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콘서트 투어(2)
-와아아아아─!!!
무려 5만 명이 지르는 함성이 도쿄돔을 뒤덮었다.
그저 객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이 아닌가.
벌써 네 번째 아티스트의 순서였다.
"이제 다음 순서가...."
엄지유는 눈빛을 반짝으며 앞 무대를 감상했다.
첫 번째 해외 콘서트를 도쿄돔에서 하는 걸그룹이라니.
솔라의 매니저로서 두근거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수호 오빠, 이제 우리 차례야!"
"그러네."
한 손으로 뒷목을 만지며 시크하게 대답하는 수호.
지유는 그를 힐끔 쳐다보더니 방긋 미소를 지었다.
"무대 오르기 전에 언니들이 뭐래?"
"똑같지, 뭐."
언뜻 보면 무뚝뚝해 보였지만, 잘 알고 있었다.
지금처럼 뒤통수를 긁적이면 긍정적인 상황.
'왜 몰랐을까.'
고등학교를 마치고 거의 바로 시작한 매니저 생활.
그 이전에도 집안끼리 아는 사이로 왕래했었는데.
'.... 이렇게 멋있었나.'
엄청난 실적으로 초고속 승진을 해도 그의 생활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낮에는 함께 로드를 뛰고, 밤에는 시장을 분석했다.
솔라, 루나, 이수연과 연습생들까지 직접 관리했다.
특히, 솔라는 단 한 순간의 공백기도 없이 1년 만에 정상을 찍었으니.
이제 국내 팬덤을 더 키울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오늘 무대에 서는 것도....'
그가 단 1년 만에 만들어낸 성과였다.
압도적인 음원 성적으로 증명했으니.
팟─!
그 순간, 무대 위에 스포트라이트에 불이 들어왔다.
FD의 배려로 솔라를 위해 추가 설치한 조명이었다.
덕분에 그림처럼 아름답게 등장하는 멤버들.
전광판에 비친 김예지는 태양의 여신을 연상케 했다.
이어서 800만 원탑 여배우와 댄싱 스트릿의 히로인.
환하게 손을 흔들며 무대에 오르는 막내 라인까지.
"와아...."
지유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유미 언니가 진짜 작정하고 코디했네"
"그러게."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고.
최근에 부하 직원이 두 명씩이나 생겨서 그런가.
그녀의 스타일링 실력도 점점 올라가는 듯했다.
-와아아아아아아─!!!!!
그 증거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귀가 먹먹할 만큼 거대한 환호성.
뜨거운 열기가 피부에서 느껴졌다.
-내 마음이 지쳐갈 때쯤.... 그대가 오겠죠.
이내, 예지는 몽환적인 음색으로 도입부를 장식했다.
이번 정규 앨범의 수록곡은 무대 분위기와 어울렸다.
천상의 하모니는 스피커를 통해 도쿄돔의 천장에서 메아리쳤다.
'.... 아름다워.'
다섯 멤버들의 아름다운 미성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무대.
그녀들은 언어의 장벽을 초월하고 관중의 감성을 건드렸다.
스테이지에서 가장 중요한 첫 곡.
멤버들은 시작부터 무대를 찢었다.
'다음 팀 불쌍하네.'
앞으로 올라올 아티스트가 아직도 세 팀이나 남았는데.
그러게, 누가 무대 순서를 이렇게 짜랬나.
무대 기획자는 확 잘려버렸으면 좋겠다.
"오빠, 나 눈물 날 것 같아.... 오빠?"
엄지유는 사라진 수호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아."
오늘 공연 마지막 무대에 오르는 일본의 탑 가수.
우에다 유이 소속사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역시, 그런 거였어."
자신에게도 비밀로 하고 친분을 쌓았구나.
어쩐지, FD가 살갑게 구는 게 이상하더라.
그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정보와 속셈을 품고 있을까.
부하 직원에게 숨기는 게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 * *
일본 콘서트를 무사히 마치고,
공항까지 솔라를 응원하러 온 팬들의 인파를 뚫고 밴에 탑승했다.
"실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네. 팀장님도요."
조수석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연예계 소식을 확인했다.
"바로 회사로 가십니까?"
"네. 일단은."
오늘 오후에는 은서 할머니 병문안 가야 할 것 같다.
"실장님, 홍 팀장님께서 찾으시더군요."
"저를요?"
"네. 상하이 공연 건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뭐를요?"
"하하. 또 모른 척 하시는군요."
"...."
고개를 끄덕이고 콘서트 관련 영상을 검색했다.
수많은 솔라 직캠이 너튜브 바다를 돌아다녔다.
'.... 벌써 조회수 500만.'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도 진입했다.
"구 팀장님, 예지 할리우드 가기 전에 공연 일정 마칠 겁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다음 무대는 태국, 그다음은 영국.
한국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잡았다.
"태국 공연은 구 팀장님이 따라가서 수고 좀 해주세요."
"네. 실장님."
"솔라빔 시즌2 제작진이 따라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 무대, 서울에서는 단독 콘서트.
그만큼 많은 연습이 필요한 공연이었다.
'앵콜까지치면....'
총 16곡을 한 자리에서 쉬지 않고 불러야 했다.
각자 멤버별로 단독 공연만 5개.
나만 봐, SAS, 정규 앨범, 커버곡.
게스트까지 생각하면 거의 20여 곡에 달했으니.
"실장님, 티켓팅 날짜 잡혔습니다."
"아, 그래요?"
날짜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일주일 뒤, 서울 아레나 센터를 전부 채울 수 있을까.
게릴라 콘서트는 공짜였는데 이번엔 최소 11만 원 이상이라.
"연습 진짜 열심히 해야겠네."
"당연하죠!"
그때, 뒤에서 듣고 있던 예지는 냉큼 대답했다.
"제가 열심히 시킬게요!"
".... 너는 너무 열심히 해."
"제가요"
"잠은 자면서 해야지."
"실장님도 안 주무시잖아요."
"...."
너희 스케줄 없는 날에는 12시간도 자.
끼이익─
이내, 밴을 세우고 멤버들과 함께 사옥에 들어섰는데.
"실장님!!!"
회사에 복귀하자마자 홍보팀장님이 달려와 나를 찾았다.
"중국 콘서트, 미리 알고 취소하신 거예요?"
"네?"
"지금 상하이 종합 스타디움 환급 대란 기사 떴잖아요!"
"???"
홍 팀장님은 급기야 내게 다가와 스마트폰을 건넸다.
[상하이 종합 스타디움 외벽에 발생한 균열이 심상치 않다. 현재, 공연 기획 측은 잠적한 상태로....]
와, 무슨 이런 일이 생기냐.
".... 5분 전 뉴스네요."
"역시, 미리 알고 계셨구나!"
"...."
미리 알고 계셨던 건 홍보팀장님이죠.
저는 지금 뉴스 기사 보고 나서 알았고.
"서, 설마 진짜로 7년 전 자료를 찾아내고 취소하신 거예요!?"
"자료라면....?"
"뉴스 링크에 걸린 중국어 원본 기사요. 설마 7년 전 보수 공사 기사를 찾아보시고....!"
".... 저 중국어 못 읽어요."
"와! 그럼 번역까지 돌려가면서!!!"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실장님, 잠은 좀 주무시면서 일하세요."
"잘 자고 있어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
솔라 스케줄만 없으면 푹 자요.
"일단 들어가시죠."
"아, 네."
로비에서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실장님, 우리 진짜 열심히 할게요."
"응?"
예지는 눈빛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실장님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시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아니, 그냥 하던 대로만 해도...."
"아뇨! 콘서트 준비 더더더 열심히 할게요!"
".... 그래."
공연 연습을 대충 하라고 할 수도 없고.
"으음."
소미는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언니야, 우리 그저께도 9시간이나 연습했어. 그것도 공연 직전에."
"그럼 오늘은 12시간만 하자!"
"아."
소미는 예지의 손에 붙잡혀 연습실로 질질 끌려갔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 힘내."
* * *
한국대학병원.
나는 VIP 병동을 기웃거리며 조심스럽게 안에 들어갔다.
아마 은서가 할머니를 위해서 잡아준 병실인 것 같은데.
똑, 똑─
문 앞에 있는 호수를 확인하고 노크를 두드렸다.
"누구요?"
"정수호라고 합니다."
"아."
이내, 은서 할머니께서는 문을 열어주셨다.
"매니저 양반 오셨구만."
"저기, 허리는 괜찮으세요?"
"이제 괜찮아요."
"어후, 말씀 편하게 하셔요. 할머니."
"뭐, 그라믄."
저번에 숙소 앞에서 봤을 때보다 많이 야위었다.
"가끔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할머니는 침대에 눕더니 리모컨으로 TV를 껐다.
'.... 성이 방씨셨네.'
굳이 여쭤보지는 않았으니까.
흔치 않은 성씨라 눈길이 갔다.
"요즘 은서는 잘 지내고 있는감?"
"네. 그럼요."
"다행이구만."
주름진 손을 보고, 문득 우리 할머니를 떠올렸다.
찬란한 유산을 남겨주고 가신 할머니.
살아계셨으면 비슷한 연세셨을 텐데.
"할머니, 빚 문제로 걱정이 많으시다고...."
"그건 해결했네."
"오 정말요?"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 그게 맞아."
"...."
은서가 갚아 드렸나 보네.
"자네 혹시 만나는 여자 있나?"
"네? 아뇨, 바빠서요."
"그러면 내가 나중에 잘못되면 은서 좀 잘 부탁해."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파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래."
"...."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자네는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나 봐."
"네?"
"아니,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
할머니는 옆에 있는 보석함에서 종이봉투를 꺼내셨다.
"이거, 소중하게 간직해."
"이게 무슨....?"
"내 전화번호랑 부적이야. 아주 힘든 순간에 펼쳐보면 돼."
"아하."
흰 봉투 안쪽에 비치는 노란색 종이.
어릴 적 무당집에서 많이 본 봉투였다.
".... 감사합니다."
부적을 믿을 단계는 지났지만.
그래도 은서 할머니께서 주신 거니까.
일단 자켓 안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이왕 주셨으니까 받긴 하겠는데.'
솔직히, 이것보다 내 똥촉이 훨씬 더 신기하고 유효할 것 같다.
이 정도면 거의 '신기'에 가까운 적중률.
상하이 스타디움 건은 진짜 소름 돋았다.
"그럼 혹시 은서한테 무슨 일 있으면 이 번호로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편하게 연락해. 한 번쯤은 어떤 부탁이든 들어줄 테니."
"부탁이요?"
"아, 맞다! 지금 장씨 아가씨 바람났네 할 시간이야."
"...."
곧장 TV를 켜고 손으로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
"그럼 편히 쉬세요."
"그려."
병실 문을 나서고,
품에서 봉투를 꺼내 번호를 저장할까 했는데.
띠링─
[(이모티콘)]
은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게 톡을 보냈다.
"엥, 하트 뭐냐."
이내, 잠깐의 텀을 두고 다시 톡을 보내는 둘째.
[잘못보냄]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 제대로 보냈으면서."
요즘 은근히 착해졌어.
뚜루루루─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 이수연 씨 매니저분께 전화를 걸었다.
"매니저님, 어디세요?"
-지금 대본리딩 현장에 가고 있습니다.
"아, 벌써요?"
-네. 안 늦게 가려고요.
"저도 금방 따라갈게요."
-알겠습니다."
이수연 배우님의 차기작 드라마.
회사를 옮긴 이후 첫 작품인 만큼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전 드라마를 망했는데, 연속으로 망하면 곤란하니까.
'신생 방송국이라....'
역배각은 분명했지만, 내 행동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도 있었다.
아무리 성공할 드라마도 주인공을 바꿔버렸으니까.
대본리딩에 가서 똥촉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 가봐야겠지.'
나는 운전대를 잡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 * *
일주일 뒤.
솔라 멤버 다섯 명은 구 팀장과 함께 태국으로 떠났다.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오겠다는 그녀들을 배웅해주고.
"지유야."
매니지먼트 1팀 사무실에 있는 지유를 불렀다.
"한지아 연습생 지금 어딨어?"
"지금 작업실에 있을걸."
"그래."
보통 큐앤지에서는 프로듀서와 1년 단위로 전속 계약을 맺었다.
"오빠, 오늘 뉴스 봤어?"
"무슨 뉴스?"
"우에다 유이! 방한했대!"
"그래?"
"응! 놀러 왔나?"
너도 회사에 놀러 왔니.
같이 태국 보낼 걸 그랬나.
"지유야, 심심하면 티켓팅 사이트 다시 확인해."
"아, 티켓팅 날짜 얼마 안 남았네."
"응. 맞아."
단독 콘서트, 서울 아레나 센터 티켓팅.
초반에 팔리는 속도를 보면 감이 오겠지.
"실장님!"
그때, 직원 중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었다.
"로비에서 어떤 여성분이 찾으십니다."
"저를요? 누가요?"
"외국인인 것 같습니다!"
".... 같다뇨?"
"그게, 모자랑 마스크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
누군지도 모르고.
신입 직원이라 얼타는 게 느껴졌다.
지유만 해도 누군지 물어봤을 텐데.
"아무튼, 알겠습니다."
"아, 네!"
뭔가 해결한 듯 뿌듯한 표정을 직는 직원을 보니 갑자기 킹받는다.
"지유야, 밑에 관리 안 허냐."
"꼰....?"
"아니, 됐다."
이미 나이는 지유가 막내라 개족보였다.
요즘 누가 스무 살에 회사에서 일 하나.
드르륵─
일단 로비로 내려가 나를 찾는다는 사람을 확인했다.
"저 사람인가."
이 바닥에 있다 보면 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얼굴 크기나 몸의 비율만 봐도 연예인이니까.
"신인인가."
매니저도 없이 저렇게 돌아다녀도 되나.
"저기...."
"아! 수호 상!"
"???"
이내, 선글라스를 벗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여인.
"우에다 유이!?"
"에에에!!"
그녀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말했다.
"요기 있는 고는 비밀이에요!"
".... 한국말 할 줄 알아요?"
"원래 조그믄 할 주를 아는데 공부를 더 하고 있스므니다!"
"그래요? 여긴 어쩐 일로?"
"아!"
유이 씨는 가방에서 예쁜 포장 상자를 꺼내며 말했다.
"이거요, 우리 예지 사마 선물이에요!"
"네?"
"예지 사마 덕질하러 왔스므니다!"
"...."
아니, 누가 덕질하러 회사에 직접 와요.
가수라서 팬 문화를 잘 모르시나 본데.
"전달해 드릴게요."
"아리가또!"
"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손나 바카나. 다메요."
"???"
우에다 유이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며 내 귀에 속삭였다.
"저 오늘 가출했스므니다!"
".... 어쩌라고."
"잘 데 없다고."
"아."
진짜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