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02화 (102/200)

[102] Higher(2)

할리우드 음악영화 「로이랜드」 촬영장.

한 여배우는 밝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너 내가 비프 샐러드 사오라고 했지."

"그게, 쉬림프밖에 없어서...."

"그럼 다른 데를 갔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본인 매니지먼트 직원에게 갑질을 시전하는 여배우 로라.

아직 감독님도 도착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굳이 나서서 휘말릴 이유가 없었다.

"제거 드세요."

"뭐?"

그때, 누군가 천천히 다가오며 로라에게 말했다.

"이거 비프 샐러드예요."

".... 예지킴?"

"네. 로라 씨."

"지금 장난해요?"

"아뇨. 장난하는 건 아니고."

"...."

로라는 오늘따라 강하게 나오는 예지를 보며 눈알을 굴렸다.

물을 떠 오라고 해도 웃으면서 생수병을 건네주던 사람인데.

".... 오늘은 제가 그냥 참죠."

"고마워요."

예지는 굳이 자신의 매니지먼트 직원과 함께 사라졌다.

그녀에 대한 스탭들의 시선이 어떨지는 불 보듯 뻔했다.

'착한 척하는 년.'

어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배우가 서브 여주인공 자리를 꿰찼으니.

비중 있는 조연의 입장에서는 아니꼬운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쟤만 아니었으면....'

어쩌면 서브 여주인공 자리가 자신의 것이었을 수도.

한국에서 걸그룹이라고 했었던가.

연기는 어느 정도 하는 것 같다만.

보나마나 노래 실력은 민폐 수준을 못 벗어날걸.

이 바닥에서 중요한 건 오직 실력뿐이지 않겠는가.

'첫 뮤지컬 씬이 내일모레니까.'

어디 두고 보자고, 얼마나 잘하는지.

그때까지 계속 착한 척이나 하던가.

한편, 같은 시각.

구현식 팀장은 음악 감독의 호출을 받고 촬영장 한쪽에 불려 갔다.

"혹시 도하나 프로듀서랑 무슨 사이입니까?"

"솔라랑 작업을 오래 같이 했습니다."

실장님께선 친한 듯했지만.

일단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역시, 그래서 그런 거였어!"

"네?"

"곡을 예지 씨에게 딱 맞춘 것 같아요. 들어봐요."

"...."

곧이어, 몽환적인 사운드가 주변 환경을 장식했다.

곡은 환상적인 로이랜드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렸다.

사랑에 빠진 공주님을 표현한 노래.

음악감독님의 말처럼 정말 어울렸다.

".... 예지 노래가 맞는 것 같네요."

"도하나 프로듀서랑 친하시다니, 든든하시겠군요."

"그런가요."

"네. 묠니르2 예고편 봤거든요."

"아, 오늘 나왔구나."

음악감독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예지 씨, 캐스팅 노래 실력으로 붙은 겁니다."

"네?"

"제가 감독님께 열심히 설득했거든요. 오디션 때."

"아...."

팀장으로서, 매니저로서 괜히 어깨 뽕이 올라갔다.

"뮤지컬 씬 기대할게요."

"네. 감독님!"

구 팀장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뚜루루루─

지금쯤 이쪽으로 건너오신다고 했는데.

"여보세요. 실장님?"

-아, 팀장님.

"혹시 언제 오시나 해서요."

-며칠 뒤에 갈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아직 안 끝났네요.

많이 바쁘신가 보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네. 팀장님.

뚝.

전화를 끊고, 멀리서 대본을 보는 예지를 발견했다.

"예지야, 식사하고 있어야지."

"아, 식사. 고양이 줬어요."

"응?"

"너무 배고파 보여서요."

"...."

아무리 그래도 밥을 왜 고양이 줘.

"하나 더 있어. 다시 줄게."

"네."

오늘따라 예지 기분이 들떠 있었다.

아마 실장님 오신다고 해서 그럴 텐데.

"예지야, 오늘은 실장님 못 오실 거야."

"네? 왜요!?"

"RSB 음반에서 일정이 길어지신대. 음악 작업 때문에."

"아...."

예지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다시 미소를 지었다.

".... 어쩔 수 없죠."

"괜찮아? 기다렸잖아."

"괜찮아요."

언제나 밝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

할리우드에서도 매력이 흘러넘쳤다.

"저는 아직 미국 촬영장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중이라."

"그런가."

"네. 촬영 잘하는 모습 보여 드리면 더 좋죠."

"그래."

이내, 예지는 밝은 얼굴로 대본에 시선을 집중했다.

"예지야, 손톱 물어뜯지 마."

"아, 실수."

"...."

* * *

얼마 후.

RSB 제작사에서 음원 작업이 거의 끝나갈 때쯤.

「묠니르2」 예고편을 보기 위해 너튜브를 켰다.

'드디어 나왔나.'

다이애나를 힐끔 쳐다보고 이어팟을 귀에 착용했다.

히어로 무비 거장이 찍은 영화라 걱정은 없었지만.

'.... 재밌네.'

다행히 재밌으면서도 뒤통수가 간지럽지는 않았다.

호쾌한 액션과 판타지가 어우러진 느낌.

특히, 음악 삽입곡과 조화는 예술이었다.

'음악만 들을 때는 몰랐는데....'

다이애나는 진짜 천재가 맞았구나.

이렇게 장면과 어울릴 줄은 몰랐지.

"다이애나, 갱스터 랩 연습하니?"

"네. 녹음은 끝났지만."

"그래도 계속 연습하는 거야?"

"당연하져!"

이미 뒤통수가 검증했어.

노래가 뜨긴 뜰 것 같아.

"근데 그거 공중파에선 어차피 삐 처리 할 거야."

"예에!? 그런 게 어딨오요!"

"여깄어."

"아아아아. 안 돼. 그건 힙합 정신이....!"

"아니야, 넌 걸그룹이야."

"그거 걸스라이팅이에요!"

"조용히 해."

그냥 도하나는 영원히 신비주의로 남겨야겠다.

스윽─

다시 스마트폰으로 관련 기사를 찾아봤는데.

예고편을 본 기자님들이 알아서 홍보해주셨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천재 프로듀서, 묠니르2는 도하나의 음악이 캐리했다]

단순한 국뽕 기사로 취급할 수는 없었다.

악당이 등장하는 씬과 마지막 전투 씬.

둘 다 영화의 정수이자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으니.

'게다가....'

다른 기사에서 뜻밖의 정보를 확인했다.

[너튜브에 직접 올린 헴스미스의 극찬 영상! 묠니르2의 주연도 인정하는....]

묠니르2 주인공이 홍보 목적으로 올린 너튜브 영상.

그는 분명한 '한국말'로 도하나의 음악을 칭찬했다.

-아뇽하세요. 헴스미스입니다. 한국 팬들과 도하나 프로듀서님, 감사한니다.

저기서 내 눈치를 힐끔 보면서 갱스터 랩을 뱉는 도하나.

너튜브 댓글에서 네티즌의 반응과 평가를 볼 수 있었다.

-노래 미친 것 같아 개좋아 ㄷㄷ

ㄴ우울한 장면을 노래 하나로 바꾼듯

ㄴ그냥 음악이 장면을 살림 ㅋㅋㅋ

ㄴ영화 봐야 알지 않나?

ㄴ예고편부터 존나 짜릿짜릿한데

-헴스미스 형 졸귀네 ㅋㅋㅋ

ㄴ진짜 국뽕 차오른다 ㅋㅋㅋ

ㄴ그래서 주모 어딨음???

ㄴ펄럭 한 사발 ㅋㅋㅋ

ㄴ국뽕 거르고 들어도 개쩔어

-태양빛 정회원이지만 도하나가 다이애나보다 위인 거 인정;;;

ㄴ또또또 비교한다 또

ㄴ솔라 곡 작업 많이 해서 킹쩔 수 없음

ㄴㅇㅈ 작년에 SAS부터 이번 정규앨범까지 도하나가 편곡함

ㄴ거기에 칼리 잭슨 곡 프로듀싱까지

ㄴ팩트) 둘 다 잘한다

ㄴ다이애나 슬럼프 온 거 다 안다고 ㅋㅋㅋ

ㄴ요즘 프로듀싱 접고 랩 한다고 함

ㄴ너 주소 어디냐

-큐앤지는 도하나를 어디서 찾은 걸까?

ㄴ거기 실장이 일 혼자서 다 함

ㄴ솔라 키운 댄싱머신?

ㄴ그분 공포 예능에도 출연함 ㅋㅋㅋ

ㄴ웃음벨 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거 댓글은 신고 못 하나.

졸라게 지우고 싶은 거 많은데.

"저도 보여주세요."

"안 봐도 돼."

다이애나는 어느새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다들 묠니르 OST 칭찬하느라 바빠."

"으으, 그거 아직도 부끄러워요."

"부끄럽다니."

"그냥 일주일 만에 대충 만든 곡인데."

".... 나중에 다시 편곡했잖아."

"그래도."

아무래도, 다이애나는 진짜 비트 찍는 기계가 맞는 것 같다.

대충 만든 곡이 대중성과 상업성이 있다는 건 재능의 영역.

"음악 공부는 언제부터 시작했어?"

"그냥 아버지 따라 피아노도 치고 기타도 쳤죠."

"미국에 계신 아버지?"

"네. 뉴욕에 사세요. 어제도 비디오 콜 했어요."

"그래? 못 봐서 아쉽겠네."

"네. 미국 오는 김에 보고 싶었는데."

".... 미안."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은 멀어도 너무 멀어서.

"괜찮아요. 전화 자주 하니까."

"그래. 다음에 찾아뵙고 인사드리자."

"넹."

아마 아버지께도 숨겼을 텐데.

도하나인 거 알면 얼마나 뿌듯하실까.

"한국에서 싱글 앨범 내면 바로 오픈할 거야."

"알겠어요."

그 후에 다시 슬럼프가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넌 잘할 거야."

".... 어떻게 알아요?"

다이애나를 빤히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뒤통수가 알려줬어."

"네?"

네 미래가 걱정되는 마음이 드는 동시에.

"간지러웠으니까."

이제 슬슬 여기 작업도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예지 얼굴 보러 가야겠어.

* * *

로이랜드 촬영지.

동화처럼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배우들이 열연을 펼쳤다.

춤과 노래, 연기가 어우러지는 이번 영화의 하이라이트 씬.

주연 배우들 사이에 삼각관계가 절정에 달하는 장면이었다.

"나쁘지는 않은데...."

앤드류 감독은 아쉬운 감정에 자꾸만 NG를 외쳤다.

처음 생각했던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로라, NG! 거기서 동선이 겹치잖아."

"예. 죄송합니다."

"후우, 10분간 휴식."

앤드류는 시선을 돌려 예지를 빤히 바라봤다.

'분명히 평균 이상인데....'

그녀에게는 왜 자꾸만 더 높은 기대치를 바라게 되는 걸까.

오디션에서 보여준 순수한 사랑의 눈빛.

그때 폭발하는 가창력과 아름다운 미성.

영화를 영화답게,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배우의 영혼을 원했는데.

"안녕하십니까!"

그때, 익숙한 얼굴이 자신에게 인사를 건넸다.

"예지 씨, 매니저분."

"네. 감독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늦긴요. 촬영 초반인데."

그는 자신과 가벼운 덕담을 나누고 아티스트를 챙기러 움직였다.

핀 브라운이 그를 그렇게 칭찬하던데.

연기 선생 역할까지 하는 것 같다면서.

".... 어라?"

순간, 서브 여주인공의 촉촉한 눈망울에서 묘한 감각을 느꼈다.

'바로 저 표정이야!'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삼각 관계 장면의 완성.

이번 장면을 기점으로 예지의 비중이 올라간다.

"바로 시작하지."

"네? 아직 10분이 되려면...."

"어서!"

앤드류는 조감독을 다그쳐 곧바로 스탭들을 불러모았다.

"다음 장면 계속 가겠습니다! 씬 23!"

아름다운 절경 속에 예지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앗."

순간, 발을 헛디디는 여인과 그녀를 부축하는 남자.

예지는 사랑에 빠진 여인이 남주인공을 바라봤다.

"조심해야죠."

영화 속에서 대사가 주는 정보는 생각보다 적었다.

눈빛, 손짓, 표정이 전부 말해주니까.

그녀가 얼마나 깊은 사랑에 빠졌는지.

이내, 사라지는 사내를 하염없이 바라보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Sometimes I'm feeling....

때앵, 때앵─

서브 여주의 아름다운 미성이 귀에 꽂히는 동시에 종소리가 들렸다.

'.... 찢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있으면 그녀일까.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장면을 그대로 구현했다.

차례대로 나와 코러스를 부르는 보조 출연자들.

이번엔 로라가 삐끗해도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잔망 캐릭터의 설정처럼 느껴질 만큼.

공기와 배경, 아름다운 춤선과 노랫소리.

모든 게 완벽하고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Love is meaningful─!!!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고 숨을 몰아쉬는 배우님들.

그들은 오직 감독 눈치를 살피며 눈동자를 굴렸다.

".... 컷!"

이내, 앤드류 감독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긋 웃으며 손뼉을 쳤다.

"브라보, 여러분 사랑합니다!"

"아하하하."

그제야 안심하고 성공의 기쁨을 즐기는 스탭들.

이번 촬영을 뛰어넘는 장면을 만들 수는 없었다.

"정수호 실장님."

"네?"

앤드류는 한걸음에 달려가 은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당신 최고의 액팅 티쳐군요."

".... 제가요?"

"네! 어떻게 연기를 가르치길래....!"

"???"

성숙한 여인을 단숨에 사랑에 빠진 소녀로 만들 수 있을까.

이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캐릭터와 관계.

서브 여주인공은 그중에서도 핵심 인물이었다.

"예지 씨, 당신은 제 뮤즈입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예지는 힐끔 누군가를 쳐다보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뱉었다.

"제 옆에 수호자가 있어서 그런가 봐요."

* * *

약간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말로만 듣던 직장 따돌림인가.

-여보세요. 수호 오빠?

"어, 지유야."

나는 촬영장을 뒤로한 채 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정보다 일주일 정도 더 있다 복귀할 것 같다."

-그래?

"어. 감독님이 며칠만 더 있어 달래."

-응? 무슨 도움이 된다고?

"나도 몰라. 연기 가르쳐 달라는데."

-???

그래. 나도 무슨 연기를 어떻게 가르쳐달라는 건지 모르겠어.

"그냥 핑계 대는 거겠지."

-그래?

"아."

어쩌면 도하나 프로듀서 때문에.

어디서 슬쩍 정보가 새어 나왔나.

세 명이 알면 비밀이 아니라는데, 이제 꽤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니까.

"아무튼, 한국에서 보자고."

-아, 오빠!

지유는 내 말을 가로막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 2본부에 코디 한 명 들어왔어.

"그래? 잘 됐네."

-근데 너무 하이해.

"하이?"

지유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텐션이 너무 높다고. 이 사람 이상해.

"너도 많이 높은 편인데?"

-첫날 낙하산 가방 메고 출근함.

"낙하산이래?"

-아니, 아침에 패러글라이딩하고 바로 출근했다고!

"...."

그건 내가 생각을 못했다.

".... 찐으로?"

-아메리카 패션이래.

아메리카를 아무데나 갖다 붙이면 되는 거냐.

나는 지금 아메리카에서 슬리퍼 신고 있는데.

"그럼 나도 패셔니스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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