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06화 (106/200)

[106] Higher(6)

강남의 한 아파트.

은서는 케이크를 들고 숙소에 돌아와 현관을 확인했다.

장식한 크리스마트 트리는 연말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양쭈, 이거 트리 뭐야?"

"그거 선물 받았어. 축구하다가."

".... 여유 무엇."

나는 촬영 갔다 돌아오면 뻗어서 잠만 자는데.

그래도 트리는 예뻐서 좋네.

예지 언니 사진도 걸어야지.

"너 오늘도 축구 연습하고 온 거야?"

"응. 지유가 축구 연습 못하게 해서 몰래함."

".... 그렇게까지?"

"축구가 장난이야? 축구를 재미로해?"

"...."

보통은 재미로 하지 않나.

무슨, 축구선수도 아니고.

"요즘 작가님들이 자꾸 룰을 추가해."

"너 때문이잖아."

각 팀 에이스는 전반만 뛰고 후반에 못뛰게 한다던지.

너무 압도적인 실력 때문에 제작진이 만든 룰이었다.

"흐음, 국대 가족 이기려면 전반에 10대 0으로 벌려놔야 할 듯."

"그 정도면 그냥 네 존재 자체가 반칙 아니냐."

"인생은 원래 불공평해."

".... 그건 맞지."

정수호 매니저님을 만난 순간 솔라가 날개를 달았듯이.

모든 걸그룹이 솔라나 블루숄츠가 될 수는 없는 거니까.

"양쭈, 쓸데없이 명언 날리네."

"에휴, 전반전만 뛰면 나 혼자 어떻게 이기라고."

"아니, 보통은...."

혼자서 그 어떤 축구팀도 못 이기는 게 정상이야.

지글지글─

양주희는 부엌에서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지금 무슨 요리해?"

"우삼겹 요리, 넷째가 제일 좋아하는 거."

"아, 나도 케잌 사왔는데."

"굿굿."

오늘 라이브 방송 봤나 보네.

사실, 안 보는 게 더 어려웠지.

촬영장이든, 길거리에서든 거의 모든 사람이 그 얘기만 하는데.

"다이애나가 도하나인 거, 너도 몰랐지?"

"응. 근데 예지 언니는 옛날부터 알았다더라."

"진짜?"

"자긴 눈치가 빠른 것 같대."

"그건 좀...."

한때 다이애나가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멤버들에게도 숨겼을까.

'.... 실장님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도하나 프로듀서.

지금 연예계를 진동시키는 그 이름을.

"은서야, 요리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아, 그래."

"소미랑 다이애나 오기 전에 끝내야 함."

"뭐부터 도와줄까."

"전부 다."

"...."

은서는 부엌에 들어가 요리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너는 왜 고기를 그렇게 잘게 썰고 있어."

"너를 썰 순 없잖아."

"아하."

이내, 한동안 주희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너 요리할 줄 모르지."

뜨끔─

당황한 듯 잡고 있던 칼을 놓쳐버리는 양주희.

은서는 그 모습에 한숨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됐고, 그냥 내가 할 테니까 이리내."

"고럴까?"

그래도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종종 하면서 살았다.

할머니를 만나고, 주방에 못 들어가게 하셨지만.

"레시피 따라서 잘 하고 있었는뎅."

"할 거 없으면 저기서 메추리알 까고 있어."

"메추리알만 깔까?"

"너를 깔 순 없잖아."

"아항."

딱, 딱, 딱─

숙소에 규칙적인 도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서야."

"응"

뒤에서 부르는 주희,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응? 무슨 말이야?"

"계약 기간."

"아."

솔라는 애초에 3년 계약이었으니까.

앞으로 남은 기간은 1년 4개월 정도.

"그건 실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그러시겠지?"

솔라를 2년 만에 정상에 올린 프로듀서.

정 실장님의 계획을 예상할 수는 없지만.

"아마 생각이 다 있으실걸."

"그런가."

솔라의 결속력은 누구보다 끈끈했다.

다른 회사에 가자고 해도 모든 멤버가 따라나서지 않을까.

어떤 그룹과 함께 다시 시작해도 정상을 찍을 분이셨으니.

"실장님이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

"솔직히, 이제 실장님이 골라주는 방송 아니면 못 하겠어."

".... 나도."

처음엔 이해가 안 되는 선택이라도 결국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매일 작업실에서 홀로 작업하던 다이애나는 도하나가 된 것처럼.

'.... 첫 사랑도.'

은근히 감성적인 면도 있는 분이었다.

부모님 작품의 판권을 사오실 정도로.

삐, 삐삐삐─

이내, 소미는 다이애나의 손을 붙잡고 숙소에 들어왔다.

"언니들! 도하나 데려왔어!"

"으음."

얼굴을 붉히고 몸을 배배 꼬는 다이애나.

SAS 때부터 속였으니까 죄질이 무거웠다.

"무려 1년이나 속였는데 그냥 못 넘어가겠지?"

"그럼."

"주희야, 빠따 갖고 와."

"물리치료야?"

"...."

이내, 은서는 직접 부엌에 있는 케이크에 초를 꽂고 가져왔다.

"솔로 앨범 축하해!"

감동한 눈으로 멤버들을 바라보는 다이애나.

"예지 언니가 첫 빠따 일 줄 알았는데."

"그러게. 우리 넷째가 처음이네."

"고마워, 언니들....!"

소미는 그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영상 통화를 걸었다.

"예지 언니!"

-응. 소미야!

현재 미국에서 열심히 외화를 버는 김 리다까지.

멤버들은 넷째의 첫 솔로 앨범 발매를 축하했다.

* * *

11월의 어느 날, 매니지먼트 1팀 사무실.

어느새 쌀쌀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타닥, 타다닥─

늦은 시각, 나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 밀린 서류를 정리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 복이 터졌다.

"구 팀장님, 컴퓨터 좋은 거 쓰시네."

딸깍, 딸깍─

조 기자님의 기사에 이어, 계속해서 터지는 기사들.

[도하나는 솔라의 멤버!? 칼리 잭슨이 알아본 천재 프로듀서는 알고 보니....]

당연히 솔라의 다이애나가 그 주인공.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일단, 영화 촬영 중인 은서를 제외하고 솔라의 스케줄을 정리했다.

양주희는 공차녀 이외에도 「댄싱 스트릿」 콘서트.

신소미는 모해모해 후속작 예능 기획이 나왔는데.

'우리 소미를 조지려고 작정했나.'

액티비티 가져오라니까 진짜 졸라 액티비티 한 것만 가져왔네.

"패러글라이딩, 번지점프, 오지 탐험, 흉가 체험...."

주 피디가 가져온 기획이 왜 이렇게 극단적인지.

이제 고작 17살 짜리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닌....

살랑─

순간, 뒤통수에 간지러운 감각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 나쁘지 않은가 본데?"

남들은 비싼 돈 내고서 액티비티 하러 가지 않나.

괜찮은 것 같기도 하네.

요즘 애들이 빨리 커서.

'마지막으로 다이애나는....'

광고가 진짜 미친 듯이 들어왔다.

한국에선 거의 독보적인 천재 프로듀서 이미지.

금발벽안의 혼혈 미인이 국뽕 감성도 채워줬다.

'광고에서 역배각만 잘 뽑으면....'

갱스터 랩으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거의 국내 화제성은 다이애나 혼자 다 씹어먹고 있었으니.

아마, 내년 코첼라 음악축제도 초대 받을 수 있겠지.

이왕이면 게스트보다는 본 무대에 오르고 싶긴 한데.

'어쨌든, 다이애나도 그렇고.'

솔라 멤버들은 각자 넘치는 재능을 가졌다.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해서 미안할 정도로.

똥촉이 터져 주기만 하면 성공 확률은 100%에 수렴했지만.

그래도 가끔 회의적인 감상에 잠길 때도 있었다.

나처럼 무능한 매니저가 계속 맡아도 되는 건지.

"너무 많이 떴어."

섭외가 들어온 작품들을 보며, 뒤통수에 신경을 집중했다.

옛날 같으면 벅벅 긁어야 할 만큼 간지러운 감각일 텐데.

"오, 이건 살짝 왔다."

미세한 감각이 살랑살랑 뒷목을 간지럽혔다.

정말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뭐가 왔어요?"

"으악, 뭐야!"

훅 들어오는 여인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시간에 사무실에 남아있는지 몰랐네.

"박아영 씨, 조심 좀 해주시면...."

"앗, 죄송해요. 헤헤."

원래 매니저와 코디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게 국룰이긴 한데.

"요즘 회사 생활은 어때요?"

"직원분들 다들 좋으세요!"

".... 다행이네."

너무 텐션이 높아서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그래도 우울한 것보다는 밝은 게 낫지 않은가.

"저 오늘 도하나 기사 보고 엄청 놀랐어요!"

"그래요?"

"네! 계속 연락 와요. 알고 있었냐고."

"그렇겠죠."

오늘 본부장님한테 전화로 욕먹었다.

지유한테도 숨기고 나만 알았으니까.

띠리리링─

그때, 얼마 전에 저장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늦은 시각이지만 안 받을 수가 없는 번호였으니.

"여보세요. 대표님."

-음, 오늘 건은 굉장히 흥미로웠구만.

"...."

드림 에이전시의 박 대표님.

눈앞에 있는 여성의 아버지.

-시간 괜찮으면 언제 한번 봤으면 하는데.

"네! 저는 내일도 괜찮습니다!"

-그럼 비서를 보내겠네.

"넵.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내가 더 고맙지.

"아.... 하하."

박광현 대표님은 이 바닥에서 거물로 통하는 분이었다.

젊을 적 어마어마한 안목으로 수많은 배우를 키웠으니.

-그나저나, 아영이는 잘 지내나?

"넵. 걱정하지 마십쇼."

지금도 눈앞에서 상사 전화하는 거 말똥말똥 지켜보고 있어요.

다이애나 정체를 공개하자마자.

요즘 주가가 많이 오르지 않았나.

"화보 때도 그.... 덕분에 더 효과가 컸거든요."

-우리 딸?

"넵. 최고입니다."

-하하. 고맙네.

역배각 뜨는 스타일리스트는 처음이라.

-근데 괜히 낙하산이라고 소문이 나면....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지켜봐 주십쇼!"

-자네만 믿겠네.

"넵! 들어가십쇼."

뚝.

아영 씨는 언제 퇴사할까.

괜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바쁜 대표님께서 나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 뒤통수 간지러워.'

단순 공치사나 하려고 부른 건 아닐 거야.

그랬으면 큐앤지 사장님께서 부르셨겠지.

"저기, 실장님."

"네?"

박아영 씨는 배시시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생각해 보셨어요?"

"무슨 생각이요."

"저랑 같이...."

"박아영 씨이이이─!!!"

"...."

그때, 사무실 뒤쪽에 나타난 엄지유가 큰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제가 옷 정리해놓으라고 했어요오, 안 했어요오?"

".... 했어요오."

스물 넷이면 그래도 언니인데, 지유가 너무하네.

"히잉."

박아영 씨는 축 늘어진 어깨를 늘어뜨리고 의상실로 향했다.

"지유야, 코디분께 너무 그러지 마. 매니저가 그러면 보기 안 좋아."

"오빠, 구 팀장님 안 계시면 내가 팀장이잖아."

".... 그건 맞지."

근데 너는 나한테도 말을 까잖아요.

"유미 언니가 너무 착해서 나한테 맡겼거든."

"군기 잡으라고?"

"응. 언니는 신입 때 얼차려도 받으셨다네."

"미쳤어!?"

"응?"

드림 에이전시 대표님 따님께 무슨 짓이야.

"너 그러다 나중에 진짜 혼나."

"아니, 진짜 얼차려 주겠다는 건 아니고."

"아니, 무조건 그냥 잘 해주라니까."

"???"

공수부대가 우리 본부장으로 내려올 수도 있어요.

아니, 막말로 대표님 자리에 앉아도 할 말이 없지.

"뭐야, 이거 뭐야. 오빠 혹시....!"

"혹시 뭐."

"아영 씨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냐."

"와아."

엄지유도 금수저긴 한데.

저분은 그 정도가 아니라 우라늄 숟가락인데.

"오빠 취향 접수."

".... 뒤진다."

* * *

다음 날.

오늘은 공적으로 모기업, 드림 에이전시로 출근했다.

나름 금의환향 한 셈이었다.

쫓겨난 놈이 금테를 두르고.

나를 알아본 직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정수호 실장님!"

"네. 반가워요."

모르는 사람의 인사도 친절하게 받으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전, 매니지먼트 4팀 직원일 때는 상상도 못했는데.

과장이든, 부장이든 먼저 다가와서 살갑게 인사했다.

"어제는 모해모해 잘 봤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아하하. 혹시 우리 배우 중에서...."

"...."

선생님, 같은 회사 직원한테 영업을 하시네요.

얼굴도 처음 보는 모기업 직원이기는 하지만.

"여기, 제 명함 드릴게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같은 회사 식구끼리."

"네.... 네! 같은 회사죠!"

오히려 감격한 눈빛으로 말하는 드림 에이전시 직원.

이게 혹시 모기업, 자기업 역전 세계인가 뭔가 그건가.

터벅, 터벅─

이어서, 보안 직원 안내를 받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는데.

'아씨, 하필이면....'

제일 마주치기 싫은 사람이 나를 기다렸다.

권무혁 상무는 고개를 스윽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탈 마음은 전혀 없는데.

"정 실장, 대표님 만나러 가나."

"...."

역시 권 상무님, 모르는 게 없으시네.

저 사람이랑 엮이는 건 정말 싫지만.

"안녕하세요. 상무님."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지.

"자네, 방 마담이랑은 대체 무슨 사이지?"

"그냥 같이 복수소녀 투자한 사이요."

"쯧, 그럼 대표님은 무슨 말로 꼬드긴 건데?"

".... 예?"

뭔가-,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

평소에 보여주던 여유로운 표정은 없었다.

포커페이스는 무너졌고 동공은 충혈됐다.

"지금 복수하겠다는 건가?"

"복수요?"

"내가 4팀 해체한 거 때문에 그래?"

"...."

그게 언제적 일인데, 벌써 잊었지.

솔직히, 그날의 일은 사내 정치 싸움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살짝 누르면 터져 죽는 개미였고.

"권 상무님, 지금 살짝 흥분하셨네요."

"뭐, 이 새끼야!?"

"농담입니다. 하핫."

"...."

상상에서나 할 법한 말을 실제로 건넸다.

권 상무님이 그저 동네 아저씨로 보였다.

'.... 무섭지가 않아.'

내가 몸 담았던 4팀을 말 한마디로 날려버린 거인인데.

그의 흔들리는 눈빛에선 전혀 여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나한테 쫄았다고?

권무혁 상무가!?

드림 에이전시 직원들은 힐끔 쳐다보며 물러섰다.

마치 고래들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새우처럼.

'.... 그런 건가.'

어쩌면, 달라진 건 권 상무가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래가 되었다.

손가락으로 눌러도 절대 죽지 않는.

크고 단단한 외피를 두르고, 유유자적하게 바다를 영유하는.

"먼저 타시죠, 상무님. 하하하."

".... 웃어?"

"웃으면 좋잖아요."

"...."

나는 권 상무님과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를 뒤로한 채 빌딩의 최상층 버튼을 눌렀는데.

-띵, 8층입니다.

이내, 권 상무가 누른 층에선 멈추는 엘리베이터.

"권 상무님, 살펴 가십쇼!"

"뭐....?"

"아, 저는 좀 더 올라가야 해서요."

"...."

그는 사나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승강기에서 내렸다.

"정 실장,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덕담 감사합니다!"

하나도 안 무섭다.

"권 상무님, 언제 한번 대표님이랑 말씀 나누시죠."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싫음 말고."

"아니, 그건 반말이잖....!"

"요."

이내,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버렸다.

"에이, 저분...."

쫄튀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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