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Higher(4)
영화 제작사, 카멜레온 필름즈.
「첫 사랑」 영화 제작 준비 단계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조연급 캐스팅도 마무리 단계에, 촬영지 헌팅도 끝났으니까.
"오늘 대본리딩은 타이트하게 가자고."
"네. 감독님."
김춘수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연출을 바라봤다.
"자네가 카멜레온 아카데미 3기 맞나?"
"네. 맞습니다!"
카멜레온 필름즈 연출부 소속 조감독.
이전처럼 제작비 슈킹은 없을 것이다.
"저기, 감독님. 방금 미국에서 연락받았습니다."
"무슨 연락?"
"LA에 상영관 확보 현황입니다."
"오, 벌써 나왔나?"
사실, 이번에는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로이랜드」가 독점하다시피 했다던데.
"허어, 이렇게 많다고?"
"운이 좋았다고 합니다."
"...."
미국 현지에서 확보하는 상영관은 복권과 비슷했다.
엄청난 확률을 뚫고, 세계화할 수 있는 티켓이었다.
"카멜레온 필름즈 영업팀이 일을 잘하는군."
"아니요."
조감독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정수호 실장님 실력이라고 들었습니다."
"...."
곡 작업으로 미국까지 가신 게 아니었나.
혼자 대체 몇 가지 업무를 수행하시는지.
"우리 정말 열심히 해야겠네."
"네. 감독님."
이내, 김춘수는 이번 영화의 OST에 대해 언급했다.
"도하나 프로듀서가 직접 맡아주는 거 알고 있지?"
"네. 들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MR 반주 작업으로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천재였다.
"그 히어로 영화, 곧 개봉하던데."
"네. 맞습니다."
"주말에 보러 가야겠네. 촬영 들어가면 시간 없을 테니."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 와이프랑 갈 거야."
"넵."
「묠니르2」는 이미 개봉 전부터 국내외 티켓 파워가 상당했다.
몇몇 국뽕 너튜브에 올라온 도하나 삽입곡.
브금의 맛보기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졌다.
"감독님, 다음 주에는 칼리 잭슨 신곡 발표도 있습니다."
"아, 맞아. 그렇지."
그의 신곡 역시 도하나가 프로듀싱한 작품.
한국인이 낳은 천재가 미쳐 날뛰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국뽕 너튜버들은 칼리 잭슨의 티저를 널리 퍼트렸다.
'한국 작곡가 중에 그런 천재가 나오다니....'
도하나 프로듀서와 유일하게 끈이 연결된 사람.
정수호 실장님 역시 유일무이한 천재가 아닌가.
'운이 좋네.'
그런 사람의 눈에 들었으니까.
똑, 똑─
곧이어, 「첫 사랑」 배우들이 대본리딩을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아시아 프린스 정상훈.
솔라의 연기돌 장은서.
주연 캐스팅은 더할 나위 없이 최고 수준이 아닌가.
영화 최고 투자자인 정수호가 데려온 사람들이었다.
'거참, 정 실장님은....'
투자, 캐스팅, 판권, OST까지 손대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잠시 후,
김 감독부터 한 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소감을 발표했다.
"메인 연출을 맡은 김춘수입니다. 이번 영화는 고인이 되신 장현우 작가님의 유작입니다."
"...."
순간, 대본리딩 현장에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작가님께 폐가 되지 않도록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보겠습니다."
곧이어, 은서가 소감을 말할 차례가 다가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지윤 역을 맡은 장은서입니다. 저는 이 작품 찍으려고 한 달 동안 노력했어요."
돌아가신 아버지의 첫 사랑 상대였던 어머니.
살아계실 때 모친과 똑같은 체형을 만들었다.
그뿐인가.
그녀의 걸음걸이와 마인드셋, 행동거지를 계속해서 떠올렸다.
시나리오를 쓴 작가 의도를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제 목표는 흥행이 아니라...."
아버지가 남긴 시니리오를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남기는 것.
"오로지 연기만 생각할 겁니다. 최선을 다하려구요."
"...."
짝짝, 짝짝짝짝─
이내,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는 은서.
다른 배우들은 그녀의 결연한 눈빛에 압도당했다.
웃음기 없이 진지한 태도로 대본리딩을 시작했다.
"첫 번째 씬, 대학 강의 장면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조연출의 지시에 따라, 은서는 쾌활한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안녕, 너도 신입생이지! 이름이 뭐야?"
* * *
한국행 비행기 시간을 앞두고,
구 팀장님을 포함한 네 명이 함께 조촐한 파티를 준비했다.
"실장님, 묠니르 진짜 재밌네요!"
"그러게."
바쁜 스케줄을 피해서 같이 영화관도 들렀다.
똥촉을 떠나, 화려한 볼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예지는 고기를 굽고 있는 구 팀장 힐끔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다이애나 음악이 전부 다 했던데요?"
"그래?"
"네!!! 역시, 실장님 선택은 최고예요!"
"...."
나는 다이애나 작업에 관여한 적도 없는데.
"언니이, 부끄럽게 왜 그래."
"진짜로! 네가 최고야!"
"아이 참."
다이애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기를 한 점 집어먹었다.
리더 칭찬이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분 좋은 모양이다.
'구 팀장님 혼자 구우시네.'
이번에 고기 내오시면 자리 바꿔야겠다.
"예지야, 그래도 마미 시상식 전엔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마미 무대도 오르고 싶은데."
"에이, 무대 준비할 시간은 당연히 없지."
"그게 아쉬워요."
풀이 죽은 채 아쉬워하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예지도 무대 욕심은 참 많아.
의외로 연기 욕심은 없으면서.
할리우드 영화 오디션은 겨우 설득해서 보게 했으니까.
"그냥 열정을 이번 영화에 다 쏟아내고 돌아와."
"으음. 알겠어요."
"실장님, 고기 나왔습니다!"
이내, 그릇에 수북이 쌓고 고기를 내오는 구현식 팀장님.
"팀장님도 드세요. 이제 제가 구울게요."
"에이, 제가 굽겠습니다."
"아뇨. 집게 주세요."
저도 장유유서를 아는 사람이에요.
치이익─
불판 위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확 피어올랐다.
어느새 옆에 따라온 예지가 고개를 먹여주었다.
"실장님, 아아아-, 해요."
"아?"
나도 모르게 예지가 쓰던 젓가락으로 집을 고기를 입에 넣었다.
"맛이 어때요?"
"암냥냠."
"맛있구나!"
아뇨, 왜 내가 쓰던 젓가락으로 안 줬느냐는 뜻이에요.
"실장님."
"냠?"
무언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구 팀장님과 다이애나.
예지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내 귓가에 입을 가져왔다.
"이제 담배 안 피우시네요."
"아, 응. 네가 선물...."
잠깐만, 입술이 닿았....?
"예지야, 너 지금...."
"고기 다 타요."
"아."
고기 굽는 불판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커서 그런가.
예지는 귓속말 할 수 있는 위치에서 내게 밀착했다.
'방금까지 풀 죽은 사람 맞아?'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기를 집어 먹는 김 리다.
갑자기 예지 텐션이 좀 올라갔다.
알고 그런 건지, 모르고 한 건지.
"실장님, 한 입 더! 아아아-, 해요."
"이제 괜찮.... 읍."
자꾸 네가 쓰던 젓가락으로 먹이지 말라고.
"실장님, 한국 돌아갈 때까지 연애 금지. 기억하시죠?"
"냠냠."
"그거 안 지키면 저 완전 흑화할 거예요."
"흑화가 뭔지도 알아?"
"네. 엄청 까매지는 거."
"...."
홍조 띤 얼굴이 귀엽네.
고기 불판 너머로, 노을이 지는 풍경이 예술이었다.
그리고, 살짝 붉어진 예지의 얼굴은 그보다 예뻤다.
'오늘은 왠지....'
시간이 빨리 가는 기분이다.
* * *
얼마 뒤.
예지와의 아쉬운 이별을 뒤로한 채 오른 한국행 비행기.
우리는 한국에 도착해 수화물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다.
"도하나, 기분이 어때?"
"저요?"
"응."
벌써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는 도하나.
그 인기는 이미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묠니르2, 일주일 만에 300만 관객 찍었더라."
"그러게요."
"지금 미국에서는 오히려 더 해."
"...."
지금 기세면 한국에서 천만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히어로 무비니까요."
"그렇다고 다 뜨진 않아."
"그건 맞죠."
다이애나가 '대충' 만든 비트는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빌런의 첫 등장 씬.
토르 최종 전투 씬.
두 장면 모두 이번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파트였기에.
톡, 토톡─
나는 곧장 스마트폰으로 관련 기사를 검색했다.
[작년 마미 시상식에서 SAS로 편곡상을 수상한 괴물 신인, 도하나 프로듀서는....]
"아마 빌보드 차트 보면 또 달라져 있을 거야."
"...."
오늘 발표한 칼리 잭슨의 신곡.
미국 현지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그냥 티저만 봐도 역대급 트랩 곡이 탄생할 것 같다며 극찬이 쏟아졌다.
벌써 유명 래퍼들이 트랙을 칭찬하며 큐앤지에 연락을 넣고 있었으니까.
"지금쯤 차트인 했겠네."
"이건 좀 떨리네요."
"기다려 봐."
그래도 칼리 잭슨이니까.
빌보드 차트인이 어려운 가수는 아니었다.
본인 곡이 10위권에 오르면 어떤 기분일지.
"오늘 하루 만에 많이 오르긴 어려울 거야."
"그렇겠죠?"
"일단 확인해 보자고."
"네."
나는 스마트폰으로 빌보드 차트를 검색했다.
[Rank 8 : 「Bad police」 ]
벌써 칼리 잭슨 본인의 자체 기록을 경신했다.
게다가, 이제부턴 당분간 오를 일만 남았으니.
".... 인기 많겠다, 너."
한국인이 빌보드에 오르는 경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유명 래퍼의 프로듀싱은 처음이었다.
도하나의 이름값은 점점 더 오르겠지.
'이제 한 번에 터트리면....'
곧장,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와 팬들의 환대를 받았다.
"와아아아아─!!!"
다이애나, 단 한 명에게 쏟아지는 환호성.
비공개 일정도 어떻게 알고 찾아오시는지.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대기중인 큐앤지 직원들과 함께 팬들 사이를 지나쳤다.
그중에 위로한답시고 다이애나를 부르는 팬도 있었는데.
"다이애나 괜찮아!"
"작곡 못 해도 괜찮아!"
"진짜 괜찮아!"
"...."
니들이 제일 나빠.
다이애나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지만.
도하나가 아니었으면 벌써 상처받았을걸.
잠시 후, 다이애나와 함께 밴에 탑승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다이애나, 바로 솔로 앨범 준비할 거야."
"드디어 공개하네요."
"응. 기분이 어때?"
"모르겠어요."
그건 당연히 모르겠지.
아직 도하나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우리 지금 회사로 가요?"
"아니, 바로 화보 촬영장으로 갈 거야. 세팅해놨대."
"바쁘네요."
"그야."
도하나 이름 공개하면 더 바쁠 거야.
"일단 솔로 앨범 쇼케이스 무대는 바로 준비할 거고...."
"아뇨. 저 혼자서 무대를 어떻게 채워요."
"뭐야, 겸손하게."
"겸손이 아니라, 혼자 못해요. 그냥 모해모해에서 할래요."
"부캐를 너튜브에서 최초 공개한다고? 그걸로 괜찮겠어?"
"네. 충분해요."
"...."
소미 너튜브 떡상각 제대로 잡혔네.
나는 투자금 갈아넣어서 돈도 벌고.
"그럼 모해모해 촬영 때 기자 한 명만 부를까?"
"기자요?"
"응. 바로 기사 내주는 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네, 좋아요."
귀에 이어팟을 끼고, 조영수 기자님께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기자님 잘 지내시죠?"
-네. 정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혹시 다음 주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네? 무슨 일로....?
"특종이요. 최초 보도할 기회일 겁니다."
-어우, 그럼 달려가야죠.
조 기자님 목소리에 묘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시간, 장소는 톡으로 알려 드릴게요."
-네. 기다리죠.
전화를 끊고, 한동안 운전에 집중했다.
회사에서도 직원들이 나만 기다리겠지.
'이제 또 시작이겠네.'
도하나 공개하고 나면 얼마나 더 바빠질까.
아마 한동안은 정신없이 바쁠 수도 있었다.
* * *
다이애나 화보 촬영장.
오랜만에 만난 지유와 다이애나의 새로운 모습을 지켜봤다.
"오빠, 이거 맞아?"
"...."
이 정도면 실제 미국 할렘가를 캐서 가져온 느낌.
새하얀 피부와 거친 분위기가 묘한 대조를 이뤘다.
"지유야, 코디는 대체 누가 한 거야?"
"너무 강하지?"
"...."
너무 현지 최적화라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심지어, 뒤통수에는 간질간질한 감각까지.
"이거 신입 코디 작품이야."
"아, 박아영 씨?"
"응. 맞아."
드림 에이전시 대표님의 딸래미.
"미국 코웰대 패션디자인과 나왔대."
"학벌 살벌하네."
"그러게, 왜 중소기업에 왔을까."
"...."
지네 아버지 회사니까요.
"박아영 씨, 능력은 있나 보네."
"그래?"
"응. 오빠 생각은 달라?"
".... 아니. 내 생각이 니 생각."
"역시."
그동안 유미 씨 코디 실력도 나쁘지 않았지만.
안전제일 주의라서, 역배각은 거의 안 터졌다.
"박아영 씨는 지금 어딨어?"
"지금 회사에."
"아, 그래?"
미국 진출을 목표로 잡을 생각이니까.
아메리카 스타일리스트도 필요하겠지.
"지유야, 이번 모해모해 게스트는 다이애나야."
"아, 그래?"
"응. 미리 준비해둬."
"무슨 준비?"
드디어 프로듀서님이 마음을 먹었으니까.
"마음의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