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걸스온탑(3)
서연정 대표를 수식하는 단어는 여럿 존재한다.
한국의 대표 여가수, Queen.
큐앤지 레이블의 공동 대표.
「걸스온탑」의 공식 심사위원이자 단독 MC.
그녀가 등장하자 80명의 소녀들이 소리쳤다.
"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악─!!"
서 대표는 각자 순위에 앉은 소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 내가 누구?"
"여왕님!!"
"여긴 어디?"
"걸스온탑─!!"
나는 심사위원석에 앉아 MC를 빤히 쳐다봤다.
여왕님이 이거 하려고 방송했다에 오른손 건다.
"실장님, 안 떨려요?"
소미는 옆에서 꼼지락거리며 말을 붙였다.
"으으, 저는 긴장 돼서 죽을 것 같아요."
"다들 그래."
"화장실 가고 시퍼."
".... 좀만 참아."
사실, 이해는 됐다.
소미는 이제 고작 고등학교 2학년이니까.
'나도 쫄려.'
지금 뒤통수 하나 믿고 심사위원석에 앉았다고.
회당 2천 아니었으면 절대 여기 안 올라왔을걸.
"흐음, 신기하네요."
다이애나는 참가자들이 앉아있는 '순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거요."
"...."
솔라는 데뷔한 지 고작 2년밖에 안 됐으니까.
빌보드 프로듀서 아니면 제작할 수 없었겠지.
"도하나, 네 동생 실력은 어때?"
"엠마요? 그냥 R&B 불러요."
".... 구체적으로."
"소울은 있는데 영혼이 없어요."
"음."
그래. 그냥 안 물어볼게.
"너 지금 미션곡 준비는 하고 있어? 작가님이 시키신 거."
"네. 개별곡 5개, 멜로디만 있으면 돼요."
"그건 내가 퍼블리싱에서 가져올게."
"고마워요."
한편, 소미와 도하나 외에 언니 라인 세 명.
멤버들은 심각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다.
"너희, 지금 누가 A등급 받을지 분석하는...."
"요즘 이더리움이 좋다니까."
"아니, 내가 볼 때는 두더지 코인 떡상한다."
"화성 갈끄니까."
"...."
누가 주동자야.
"예지야,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아, 실장님! 주희가 요즘 코인 한대요."
"양주희였냐."
"으음, 원래 주희가 뭐 하나 꽂히면 열심히 해요."
".... 적당히 하라고 해."
"네에."
여전히 MC 퀸은 리액션 좋은 소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찐행복이 아닌가 싶다.
아재 개그를 쳐도 꺄르르 해주니까.
"자, 여러분! 이제 등급 평가의 시간이에요."
"우우우─"
"모두 A등급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와아아아!"
진짜 어린이들 데리고 장난하시는 것 같네.
"그럼, 지금부터 등급 평가를 시작합니다!"
"와아아아아아─!!!"
여왕님은 80명의 함성을 뒤로한 채 심사위원석으로 걸어왔다.
"아, 재밌었다."
".... 그래 보이세요."
"그래요?"
"네."
남자였으면 변태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정 실장님, 혹시 눈여겨보는 친구 있나요?"
"저번에도 말씀드리긴 했는데."
"아, 저기 2등에 앉은 친구."
"네. 엠마요."
순간, 다이애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 정도예요?"
"...."
노래는 안 들어봐서 모르겠는데.
성격 특이하고, 뒤통수 간지러움.
"일단 등급 평가 무대 확인해 보시죠."
"좋아요."
여왕님은 첫 번째 참가자를 호명했다.
순서는 당연히 제작진이 선정했으니.
"남민지 양,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시작하자마자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은 친구.
사전 인기투표에서 상위권 자리를 차지했다.
"비주얼 센터네요."
"그러게."
청순가련형 외모에 하얀 피부, 찰랑거리는 머릿결까지.
얼굴로 반쯤 먹고 들어가는 참가자.
당장 소속사에 들어와도 될 것 같다.
"안녕하십니까! 서광예고 1학년 남민지입니다!"
"소미 후밴가."
남민지는 눈빛을 반짝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아휴, 후배님 왔어?"
"네에!"
여우네. 말투에 애교 섞은 거 뭐냐.
"빅보스에서 3년 연습했네요?"
"네. 데뷔조는 무산됐지만,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방출인가요?"
"아뇨, 제 발로 나왔습니다."
"그래요. 그럼 남민지 양 준비한 무대를 감상할까요?"
"아, 네!"
여왕님의 진행과 함께 스탭들이 무대를 세팅했다.
"저는 루나 선배님들의 반쪽달 준비했습니다!"
"혼자서요?"
"네!"
4인조 곡을 혼자 준비하기 쉽지 않을 텐데.
이내, 안무 준비 자세를 취하는 남민지.
흘러나오는 반주와 함께 무대를 시작했다.
"호오오."
"으음."
분명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보컬.
매혹적이면서 끈적한 음색이었다.
"이건, 크으....!"
여왕님은 취향을 제대로 저격 당한 듯 감탄을 뱉었다.
'.... 왜지.'
내 취향에도 정말 잘 맞는데 뒤통수가 간지럽네.
'인성 문제는....?'
그건 아닌 것 같다.
말할 때가 아니라 무대 중간에 신호가 온 걸 보면.
* * *
당당한 자세로 1위 자리에 앉은 남민지.
몇몇 참가자들은 그녀의 실력을 보고 굳어버렸다.
예지는 상당히 높은 수준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짜 잘하네."
"그러게."
자신이 데뷔했을 때와 비교하기 미안한 수준.
예지는 수호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을 걸었다.
"실장님, 이 정도면 A등급이겠죠?"
"...."
아무런 대꾸도 없이 집중하는 모습.
이럴 때 보면 천재 같은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요즘 들어 그에 대한 마음에 확신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저기, 실장님."
예지는 그의 팔뚝을 합법적으로 터치했다.
"아, 음. 예지야. 왜?"
"첫 참가자라 기준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네."
무대를 마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남민지.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정수호 심사위원은 가장 먼저 마이크를 들었다.
"저는 조금 아쉽네요."
"????"
수호의 한 마디는 세트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모든 참가자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개인적으로 불호였어요."
"...."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도 않고 B등급을 주는 정 실장.
당연히 A를 생각하던 솔라 멤버들의 눈빛은 흔들렸다.
'.... 어쩌지?'
'그러니까.'
예지는 은서와 복화술로 대화를 이어갔다.
'첫 번째 순서라 점수를 짜게 주시는 건가?'
'원래 기준이 높으시잖아.'
이내, 예지는 눈치를 살피며 A 버튼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는, 전광판에 B등급 점수가 줄줄이 이어졌다.
순위석에 앉아있던 참가자들은 엄격한 기준에 입을 벌렸다.
"아.... 가, 감사합니다!"
살짝 당황한 듯 말을 더듬는 남민지.
고개를 떨구고 무대를 벗어나려는데.
"잠시만요."
여왕님은 바로 슈퍼패스를 사용해 A등급을 부여했다.
"저는 정말 좋았어요. 첫 무대에 슈퍼패스 쓰겠습니다."
"음...."
"실장님, 한 말씀 하시죠."
"네."
여왕님은 어깨를 으쓱이며 수호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제 기준이 조금 애매하다고 느끼실 수 있어요."
"...."
생각해 보면, 그의 선택은 나중에 진가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무대에서는 스타성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
세상에, 그 애매한 단어를 꺼내실 줄이야.
스타성이라니....?
그런 게 보이는 사람이 어딨어.
'.... 여깄네.'
그를 제외하면, 누가 솔라를 이렇게 슈퍼스타로 키울 수 있었을까.
심지어, 다이애나는 본인조차 빌보드에서 먹히는 재능인지 몰랐다.
이 정도면 선견지명.
단순히 안목이 좋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마치 미래를 보는 듯한 지혜를 가졌으니.
이어서, 무대에 오르는 참가자는 긴장한 듯 목소리를 떨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그럴 때마다 부드럽게 챙겨주는 정 실장님.
너무 자상하고 스윗해서 질투가 날 것 같다.
"자, 다음."
이후, 참가자들은 한 명씩 계속해서 무대에 올랐다.
A등급을 받은 참가자는 한지아와 남민지 뿐이었다.
"다음으로.... 김덕자."
"올리비아?"
"이름이 두 개네요."
"아하."
고 김필성 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딸.
김덕자는 무대에 오르고 본인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올.리.비.아.입니다!"
"...."
예지는 그녀가 제출한 오디션 영상을 기억했다.
1차 오디션에서 보여준 실력은 조금 아쉬웠다.
"제출한 영상이요."
아니나 다를까, 여왕님은 잔소리를 시작했다.
"감기 걸린 상태로 불렀죠?"
"네? 아.... 네!"
"그럼 왜 다시 찍지 않았죠?"
"참가 결심을 늦게 해서요. 마감 기한이...."
"목 관리도 실력입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여왕님의 쓴소리와 함께 김덕자는 기타를 들었다.
고음은 없이, 잔잔한 분위기의 선곡.
그녀의 감미로운 보컬에 빠져들었다.
시원한 고음과 부드러운 음색만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
80년대 추억 돋는 감성에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어우러졌다.
역시,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가수지.
이번 그룹 메인보컬을 찾은 것 같다.
"노래 좋네."
"근데 춤은....?"
"...."
멤버들은 반사적으로 정 실장을 바라봤다.
* * *
등급 평가를 마치고,
심사위원들은 다 함께 모여 인상 깊었던 멤버를 정리했다.
한층 성장한 실력으로 1위를 차지한 한지아.
압도적인 가창력으로 A등급을 받은 김덕자.
그리고, 여왕님은 엠마가 선보인 무대를 언급하며 발끈했다.
"정 실장님, 꼭 엠마한테 슈퍼패스를 써야 했나요?"
"네. 스타성이 보여서."
"애니메이션 OST를 불렀는데요?"
"...."
그건 저도 유감입니다.
"안무는 귀엽던데요."
"아잇."
처음 들어보는 일본 애니메이션 OST.
심지어 그걸 R&B 창법으로 부르더라.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아, 피디님."
이내, 탁성수 피디님이 심사위원석에 걸어와 말을 걸었다.
"심사위원분들 숙소도 준비했습니다."
"아뇨. 출퇴근할게요."
"아, 그러시겠습니까."
"네. 회사도 들러야 해서."
"까비."
"...."
어차피 공식 녹화일은 일주일에 하루.
추가 녹화를 감안해도 2, 3일 정도였다.
"저기, 내일은 아침에 오시는 거죠?"
"그럼요."
내일은 참가자들이 멘토를 선택하는 날이었다.
다섯 팀으로 나뉘어 각자 단체곡을 부를 테니.
"아, 혹시 단체곡 들어보시겠습니까?"
"안무도 나왔어요?"
"네. 잠시만요."
이내, 탁 피디님은 스마트폰을 꺼내 음원을 재생했다.
80명이 5팀으로 나뉘어 부르는 단체곡.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안무는 필수였다.
-한 번만, 한 번만, 한 번만, 한 번만 나랑 사겨줘.
뭔데, 이 구걸송.
"제목은 한 번만, 입니다."
"안무가 엄청 쉽네요."
"네. 80명이 다 출 수 있어야 해서."
"...."
한 번만 사겨줘, 뽑아줘, 만나줘.
너무 비굴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 중독성 있네요."
그래도 뒤통수는 간지러우니까 통과.
원래 이런 노래는 호불호 씨게 갈린다.
"멘토 선택은 정원 20명으로 정하겠습니다."
"A등급부터 우선권이 있겠네요."
"그건 당연하죠."
상위권 참가자가 몰리는 멤버가 있을 터였다.
"잠깐만, 20명씩이면...."
어쩌면 80명 모두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
소미는 갑자기 모이는 시선에 발끈했다.
"뭐에요, 제가 설마 꼴찌 할까 봐요?"
"...."
너는 지금 꼴찌 문제가 아니야.
멘티가 한 명도 없을 수도 있어.
"지, 지아랑 저랑 친해요!"
"그래. 화이팅."
이내, 예지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저희 오늘 그냥 여기 숙소에서 자면 안 돼요?"
"응? 왜."
"어차피 내일 멘토 선택일이기도 하고...."
"음."
어차피 저녁에 스케줄 비워놓긴 했는데.
"저도 좋아요!"
"찬성."
"베리 굿."
"...."
다들 의견이 비슷한 것 같아서 허락해야 할 것 같다.
"그럼 지유도 남길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네에!!"
다들 무슨 꿍꿍이가 있는 눈치였다.
"은서야, 술 먹지 마라."
"...."
이거 봐, 뜨끔한 거 보니까 먹을 생각이었네.
"요, 요즘은 거의 안 먹어요!"
".... 거의?"
거짓말은 또 못 해요.
요즘 담배는 안 피우나.
"그럼 저는 이만 회사에 잔업이 있어서."
"아, 그래요."
나는 지유를 세트장에 남겨두고 회사로 복귀했다.
* * *
「걸스온탑」 생활관에서 A등급은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오직 5명에게 주어진 혜택.
분홍색 티셔츠를 입었으니.
"와, 색깔 진짜 예쁘다."
"에이, 똑같지 뭐."
"부러워...."
한지아는 민망한 표정으로 룸메이트들을 바라봤다.
"지아 언니, 멘토는 누구 선택할 거야?"
"글쎄."
멘토가 직접 무대와 곡 선택까지 도와주는 시스템.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엔 그냥 소미랑 할까 했는데.
믿음직한 보호자가 필요하지, 친구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아무래도...."
"다이애나님이겠지?"
"...."
그쪽이 가장 유리하지 않을까.
아니면 예지 님도 믿음직하고.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고 한 명의 참가자가 방에 들어왔다.
'.... 남민지.'
이번에 서광예고에 입학했다던 1학년 후배.
오늘 B등급을 받은 이후로 우울해 보이던데.
"안녕하세요."
"네? 아, 네!"
이내, 다시 밝은 기색을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
착한 아이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처럼 노력했다.
"우리 방에 A만 두 명이네."
"와, 그러게."
아마 내일 촬영부터 진짜 시작일 것 같다.
다들 짐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통, 통, 통─
문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두드렸다.
"누구세....?"
"안녕. 난 소미라고 해."
"???"
멘토가 왜 여기에.
이래도 되는 건가.
'설마 영업하러 온 거야!?'
한지아는 어떤 호칭을 써야할지 고민했다.
"소, 소미.... 님."
"무슨 소리야. 친구끼리."
"으응."
순간, 소미는 매의 눈으로 룸메이트들을 확인했다.
"아이고, 여기 후배님도 계셨네?"
"???"
한편, 남민지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몸을 움츠렸다.
모든 걸 꿰뚫어보는 듯한 소미의 눈빛을 마주하며.
"후배님, 컴 온."
"예?"
"따라 와요."
".... 아."
남민지는 뭔가 크게 잘못한 사람처럼 소미를 뒤따랐다.
잠시 후, 카메라 한 대 없는 구석진 장소.
두 사람은 함께 막대사탕을 빨아먹었다.
"민지야, 멘토 선택은?"
".... 헤헤."
"우리 잘하자. 오래 봐야지."
"네에."
다른 사람 고르고 싶은데여.
"저기 사람 지나간다. 웃어, 웃어."
"헤에."
지나가는 스탭들은 이쪽을 바라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 보기 좋아요!"
"민지 씨 응원할게요! 하하하."
"...."
아, 응원하지 말고 도와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