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13화 (113/200)

[113] 재능(6)

엔넷 예능국은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큐앤지 레이블의 천재 프로듀서가 방문하는 날.

탁성수 피디는 작가들과 함께 회의를 진행했다.

"김 작가, 대종상 후보 명단 봤어?"

"당연하죠."

대종상 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제와 함께 국내 3대 메이저 영화제 아닌가.

「복수소녀」는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한 6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800만 작품이니까 적어도 한두 개쯤은 타겠지.

"시작도 하기 전에 방송 홍보 제대로 해주시네."

"솔라 완전체가 멘토로 출연해 준다면...."

"우리 이번에 진짜 사고 한번 치겠는데?"

"그니까요!"

올해 국내 연예계는 그야말로 '솔라의 해'라도 봐도 무방했다.

다섯 소녀들은 방송가를 전부 휩쓸어버렸다.

그렇다고 문어발식으로 여기저기 나갔던가.

'.... 실패를 모르는 남자.'

모든 방송이 최소 중박, 혹은 그 이상이었으니.

정 실장의 안목이 연예계에서도 유명할 수밖에.

"우리 걸스온탑 연습생 모집 기간 좀 늘리자고."

"그럴까요?"

"그래야지. 정 실장님이 키울 건데."

"아하."

딱히 언플도 필요 없었다.

솔라를 키운 '그'가 제작하는 신인 연습생을 뽑는데.

전국에서 재능 있는 소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겠지.

"작년에 탑아이돌 찍을 때는 상상도 못했네."

"네. 솔라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죠."

쏟아지는 걸그룹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이러다 큐앤지가 프렌즈처럼 되는 거 아냐?"

"으음, 아무리 그래도 하이엔드는 넘사벽인데."

"솔라는 작년 3월에 데뷔했다고."

"...."

데뷔년도를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었다.

이미 다이애나는 빌보드 작곡가 아닌가.

똑, 똑─

그때, 정수호는 회의실에 노크를 두드리고 문을 열었다.

그 옆은 조수처럼 따라다니는 엄 씨 매니저와 함께였다.

"정 실장님, 오셨습니까."

"네. 피디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하하."

작년 탑아이돌을 찍을 때부터 눈여겨보던 인물.

로드 때부터 솔라를 키운 정수호를 다시 만났다.

그때와 달리, 철저하게 을의 입장에서.

'텀블 인베스트먼트랑....'

반드시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제작 전부터 투자 제안을 받았다.

"저기, 실장님."

"네. 피디님."

"이번에 텀블 인베에서 투자를 하겠다고 하던데."

"아, 들었습니다."

"혹시, 실장님이 추천해 주셨습니까?"

"추천이라고 하긴 좀 거창하죠."

"...."

이내, 옆에서 본인이 더 뿌듯해하는 엄지유 매니저.

이런 든든한 직장 상사가 있으면 그럴 만도 하겠지.

"일단 솔라 출연은 일주일에 하루만 가시죠."

"네? 추가 촬영이 있는 날엔...."

"그럴 때는 스케줄을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사실, 이 정도는 당연했다.

"그리고 제가 심사위원으로 나가는 부분은...."

이윽고, 그의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솔직히, 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 음.... 여왕님과 함께 투톱으로 홍보할 생각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끔찍하게 하기 싫은 건 아니겠지.

이미 여러 방송에 출연했으니까.

"조, 조건! 조건부터 확인해 주십쇼!"

"...."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계약서를 확인하는 정 실장.

출연료를 최대한 맞출 생각이지만.

매번 행사만큼 책정할 순 없었다.

"멤버별로 회당 천이네요."

"그, 네. 하하."

"저는 좀 더 쳐주셨고."

".... 부족하신가요?"

"...."

오디션 프로 심사위원 출연료는 정해져 있었다.

탑급 MC도 예능 방송에서 2천 정도는 받으니까.

"저기, 여왕님과 맞춰 드릴 순 있습니다."

"...."

탁 피디는 그의 굳은 표정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정수호 실장이 솔라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가 함께 출연하면 열의가 다를 터였다.

"실장님, 제발 출연해 주십쇼. 부탁드립니다!"

"...."

그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 듯 무언가 골똘히 생각했다.

'설득이 먹혔나....?'

회의실에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 * *

미쳤다.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회당 2천만 원이나 준다니.

너튜브랑 영화 투자로 재미를 보고 있다고는 해도.

'와아, 2천만 원이면....'

세상에, 국밥이 몇 그릇이야.

다시 생각해 보니까 심사위원도 나쁘지 않아.

요즘 뒤통수 로또 잘 터져주니까 또 모르잖아.

"실장님, 그런 거였군요."

"네?"

"연습생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부담감. 원래 심사위원분들이 많이들 고민하십니다."

"...."

이미 할 마음 굳혔는데, 피디님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거 아시죠? 프렌즈에 방 의장님도 오디션 프로 심사위원 출신입니다."

"예. 당연히 알죠."

"탑 프로듀서분들이 많이들 겪으시는...."

"할게요."

"저, 정말요?"

"네."

회당 2천이면 물구나무선 채로 박수도 치지.

"실장님, 부탁하면서도 반쯤 포기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 제가 더 감사하죠."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네. 피디님."

전체적인 오디션 포멧을 확인하고, 회의실을 벗어났다.

"지유야, 매주 금요일은 스케줄 빼자."

"알겠엉."

당분간 기본적인 음악 지식은 키워야겠네.

심사위원인데 아무것도 모르면 쪽팔리잖아.

"오빠, 진짜 대단하네."

"응? 뭐가."

"이제 방송 출연 안 하려고 했잖아."

"그야...."

출연료 보기 전에는 그랬지.

"솔라 멤버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거 맞지?"

"희생은 무슨 희생이야."

"우리 언니들, 엄청 감동하겠다."

"됐네요."

너는 금수저라 모르겠지만 2천은 엄청나게 큰돈이에요.

"오빠, 설마 출연료 기부하고 그러는 거 아니지?"

"엉?"

"진짜 그러지 마. 나 화낼 거야."

"...."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내가 더 개빡치겠지.

"뭐야, 왜 대답이 없어? 진짜 기부하려고....?"

"안 해."

"휴우, 다행이다."

".... 네가 왜 다행이야."

"걱정돼서."

이러다 강제 기부 당하는 거 아냐?

엄지유가 쓸데없는 말 하고 다니면.

"지유야, 너는 가끔 입이 문제야."

"응? 내가?"

"그거 꿰매자. 그게 좋겠어."

"아잇."

지유와 함께 밴을 타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

함께 연말에 쌓인 다양한 스케줄을 정리했다.

"대종상을 국민 투표로 뽑는다고?"

"반영 비율 50프로. 올해 60년 만에 처음 도입한다던데."

"그래?"

요즘 솔라 인기를 생각하면 오히려 좋아.

"아무튼, 은서 영화는 계속 신경 쓰자고."

"오늘도 다이애나가 열심히 곡 작업하고 있더라."

"잘하고 있네."

내년에는 영화를 두 편이나 개봉한다.

연말 가요제와 시상식 시즌만 끝나면.

'슬슬 프로모션 시작하겠네.'

제작비 절반을 투자한 「첫 사랑」은 진짜 대박 났으면 좋겠다.

걸스온탑이든, 솔라비티든.

영화 홍보를 좀 해야겠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함께 사옥에 들어가며 대화를 이었다.

"오빠, 다이애나 친동생도 걸스온탑 지원할 거라던데."

"뭐야, 미국에서 오는 거야?"

"응. 그럴 것 같아."

"...."

반갑게 인사하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로비를 지나쳤다.

'다이애나 동생이면....'

미국에 있을 때도 여동생 이야기를 듣긴 했다.

몸이 좀 약해서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다던데.

"오빠! 저쪽에...."

그때, 지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에 서 있는 연습생.

한지아는 로비에서 나를 발견하자마자 도도도 달려왔다.

"실장님, 안녕하세요!!!"

"지아야, 무슨 일이야."

"오늘 오디션 이야기 들었어요."

"응?"

지아는 무언가 결심한 듯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도 걸스온탑에 출연하고 싶습니다!"

".... 굳이?"

솔라 정규앨범 타이틀곡을 작곡했으면서.

가서 음 이탈 한 번만 해도 평생 박제될걸.

"지아야, 괜히 특혜 논란만 생길 수도 있어."

"그냥 다른 연습생들이랑 똑같이 평가해 주세요."

"아니, 어차피...."

거기서 뽑혀도 데뷔조 발탁이 최대 아웃풋 아닌가.

이미 일본에서 데뷔했고, 한국에서도 준비 중인데.

"지아야, 거기서 1등 할 자신 있어?"

"그, 그건...."

연습 기간 1년짜리 초보 연습생.

노래와 춤은 아직도 평범했으니.

"거기서 성적 나쁘면 오히려 손해인 건 알고 말하는 거지?"

"네, 넵! 각오했구먼유!"

"...."

사투리 쓰는 거 보니까 긴장했네.

'얘가 원래 이렇게 자기주장이 확고했나....?'

왜 편한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걸까.

나처럼 편의주의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도전.

솔직히, 무조건 반대하고 싶긴 한데.

스윽─

간질거리는 뒤통수 감각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무조건 똑같은 입장에서 참가해."

"네?"

"걸스온탑, 지원해 보라고."

"가, 감사합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직원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중에는 보컬, 안무 트레이너들도 섞여 있었다.

"지유야, 가자."

나는 한지아를 뒤로한 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지아가 오빠 때문에 많이 바뀐 것 같아."

"응?"

"인정받고 싶은 거지."

"...."

당연히 공 대표님 결재까지 필요한 사안이었다.

솔라 타이틀곡 작곡가, 회사의 중요한 인재니까.

"지아는 잘할 거야."

뒤통수는 과학입니다.

* * *

솔라의 연말 시즌은 바쁘게 흘러갔다.

멤버들은 가요제 준비로 정신없었다.

"실장님, 오셨어요?"

"응. 은서야."

수호는 솔라의 숙소에 거침없이 발을 들였다.

금남의 영역에 들어오는 유일한 남자.

은서는 앞치마를 두른 채 그를 맞았다.

"멤버들은 다들 자고 있어요."

"지금 요리해?"

"네!"

".... 왜?"

"???"

은서는 부엌칼을 들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해드리면 감사합니다-, 하고 드시면 돼요."

".... 그럴까, 그럼?"

"네."

할머니와 단둘이 살 때도 요리를 자주 해드렸다.

예지 언니에게 미안하지만, 비교하기도 민망했다.

'만약에....'

혹시 첫 사랑도 흥행에 성공하면.

전부 정수호 실장님 덕분이겠지.

판권, 투자, 제작, 캐스팅, OST까지 뭐 하나 손대지 않은 게 없었기에.

"할머니께서는 잘 지내셔?"

"네?"

방 마담인 걸 아시는 건가.

"그때 병원에."

"아...."

아직 모르시나 봐.

"이제 괜찮으시죠."

"다행이네. 잘 좀 챙겨드려."

".... 네."

문득, 할머니께서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나보다 뛰어난 남자 아니면 시집갈 생각하지 마라.

평생 혼자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어쩌면, 그런 남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탁, 탁, 탁, 탁─

도마 위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소리.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 맛있는 냄새.

실장님이 뒤에서 자신을 쳐다보니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은서야, 그거 들었어?"

"뭘요?"

"미국에서 예지한테 누가 고백 공격했다며."

"아, 같이 연기했던 톰이요."

"음, 그래."

은서는 예지에게 들 썰을 덤덤하게 풀어냈다.

"그래도 언니가 정중하게 거절했대요."

"예지, 기특하네."

"네? 뭐가요?"

"그냥."

"...."

은서는 식탁에 앉아 있는 실장님을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저랑 쇼핑하기로 한 약속 안 잊었죠?"

"아 맞네."

"아 맞네?"

실장님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저 요즘 패션 공부하거든요?"

"오, 그럼 브랜드 광고 하나 잡아올까?"

"상관없어요."

그는 씨익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네가 내 옷 골라주면 특별히 네 것도 사줄게."

"뭐, 뭐야. 누가 사달래요!?"

"싫음 말고."

"...."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말하는 수호.

은서는 표정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 그럼 사주던가."

"그건 반말이고."

"아 진짜!"

"뭐."

은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고개를 돌렸다.

두근─

쓸데없이 쿵쿵대는 심장을 애써 무시했다.

이번 영화 촬영부터 자꾸 왜 이러는 건지.

"흐아암."

이내, 양주희는 크게 하품하며 방에서 나왔다.

"은서야, 요리해?"

"김치찌개."

"아잇, 짜게 먹으면 근손실.... 실장님 오셨어요?"

"어. 주희야."

"잘됐다. 제가 재밌는 거 보여줌."

"재밌는 거?"

"예압, 너튜브에."

은서는 시끌벅적한 식탁 분위기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곧이어, 다른 멤버들도 한두 명씩 부엌에 모여들었다.

"으아, 맛있는 거 먹구시퍼."

소미는 오늘도 역시 반찬 투정.

급식 먹는 막내는 입을 열었다.

"아우, 은서 언니. 나 찌개는 얼굴이 부어서...."

"누가 먹으라고 칼 들고 협박함?"

"...."

은서는 칼 들고 활짝 웃었다.

"최애 음식입니다."

"정말?"

"넵!"

우리 소미가 착해.

말을 정말 잘 들어.

막내는 슬금슬금 식탁에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뭐야, 실장님 너튜브 보시네요."

"응. 솔라비티."

"하아, 흉가 체험 때 예지 언니가...."

"자, 잠깐만!"

그때, 예지는 방에서 뛰쳐나오며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엄마아아....!

영상 속 곡소리가 부엌에 울려 퍼졌다.

"뭔 소리지. 이게 고장났나?"

"...."

언니, 그만해.

흉가에서 눈물 콧물 질질 짜며 엄마를 찾는 김 리다.

식탁에 앉은 유일한 남자는 어색한 듯 미소를 지었다.

"아, 음. 예지는 콧물도 예쁘게 흘리는구나?"

".... 봤어요?"

"못 봤어."

주희는 눈치를 살피더니 방으로 후다닥 도망쳤다.

"언니,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아."

"문 열고 얘기해."

이 멤버로 어떻게 탑스타가 됐을까.

'실장님은 정말....'

은서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 *

얼마 후.

솔라를 전면에 내세운 「걸스온탑」 프로모션.

전국에서 유능한 인재가 지원서를 작성했다.

"피디님, 한지아가 지원했어요!"

".... 다이애나 친동생도 지원했네."

"반응 장난 아니에요!"

탁 피디는 지원 서류를 확인하며 한 소녀를 발견했다.

"어라, 이 친구는...."

비운의 천재 싱어송라이터 고(故) 김필성의 딸.

그 천재성을 이어받았다면 얼마나 재능이 있을지.

"이번 방송, 진짜 기대해볼 만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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