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재능(1)
큐앤지 레이블 사옥.
나는 도하나의 작업실에 들어가기 전에 복도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유야."
-오빠, 지금 주희 언니 경기 직전이야.
"벌써?"
-응.
공차녀 이번 시즌은 양주희 때문에 제작진이 많이들 고생했다.
팀의 에이스는 전반, 후반 중 한 번만 뛸 수 있다는 룰 때문에.
-그 룰은 오늘 경기까지만 적용한대.
".... 그럴 것 같더라."
-사과문 올라옴.
"...."
스페이스로 옮기자마자,
태양빛 팬들이 몰려가서 욕하더라고.
"괜히 내가 미안해지네."
-그러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청률은 잘 나오지만.
주희는 이번 시즌만 함께 하고 나와야겠다.
"여튼, 주희 컨디션은 어때?"
-최상이지.
언제나 최상이었지.
"오늘 국대 가족 대 걸킥스잖아. 주희는 후반전만 뛰는 거지?"
-응. 오빠도 올 수 있으면 늦게라도 와.
"못 가지. 여기도 쇼미 촬영 중이라."
-알겠엉. 멀리서 응원해줘!
"그래."
전화를 끊기 직전, 지유에게 한 마디를 추가했다.
"잠깐만, 소미 예능 준비하고 있지?"
-아, 솔라비티?
"응. 그거.
솔라와 액티비티를 합성한 너튜브 예능 「솔라비티」.
소미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도 출연할 예정이었다.
-톡으로 계속 보고할게.
"그래. 수고하고.
-뿅!
뚝.
엄지유도 이제는 진짜 매니저 같아 보인다.
신입사원 때는 런각 잡는 금수저 같았는데.
드르륵─
이내, 도하나 전용 작업실에 들어가 쇼미 피디님을 확인했다.
이런 쇼트컷 따는데 직접 오셨으니.
그만큼 도하나 인지도가 높다는 뜻.
피디님께 눈으로 인사를 드리고, 도하나의 프로듀싱을 감상했다.
"문백 씨. 랩이 하고 싶어요?"
"...."
얘는 또 왜 이러고 있냐.
다이애나 요즘 까칠해.
브래키 팀의 본선 진출 래퍼, 장문백.
분위기가 살짝 다운된 듯한 래퍼였다.
"다시 녹음 갈게요."
"네에."
문백은 다시 준비한 랩을 뱉었다.
-췍─! 암더 코리안 탑 클라스 힙합 모범 노블레스 패블러스 터블런스 골져스 벗 댄져러스!
저 새끼 뭐야.
쟤 기믹이었냐.
본선 무대에 어떻게 올라온 거야.
"문백 씨, 힙통령이시네요."
"감사합니다. 도하나 프로듀서님!"
"...."
칭찬 아니야.
'요즘 쇼미더돈까 수듄이....'
끼기기긱─
순간, 음악 소리에서 칠판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무슨 소리야."
"네?"
전부 나를 쳐다보면서 의문을 표했다.
"방금 이상한 소리 안 들렸어요?"
"무슨 소리요?"
"방금 거 다시 틀어봐."
"...."
이내, 다이애나는 같은 녹음 파트를 다시 틀었는데.
'뭐야, 왜 지금은 안 들려.'
오싹─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양팔에 소름이 돋았다.
할머니께서도 가끔 이런 경험 있으셨다던데.
'.... 나 진짜 신내림 받는 거 아냐?'
이내, 도하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실장님, 혹시 녹음실에 귀신 목소리 들리면 대박 난다던데....!"
"아니, 그렇다기 보단."
"우리가 제이콥 팀 이기려나 보네!"
"...."
아, 뒤통수에 신호 왔다.
지금 엄청 간지러운데.
다이애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다시 미디를 만졌다.
"다시 갈게요."
"네!"
이내, 쇼미 피디님께서 내게 슬쩍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저기, 실장님."
"네. 피디님."
"이번에 뮤직스타 1위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당분간 도하나 효과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댄싱 스트릿, 주희 인기도 유지될 것 같은데.
"피디님, 본선 무대 피처링은 무조건 한 명만 됩니까?"
"아뇨. 제이콥 씨도 피처링 두 명입니다."
"그래요?"
"네. 작년 쇼미 우승자랑 준우승자."
"...."
왓더뻑.
"이번에 제이콥 씨가 그 크루에 들어갔거든요."
"...."
다이애나 무대도 아니고, 장문백 무대.
아무리 잘해도 이기는 게 불가능했다.
"잠시만요."
혹시라는 게 있지 않나.
뚜루루루─
작업실을 벗어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헬로. 잘 지내셨어요?"
-와썹, 브로.
"핀 브라운, 요즘 칼리 잭슨 많이 바빠요?"
-바쁘긴 한데.
아직 늦기 전에 물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한국 힙합 프로 출연 생각 있으신가 해서요."
-스케줄 확인해 볼게요.
"이게, 곡 작업도 필요하거든요."
-연락드리죠.
* * *
마침내 성사된 공차녀 최강자전 매치.
국대 가족 vs 걸킥스.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가장 강한 두 팀을 마지막에 배치했다.
물론, 걸킥스 팀은 사실상 양주희 원툴에 나머지는 보조였다.
양쪽 팀의 에이스는 후반전만 참여할 예정이었으니.
"흐음."
김춘식 감독은 주희의 옆에 앉아 전반전 상황을 지켜봤다.
"아오, 개판이네."
그는 계속 벌어지는 스코어에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3대 0까지 격차가 벌어진 스코어.
적 팀에 에이스인 경주미가 빠졌음에도.
"주희야, 미안하다."
"뭐가요."
"내가 더 열심히 가르쳤으면...."
"다행인데요."
"응?"
어깨를 으쓱이며 점수판을 바라보는 주희.
그녀는 슬쩍 일어나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10점 차까진 예상했거든요."
"...."
주장님, 얼마나 팀원을 안 믿는 건데.
아니, 반대로 못할 걸 굳게 믿은 건가.
삐이이이─
하프 타임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 소리.
선수들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복귀했다.
"얘들아, 수고했어."
"하아, 하아."
"물 마셔, 물."
전반적으로 상대 팀이 유리했다.
국대 가족 팀은 기본적으로 운동과 친한 사람들이라.
빼빼 마른 걸그룹 팀과 비교하면 체급 차가 상당했다.
"저기요."
그때, 옆 부스에 있던 상대 팀 감독이 말을 걸었다.
걸킥스의 전 감독이자, 국대 가족의 현 감독이었다.
"주희 씨."
"네?"
"저번에 다이애나 씨 오셨잖아요. 오늘은 안 오시나?"
"...."
이전과 지금 다이애나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
"오늘 쇼미 녹화 있어서 못 왔어요."
"에이, 아까비."
"...."
김 감독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매너 없는 거 아닌가.
"야, 인마. 미쳤어? 어딜 우리 선수한테 예의 없이 말을 걸어?"
"뭐 어때, 휴식 시간인데."
"시끄러, 인마."
"까칠하기는."
김 감독은 그를 무시한 채 걸킥스 멤버를 불러 모았다.
"자, 다들 모여 봐.'
"네에."
이내, 후반전 전략을 설명했다.
"얘들아, 무조건 수비만 해."
"정말요?"
"주희 빼고."
"...."
양주희 원톱에 나머지는 수비 포메이션.
보통은 이게 정상적인 전략인가 싶지만.
삐이익─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잔디를 밟는 주희와 걸킥스 멤버들.
옆에 부스에선 슬슬 경주미가 준비했다.
국대 가족 팀은 밸런스가 완벽해 보였다.
그동안 괜히 역대 최강팀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주희 씨, 제가 태양빛 정회원인 거 말씀드렸죠?"
"네. 주미 언니."
"그래도 오늘 경기는 못 봐 드려요. 죄송합니다."
"다행이네요. 저도 안 봐 드려도 돼서."
"...."
김춘식 감독은 두 여인의 팽팽한 기싸움을 지켜봤다.
'이길 수 있을까.'
분명, 주희의 실력은 역대 공차녀 역사상 최강이었다.
하지만, 팀원 차이는 심각했다.
더군다나 3대 0 스코어 차이는.
"형님, 포기하면 편하다니까."
"...."
옆 부스에서는 국대 가족 감독이 깐족거렸다.
"너 이따 보자."
"에이, 선배. 카메라 앞에서 말하지."
"하여튼, 말은."
삐이이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볼 터치를 시도하는 양주희.
상대 팀은 그녀를 견제하기 위해 무작정 달려들었다.
툭.
가벼운 몸놀림으로 수비수를 제치고 달려가는 그녀.
"주희 좋아쓰, 가즈아!"
이내, 경주미는 위풍당당하게 주희를 막아섰다.
그래도 그녀에겐 막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라....?'
차이가 심하잖아!?
혹시 지나간 경기에서 100%를 보여준 게 아니었나.
그동안 성장이 멈춘 게 아니라, 적수가 없는 거였어.
'세상에, 내가 너무 과소평가를....!'
미쳐 날뛰는 축구 천재.
나이만 좀 어렸어도 한국 여자 축구계 역사를 바꿨을 텐데.
문득, 조금 전에 양주희가 경주미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다행이네요. 저도 안 봐 드려도 돼서.
그냥 기싸움이 아니었구나.
진짜로 그동안 봐준 거였냐.
가볍게 경주미를 제치고 골키퍼와 1:1로 대치하는 주희.
키퍼는 몸을 날려 막으려고 했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퍼어엉─
양주희는 그대로 대포알 슈팅을 날려 골망을 흔들었다.
"이, 이거 뭐야!"
국대 가족 감독은 당황한 듯 목소리가 올라갔다.
"이게 맞아?"
"응. 맞아."
주희는 분당 한 골씩 차곡차곡 점수를 좁혀갔다.
잠시 후,
결국, 세레머니를 생략할 만큼 골을 많이 넣었으니.
국대 가족 팀의 감독은 황당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매너해라."
"뭐가."
"진짜 매너겜 해라."
"...."
현재 스코어는 이미 8대 3.
사실상 거의 끝난 경기였다.
"분명히 연습 못하게 막았다고 했잖아! 반칙이야!"
"연습해서 반칙이라고? 개소리하지 마라."
"아니, 왜 예능에 진짜 축구선수를 데려온 건데!"
"...."
그렇게, 주희는 공차녀의 전설로 남았다.
* * *
얼마 후.
SBC 에능국에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하차 제안을 건넸다.
이유는 너무 잘해서라는데.
그냥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좋아."
하차 안 시켰으면 축구만 하러 다닐걸.
그래도 헬스장은 숙소 근처라 편하지.
"지유야, 오늘 주희는 뭐한대."
"뭐하긴, 헬스장으로 돌아갔지."
".... 회귀했네."
제작진 입장도 이해는 됐다.
물론, 당장은 양주희 덕분에 엄청난 시청률을 보장받겠지만.
주희가 다음 시즌에 출연할지도 모르고, 미래를 생각해야지.
팀 밸런스를 너무 파괴하니까.
프로그램 수명이 줄어들 수도.
끼이익─
이내, 엔넷 방송국에 도착해 스케줄을 확인했다.
"지유, 우리가 네 번째 무대야."
"알겠어. 오빠."
"아영 씨, 다이애나 코디 좀 빨리 부탁해요."
"넵! 걱정하지 마쎄용!"
하여튼, 둘 다 참 밝아.
"다들 먼저 들어가."
멀어지는 지유와 코디를 확인하고,
곧장 스마트폰으로 오늘 연예계 뉴스를 확인했다.
현재 빌보드 차트에 있는 힙합 가수 방한 소식을.
[빌보드 가수 칼리 잭슨의 한국 방문, 목적지는 어디일까. 현재 큐앤지 레이블 앞은....]
'음, 벌써 오셨나 보네.'
다이애나랑 연관 지어 생각할 사람은 있겠지만.
쇼미더돈까 예능 출연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천천히 오시라는 문자 한 통을 보내고 방송국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곧이어, 나를 반겨주는 제작진분들.
그중, 작가님 한 분이 다가오셨는데.
"정 실장님! 숨은 피처링이 누구길래 아직도 말씀을 안 해주세요?"
"계속 숨기려고요."
"앗, 설마 리허설에서도...."
"네. 본무대에만 설 겁니다."
"...."
어차피 리허설 시간까지 도착 못 해요.
지금 공항에서 차 타고 오고 있으니까.
"지금 제이콥 무대입니까?"
"네. 맞습니다."
이미 스테이지 위에서 세 명의 래퍼가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제이콥, 실물은 처음 보네.'
둔탁한 붐뱁 비트에 랩을 툭툭 뱉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역시, 피처링 라인업은 아주 화려했다.
작년 쇼미 우승자와 준우승자였으니.
얼마 전에 제이콥이 저분들 레이블에 들어갔다고 하더만.
'셋 다 잘하긴 하는데....'
뒤통수가 조금 간지럽구나.
무대 퀄리티가 이리 좋은데.
-와아아아─!!
다른 팀 프로듀서들은 환호를 지르며 리허설 무대를 극찬했다.
'.... 왜 간지러운 걸까.'
그때, 제이콥 패거리는 무대를 마치고 내게 다가왔다.
하필이면 대기실로 이동하는 방향이라 눈을 마주쳤다.
"오, 유명 인사네."
내게 아는 체를 하더니 악수를 건네는 제이콥.
우리가 언제부터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였더라.
"정 실장님, 처음 보네요."
".... 예."
"디스가 힙합 문화인 거 아시죠?"
"...."
선빵 갈기고 문화 이 지랄.
아니, 애초에 미국 문화잖아.
"뭐, 저도 힙합 문화 존중합니다."
"하하하. 쿨하시네!"
쿨 뭉둥이로 처맞으려고.
작년 쇼미 우승자는 슬쩍 미소를 짓더니 앞으로 나섰다.
"솔직히, 오늘 결과는 뻔해서 재미없네요."
"...."
시비 거는 거냐.
저분의 넘치는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오는 건가.
주변에 스탭들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모습.
'.... 네가 칼리 잭슨보다 잘해?'
오늘 다이애나 본무대가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피처링으로 칼리 잭슨이 나오면 무슨 표정일까.
'그나저나....'
제이콥 패거리를 쳐다보니, 여전히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무대가 아니었구나.
아직도 간지럽다니.
'.... 뭔가 이상해.'
노래나 연기가 아니라, '실력 있는' 사람을 보고 신호가 온다면.
'사생활 문제....?'
음주운전, 불륜, 도박, 학폭.
힙합 씬에 고질적인 문제는.
"저기요."
당장 머릿속에 있는 단어를 내뱉고 싶었다.
"마약 전과 있으시죠?"
"이런."
주변에서 스탭들이 눈치를 보며 나를 말렸다.
"지, 지금은 반성하고 계세요."
"언제적 얘기를.... 하하."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드는 제이콥.
나는 예감이 맞는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 쉑, 누구한테 구정물을 튀기려고.'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뒤통수 가려운 거 보면.
래퍼들이 사라지고, 어떤 스탭은 내게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걸었다.
"실장님, 괜찮으시겠어요?"
"네?"
"저기 크루는 디스가 일상이라···."
"글쎄요."
그럴 여유는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