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24화 (124/200)

[124] 시장 개척(5)

박스 오피스(Box Office).

매표소를 뜻하는 단어는 흥행 성적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인다.

첫사랑은 개봉한 지 이틀 만에 박스 오피스 1위를 넘겨받았다.

"로이랜드에 첫사랑까지...."

딸깍, 딸깍─

이수연은 편한 복장으로 영화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국내 유명 평론가는 최고의 호평과 함께 글을 남겼다.

"오, 김상혁 평론가."

이분이 좋은 평가를 주기도 하는구나.

[장은서와 정상훈 주연의 영화, 「첫사랑」. 풋풋한 대학시절의 로맨스가 떠오르는 작품으로....]

어떻게 매번 성공하지.

무슨 비밀이 있는 건가.

최근 정수호 실장이 고르는 작품은 예외를 두지 않았다.

영화, 드라마, 예능을 가리지 않고 메가 히트작만 뽑았다.

"이 정도면...."

드림 에이전시 대표님 전성기를 능가했네.

연타석 안타만 처도 대단한 시장이 아닌가.

딸깍─

이내, 마우스를 움직여 게시글의 댓글을 확인했다.

-지금 우리는 솔라의 시대에 살고 있다

ㄴ예지 로이랜드 vs 은서 첫사랑 ㄷㄷ

ㄴ가슴이 웅장해지는 집안 싸움

ㄴ정보) 둘 다 보면 됨

ㄴ둘 다 재밌더라

ㄴㄹㅇㅋㅋ

-코첼라 페스티벌 기대중

ㄴ티켓팅 언제임?

ㄴ일반 판매 옛날에 마감함

ㄴ블루숄츠에 솔라!? 국뽕 차오름 ㅋㅋㅋㅋ

ㄴ그래도 블루숄츠가 넘사벽 아닌가

ㄴ솔라 데뷔한지 고작 2년임

ㄴ2주년 팬미팅 안 하나 ㅠ

김예지와 장은서, 둘 다 배우로서 자리를 잡은 듯했다.

누군가는 10년을 연기해도 무명을 벗어날 수 없는데.

누구 덕분인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실장님, 요즘 바쁘신가 봐."

슬슬 새 작품 들어가고 싶네.

걸스온탑 끝나면 연락해볼까.

띠리리링─

그때, 익숙한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첫사랑, 남자 주인공.

요즘 핫한 배우였다

관객 시사회 때 얼굴 한 번 봐서 그런가.

"정상훈, 너 내가 밤에 전화하지 말랬지."

-누나, 미래를 보는 변호사 터졌을 때 나한테 뭐라고 했더라.

"???"

뜬금 없이 뭔 소리야.

-수호 형, 완전히 바뀌었다고 잡으라고 했잖아!

"아, 그랬었지."

-솔직히 처음엔 안 믿었는데.

"...."

드림 에이전시 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니까.

회사에서도 일개 실장급 영향력을 훌쩍 넘어섰다.

-지금 권 상무 라인이 불안한가 봐.

"권무혁 상무님? 너도 그쪽 라인 아닌가."

-에이, 나는 중립에 가깝지.

정 실장님의 드림 에이전시 시절, 매니지먼트 4팀을 해체한 사람.

드림 에이전시에서 권 상무의 입지는 상당했다.

대표님을 제외하면 사실상 2인자에 가까웠으니.

-내가 권 상무 쪽 사람한테 정보를 들었거든.

"무슨 정보?"

-중환일보에 육 무슨 기자가 걸스온탑 연습생 꼬시고 있대. 인터뷰하자고.

"...."

아마 좋은 의도는 아닌 것 같다.

"그 연습생이 누군지 알아?"

-남민지랬나. 내가 말했다고 하면 안 돼.

"어, 고맙다."

이미 솔라를 건드리기에는 너무 많이 커버렸지.

정공법으로는 절대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했나.

'권 상무님, 많이 약해지셨네.'

원래 이렇게 정보가 새어 나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거의 갈 데까지 간 것 같다.

입단속도 제대로 못 하시네.

"상훈아, 너도 늦기 전에 라인 갈아타라."

-그러려고.

"정 실장님은 빼고."

-응? 왜?

내 작품 골라줄 시간도 없으시거든.

"바쁘시대."

* * *

첫사랑의 흥행 성적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났다.

국내 극장가를 미친 기세로 집어 삼켜버렸으니.

며칠 내내 은서와 돌아다니며 영화 프로모션 스케줄을 소화했다.

드르륵─

이내, 문이 열리고 은서가 밴에 들어왔다.

"으아, 힘들어 죽겠네. 진짜."

"은서야, 좀만 더 참아."

".... 네."

뭐냐, 갑자기 착해졌다.

"우리 제주도 언제 가요? 오늘 마지막 날인데."

"...."

애초에 일정은 제주도에 돌아가는 거였다.

걸스온탑 스케줄을 마무리하려고 했으니.

"제작사에서 애원하더라. 제발 가지 말라고."

".... 나도 해변 걷고 싶은데."

"나중에 내가 훨씬 좋은 해변에서 실컷 걷게 해줄게."

"저 혼자요?"

"당연히 같이 가주지."

"그럼 그러시든가."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은서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지금 미국에서 반응이 왔어."

"네?"

"LA에 상영관 확보한 거 있었잖아."

"아."

계속 매진이라 극장 수 늘리고 있다던데.

진짜 이러다가 큰일 내는 거 아닌가 몰라.

"그거 영어 자막 번역가 내가 구했거든. 하하."

"알아요. 실장님 덕분에 성공한 거."

"...."

뭐지, 농담한 건데.

"제작사 왔다갔다 엄청 노력하셨잖아요."

"그야 뭐...."

투자금 절반은 내 돈이니까 당연하지.

천만 찍으면 강남에 아파트 한 채야.

"돈 때무...."

"전부 저 때문이죠?"

".... 네?"

은서는 시선을 피하는 듯 창밖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 아버지 유작이요. 꽤 괜찮았나 봐요."

"어, 음.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

그랬으면 이렇게 성공 못 했지.

"고마워요. 실장님."

상당히 집중해야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

은서는 여전히 시선을 창밖에 고정했다.

".... 출발할게."

"네."

어쩐지, 요즘 화도 거의 안 내고 말을 잘 듣더라.

"은서야, 울어?"

"울긴 누가 울어요!"

"우는 거 같은데."

"아니거든."

그건 반말이고.

"오늘 스케줄 끝났어요?"

"응. 근데 새벽 2시에 또 있어."

"아잇, 맥주 한잔하려고 했는데."

"...."

미안한데, 그건 스케줄이 없어도 안 돼.

"은서야, 혹시 요즘도 몰래 술 먹고 그러니?"

"그걸 제 입으로 말하면 몰래 먹는 게 아니겠죠?"

"아."

그게 무슨 개같은 소리인가요.

"실장님이 같이 먹어주시면 혼자 안 먹고."

"그래. 차라리 나랑 먹어."

"언제요?"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나중에."

"으음"

그나저나 오늘 숙소에 은서 혼자 있겠네.

다들 제주도에서 내일 저녁쯤 돌아오니까.

"너 혹시 요즘도 담배 피우는 건 아니지?"

"원래 안 펴요!"

"끊었나 보네. 잘했어."

"아니, 원래 안 피웠다니까요. 갑자기 빡치네."

"그래. 그렇다고 칠게."

"치는 게 아니.... 한 대만 칠게요."

"안 돼."

진짜로 담배 안 피웠나 보네.

엄청 억울한 말투를 보니까.

문득, 오늘 아침에 박 대표님께 받은 전화가 떠올랐다.

첫사랑 영화 흥행에 대한 덕담.

그리고, 미팅 약속도 상기했다.

"내가 며칠 뒤에 드림 에이전시 대표님이랑 식사 자리가 있거든."

"아, 그래요?"

"응. 그리고 프렌즈 방 의장님도."

"아하."

드림 에이전시 박 대표님과 프렌즈 방 의장님.

그 자리에 방 마담님까지 오신다고 하셨으니.

"영화 성적 때문에 대표님께서 너랑 같이 보길 원하시는 눈치더라."

"저요? 그 자리에 제가 가도 돼요?"

"응. 대표님께 연락받았어."

"그래요. 그럼."

"거기서 너무 술 많이 먹지 말고."

".... 봐서요."

대표님부터 높으신 분들이 여럿 모인 자리.

불편해할 줄 알았는데 전혀 거리낌 없었다.

그때, 제주도에 있는 멤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음, 예지네."

받으려던 찰나, 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안 받으면 안 돼요?"

"응?"

"그냥 오늘만요."

"...."

갑자기 이러니까 당황스럽다.

표정은 또 왜 그렇게 짓는지.

"농담이에요. 헤헤."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운전에 집중했다.

* * *

다음 날.

솔라 멤버들은 숙소에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했다.

아직 미션과 서바이벌, 데뷔조 경쟁은 남아 있지만.

"이 집이라고?"

"네!"

내 옆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집을 둘러보는 예지.

월세를 반의반 값만 받겠다고 해서 오긴 했는데.

"여기 어때요?"

"...."

당연히 좋아야지.

강남에 아파튼데.

첫사랑 투자 수익을 전부 꼬라박아야 겨우 살 만한 집.

로이랜드, 할리우드 배우 개런티쯤이면 살 수 있을까.

"아니, 왜 숙소 윗집이라고 미리 말을 안 했어."

"지금 말했잖아요."

함께 따라온 박아영 코디님은 이곳저곳을 확인했다.

"물도 잘 나오고, 난방도 잘 돼요."

".... 그걸 왜 그쪽이 신경 써요."

"저도 가끔 자야죠!"

"누구 마음대로."

"에이, 비즈니스에요. 급하면 어쩔 수 없죠."

"...."

그냥 다른 집에 살래요.

"저기."

예지는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영 씨는 우리 숙소에서 자면 되니까 편하게 생각해요!"

"뭐, 아무튼."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솔라, 루나 숙소랑 가까우니까.

'그냥 월세 제값 내야겠다.'

굳이 영화 수익금이 아니더라도 돈 걱정은 없이 살았다.

회사 성과급도 그렇고, 소미 너튜브도 있고.

걸스온탑 회당 출연료도 2천씩 들어오니까.

"실장님, 혹시 은서랑 싸우셨어요?"

"아니, 왜?"

"그냥 저한테 요즘 살짝 쌀쌀맞은 것 같아서."

"...."

그러게, 왜 그러냐.

"요즘 은서 많이 착해졌어."

"제가 예민했나 봐요."

"아무튼."

이제 제집에서 나가주세요.

"예지야, 내려가."

"실장님, 앞으로 매일 7시에 내려오세요."

"응?"

예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아침 식사하셔야죠."

"요리는 누가해?"

"제가요."

"아."

매일 요리했으면 실력이 늘지 않았을까.

"멤버들이 좋아하니?"

"그럼요! 반찬은 잘 안 먹고 밥만 먹어요!"

"...."

삐, 삐삐삑─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엄지유가 터벅터벅 들어왔다.

"오빠, 이 집 계약 깔끔하게 끝내고 옴."

"아니, 그 전에."

우리 집 비밀번호를 왜 니가 알고 있어요.

"뭐야, 왜 그렇게 봐?"

"아니, 됐다."

나도 엄재하 관련해서 숨기는 거 있으니까.

"오빠, 태양빛에서 데뷔 2주년 팬미팅 열어 달래."

"팬미팅?"

"응. 그동안 팬 서비스가 좀 부족하긴 했지."

"그럼 코첼라 페스티벌 이후에 팬미팅 한번 추진해 봐."

"알겠옹."

띠리리링─

그때, 이수연 배우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아마 작품 이야기로 전화하신 것 같은데.

"여보세요."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한테 완전 고마우셔야 할 걸요?

"오케이! 끊을게요"

-권 상무랑 관련된 일이면요?

".... 그건 좀."

순간, 뒤통수에서 간질간질한 감각이 찾아왔다.

"우리 천천히 얘기해 볼까요."

* * *

드림 에이전시는 철저하게 능력제 사회였다.

물론, 인사 관리나 정치도 능력의 일부였으니.

권무혁 상무에게 '라이벌'이라고 불릴 만한 적수는 없었다.

특히, 2년 전 매니지먼트 한 팀을 날려버린 이후엔 더욱더.

그 사건이 이토록 발목을 붙잡을 줄은 몰랐지만.

"하하하, 인터뷰에 응했다고?"

"네. 상무님."

권 상무는 대중에 발표하지 않은 자료를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허언증이 있다고?"

"네. 블루숄츠 데뷔조에 뽑힐 뻔했다고...."

"하하하하."

연습생은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냥 가벼운 인터뷰라고 생각했겠지.

"적당히 편집해서 기사 올려."

"알겠습니다."

걸스온탑 방송 중에 자주 센터 욕심을 내는 연습생.

빅보스에서 방출된 이력 때문에 그녀를 노린 건데.

'급한 대로 나쁘지 않네.'

권무혁 상무가 이처럼 서두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미 거물이 되어 자신의 목을 노리는 상대.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그를 막을 수 없었다.

큐앤지가 분리되면 정수호는 날개를 달게 될 터였다.

똑, 똑─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급하게 들어오며 소리쳤다.

"사, 상무님! 지금 프렌즈 방 의장님이 방문하셨습니다."

"뭐!? 무슨 일로?"

"그건 저도 잘...."

큐앤지 레이블 분리 때문인가.

생각보다 진행이 너무 빨랐다.

"어서 가지."

권무혁 상무는 급하게 달려가 로비에서 귀빈을 마주쳤는데.

'방 마담이랑 장은서....?'

두 사람은 왜 이렇게 다정한 포즈를 취할까.

장은서는 왜 방 마담을 할머니라고 부르는지.

"할머니, 정 실장님도 거의 도착하셨대."

"저기 방 의장님도 오셨네."

"...."

권 상무는 충격에 빠져 인사도 잊고 두 사람을 관찰했다.

곧이어, 프렌즈의 수장이 드림 에이전시에 들어섰는데.

"흠, 방 마담 오셨나."

"은서야, 인사드려. 먼 친척분이시다."

"안녕하세요!"

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 수저.

처음부터 상대가 잘못된 건가.

터벅, 터벅─

그때, 드림 에이전시 사옥에 들어오는 정수호.

"은서야....?"

"실장님, 오셨어요?"

"아."

정수호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마치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가식적으로 연기했다.

"방 마담이 네 할머니였다고!?"

"뭐에요. 알면서 모르는 척하세요."

"???"

권 상무는 그의 눈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그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 당했다.'

급히 스마트폰을 들고 부하 직원에게 톡을 보내려고 했지만.

띠링─

그런데, 이미 열차는 떠나버렸다.

부하 직원이 보낸 톡을 확인하니.

[상무님! 어디서 정보가 샜습니다.]

[바로 반박 기사가 뜰 것 같습니다.]

정수호 실장은 자신을 힐끔 쳐다보더니 눈길을 돌렸다.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거물들과 함께 사라졌다.

마치 공기처럼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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