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22화 (122/200)

[122] 시장 개척(3)

아침부터 두 걸그룹을 비교하는 기사가 포털 사이트를 도배했다.

사실, 진작에 터질 기사였는데 늦은 감이 있었다.

조쉬 회장이 직접 방한해서 두 회사를 찾았으니.

[코첼라 페스티벌, 서브 헤드라이너 무대에 오르는 블루숄츠와 솔라!! 올해 4월에는 두 팀 중 누가 웃을 수 있을지.]

두 팀 다 웃으면 되는 건데.

꼭 이런 기사를 써야 했을까.

"좋은 날에 기분 잡쳤네."

"오빠, 기분 풀어."

지유와 함께 엔넷 방송국으로 향하며 뉴스를 확인했다.

"코첼라가 왜 경쟁이야, 축젠데."

"그치. 경쟁은 코첼라가 아니라 걸스온탑이지."

"응. 지금 멤버들 방송국에 있지?"

"최종 리허설 중이야."

"...."

오늘은 「걸스온탑」 네 팀의 음원 미션이 있는 날.

노래, 댄스, 랩, 올라운드.

1위 팀 베네핏이 상당했다.

"우승 베네핏으로 팀원 전부 1만 표씩 주는 거야?"

"어. 내가 듣기로는."

"그럼 오늘 1위한 팀 멤버가 떨어질 일은 없겠네."

"어차피 데뷔조에 못 들면 의미가 없잖아."

"그래도 방송 한 편 더 나오는 게 연습생들한테는 엄청 크거든."

"그렇긴 하지."

시청률도 그렇고, 넥플렉스 글로벌 랭킹에도 올랐으니까.

큐앤지에서 데뷔를 못해도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 근데 오빠 이사 하는 건 어떻게 됐어?"

"아직 알아보고 있어."

"그럼 멈춰!"

"???"

엄지유는 백미러로 나를 힐끔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제주도 여행 다녀와서 생각해."

"뭔 소리야."

내 집을 왜 네가 간섭해.

"오빠도 어차피 당장은 이사 못 가잖아."

"그렇겠지, 내일 제주도 비행기 타니까."

"바쁘네."

"바쁘지."

제주도 스케줄 중에 첫사랑이 개봉하니까.

아직 로이랜드 열기도 가라앉지 않았는데.

"지유야, 당분간은 네가 예지 영화 프로모션 스케줄 좀 신경 써줘."

"오빠는?"

"첫사랑 개봉하면 은서도 예능 좀 나갈 거야."

"응. 알겠어."

연기력 뿐만 아니라, 흥행 성적도 생각한다면.

현재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할리우드 여배우.

드림 에이전시에 로드로 입사할 때 막연하게 최고의 배우를 키우고 싶었는데.

'뒤통수 하나로....'

진짜 여기까지 왔네.

당장 예지 앞으로 들어오는 섭외 요청이 넘쳐났다.

특히, 미국 유명 토크쇼에서도 들어오고 있었으니.

띠리리링─

그때, 드림 에이전시 대표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 분과 전화하는 게 당연할 만큼 성공한 건가.

"대표님, 전화받았습니다."

-정 실장, 요즘 걸스온탑은 잘 보고 있네.

"아, 넵. 감사합니다!"

대표님은 잠시 뜸을 들이며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우리가 만났을 때 다이애나 정체를 공개했지.

"네?"

-이제는 우리 회사에 잘나가는 할리우드 여배우가 탄생했네.

"...."

내가 한 게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솔라 멤버들이 뛰어난 거니까.

-언제 한번 식사나 하지.

"알겠습니다."

-프렌즈 방 의장님이랑 같이 볼 거야. 그리고 방 마담도.

"네? 아, 네."

-그럼 시간은 천천히 정하지.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한국 연예계 피라미드의 정점.

너무 거물이라 실감이 안 났다.

'그리고 방 마담은....'

조금 뜬금없긴 한데, 복수소녀 때부터 한 번쯤 뵙고 싶었다.

'근데.... 왜?'

나를 부르는 이유가 뭘까.

회사 분리랑 관계가 있나

"오빠, 엔넷 방송국 도착했어."

"아, 그래. 수고했어. 지유."

"오늘 심사도 잘하고 와!"

"고맙다."

* * *

그날 저녁.

엔딩 포즈를 취하는 랩 포지션의 연습생들.

마지막 조에 남민지와 권시연이 포함되었다.

"와, 권시연이 이렇게 랩을 잘했나?"

"남민지도 잘했어요."

"그러게. 남민지는 센터보다 사이드가 어울리네요."

"빅보스 출신이던데."

"네. 맞아요."

서연정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호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정수호 심사위원님, 먼저 말씀하시죠."

"아, 네."

이내, 그는 뒤통수를 슥슥 긁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남민지 양, 이번 무대는 '느낌'이 왔네요."

"...."

이내,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남민지.

그동안 겪은 고생과 설움이 한순간에 폭발한 듯했다.

"기적의 연습생이네요."

"네?"

서연정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정수호 심사위원님이 등급 평가를 뒤집은 유일한 연습생이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걸스온탑의 초반 흥행에 정수호의 지분은 상당히 높았다.

그의 심사평은 언제나 완벽에 가까웠다.

특히, 지금처럼 뒤통수를 긁적거릴 때면.

과연, 솔라을 키운 실력과 안목이 어디 가지는 않을 테니.

'.... 남민지는 데뷔하겠네.'

이후, 솔라 멘토들의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그럼 이제...."

오늘의 우승팀을 가리고, 탈락자를 선정해야 했으니.

"두 번째 순위 발표식이네요."

"...."

인터넷 투표와 이번 무대의 점수를 합친 결과.

심사위원들은 각자 평가지에 작성한 점수표를 제출했다.

솔라 멤버들이 보는 눈을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정 실장님은....'

미묘하게 달랐다.

특히, 오늘 큰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한 연습생.

엠마에게 부여한 높은 점수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고 보니,

등급 평가 때 일본 애니메이션 OST를 부를 때도 슈퍼 패스를 주지 않았나.

"정 실장님, 잠깐 저 좀 보실까요?"

"네. 대표님."

서연정은 스탭이 없는 자리에서 입을 열었다.

"다이애나 친동생이라고 편애하는 건 아니죠?"

"엠마요?"

"네."

사실, 실제로 편애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봤을 때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으니.

"오늘 무대, 방송 나가면 아마 순위가 떨어질 거예요."

"대표님, 댄스 무대를 고른 건 주희 실수에요."

"그건...."

"엠마는 분명히 포텐이 터지는 날이 올 겁니다."

"...."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하는 정수호 실장.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확신할 정도였나.

'....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건가.'

다이애나 동생이라는 타이틀로 초반에 이목을 끌었지만.

거품이 빠지면, 결국 본연의 매력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그럼 순위발표식 준비하러 가볼게요."

"네. 대표님."

오늘의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습생은 두 명이었다.

높은 인지도로 1위를 놓친 적 없는 한지아.

타고난 음색으로 바짝 추격하는 올리비아.

사실상, 보컬 1조와 올라운드 1조의 경쟁 구도였다.

이어서, 두 팀은 무대에 올라 최종 결과를 기다렸다.

MC 서연정은 스탭에게 건네받은 큐시트에 적힌 순위를 확인했다.

김덕자가 속한 예지팀의 승리.

두 팀의 점수 차이는 근소했다.

새로운 걸그룹은 한지아 원맨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민지 양, 어느 팀이 1위를 할 것 같나요?"

"아, 저는...."

남민지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팀이요!"

".... 후보에도 안 올랐는데."

"아 그러네."

"...."

저 친구는 자기애가 너무 강해.

* * *

강남의 한 아파트.

솔라 멤버들의 희비는 극명하게 갈렸다.

오늘부로 아끼던 멘티들을 떠나보냈으니.

"예지 언니는 좋겠다. 1등 해서."

"진짜 부럽다."

"근데 예지 언니는 어디 갔지."

"지유랑 부동산 간다던데."

"웬 부동산?"

재테크하려고 하나.

"뭐, 아무튼...."

이제 남은 연습생의 숫자는 서른 명 남짓.

슬슬 데뷔조에 뽑힐 만한 연습생이 보였다.

"한지아랑 김덕자는 데뷔하겠네."

"그럴걸."

은서는 오늘 떠난 멘티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양쭈, 오늘 많이 울더라?"

"응. 눈이 팅팅 부었어."

"너는 그러게 왜 댄스를 골라서."

"잘할 줄 알았지."

"...."

네가 잘한다고 멘티도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근데 우리도 짐 싸야 하는 거 아냐?"

"아, 제주도 여행."

"응. 조금 급한 감이 있지만."

"...."

걸스온탑 멘토와 멘티가 함께 떠나는 제주도 여행.

아니, 단순한 여행이라고 하기엔 스케줄에 가깝지만.

'.... 갔다 오면 더 바빠지겠지.'

영화 개봉도 있고, 코첼라 무대 준비도 해야 했다.

"은서, 너는 이제 당분간 실장님이랑 붙어있겠네."

"응? 아, 영화 때문에."

"고생이 많다."

"고생은 무슨."

이내, 나직하게 옛날이야기를 꺼내는 주희.

"작년에 첫사랑 시나리오 보실 때는 영화 제작이 될까 싶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시나리오, 내가 실장님한테 보여 드렸거든."

"아."

첫사랑 영화 제작은 전적으로 실장님이 밀어붙였다.

애초에 판권을 사오고, 투자에 제작까지 참여했으니.

"그때, 실장님께서 돌아다니면서 엄청 고생하셨지."

".... 그러게."

아버지께서 남긴 유작.

최근에 실장님을 떠올릴 때마다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에 느끼는 감각과 비슷했다.

그냥 고마운 마음이 전부일까.

삐, 삐삐삑─

그때, 약속 시각에 맞춰 지유와 예지가 숙소에 들어왔다.

함께 숙소에 들어온 박아영 코디의 양손에 옷이 가득했다.

"요기, 제주도 갈 때 입을 협찬 가져왔어요."

"감사해요."

사람이 많아 숙소가 북적거렸다.

엄지유와 박아영이 방문했으니.

"아영 언니, 이거 옷 괜찮아요?"

"응. 그거는 입어도 괜찮을 것 같아."

"네에."

예지 언니는 박아영 코디와 은근히 죽이 잘 맞았다.

텐션이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아영은 가끔 연애 썰을 풀었다.

"아영 언니, 아까 말해준다고 한 거 말해주세요."

"무슨 말?"

"좋아하는 남자랑 데이트하는 법 알려주신다면서요!"

"아, 그랬지. 그거 엄청 쉬운데."

"뭔데요?"

은서는 자기도 모르게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뚜루루루─

아는 남사친한테 바로 전화를 거는 박아영.

멤버들은 뭐하는 건가 잠자코 기다렸는데.

이내, 스피커폰 모드로 상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아영,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형식아, 너 리그 브론즈로 떨어졌다며. 이제 나보다 못하겠네?"

-뭔 개소리야. 처돌았나.

"엉? 뭐라고? 브론즈가 하는 말이라서 안 들리는데?"

-이런 씨, 너 당장 피시방으로 튀어와라. 5분 준다.

"...."

뚝.

숙소에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 이게 남자랑 데이트하는 법이라고?"

"피시방 데이트."

"아하."

소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와, 개쩐다. 이거는 무조건 먹히지."

"이게 먹힌다고!?"

"당연하지! 부모 욕보다 게임 못한다는 말이 더 심한 욕이야."

"???"

그 정도라고?

* * *

띠링, 띠링─

아침부터 울리는 핸드폰 때문에 잠에서 깼다.

주섬주섬 손을 움직여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예지....?"

[실장님, 리그 브론즈세요?]

[이제 저보다 못하실 듯 ㅎ]

한동안 뇌정지가 찾아왔다.

소미가 예지 폰으로 보냈나.

"아, 신소미가 게임 가르쳤구나!"

이래서 어른들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는 거야.

소미는 대충 한 시간 연습하면 다 외우니까.

남는 시간에 게임 해도 큰 차이가 없었지만.

"신소미, 뒤졌다."

어딜 예지한테 게임이나 가르치고.

내가 여행 가서 참교육 해줘야지.

뚜루루루─

곧장 지유에게 전화해서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지유야, 지금 어디야."

-솔라 숙소 앞에 있어. 오빠는 따로 공항으로 오면 될 것 같아.

"그래. 그럼 공항에서 보자."

-응. 이따 봐!

전화를 끊고, 당분간 제주도에서 소화할 스케줄을 정리했다.

걸스온탑, 솔라비티, 제주도 지역 홍보.

촬영 중간에는 첫사랑 관객 시사회까지.

"여행이라고 하기도 뭐하네."

그냥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봐야 할 듯.

.

.

.

.

.

잠시 후,

인천국제공항 주차장에서 뜻밖의 인물을 마주쳤다.

'은서 할머니....?'

한결같이 복장은 새하얀 모시옷을 입고 있으셨는데.

스포츠카에서 내리며 곱게 빚은 머리를 뒤로 넘기셨다.

곧이어, 은서 할머니께서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아이고, 정 실장님! 오랜만이네."

"넵. 할머니."

은서가 보내주는 생활비로 사시는 줄 알았는데.

"저기, 스포츠카는...."

"아, 이거? 두더지 코인으로 좀 벌었거든. 한 대 장만했지."

"...."

양주희처럼 잃는 사람이 있으면 따는 사람도 있는 법.

그거 최대 50배까지 오르지 않았나.

코인으로 돈 버는 사람이 현실에 있긴 하네.

"얼마나 투자하셨습니까?"

"대충 1억 정도?"

"...."

순간, 현타가 씨게 찾아왔다.

"그럼 50억....?"

"뭘 그 정도로 놀라나. 빨리 가자고, 손녀딸 보러 왔어."

"넵. 할 money."

나는 벼락부자 할머니를 쫄래쫄래 쫓으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공항 내부 VIP 라운지.

은서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곧장 달려왔다.

"할머니! 여긴 왜 왔어."

"에구, 손녀딸 보러 왔지."

"실장님, 우리 할머니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

챙겨주긴 누가 챙겨줘.

알아서 스포츠카 몰고 오셨는데.

"은서야, 잠깐만 일루 와봐."

"???"

나는 할머니 눈치를 살피며 은서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너 할머니께서 부자인 거 알아?"

".... 당연히 알죠."

"아하."

당연히 말씀해 주셨겠지.

"실장님은 언제부터 알고 계셨어요?"

"응? 방금 전에."

"...."

은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멤버들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알겠다."

"고마워요."

"고맙긴."

특히, 양주희한테는 진짜 말하면 안 되지.

코인이 원래 그래.

박탈감 장난 아니거든.

"역시, 실장님은 알고 나서도 표정이 똑같네요."

"응? 다를 건 뭐야."

"우리 할머니가 누군지 알면 다들 태도가 바뀌었는데."

"음....?"

너희 할머니가 누군데요.

"실장님."

"???"

이내, 은서는 배시시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리그 브론즈라면서요?"

"뭐라고?"

"이제 저보다 못하실 듯."

"...."

요즘 솔라 숙소에서 5인큐 돌리냐.

* * *

제주국제공항.

제작진은 다섯 장의 봉투를 가지고 멤버들을 기다렸다.

"피디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게 재미야."

탁상수 피디는 작가의 만류에도 굳이 0원 봉투를 집어넣었다.

봉투에는 100만 원, 10만 원, 만 원, 천 원, 0원이 들어 있었다.

이내, 솔라 멤버들과 연습생들이 현장에 도착하고.

탁 피디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피디님, 이게 뭐예요?"

"멘토분들은 봉투를 하나만 뽑아주세요."

"???"

당연하지만, 그들이 사용할 여행 경비였다.

[0원]

소미는 빈 봉투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것도 없는데요?"

"오, 그게 소미 씨 미래입니다."

"...."

눈으로 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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