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27화 (127/200)

[127] 새 출발(1)

캘리포니아 주, 코첼라 밸리.

이 협곡에서는 매년 셰게적인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

전 세계 음악 팬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뮤직 페스티벌.

미국에서 소위 잘나간다고 불리는 팝가수들도 한 번씩은 거쳐 가는 무대였다.

"키아라, 체크인하고 올게."

"...."

현재 미국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팝스타는 누구일까.

빌보드, 그래미, 아메리칸 어워드.

당연히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미국 3대 시상식에서 전부 수상한 여가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

키아라 크라우스는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팝가수 중 한 명이었다.

"키아라, 오늘은 왜 또 기분이 나쁜 거야?"

"지금 몰라서 물어?"

"...."

키아라는 숙소에 들자마자 매니저를 쏘아붙이며 눈을 치켜떴다.

코첼라 3일차 메인 헤드라이너에 서는 여가수.

그녀의 실력과 경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실력만큼 인성이 따라주지는 않는 듯했다.

"나랑 같은 날 서브 헤드 서는 애들이 누군지 알지?"

"솔라, 요즘 걸스온탑 잘 나간다고."

"지금 장난해?"

사실, 키아라 역시 넥플렉스로 서바이벌 예능을 전부 시청했다.

애들 소꿉장난처럼 멘토링이나 하고 있던데.

그것도 코첼라 스테이지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착한 척, 순수한 척 위선 떠는 예지를 볼 때마다 배알이 꼴렸다.

"로이랜드 좋아하잖아. 예지는 솔라 리더라니까."

"예지 때문에 싫은 거야!"

"에휴, 어쩔 수 없어. 조쉬 영감이 직접 초청한 거라고."

"그걸 모를까 봐?"

"내가 어떻게 해줄까?"

"...."

사실, 날짜를 바꿔보려고 시도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됐고, 내년부터는 초청이 와도 거절해."

"그래, 그러자."

키아라는 자신보다 하루 앞서 무대에 서는 블루숄츠를 떠올렸다.

작년에도 코첼라 무대에 오른 검증된 실력자들.

게다가, 8천만 팔로워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까지.

같은 K팝 아이돌이지만, 데뷔 2년 차인 솔라와 비교할 순 없었다.

"같은 날 헤드에 서면 팬들은 나랑 솔라를 동급으로 생각한다고!"

"올해 한국에서 두 팀이 나온다는 건 알고 있었잖아."

"당연히 하이엔드인 줄 알았지."

"그쪽은 매년 이맘때 LA 단독 콘서트 여니까 못 오지."

"...."

매니저는 키아라를 아이 다루듯 천천히 타일렀다.

"우리가 뒤에 순서니까. 실력으로 압도하면 되지 않을까?"

"그건 당연한 거고."

"어, 음."

사실, 매니저는 그녀가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알고 있었다.

최근에 연애를 시작한 상대는 로이랜드의 남자 주인공, 톰.

사귀기 전, 그는 인터뷰에서 예지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으니.

"설마 오늘도 톰을 만나러 가는 건 아니지?"

"신경 끄셔."

"그래. 알아서 잘하겠지."

"그만 나가 봐."

"...."

한국과 미국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은 상당히 달랐다.

스케줄은 관리하되, 연습이나 사생활 터치는 없었다.

"키아라, 이번에 솔라는 진짜 제대로 준비했다고 들었어."

"그래서 다행이라는 거야?"

"...."

그래서 긴장하라는 거야.

조쉬 영감은 20여 년간 코첼라 무대를 정상급 축제로 만든 인물이었다.

헤드는커녕 게스트를 초청할 때도 수십 개의 영상을 보며 분석했으니.

'오히려 솔라한테 잡아먹힐 수도....'

매니저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최근 연애를 시작하고 연습을 제대로 못 하지 않았나.

뚜루루루─

숙소를 벗어나고, 매니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케인 기자님, 잘 지내셨죠?"

그저,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 * *

시간 여유를 두고 방문한 미국 현지.

현재 솔라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감은 어마어마했다.

로이랜드로 헐리웃 배우 취급받는 예지.

천만 찍고 국민 첫사랑으로 등극한 은서.

그밖에도, 걸스온탑은 서바이벌 프로에 한 획을 그었으니.

'이번에 뭔가 보여줘야 해.'

블루숄츠와 크게 비교당하면 곤란했다.

우리는 꽤나 호회로운 숙소에 느긋하게 짐을 풀었다.

함께 온 스탭들과 호텔 로비에서 스케줄을 정리했다.

"지유야, 브리핑."

엄지유는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 오후에 예지 언니는 로이랜드 프로모션 참여하려고."

"그건 형식 씨가 수고해주세요."

"넵. 실장님."

나 역시 개인적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다이애나에게 들어온 곡 의뢰와 미팅 약속.

무대 FD와 만나고 눈으로 확인해야 했으니.

"지유는 대여한 연습실부터 확인하자."

"알겠어."

"그럼 해산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세계적인 인기를 끈 걸스온탑과 로이랜드.

미국에서 제법 반응이 좋았던 첫사랑까지.

덕분에, 현지에서도 중소 방송국 토크쇼나 라디오 스케줄이 들어왔다.

'뒤통수 한 번만 제대로 걸려라.'

내가 하이엔드, 블루숄츠 금방 따라잡는다.

이게 해외에서도 먹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근처에서 제법 고급스러운 호텔이라 로비는 한산했다.

그런데.

"거기 스톱."

"아."

솔라 멤버 두 명은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호텔을 벗어나려 했다.

양주희랑 신소미.

눈에 안 띄는 게 이상했다.

한국에서도 연예인 체형이라 알아봤을 텐데.

"은서 언니가 시켰어요."

"은서가 시킴."

"...."

왜 이 자리에도 없는 은서 핑계를 대냐.

"너희 무대 준비 완벽해?"

"당연하죠. 연습생 때보다 열심히 했어요."

"리얼루."

걸스온탑 종영 이후로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동안 열심히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락 음악은 전혀 취향이 아니라서.

"그래. 믿는다."

"오, 신뢰!"

너희 말고 내 뒤통수 믿는다고.

"실장님, 그럼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와도 돼요?"

"단백질 보충제 사와도 돼요?"

".... 되겠냐."

"아."

소미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정글 가면 한동안 못 먹잖아요."

"거기 랍스타도 있대."

".... 그런가?"

주희는 남일 보듯 키득키득 웃으며 놀렸다.

"에고, 소미가 고생이 많네."

"너도 갈래?"

"놉. 영양소 관리 안 하면 근손실 와요."

".... 안 되겠다."

"???"

양주희도 정글 보내야겠다.

소미 혼자 가면 심심할 텐데.

"너희 필요한 거 있으면 지유한테 전화로 해."

"네에!"

"빨리 들어가. 10초 준다."

"히잉."

띠리리링─

그때, 코첼라 주최 측 직원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리허설 일정이 나와서 연락드립니다.

"아, 그래요?"

-네. 블루숄츠랑 같은 날입니다.

"...."

그 거대한 스테이지에 관객 없이 무대를 채워야만 했다.

띠링─

잠시 후, 스탭에게 일정표를 전달받았다.

함께 리허설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들.

"살벌하다, 살벌해."

전부 미국, 영국에서 잘나가는 가수들이었다.

솔라도 걸스온탑, 로이랜드로 반짝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경력이나 실력은 상위권으로 보기 민망했다.

컨디션 조절한다고 대충하면 안 되겠어.

'애들 연습 더 빡세게 시켜야겠네.'

* * *

며칠 뒤.

나는 솔라 멤버들과 함께 리허설 현장을 방문했다.

옆 대기실에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입을 열었다.

"인사하러 가야지."

"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 대기실로 향했다.

사실, 솔라 정도면 이제 그런 허례허식을 지킬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윗세대 선배이자 세계적인 스타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지.

이어서, 블루숄츠에게 꾸벅 인사하는 멤버들.

"둘 셋, 안녕하세요! 태양을 수호하는 솔라입니다!"

"...."

인사 구호, 오랜만에 들으니까 오글거렸다.

본인들도 어색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아, 예. 솔라님덜."

"반가워요."

썸머는 손을 슬쩍 들고 소미에게 아는 체를 했다.

"소미야! 여기서 또 보네."

"여름 선배님!"

"요즘 민지는 연습생 생활 잘하고 있지?"

"네! 학교도 다녀요."

"잘됐네. 다음에 회사 한번 놀러 갈게."

"좋아요!"

그래도 아는 얼굴이 있어서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딱히 사이가 나쁠 이유가 없는데도.

언론은 라이벌이라고 떠들었으니까.

각각 3세대와 4세대를 대표하는 1티어 걸그룹 아닌가.

"정 실장님, 안녕하세요."

그때, 빅보스 소속 매니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 저번에 뵀죠."

"네. 김성욱 본부장입니다."

"...."

상대의 뿔테 안경은 날카로운 인상에 지적인 이미지를 더했다.

내가 드림 에이전시에 입사하기 전부터 연예계에서 유명했다.

'블루숄츠를 키운 사람....'

물론, 혼자 키웠다고 할 순 없지만.

가장 큰 공을 쌓은 건 확실했으니.

"새 회사를 설립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상호가 뭔가요?"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아하."

몇날 며칠을 고민하면서 지은 이름이었다.

결국, 이름으로 뒤통수가 가렵진 않았지만.

"이제 스카이 엔터 대표님이군요."

"네. 맞습니다."

민망하지만, 이제 연예계에선 비밀이 아니었다.

벌써 방 마담께서도 사옥을 알아보고 계셨기에.

"솔라 재계약은 하신 겁니까."

"네? 아, 그게...."

아직 안 했다.

코첼라 때문에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솔라 멤버들한테 정식으로 말하지는 않았는데.

"네! 맞아요!"

그때, 예지는 자신감 있는 어조로 대화에 참여했다.

"솔라 멤버 전부 재계약했어요.."

"아, 그러시군요."

"네. 멤버들끼리 충분히 상의하고 결정했어요."

"...."

예지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나한테 하는 말인가.'

그녀는 내 팔을 부드럽게 잡으며 말을 이었다.

"실장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셔야죠. 안 그래요?"

"어, 음. 내가 잘할게."

"감사해요."

오늘따라 예지의 두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거렸다.

똑, 똑─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고 스탭이 들어왔다.

"솔라 멤버분들 여기 계셨네요."

"아, 지금인가요."

"네. 리허설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빅보스 매니저분께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얘들아."

"네?"

"앞으로도 꽃길만 걷자."

"...."

원래 고맙다는 말을 꺼내고 싶은데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실장님-, 아니, 대표님."

"응?"

"이제 시작인데요."

".... 어."

이내, 멤버들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한 명씩 입을 열었다.

"리허설 무대 찢고 올게요."

".... 잠깐만."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뒤통수가 간지럽잖아.

"그냥 가볍게 하고 내려와. 본무대가 중요하니까."

"그럴까요."

"응."

뒤통수가 알려주네.

그게 맞는 것 같아.

* * *

한편, 같은 시각.

박철민 본부장은 새로운 회사로 이사를 준비했다.

상사에서 하급자가 되겠지만, 딱히 감흥은 없었다.

원래도 정 실장은 마음대로 다했으니까.

라디오 하나 잡을 때에도 눈치 보였다고.

오히려 수호의 결재를 받는 쪽이 훨씬 더 마음 편할 것 같다.

"이제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네."

박철민은 민머리를 습관적으로 문지르며 새 회사에 방문했다.

".... 여긴가."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해와 달 컨셉으로 지은 이름, 스카이 엔터.

물론, 정수호 실장이 직접 지은 이름이었다.

드르륵─

이전보다 작은 규모였지만 구색은 갖췄다.

연습생과 가수의 연습실도 구분되어있고.

일단, 녹음실 세팅은 최고 사양으로 전부 맞췄으니까.

'슬슬 인력을 뽑아야 해.'

인사팀, 홍보팀, 캐스팅 디렉터를 포함한 실무진.

작곡가, 안무가, 트레이너를 비롯한 아티스트팀.

일단, 매니지먼트 1팀 직원들만 해도 전부 데려오지는 못했다.

'그래도 진 실장님은....'

드림 에이전시 시절, 자신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

권무혁 상무 때문에 팀 해체 위기를 겪었지만.

그 당시 혼자 희생해서 팀원들을 전부 살렸으니.

[SKY Ent. 박철민 본부장]

이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본부장이라고 하면 우습겠지만.

그래도 솔라만 있으면, 어떤 방송국도 무시할 수 없었다.

'수호가 잘하려나 모르겠구만.'

미국에서 재계약 얘기를 꺼낸다고 하던데.

만에 하나 솔라 멤버가 한 명이라도 빠지면.

'.... 끔찍하네.'

아니, 정수호 '대표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똑, 똑─

그때, 텅 빈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여배우가 안에 들어왔다.

"아, 수연 씨."

"박 본부-, 아! 아제 뭐라고 불러야 하죠?"

"여기서도 직급은 그대로입니다."

"그래요?"

그녀는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 김찬호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셨지 뭐예요?"

"설마...."

"네! 같이 차기작 하자고 하시네요."

"축하드립니다."

"축하는요."

물론, 정수호 대표의 승인은 받을 생각이겠지만.

김찬호 감독님의 작품이라면 말이 필요 없었다.

"그럼 저는 인사만 하러 온 거라 일어나 볼게요."

"네. 수연 씨."

이수연은 기분 좋은 미소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사무실을 벗어나려던 찰나.

누군가 먼저 사무실 문을 열었다.

드르륵─

미닫이 문을 사이에 두고 여배우 두 명이 대치했다.

"진세은 배우님."

박철민 본부장이 먼저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두 여인은 서로 비킬 생각이 없어보였다.

마치 먼저 말을 꺼내는 쪽이 지는 것처럼.

억겁의 시간이 흐르고, 이수연은 짧고 굵은 한마디를 뱉었다.

"길."

미닫이 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이수연과 진세은.

서로 먼저 비킬 때까지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여배우란 뭘까.'

자존심 강한 두 여배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길."

"길."

정수호 대표는 두 사람을 컨트롤 할 수 있겠지.

'....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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