를 찾았다.

다이애나는 엠마랑 전화하다 잠에 빠져들었는데.

"전화 한번 해볼까?"

"내가 할게."

뚜루루루─

수화기 너머, 은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은서야, 내일 무대 오르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지금 호텔 수영장.

"아, 음...."

언제부터였을까.

제주도 여행 이후였나.

특별히 싸우거나 감정이 상하는 일도 없었는데.

최근들어 은서의 분위기가 살짝 달라졌다.

이전과 달리 먼저 말 거는 일도 거의 없고.

"은서야,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응? 없는데.

"아, 그냥 힘든 일이 있나 해서."

-언니, 혹시 실....

"응?"

은서는 조금 망설이더니 하려던 말을 접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뭔데 그래?"

-그냥. 하려던 말을 까먹었네.

"...."

불만이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줘야 알 거 아니냐.

오늘은 못 참겠다.

한마디 해야겠어.

"아잉, 빨리 들어와아. 제바류."

-알겠어.

오늘만 참는다.

어제도 참았지만.

* * *

다음 날.

드디어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의 세 번째 아침이 밝았다.

헤어와 스타일링, 메이크업하는 솔라 멤버들을 확인했다.

'예지랑 은서 비주얼 장난 아니네.'

역시, 여배우상이야.

다른 걸그룹 센터와 비교해도 비주얼은 넘사벽이었다.

실제로도 국내 걸그룹 멤버 중 연기로 가장 성공했고.

"오빠, 뉴스 떴어."

"무슨 뉴스."

나는 지유가 건네는 태블릿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스카이 엔터테인먼트는 프렌즈와 드림 에이전시에서 공동 투자 기업으로 솔라와 루나, 이클립스와 탑급 여배우를....]

뉴스를 보니까 실감 났다.

준비할 게 많았을 텐데, 박철민 본부장님께 맡겨서 죄송했다.

그래도 새 출발 하는데 코첼라 무대는 중요한 기점이 아닐까.

"지유야, 텀블 인베스트먼트에서도 투자한다고 하더라."

"우리 아부지 회사?"

"응. 재하가 추진했다."

"잘했네."

방 마담님 개인 투자도 어마어마했으니까.

그동안 쌓은 인맥이 빛을 발한 기분이다.

"오빠, 나 오늘 가볼 데가 있어."

"어디?"

"태양빛 카페지기, 드디어 미끼를 물었거든."

"...."

엄재하, 이제는 걸리려나.

"엄지유라고 하면 계속 피하더라고. 그래서 다른 매니저라고 구라침."

"그 친구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마."

"뭐야, 친해?"

"그냥 자주 봤으니까."

"오케이. 걱정하지 마. 일단 면상만 볼 거니까."

".... 면상을 갈기진 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태블릿을 쳐다봤다.

'.... 뭐냐, 이 기사는.'

이내, 바로 옆에 있는 다른 뉴스를 확인했는데.

아무래도, 캐피탈 매니지먼트에서 흘린 듯했다.

오늘 메인 헤드라이너 무대에 오르는 키아라의 소속사였다.

'본인 가수를 띄우는 건 좋지만....'

이 바닥에도 상도덕이라는 게 있지.

은근히 솔라를 내려치네. 양심 없나.

"지유야, 너도 이 기사 봤어?"

"뭐를?"

지유는 뉴스를 확인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 이거 어제 봤는데. 나쁜 놈들."

"됐다, 어차피 가수는 무대로 증명하는 거잖아."

"그건 맞지."

내 마이너 취향과 뒤통수가 만나면 반드시 성공한다.

역배각은 위대하다.

뒤통수는 과학이니까.

나는 멤버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애들한테 보여주지 마. 괜히 마음 불편하게."

"언니들도 벌써 봤어."

"....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오빠는 솔라 멤버들이 엄청 약한 줄 알아."

"그런가."

"응. 다들 외유내강이야."

"너는 어때?"

지유는 허리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나도 강...."

"정글 갔다 와."

".... 허접임."

"아니야, 너는 강해."

"개허접임."

어쩌라고, 그럼 대표인 내가 가겠냐.

"오빠가 SBC 미팅도 다시 한다며. 다시 생각해 보자."

"그래. 그럼."

양주희는 보낼지 말지 고민했는데.

'.... 보내야겠네.'

미안하지만, 똥촉이 왔다.

나도 진짜 보내기 싫은데 보낸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주희랑 소미, 두 사람 다 뒤통수 픽이라 어쩔 수 없으니까.

"실장님, 코디 준비 끝났어요!"

"수고했어."

이내, 화려한 헤메코로 무장한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순한 느낌보다는 센 언니 이미지.

락 편곡에 맞춰 화장을 진하게 했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때, 바깥에서 어마어마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순서 아티스트의 순서가 다가온 모양이었다.

"헬게이트, 앞으로 1시간 안에 우리 순서야."

"준비 끝났어요."

"잘하고 와."

"당연하죠."

예지는 맑은 눈빛을 반짝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카이 엔터, 솔라의 첫 번째 무대니까요."

".... 살아있네."

멤버들을 한 명씩 둘러보며 표정을 확인했다.

"그럼 나가볼까?"

"네!"

블루숄츠는 모르겠고.

키아라는 실력으로 좀 눌러줬으면 좋겠다.

다음 무대에 오르기 전에 긴장 좀 하라고.

* * *

코첼라 스테이지(Coachella Stage).

이번 축제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이들에게 허락되는 최대 규모의 무대였다.

광고 포스터에 커다랗게 이름을 받아 넣는 헤드라이너들.

그들은 메이저 저녁 타임대 2시간을 가득 채워 공연한다.

-와아아아아아아─!!!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취한 채 음주 가무를 즐기는 관객들.

헬게이트가 달궈놓은 뜨거운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솔라 다음은.... 키아라."

한 여인은 무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스탭들을 살폈다.

키아라를 정상에 올려놓은 프로듀서 겸 작곡가.

한때, 핀 브라운에 견줄 만한 천재라고 불렸지만.

"하하하, 이게 누구야. 에일리 아냐?"

"...."

캐피탈 매니지먼트.

눈앞에 있는 남자가 속한 회사는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도대체 무슨 미끼를 던져 키아라를 꼬셨는지 모르겠다.

"지금 키아라 바쁜데. 덕담이라도 해주러 왔어?"

"그럴 리가요."

"아니면, 원래 이렇게 구질구질했나?"

"...."

에일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회사에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았으면서.

"키아라는 남자 때문에 저를 배신할 사람이 아니에요."

"하아, 바쁘니까 나중에 다시 연락하던가."

"연락하면 좀 받으시죠."

"그래, 알겠다고."

에일리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대기실에서 멀어졌다.

이 바닥에서 음악과 아티스트 제작은 별개였다.

자신은 그걸 전혀 몰랐고, 너무 큰 보석을 가졌다.

하이에나들이 달라붙어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착각했다.

-Shining Star, 꿈속에선 그대와─♬

그때, 무대에서 들려오는 별처럼 빛나는 멜로디.

에일리는 귀신에 홀린 듯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 친구들은...."

오늘 뒤에서 두 번째로 공연하는 아티스트.

".... 솔라."

익숙하지 않은 생소한 언어로 노래를 불렀지만.

음악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하는 힘이 있으니까.

'와아.... 아름다워.'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솔라를 보며 잊고 있던 감각이 살아났다.

열정. 순수함. 싱그러움. 자유로움.

그저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그동안 자신이 너무 속물처럼 살았다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블루숄츠도 그렇고....'

한국에는 대단한 인재들이 어마어마하게 많구나.

두 시간에 걸쳐 무대 위에서 뛰어놀며 노래를 부르는 솔라.

어느새, 이곳에 온 목적을 잊고 솔라의 무대에 빠져들었다.

-치지지직─!

이내, 강렬한 일렉 사운드 위에서 새로운 매력을 선보이는 그녀들.

문득, 프로듀서로서 그녀들의 뒤가 궁금해졌다.

누가 키운 그룹일까. 어떤 마음으로 키웠을까.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아티스트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모두 똑같으니까.

'이런 재능이라면....'

옆에서 함께 프로듀싱에 참여해도 나쁘지 않을 수도.

그동안 너무 미국 시장에 집착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새로운 시장이라....'

에일리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무대를 감사했다.

솔라가 내려가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솔라에 이어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 키아라.

데뷔 때부터 함께 자매처럼 성장한 스타였다.

".... 키아라."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는데.

불안한 음정.

잔뜩 긴장한 얼굴.

부족한 팬서비스.

'설마 긴장한 거야, 솔라 때문에....?'

자신이 알던 슈퍼스타는 더이상 없었다.

코첼라 3일차 메인 헤드라이너의 무대는 너무 아쉬웠다.

에일리는 복잡한 눈으로 그녀의 무대를 끝까지 지켜봤다.

돌아서는 발걸음에 아쉬운 기색은 없었다.

* * *

다음 날.

우리는 한국으로 복귀하기 위해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했다.

이륙하기 전에 코첼라 공연 관련 뉴스 기사를 확인했는데.

[세계적인 무대에 데뷔 3년차 걸그룹이 올랐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의 제너럴급과 동급인 헤드라이너. 그만큼 K팝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의미와 동시에, 솔라는 현재 4세대를 대표하는 월드 클래스....]

'온통 극찬밖에 없네.'

블루숄츠와 함께 코첼라를 빛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으음."

그때, 옆옆자리 구석에 있는 남자가 몸을 비틀었다.

".... 벌써 담요를 뒤집어쓰셨네."

나보다 먼저 타고, 꿈나라에 빠진 남자.

모르는 사람인데 뭔가 체형이 익숙했다.

"오빠!"

그때, 지유는 비행기에 탑승해 옆자리에 앉았다.

"엥, 모르는 사람 옆자리야?"

"응. 어쩔 수 없어."

전세 낼 만큼 여유는 없었다.

이제 새로 회사도 차렸으니.

"새 회사 차렸는데 이제 돈도 신경 써야지."

"그렇긴 하지."

엄지유는 옆자리에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우리 언니들 진짜 장난 아니더라."

".... 그래."

몇몇 무대는 내 눈에도 좋았지.

근데 몇 개는 취향이 아니었어.

"오빠는 역시 최고야."

"내가?"

"응. 오빠가 검수했잖아. 편곡이든 안무든."

"...."

그냥 촉이 오는 대로 따랐을 뿐이다.

"그나저나...."

얘는 제 오빠를 못 만난 건가.

만났으면 나한테 말했을 텐데.

"카페지기는 만난 거야?"

"아니, 도망갔어."

".... 그래?"

"아오, 뒷모습이 묘하게 익숙하단 말야."

"...."

침통한 표정을 보니까 괜히 미안해졌다.

그동안 나도 재하랑 같이 속인 기분이라.

"그냥 내가 말해줄...."

"아으으, 잠 좀 잡시다."

"???"

순간, 옆옆자리에서 몸을 비틀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엄재하....?"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내, 엄지유는 입을 열었다.

"태양빛 카페지기가 너였냐."

"아, 어? 아닌데?"

"아니구나."

"응. 헤헤."

지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기를 찾았다.

"마스터."

"에?"

"뒤질래?"

깡─!

책 모서리로 엄재하 머리를 찍어버리는 지유.

무슨, 사람 머리통에서 이런 깡 소리가 난다요.

"하아, 수호 오빠. 아니지?"

".... 아님."

* * *

얼마 후,

스페이스 어플 태양빛 카페에 글이 올라왔다.

[기존 카페지기는 두 명에서 한 명 체제로 바뀝니다. 태양빛을 창립한 카페지기는 좋은 곳으로....]

나는 잠시 묵념하고 회사에 첫 출근 했다.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내가 운영할 회사였다.

"슬슬 정글 미팅 잡아야겠네."

코첼라 무대 잘했으니까 업계 포상 같은 거지.

공짜로 정글도 보내주고.

너무 좋은 회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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