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78화 (78/200)

[78] 성장(3)

알코올성 간경화.

회복할 수 있는 간염과 달리 회복 불가능한 질환.

병원에 입원한 본부장님의 모습은 조금 처량했다.

"의사 선생님이 술 더 처먹으면 간암 걸릴 수도 있다네."

"...."

본부장님은 처음부터 권력에 욕심이 있는 분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솔라는 탑 아이돌이 됐고.

그러다 보니 각 방송국에 불려다녔고.

결국 이렇게 간 건강은 나빠졌으니까.

원래 책임자 위치는 CP, 국장, 임원들이랑 술 먹는 자리였다.

솔라의 인기는 영원하지 않으니까.

회사는 다른 연예인도 키워야 해서.

"그래도 너희 두 명이 제일 먼저 병문안을 오네."

"당연히 와야죠."

"뭐, 내가 인복은 있구만."

"...."

본부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실장님을 불렀다.

"박철민 실장."

"네. 본부장님."

"당분간 자네가 임시로 본부장직 수행해."

"알겠습니다."

본부장님은 후련한 표정으로 침상에 누웠다.

지금 당장 전역할 준비를 마친 말년 병장처럼.

"그만 가서 일들 봐."

"아, 네."

후임으로 김 이사가 오든 박 실장이 오르든 뭔 상관이시겠어.

진짜 이제 나갈 사람이구나.

그래도 그동안 수고하셨지.

"잠깐만! 부탁 하나만 해도 되나?"

"네?"

"우리 막내 군대 갔거든."

"???"

말년 병장님 아들 기수면 일병인가요.

"전방인데, 솔라 위문 공연 스케줄 한번 잡아줘."

"네, 알겠습니다."

"너무 어려우면 하지 말고."

"아뇨, 한 번쯤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그래."

그 정도 스케줄은 본부장으로서 충분히 잡을 수 있으셨을 텐데.

'진짜 좋은 분이셨네.'

명절 때마다 소고기라도 보내야겠다.

내 돈 말고, 큐앤지 레이블 이름으로.

드르륵─

우리는 병실을 벗어나 자연스럽게 흡연구역으로 향했다.

"수호야, 얼마 후에 본사에서 주주총회가 열릴 거야."

"네? "

"인사 이동이 안건으로 올라올 거다. 김기석 이사."

"...."

큐앤지 레이블 2본부장 후보.

결재 라인이 바뀌면 내 입장에서는 조금 곤란했다.

지금처럼 솔라를 원하는 방향으로 키울 수 있을까.

아마 돈 버는 방식도 바꾸겠지.

행사랑 광고를 잡고, 이미지는 소모하고.

월드 클래스는 물 건너갈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걸그룹이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정상에서 내려올 수도.

"그냥 실장님이 본부장 달면 안 돼요?"

"지금은 어쩔 수 없어."

"...."

박철민 실장님이 본부장 달면 딱인데.

당장은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재하 아버지도 드림 에이전시에 엄청난 투자를 한 건 아니라서.

일단, 그쪽에 좋은 정보를 흘려주면서 영향력을 키우는 수밖에.

'....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당장 2본부장을 공석으로 오래 두진 않을 터였다.

"일단 김 이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는 거잖아."

"네. 실장님."

사실 대충은 알고 있지만.

"너도 언젠가 실장도 달고 본부장도 달아야지."

"저는 싫습니다."

"뭐?"

저도 간경화 오면 어떡해요.

소주 한 병도 겨우 까는데.

"실장님이 먼저 올라가셔야죠."

"정수호, 이 바닥에서 의리 찾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의리는 아니고."

그래도 실장님 간은 안녕하시잖아요.

내가 아는 빡빡이는 다 술 잘 먹더라.

"저는 솔직히 진급에 딱히 욕심도 없습니다."

"그럼?"

"권무혁 상무."

"...."

매니지먼트 4팀을 해체한 사람.

이제는 그 사람 그늘에서 벗어날 때가 됐지.

내가 솔라를 혼자 키웠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단....'

똥촉 하나로 매번 좋은 작품에 들어간 것도 사실이니까.

열심히 일궈놓은 텃밭에 이방인을 들일 수는 없지 않나.

"공세원 본부장님이죠?"

"응?"

"우리 회사 대표로 주주총회 참석하시는 분."

"그럴 거야."

임시 본부장인 박 실장님이 같이 가시겠지.

"자료라도 준비하죠."

"무슨 자료?"

"김기석 이사보다 실장님이 더 잘할 거라는 자료요."

"그런 걸로 되겠어?"

"...."

당연히 안 될 걸 알지만.

불안한 마음뿐이었지만.

".... 될 겁니다."

지금 뒤통수가 간지러우니까요.

* * *

큐앤지 레이블 사옥.

솔라 멤버들은 다 함께 모여 노래를 감상했다.

첫 정규 앨범에 수록할 예정인 트랙 8곡이었다.

"와, 비트가 다 좋네."

"평균적으로 상향평준화 됐구나."

"도하나 센세."

장은서는 눈치 없는 소미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원래 솔라의 곡 작업은 다이애나의 몫이 아니었던가.

사실상, 슬럼프에 빠진 넷째가 자리를 뺏긴 셈이었다.

"그러게."

그때, 예지는 슬쩍 말을 꺼냈다.

소미를 혼내주려는 줄 알았는데.

"도하나 프로듀서님은 진짜 천재인가 봐."

"???"

도하나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 김 리다.

은서는 예지의 칭찬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언니가 갑자기 왜 이러지?'

본인이 제일 먼저 도하나를 언급하지 말자고 했으면서.

요즘 넷째가 슬럼프로 많이 힘들어한다고 말했으면서.

"다이애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으응? 그러게."

"이런 분이 우리 앨범 작업을 맡아줘서 너무 다행이야."

"아이, 참."

"내가 팀장님께 듣고 평가해 달라고 말씀드릴게."

"...."

예지 언니, 왜 이러는 거야.

사람 마음을 후벼 파고 있어.

'요즘 많이 힘들어서 그런가.'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분조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예지 언니, 나 좀 봐."

"응?"

은서는 예지를 슬쩍 불러서 조용히 말을 꺼냈다.

"갑자기 왜 그래?"

"???"

눈치가 갑자기 없어질 수도 있는 건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니까 더 킹받는다.

"솔직히, 타이틀곡으로 쓸 만한 노래가 없어서 아쉬워."

"응?"

"평균적으로 다 좋긴 한데. 뭔가 아쉬워."

"...."

아까는 그렇게 좋다고 칭찬만 늘어놓더니.

다이애나랑 멀어지니까 아쉬운 점을 말하네.

"그런 말을 넷째 앞에서 했어야지."

"에이, 어떻게 그래."

".... 아."

언니가 많이 힘든 게 맞았구나.

"예지 언니, 요즘 오디션 준비한다며."

"응. 맞아."

"힘내."

어떤 작품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엎어지는 경우가 허다해서.

확정되기 전에 비밀을 유지하는 작품도 많았기에.

드르륵─

그때, 엄지유와 구현식 매니저가 연습실에 들어왔다.

"주희 언니, 스케줄 가자."

"예압."

엄지유는 의심의 눈초리로 주희를 바라봤다.

"댄싱 스트릿 미팅.... 가는 건 알지?"

"당연히 알지."

전혀 모르던데.

말도 안 하던데.

이내, 구현식 매니저님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은서야, 가자."

"네."

「복수소녀」 500만 달성 기념 스케줄.

당분간 제작진과 한마음 한뜻이었다.

"그럼 나도 가볼게."

"응!"

은서는 멤버들을 뒤로한 채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은서야, 500만 축하해."

"감사해요."

단독 주연 영화 데뷔작에 500만 관객이라니.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어마어마한 흥행이었다.

이런 기세를 이어가면 무난하게 800만까지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 이렇게 성공할 줄이야.'

새삼스레, 정 팀장님의 안목에 감탄사가 나왔다.

이내, 구현식 매니저는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다.

"저기, 은서야. 정산금 소식 들었어."

"네? 무슨?"

"이번에 정산금 전부 할머니께 드리기로 했다며."

"아, 네. 맞아요."

할머니가 투자해서 두 배로 불려주신다던데.

방 마담 투자 실력은 거의 팀장님 수준이니까.

"그, 아무리 그래도 전부 드리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아뇨. 저는 괜찮아요."

"너도 좀 써야지. 내가 집안 문제에 간섭할 수는 없지만...."

"에이, 먹고 자고 다 회사에서 해결하니까요."

".... 혹시 오늘 먹고 싶은 거 있어?"

"없는데요."

"필요하면 말해."

"예아."

뭐지, 왜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건데.

"은서야, 팀장님께서 작품에 투자하신 이유는 들었지?"

"이유요?"

글쎄. 아직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영화 홍보와 촬영 스케줄로 바쁘게 살아서.

"아무도 투자하지 않을 것 같아서."

"네?"

"애초에 이 영화가 뜰 줄 누가 알았겠어."

"...."

무명 감독에, 걸그룹 멤버 주연.

사실, 나중에 할머니께서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할머니 외에 이 영화가 투자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무도 안 믿는 작품에 가장 먼저 투자를 결정한 사람.

"그럼 팀장님은...."

"맞아. 본인 선택에 대해 확신하신 거지."

".... 그걸 증명하려고?"

"그렇지."

은서 역시 수호가 작품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었다.

슈퍼개미 투자자 할머니를 둔 입장으로서.

그 용기와 결단에 심장이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진짜 멋있네, 우리 팀장님."

"동감이야."

이내, 장은서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오늘 회사에서 팀장님이 안 보이시네요."

"아, 너도 얼마 전에 본부장님 입원하신 거 알지?"

"그럼요. 알죠."

구 매니저는 자신이 아는 선에서 회사 분위기를 늘어놓았다.

딱히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드림 에이전시의 권무혁 상무와 김기석 이사.

이전 회사에서 매니지먼트 4팀을 해체한 사람.

'나도 처음엔....'

정수호 매니저님을 나쁘게 오해했는데.

팀까지 해체시킨 불행의 아이콘이라고.

「복수소녀」를 발굴한 천재에게 무슨 실례인가.

정 팀장님께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공존했다.

톡, 토톡─

장은서는 스마트폰으로 할머니에게 톡을 보냈다.

[할머니, 뭐해?]

가능하면 최대한 은밀하게 도와드리고 싶었다.

팀장님과는 지금의 관계가 적당해서.

조금이라도 불편해지는 건 싫으니까.

* * *

며칠 뒤.

나는 지유와 함께 주희를 태우고 엔넷 방송국으로 이동했다.

「댄싱 스트릿」 제작발표회 가는 길.

양주희는 전혀 긴장감이 없어 보였다.

"양주희, 댄스 배틀 연습은 열심히 한 거지?"

"당연하죠. 본업인데."

"흐음."

은서보다 영화 촬영을 먼저 끝내고 연습을 하긴 했다.

나한테 봐달라고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춤만 췄으니.

"해외 유명 댄서들도 나온다며."

"네. 맞아요."

"잘할 수 있는 거지?"

"당연하죠."

주희가 「복수소녀」 스턴트우먼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이번 예능에서 춤을 잘 춘다고 급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너무 주목을 받아서....'

이미 솔라의 위치는 국내에서 정상이니까.

오히려 못 추면 거품이라고 욕이나 먹겠지.

'그래서 불안하다고.'

이 예능만 생각하면 뒤통수가 자꾸 가려워.

투자금 없어서 몇 번이나 엎어진 방송이라.

"팀장님, 호러 데이즈에 우리 나온 방송 보셨어요?"

"어. 잘 나왔더라."

"장은서 검은 눈물, 짤로 저장함."

"...."

끼이익─

쓸데없는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엔넷 방송국에 도착했다.

"지유야, 주차 부탁해."

"응!"

주희와 함께 방송국 앞에서 제작발표회장으로 이동했다.

현장에 있는 기자들은 전부 카메라를 들었다.

「복수소녀」 스턴트우먼에게 향한 관심이었다.

"잠깐 지나갈게요."

"주희 씨! 영화 500만 공약은 함께 안 하시는 건가요!"

"네. 주희는 배우가 아니라서요."

"주희 씨! 댄싱 스트릿을 임하는 각오를...."

"이따 정식으로 질문받을게요."

이내, 기자들을 뿌리치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정 팀장님!"

그때, 멀리서 피디님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와아, 방송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려주다뇨."

"이 프로, 팀장님 아니었으면 무조건 엎어졌을 겁니다!"

"...."

솔직히, 그건 맞지.

양주희 없으면 아무도 투자 안 했을걸.

"텀블 인베에서 엄재하 씨가 투자를 결정하셨거든요."

"아, 그래요?"

"넵! 정 팀장님 추천이라고 하던데."

"...."

그래도 엄씨 남매가 내 말은 참 잘 들어.

"제가 무조건 양주희 씨 위주로....!"

"아뇨. 소신껏 해주세요."

"네?"

내가 개입하면 똥촉도 틀어질 수 있었다.

뜰 것 같아서 투입한 건데 망하면 어떡해.

"피디님, 반드시 본인 판단하에 편집해 주세요."

".... 네!"

주변에서 스탭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꽂혔다.

"인성 개쩔어."

"진짜 대단하시네."

"솔라가 다들 착한 이유가 있네."

"회사 차이."

여러분 다 들려요.

"일단 저희는 대기실로...."

"정 팀장님."

그때, 멀리서 레드와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솔라 정규 앨범 준비하신다면서요?"

"네. 맞아요."

"안무가는 구했어요?"

"아, 그게."

현재 접촉 중인 안무가는 있지만.

그래도 레드와인은 업계 탑이니까.

".... 아직이요."

홍주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미팅 한번 잡아요."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드림 에이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공세원 실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체 뭘 믿고 권무혁 상무에 맞서려는 걸까.

안목. 실력. 성적.

다 좋은 건 알겠는데.

"정수호 팀장."

이러다 회사 옮기겠다고 선언하는 거 아닌지 몰라.

일단 김 이사를 본부장으로 두고, 후일을 도모하지.

"아씨, 어렵네."

이미 정수호는 2본부의 실세.

그의 의견을 묵살할 순 없었다.

'솔라가 너무 컸어.'

당장 회사는 솔라가 없으면 굴러가지도 않을 정도였다.

나름 신인 보이그룹을 키워보려고 하는데.

솔라가 아니라 루나를 넘어서기도 어려웠다.

똑, 똑─

이내, 본부장실 문을 두드리는 박철민 실장.

"하아...."

공세원은 어쩔 수 없이 그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아니, 내 차니까."

"아, 네."

문득, 정수호 팀장이 복수소녀에 했다는 투자가 떠올랐다.

"박 실장님, 이번에 정수호 팀장이 영화에 투자했다면서요."

"아,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금수저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듣기로는 10억쯤 투자했다고 하더만.

중소 엔터 다니는 매니저가 맞는 건가.

문득, 과거에 박철민 실장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엄지유 매니저랑 어릴 때부터 친했다던데."

"아, 수호요? 맞습니다."

"...."

엄지유는 텀블 인베 대표 딸래미.

금수저끼리 통하는 게 있지 않은가.

"정 팀장 할머니 덕분에 텀블 인베가 번창했다고...."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텀블 인베를 키울 정도의 자산가.

대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

잠시 후,

주주총회가 열리는 사무실.

회의에 참석하는 인물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저분이 오셨네."

"누구....?"

드림 에이전시의 2번째 대주주, 속칭 방 마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공세원 본부장은 눈을 크게 뜨고 한 여인을 바라봤다.

하얀 모시옷을 입고 나타나,

화려한 차키를 테이블에 대충 내려놓는 그녀.

'.... 힘들겠네.'

도무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할머니.

같은 편을 들어줄 확률은 현저히 낮았다.

큐앤지 레이블을 합병한 인물이 아닌가.

스윽─

순간, 공세원은 방 마담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