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성장(6)
「댄싱 스트릿」에 출연하는 댄서들의 수준은 상당했다.
물론, 각국 최고의 팀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정도는 됐으니.
이내, 양주희는 자신을 약자로 지목한 7명 중 한 명을 선택했다.
'하필이면 국가대표를 고르네.'
객관적으로 중국팀이 브레이킹 무분 강팀은 아니지만.
그래도 14억 인구를 대표하면 당연히 한따까리 하겠지.
"주희 언니답다. 짜베이를 선택하다니."
"그러게."
"오빠도 걱정돼?"
"응."
어그로 끌려서 진짜 때릴까 봐 쫄린다.
불안한데 뒤통수는 근질근질하기까지.
"와아, 나 오빠가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 처음 보네."
"자주 하는데."
"에이, 오빤 항상 자신만만한데 오늘 배틀은 질까 봐...."
"뭔 소리야. 줘팰까 봐 걱정된다니까."
"...."
은서처럼 다혈질은 아니지만.
주희도 참는 성격은 아니라서.
".... 언니가 헬창이지 깡패는 아냐."
"그래."
이내, 무대에 올라 서로 도발하기 시작하는 양주희와 짜베이.
"지유야 너는 다 알아듣지?"
"응. 나 중국어 잘해."
"영어도 하고."
"기본이지."
얘도 금수저는 금수저구나.
"저기 중국인이 뭐라고 하는데."
".... 쌍욕하네."
"저런."
이건 그냥 피디가 잘못했네.
어차피 삐 처리될 거라고 시원하게 욕하라고 해서.
"주희 언니네 크루도 같이 욕하는데?"
"홍주 선생님 살벌한 거 보소."
"그래도 고상하게 욕하잖아."
"...."
아무리 엔넷이지만 악편은 안 할 거야.
주희 아니면 방송이 엎어질 뻔했는데.
'피디님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따로 예능국장님께 연락드려야겠어.
"헬로."
그때, 뒤쪽에서 한 외국인 남성이 내게 말을 걸었다.
"누구세요?"
"넥플렉스 아시아지부에서 나왔습니다."
"아."
이분, 첫 촬영장 분위기를 살피러 오셨구나.
이거 넥플렉스 들어갈지 계약 중이라던데.
"흐음, 저희 측에서 고용한 통역사가 많이 늦네요."
"아, 그래요?"
"혹시 지금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
그는 우리를 제작진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곧장 지유에게 소곤소곤 귓속말을 건넸다.
".... 적당히 미화해서 전달해."
"오키."
나 때문에 파투나면 어떡해.
넥플렉스 오리지널도 아닌데.
'어쩌면....'
이번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인물일 수도.
두두두두─
"뭐냐, 이 비트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비트.
다이애나 부캐 열일 하네.
"도하나 프로듀서님 작품!?"
"맞아."
이어서, 두 사람의 댄스 배틀이 이어졌다.
관절 꺾는 기술로 기선을 제압하려는 짜베이.
큰 동작은 못해도 화려한 잔기술이 시선을 모았다.
'좀 치네.'
괜히 전 세계에서 불러온 게 아니구나.
"오빠, 이길 수 있을끼?"
"...."
지유도 살짝 불안한 모양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넥플렉스 직원은 지유와 대화를 나눴다.
"그래도 국가대표는 다르군요."
"야, 양주희 씨가 훨씬 더 잘해요!"
"그런가요."
"네!"
지유야, 부끄러우니까 그러지 마.
어차피 내 눈에도 짜베이가 잘하긴 하는데.
뒤통수 간질간질한 거 보면 주희가 이겼어.
"우리가 이길 거야."
* * *
넥플렉스 아시아지부에서 한국에 출장 나온 직원.
알렉스는 매의 눈으로 댄서들의 배틀을 지켜봤다.
'이 정도면....'
확실히, 중국팀의 리더는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브레이킹 국대라고 해서 기대하고 지켜봤는데.
이내, 짜베이는 자신의 순서를 마치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지유 씨, 지금 뭐라고 하는 거죠?"
"계속 멋진 승부를 해보자!"
"흠."
매너는 좋네.
"그럼 양주희 씨는 뭐라고 대답을 했죠?"
"나도 한국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너를 상대하겠어! 다시는 솔라를 무시하지 마라!"
"엥, 그렇게 길었다고!?"
"한국어 압축성. 국뽕. 펄럭. 오케이?"
"...."
뭔 소리야.
대충 한국어 압축성이 우수하다는 뜻인가.
'뭐, 아무튼....'
알렉스는 눈길을 돌려 양주희를 바라봤다.
제작발표회에서 독보적인 주목을 받은 인기 걸그룹 멤버.
얼마 전에 스턴트로 출연한 영화가 대박을 쳤다고 들었다.
'걸그룹 솔라 멤버랬나.'
저 아름다운 소녀는 과연 어떤 춤 실력을 감추고 있을까.
싱그러운 비웃음-, 아니, 미소를 짓는 여인.
팔뚝의 잔근육과 허리에 선명한 11자 복근.
얼마나 자기 관리를 열심히 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춤은 그냥 기본만 해줬으면....'
솔직히, 비주얼이 좋은 댄서는 실력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것도 전문 댄서가 아닌 현역 걸그룹 멤버.
K팝 아이돌은 살인적인 스케줄로 유명했다.
적당히 구색만 맞춰도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할 텐데.
"오, 시작하네요."
비트를 틀고 1초 만에 펼치는 묘기.
그녀의 댄스를 보고 눈을 치켜떴다.
'.... 즉석으로 짠 거야.'
분명히 짜베이가 보여준 브레이킹 댄스를 응용했다.
즉, 미리 준비한 게 아니라 오늘 떠올린 안무 구성.
'원래 K팝 걸그룹 등급컷이 이렇게 높은 거야!?'
보통 남성들이 보여줄 법한 거친 퍼포먼스.
기본적으로 비보이 근력에 준하는 피지컬.
중국인 멤버가 보여준 소극적인 브레이킹 댄스가 아니었다.
양주희는 팔심으로 물구나무를 서서 가볍게 몸을 회전했다.
"크으, 이게 비걸이지!"
춤으로 말해요.
말 대신 춤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천상 춤꾼 .
넥플렉스에서는 이런 댄스 경연을 찾고 있었다.
언뜻 제어가 안 되는 듯하면서 춤으로 하나가 되는 분위기.
당연하게도 다른 크루 댄서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댄서들이 모두 함께 모여 즐기는 축제.
서로 매너를 지키며 실력을 뽐내는 자리.
처음 상상했던 「댄싱 스트릿」은 이런 그림이었다.
주희는 춤을 추는 동안에도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즐기고 있어.'
후끈 달아오른 열기에 MC는 종료를 외쳤다.
"자, 누가 과연 승리했을지 투표해주세요!"
"양주희, 양주희─!!"
반응에서부터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주희는 몰표를 받고 가볍게 1승을 따냈다.
짜베이는 승부를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
아마, 방송으로 보면 이불킥을 찰 터였다.
반면에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이며 눈을 흘기는 양주희.
인지도뿐만 아니라, 춤 실력으로도 그녀의 압승이었다.
알렉스는 나직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내뱉었다.
".... 월드 클래스."
한편, 정수호는 이어지는 댄스 경연을 지긋이 지켜봤다.
'주희, 진짜 많이 늘었구나.'
더이상 그녀의 브레이크 댄스를 보며 뒤통수를 긁지 않았다.
마이너 취향을 넘어선 실력의 증명.
얼마나 연습했을지 상상이 안 된다.
정수호의 마음속에서 양주희는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고음 불가를 극복하고 노래 실력을 증명한 예지처럼.
".... 잘하네."
* * *
얼마 후.
나는 사무실에서 정규 앨범 작업을 정리했다.
선곡도 끝났고, 안무팀도 완벽하게 꾸렸으니.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앨범 활동에 집중해도 될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소미는 「복면가수」 촬영도 마쳤고.
녹음 작업 때 서브 보컬 분량을 조금 밀어줘도 될 것 같다.
'.... 내일이 본방이구나.'
갓썬더 다람쥐 정체가 밝혀지면.
대중은 솔라를 아티스트로 바라보지 않을까.
메인급 보컬이 두 명에 비걸 댄서를 보유한.
똑, 똑─
이내, 구현식 팀장님이 노크하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정 실장님, 결재 서류입니다."
"아, 그래요."
결국 8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복수소녀」.
백상예술대상 6개 부문 수상 후보에 올랐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는요."
백상예술대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드라마, 예능의 방송 부문과 영화 부문.
"복수소녀로 여자 최우수 연기상 후보에 올랐네요."
"네. 실장님."
"후보가 쟁쟁할 텐데."
"흥행 성적으로는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래요."
그밖에도 여러 프로그램으로 시상식에 초대를 받았다.
소미는 「방탈출 메이즈」, 「호러 데이즈」로 예능 신인상 후보.
은서는 「재벌가 시집가기」로 드라마 신인상 후보에도 올랐고.
그외, 딱히 고정 출연은 없었지만.
짜잘하게 하나씩은 후보에 올랐다.
"예지는 방송 부문 시상자 제안을 받았습니다."
"수락하죠. 솔라 전원 참석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실장님."
작년에는 2부 오프닝 무대 공연을 했는데.
고작 1년 만에 성장해서 시상대에 오르네.
"실장님, 홍보팀에서 좋은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좋은 소식?"
"댄싱 스트릿, 넥플렉스에 입점했다는 정보입니다."
"잘 됐네요."
노력한 보람이 있네.
'.... 내 생일 선물 같아.'
매번 이맘때쯤 좋은 소식이 터졌다.
"아, 그리고 이건 서연정 대표님께서 주신 컨셉으로...."
".... 두고 가세요."
"네. 뮤비 감독님은 후보 추리는 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서 대표님은 또 어떤 컨셉을 들고 오셨을까.
와, 귀여운 다크나이트.
청순하면서 섹시한 모순.
태양 여신이긴 한데 살짝 밤에는 살짝 바뀌는 느낌으로.
".... 검은 태양."
곡 제목에 충실하다고 해야 하나.
뚜루루루─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도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실장님.
"어디야, 지금 작업실이야?"
-네. 지금 지아랑 같이 있어요.
"한지아?"
-네. 같이 검은 태양 곡 만지고 있어요.
"그래?"
나는 전화를 멈추고, 컨셉을 슬쩍 확인했다.
익숙해 지기 쉽지 않은 난해한 세계관.
여전히 내 뒤통수는 안녕하지 못했다.
"서 대표님께 가사 받은 거 있거든. 살짝만 개사하자."
-네?
"이번 앨범 컨셉.
-아하.
다이애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결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확인해 볼게요.
"화이팅."
-.... 예아.
* * *
서광예술고등학교.
한지아는 졸린 눈을 비비며 교실로 들어섰다.
오늘따라 분위기가 상당히 붕 뜬 느낌이었다.
"으으...."
요즘 며칠 사이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수록곡으로 들어가도 손이 덜덜 떨릴 텐데.
'.... 정규 앨범 타이틀곡이라니.'
이게 꿈인가.
어느새 친해진 다이애나 언니와 편곡 작업.
세계관에 따르는 가사를 직접 고쳐야 했고.
당장 오늘부터 파트 분배와 녹음 작업을 해야 했다.
하루가 너무 짧아서 스마트폰을 볼 시간도 없었다.
"지아야!!!"
"엉?"
"너는 알고 있었지?"
"뭐를."
"갓썬더 다람쥐가 소미인 거!"
"...."
전혀 몰랐다.
"나 어제 진짜 소름 돋았잖아."
"그동안 감쪽같이 속였어."
"치사해, 말도 안 해주고."
"...."
나도 몰랐다니까.
심지어 그 가수의 작곡가로 작업하는데도 몰랐다고.
아니, 그런 실력을 숨겼으면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냐.
"으아아아!!!"
당장 생각해 놓은 파트 분배가 이리저리 엉켜버렸다.
도입부와 피날레는 무조건 김예지 님의 몫.
당연히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 지아도 몰랐구나."
"지아는 서운할 만하지."
"은근히 까칠한 구석이 있었네."
"그러게."
오늘 수업 시간에 그것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소미가 그 갓썬더 다람쥐였다니.
그런 실력을 어떻게 지금까지 숨겼지.
공백기 따윈 없이 미친 듯이 활동했는데.
'.... 정수호 실장님이구나.'
일부러 숨기신 거야.
속마음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무심한 눈빛.
그 무서운 표정은 아직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지금까지 완벽하게 감춘 실력을 정규 앨범에서 보여주려고.
이번 정규 앨범에 사활을 걸었다는 의미.
자신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손이 덜덜 떨렸다.
그분의 미움을 받으면 연예계 생활은 끝이겠지.
고작 1년여 만에 솔라를 키워낸 천재가 아닌가.
드르륵─
순간, 교실 문이 열리고 갓썬더 다람쥐가 출몰했다.
"지아야, 매점 가자."
"...."
복도와 교실에서 학생들은 람쥐썬더를 외쳤다.
소미는 그들의 환호에 싱그러운 미소를 보냈다.
"뭐행, 안 가려구?"
"아니, 가자."
소미야, 너 때문에 아주머니가 아침에 매점을 열더라.
잠깐 다녀가면 아침에 매출이 다섯 배쯤 늘어난다고.
"소미야, 말 좀 해주지."
"응?"
"갓썬더...."
"아, 그거 규칙이야. 나도 입이 근질근질했지."
"으음."
정수호 실장님은 어떤 사람일까.
이런 괴물을 5명이나 키운 거잖아.
"지아야, 너도 이제 작곡가로 데뷔하면 방송 출연해도 되겠다."
"내, 내가?"
"응. 나두 너튜브 채널 하나 만들었는데."
"그래도 돼?"
"응. 업로드하기 전에 허락 맡으면."
"아하."
소미는 씨익 웃으면서 출연을 제안했다.
"너도 출연할래?"
"채널명이 뭔데?"
[우주아이돌 갓소미 (구독자 1명)]
지금 만들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