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23화 (123/200)

[123] 시장 개척(4)

인파가 몰려든 제주국제공항.

「걸스온탑」의 참가자들은 이제 슬슬 인기를 체감했다.

공항에 마중 나온 팬들은 솔라 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아 언니! 사랑해요!!"

"엠마아악! 많이 아낀다!"

"민지야, 건강 챙겨!!!"

"덕자야!!!"

".... 누구야, 덤벼."

"미안."

남민지는 팬들 사이를 지나치며 어깨를 으쓱했다.

"시연아, 나보고 사랑한대."

"그러네."

현재 너튜브 실시간 음원 차트를 점령한 음원 미션곡.

그것도 커버곡이 아니라, 무려 자신들만의 곡이었다.

"이러다 월드스타 되는 거 아냐?"

"아이, 사인 만들어야겠네."

"그니까."

남민지 성격에 연예인병이 안 걸리는 게 이상했다.

'.... 블루숄츠도 방송 봤을까.'

연락하기도 민망할 만큼 슈퍼스타가 된 여름이 언니.

이전 소속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그 사람을 떠올랐다.

오해를 풀 기회가 있으면 좋을 텐데.

"민지 씨!"

그때, 기자로 보이는 한 여성이 자신에게 쪽지를 건넸다.

"이거 받아주세요!"

"뭐, 뭐야."

너무 순식간이라 자기도 모르게 받아버렸다.

무슨 내용인가 싶어서 쪽지를 확인해 봤는데.

[중환일보 육미선 기자입니다. 전화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010....]

'이거 무슨....?'

고개를 돌리자, 기자는 한 손으로 전화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제법 유명한 언론사 기자의 인터뷰 요청.

걸스온탑 촬영 중에 인터뷰는 금지였지만.

'아이 참, 인기가 많아도 고생이네.'

연예인 대우를 받는 듯해서 기분이 묘했다.

"민지 언니, 그게 뭐야?"

"응? 아냐 아냐."

민지는 쪽지를 숨기고 권시연에게 말했다.

"그거 알아? 우리 오늘 복불복으로 뭐 한다던데."

"복불복?"

그때, 먼저 도착한 솔라 멤토님들이 자신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멘토님들이 여행 경비 랜덤 뽑기 하셨대."

"오호, 그거 재밌겠다."

"우리 두 명밖에 없어서 돈 펑펑 쓸 수도 있어."

"와, 대박."

활짝 웃으면 반갑게 자신을 맞아주는 소미 멘토님.

표정이 밝은 것을 보니 꽤 높은 액수를 뽑은 듯했다.

잠시 후,

남민지와 권시연은 예쁜 구두를 신고 제주도 돌담길을 걸었다.

그녀들의 뒤로 최소한의 스탭들이 촬영 장비를 들고 따라왔다.

"멘토님, 우리 진짜 숙소까지 걸어가요?"

"민지야, 군대에는 행군이라는 게 있어요."

".... 아."

또또또 군대 얘기야.

똥손으로 0원을 뽑아도 당당한 꼰소미 멘토님.

천 원짜리만 뽑았어도 교통비는 채워주시던데.

"라떼는 일부러 아침에 구보도 하고 그랬어."

"아 쫌, 알겠으니까."

"민지야, 혹시 짜증내는 거니?"

"아니욥."

남민지는 아픈 다리를 톡톡 두드리고 미소를 지었다.

"서광예고 선배님이랑 걸으니까 기부니가 좋아요!"

"그칭? 그래도 9km밖에 안 돼서 다행이야!"

"아."

제주도 여행이라고 해서 샤랄라 한 원피스도 입었는데.

"선배님, 100만 원은 누가 뽑았어요?"

"그야, 미국식 자본주의에 굴복한 예지 언니가 뽑았지."

"...."

덕자 언니 개부럽다.

"뭐냐, 그 표정은?"

"네? 아무고토 아니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

"오, 진짜요?"

역시 지니어스.

계획이 있으셨구나.

"수영은 좀 하니?"

"네?"

"해녀 알바가 시급이 세."

"...."

선배님, 악마세요?

"저 맥주병이에요."

"까비."

이제 곧 3월, 군필 여고생 선배님이랑 같은 학교에 다니는 건가.

"저기, 선배님."

"왜?"

"저랑 시연이요. 데뷔할 수 있을까요?"

"글쎄."

투명한 눈동자로 자신을 스캔하는 소미 멘토님.

"큐앤지에서 데뷔하고 싶으면...."

남민지는 침을 꿀꺽 삼키고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연예인병 고쳐. 실장님이 싫어하셔."

"네? 아...."

실장님이라면, 정수호 심사위원.

솔라는 이미 월드 스타급 아닌가.

'어쩌면, 여왕님보다....'

그에 대한 멘토 분들의 태도를 보니까.

큐앤지에서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 실세구나.'

* * *

제주도의 바다 내음이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이게 얼마 만에 만끽하는 여유인지 모르겠다.

"예지야, 소미 팀은 아직인가?"

"네. 늦게 올 것 같아요."

"...."

소미 팀은 아직 숙소에 도착도 못 했다.

그렇다고 무식하게 걸어오냐.

피디님한테 쇼부를 봤어야지.

애교 부리면 교통비 정도는 봐주던데.

부르르릉─

벌써 숙소에 도착한 연습생들을 위해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

100만 원을 선택한 예지 옆자리에서 뻥 뚫린 도로를 구경했다.

'예지도 운전 잘하네.'

그러고 보니, 이제 예지도 스물네 살인가.

회사에서 처음 봤을 때 스물두 살이었는데.

"실장님."

운전대를 잡은 예지가 나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피디님이 내일 또 100만 원 주신대요."

"오, 그래?"

"네. 대신 다른 팀에 못 나눠준대요."

"...."

부익부 빈익빈.

이번 여행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예지는 부자 아닌가.

로이랜드 개런티만 해도 보통 사람은 평생 놀고 먹을걸.

"지유가 너 강남에 아파트 계약했다던데."

"네? 아, 네!"

"투자하려고 산 거야?"

"아, 음...."

살짝 뜸을 들이는 예지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은서에 비하면, 평소에 돈을 거의 안 쓰고 절약하더만.

".... 아직 그 집에 살 사람이 없네요."

"전세나 월세로 내놔."

"실장님이 월세로 들어오면 안 돼요?"

"내가?"

"네."

예지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 그럼 월세는 5만 원만 받을게요!"

"뭐가 그렇게 싸냐."

집주인이 예지면 개이득이긴 한데.

"나도 양심이 있지, 네가 영끌해서 산 건데."

"아뇨, 저는 괜찮아요! 부모님 노후 준비도 다 됐고, 언니도 결혼했고 또...."

"생각해 볼게."

"아, 음.... 제가 요리도 해드릴 수 있는데."

"응?"

뭐냐, 숙소랑 얼마나 가깝길래.

끼이이익─

이내, 숙소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도착했어요."

"여기구나."

50명은 족히 묵을 수 있을 법한 고급 풀빌라.

당연히 제작진이 머무를 숙소는 따로 있었다.

"저기, 실장님."

"응?"

"첫사랑 예고편 보셨어요?"

"당연하지."

내가 직접 투자했는데.

배급 시사회도 관람했지.

"내일 언론 시사회잖아요. 벌써 개봉하네요."

"응. 은서랑 같이 서울 갔다 올 거야."

"조심히 다녀와요."

"그래."

나는 양쪽 손에 장을 본 봉투를 한가득 들고 차에서 내렸다.

"저기, 숙소 앞에 바다랑 모래사장도 있어요."

"그래?"

".... 밤에 같이 걸으실래요?"

"나랑 둘이?"

"네."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예지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가볍게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따 내가 톡할게."

"넵. 기다릴게요."

"나올 때 야구 모자 쓰고 나와. 아영 씨한테 빌려."

"아, 네!"

잠시 파파라치를 걱정했지만, 이내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원래 매니저로서 단둘이 다닐 때도 많았으니까.

매번 그런 걱정을 했으면 이 자리까지 못 왔지.

드르륵─

이내, 숙소 문이 열리고 참가자들이 소리를 질렀다.

"와, 삼겹살 파티다!!"

"우오, 군침이 싹도농."

"저희가 불 피울까요!?"

".... 미안하지만."

경비 10만 원 미만의 팀은 먹을 자격이 없었다.

교통비도 피디한테 애교 부려서 인정받았으니.

"예지팀이랑 은서팀만 먹을 수 있어."

"앗, 아아아."

"안 대애."

어디까지나 예능은 그저 예능이니까.

게임에 이기거나 애교 부리면 봐줄걸.

"얘들아, 불 위험해. 토치 가져와."

"아, 넵."

여왕님에 솔라 멤버들, 연습생들까지 전부 여자.

인터넷에서 의자왕이라고 놀리는 사람도 있던데.

화르르─

현실에서는 유일한 남자는 쓸만한 일꾼인 경우가 많았다.

"실장님, 땀 닦아 드릴까요?"

"아니."

옆에서 솔라 멤버들이 붙어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근데 소미는 진짜 언제 오는 거야."

"지금 절반 정도 왔대요."

"...."

거기 같이 오는 스탭들은 융통성도 없네.

우리 막내한테 왜 그러냐.

괴롭혀도 나만 괴롭힐 건데.

* * *

제주도 푸른 밤하늘 아래.

30명의 소녀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진솔한 대화를 이어갔다.

물론 걸스온탑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지만, 대본은 아니었다.

"솔직히 저는 나이가 많잖아요."

"에이, 뭐가 많아."

"걸그룹 데뷔도 하기 전에 스무 살이면 많은 거지."

"으음."

모닥불 앞에서 가볍고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연습생들.

현재 생존한 것만으로도 30위 내 상위권이라는 증거였다.

'엄청 진지하네.'

장은서는 멀직이 떨어져 지유와 대화를 나눴다.

"지유야, 나는 오글거려서 여기 못 있겠다."

"이제 언니 칭찬도 할 텐데."

"됐네요."

이전에 없던 진지한 분위기.

근데 소미팀은 길을 잃었나.

"지금 소미가 아직도 걸어오고 있는 거야?"

"응. 거의 국토대장정."

"...."

그러고 보니, 예지 언니는 또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아까부터 정 실장님도 안 보이시고.

같이 밤 산책하자고 말할까 했는데.

'방 마담 손녀인 거 알면서도....'

이전과 100% 똑같이 자신을 대하는 그의 모습.

그러한 태도에 점점 더 깊은 호감으로 발전했다.

"지금 실장님 어디 계셔?"

"아까 바다 구경하러 가신다던데?"

"...."

혼자서 센치한 척은.

같이 걸어줘야겠네.

"뭐야, 언니 갑자기 왜 웃어?"

"흠흠, 실장님 요즘 부동산 다니신다며."

"응? 아, 맞음."

사실, 공항에서 할머니를 만나서 이미 말씀드렸다.

걸스온탑 이후 얼굴이 너무 많이 팔렸다고 들어서.

'아파트 한 채쯤이야....'

할머니 재력에 그 정도는 별 게 아니니까.

그동안 받은 게 있는데 아무것도 아니지.

"은서 언니, 그거 예지 언니가 벌써 계약했어."

"응? 무슨 말이야?"

"이제 수호 오빠가 솔라 숙소 윗집에 살 거라고."

"...."

한발 늦은 건가.

"드디어!!!"

그때, 입구 쪽에서 소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착했드아아─!!!!"

"...."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한 소미와 아이들.

특히, 남민지와 권시연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으니.

"민지야, 울어?"

"엄마아...."

그녀들을 볼 때마다 왜 이렇게 짠한 건지.

"얘들아, 전방에 함성 3초간 발사!"

"꺄아아아아악─!"

이 정도면 전우회 맞지?.

두 사람 많이 친해졌네.

기적의 연습생.

이전 남민지에게는 보이지 않던 매력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데뷔조에 든다면 100% 소미 멘토 덕분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했다.

스윽─

은서는 옷자락을 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어디 가게?"

"바다 구경."

"혼자서? 같이 가줄까?"

"아니."

거기에 벌써 누가 있을 것 같아서.

걸음을 옮겨 해변으로 이동했는데.

휘이이잉─

한적한 모래사장 위로 찬바람이 불어왔다.

이 넓은 바다에서 정 실장님을 무슨 수로.

".... 찾았네."

혼자가 아니라, 해변에 둘이 모래사장을 거니는 두 사람.

총총한 별빛 아래 부서지는 파도소리.

어둠 속에서도 새하얗게 빛나는 미소.

은서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자와 여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언니랑 팔짱을....'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까르르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예지야, 좋은 말로 할 때 놔라."

"너무 추워서 그래요!"

"팔 떨어져."

"에헤헤, 안 떨어져요."

"...."

이런 말 하면 우습지만, 잘 어울렸다.

선남선녀처럼 차고 넘치지 않았으니.

'행복해 보이네.'

은서는 무심한 눈으로 하염없이 두 사람을 응시했다.

"내가 너무.... 늦었나 봐."

그녀의 목소리는 파도 소리에 휩쓸려 날아갔다.

* * *

관객 시사회 당일.

나는 은서를 태우고, 시사회장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은서 표정이나 말투가 까칠했다.

'내가 또 뭘 잘못했더라.'

가끔 이렇게 한 번씩 기분이 안 좋았다.

요즘 분조장 없이 잘 사는가 싶더니만.

"은서야, 도착했어."

"예예."

"아직 감독님 안 오셨네. 밴에서 10분만 대기할까."

"그러시든가."

"...."

은서학 박사 학위 취득자 입장에서 확신했다.

대답에 성의가 빠지고 짜증이 0.2% 섞여 있다.

"아, 오케이. 알았다."

"뭐가요."

"내가 사올게. 여기 있어 봐."

"???"

잠시 후,

은서가 살찐다고 안 먹지만 제일 좋아하는 커피엔젤 라떼.

근처 프랜차이즈를 검색하고, 곧장 커피 한 잔을 사왔는데.

"누가 커피먹고 싶다고 했어요?"

"...."

이게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진짜 아니야?"

"뭐가요."

은서학 박사 학위 반납합니다.

"어젯밤에 봤어요. 해변에서."

"아, 예지랑 있는 거."

"네. 좋아 보이시던데요."

"으음."

뭔가 오해를 하는 모양이다.

같은 그룹 리더라고 챙기네.

"네가 오해하는 그런 상황 아니야."

"그래요?"

"당연하지. 내가 키운 그룹인데."

"...."

솔직히, 예지에 대한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할 뿐.

언젠가 내 마음이 기울 수도 있을 터다.

"실장님."

물론, 은서 입장에선 오해할 만한 모습일 수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사심은 배제하고 만났으니까 아주 당당했다.

"저 아직 늦은 거 아니죠?"

"안 늦었어."

지금 나가면 딱 맞을 것 같아.

"바로 가자, 은서야."

".... 그거 말고 다른 거 안 늦었느냐고요."

"응?"

"아니에요, 가요. 실장님."

"???"

정말 외모뿐만이 아니라, 성격도 고양이 같은 친구야.

기분이 진짜 오락가락해.

얘는 진짜 왜 이러는 걸까.

"은서야, 첫사랑 예고편 반응 좋은 거 알지?"

"네. 덕분에."

"운 좋으면 할리우드 진출할 수도 있어."

"한국영화로요?"

"혹시 모르잖아."

"농담도."

문득, 미국에서 만난 배급사 직원을 떠올렸다.

LA에 갔을 때 호가호위 메타로 확보한 상영관.

'진짜 잘 터지면....'

현재 로이랜드가 휩쓸고 있는 영화계를 양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두 작품 다 로맨스지만.

세부 장르는 달랐기에.

"일단 들어가자."

"네."

기분 풀린 은서와 함께 들어간 관객 시사회장.

기다리던 관객들은 환호성과 함께 반겨주었다.

"와아아아아아─!!!"

"안녕하세요!"

「첫사랑」은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으며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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