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복수 소녀(2)
나는 지유에게 톡으로 제작일지를 받아 천천히 확인했다.
'조감독 쉑, 100프로네."
진짜 교묘하게도 고쳤구나.
원래 시나리오와 완벽하게 똑같은 영상을 찍는 건 불가능하니까.
조연출은 제작사랑 같이 수정안을 작성해 감독님께 보고하는데.
".... 금성 프로덕션."
영화 「복수 소녀」의 제작을 맡은 제작사였다.
적어도 한 명 이상 제작비 먹튀에 가담했겠지.
촬영이 끝나면 배에 기름칠할 수도 있고 뽀찌도 떼먹을 수 있어.
내 똥촉에 따르면, 제작비 슈킹과 상관없이 영화는 성공하겠지만.
"내 돈!!!"
내 소중한 돈이 걸려 있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오빠, 뭐해?"
"아, 지유야."
그때, 지유가 다가오며 내게 말을 걸었다.
"지유야, 지금 제작비 부족해?"
"응. 그래서 방 마담이라는 분이 추가로 투자하신다던데."
"방 마담?"
방 마담님, 이번 영화의 최대 투자자.
혼자서 100억 이상 투자하셨을 텐데.
"아무튼, 당분간 제작비 걱정은 없다고 하네."
".... 저기 경차는? 원래 세단이었잖아."
"그거 바꿀 거야."
"다행이네."
일단 영화 촬영에는 문제가 없는 듯했다.
"지유야, 조감독님 어때?"
"어떻긴, 엄청 열심히 하시지."
"그래?"
"응. 여기서 제일 열심히 뛰어다닐걸?"
"...."
이 쉑, 뒤로 캥기는 게 있으니까 연기하는구나.
나 같아도 횡령금 생각해서 존나 열심히 할 듯.
'어떻게 조지지?'
일단 영화 촬영 중에는 잠깐 보류하고.
그동안 증거를 잡아서 고소나 때려야지.
아무리 똥촉이 있다지만, 촬영을 말아먹을 순 없으니까.
'우리 회사에 법무팀이....'
나중에 실장님께 한 번 여쭤봐야겠다.
듣기로는 아웃소싱 맡긴다고 하던데.
"오빠, 이제 촬영 들어간다."
"그러네."
이내, 시선을 돌려 세트장에 있는 양주희를 바라봤다.
와이어 액션을 준비하는 모습.
내 눈엔 사뭇 위험해 보였지만.
영화 스탭들 중에 단 한 명도 긴장하는 사람이 없었다.
"레디, 액션!"
감독의 지시와 함께 자동차는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자동차를 밟고 올라가는 양주희.
그 위에서 보조 출연자와 합을 맞추는데.
"주희 언니 멋있지?"
"...."
아무리 봐도 걸그룹 같지가 않았다.
그냥 스턴트 액션 배우가 천직인데.
'청순 걸그룹, 안녕.'
정규 앨범 때 하늘하늘한 드레스 입고 태양 여신을 소화할 수 있을까.
뒤통수가 간지러운 걸 보면, 또 이상한 데 꽂혀서 거슬리는 모양이다.
"오빠, 무슨 생각해?"
"양주희 멋있네."
"그치? 오빠가 시켰잖아!"
"어. 그랬지."
감독도 만났고, 액션도 내가 시켰지.
똥촉에 이끌려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우리 은서 언니 액션 기다리는 팬들이 엄청 많아."
"나도 알아."
"저기, 무술 감독님도 오빠가 뽑았잖아."
"어, 맞아."
"안전제일 주의! 조심성 장난 아님."
".... 저분 착해."
"그치?"
자본주의에 찌든 도인이나 신선 같은 느낌이야.
사람 다치면 다 돈이거든.
아마 안전도 돈 때문일걸.
"일단...."
나는 조감독을 슬쩍 흘겨보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금성 프로덕션 김현배 실장님]
"전화 한 통만 할게."
"응."
제작사에도 벌레가 있나 확인해야지.
가는 김에 내 편도 한 명쯤 확보하고.
* * *
AI 걸그룹, LOKA의 해외 반응이 뜨거웠다.
「리그」에서도 긴가민가했던 실험적인 무대.
그 와중에 솔라 멤버가 두 명이나 있었으니.
박철민 실장은 밀려드는 섭외 요청에 미소를 지었다.
예지한테 들어온 요리 예능.
소미에게는 공포 예능 고정.
'일단 킵 해놓고....'
정수호랑 상의해서 결정하는 걸로.
국내 뿐만이 아니라 해외 스케줄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물론이고 영미권 진출도 가능해 보였으니.
'아니, 미국은 아직 시기상조야.'
몇 년간 빌보드 하위권을 맴돌고 해체한 걸그룹도 있지 않은가.
현재 글로벌 K팝 시장에서 솔라는 발걸음도 채 떼지 않았으니까.
"천천히 가야...."
띠리리링─
그때, 스마트폰에 걸려온 본부장님의 연락.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는데.
".... 어디에서 컨택이 왔다고요?"
-RSB 음반제작사. 그것도 핀 브라운이 직접 연락했다고!
"핀 브라운!?"
저스틴 하비랑 칼리 잭슨을 키운 프로듀서.
심지어, 직접 발굴하고 음반을 제작했으니.
'미쳤네.'
아무리 AI 걸그룹이 성공했다지만.
빌보드 수준에 비빌 정도는 아닌데.
-정수호 팀장이랑 미팅을 잡았다고 하더라.
"아니, 또수호가 이걸?"
대체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진짜 솔라를 '블루숄츠' 급으로 올릴 수도 있겠어.
다른 누구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순수 실력으로.
-정수호 팀장은 지금 어딨나?
"금성 프로덕션에 있을 겁니다. 볼 일이 있다고 해서."
-회사 돌아오면 나한테 연락하게.
"네. 본부장님."
뚝.
박철민은 전화를 끊고 매니지먼트 1팀 사무실로 내려갔다.
바쁘게 움직이는 팀원들.
고작 1년 사이에 바뀌었다.
지난 겨울에 정수호 팀장이 오고 나서부터였나.
"실장님, 안녕하십니까."
"구현식 매니저, 잠깐 얘기 좀 하시죠."
"네?"
새로운 담배 친구를 얻었다.
바쁜 정수호 팀장을 대신할.
두 사람은 함께 옥상에 올라 담배에 불을 붙였다.
"구 매니저, 프렌즈는 지금 엔터 딱지 뗀다면서요."
"네. 아마 플랫폼으로 사업을 확장할 생각인 듯합니다."
".... 대단하네."
하이엔드라는 단 한 개의 팀이 프렌즈를 키웠다.
어쩌면 큐앤지 레이블도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솔라가....'
아니, 정수호 팀장이 있으니까.
그의 최종 목표는 어디에 있을까.
"구 매니저는 우리 회사에 왜 들어왔다고 했죠?"
"정수호 팀장님께서 함께 하자고 하시더군요."
"겨우 그런 이유로?"
".... 겨우라뇨."
박 실장은 구현식의 열정 가득한 눈을 마주쳤다.
'야망.... 인가.'
정수호 팀장 밑에서 야심을 키우고 있었구나.
어쩐지, 인사팀장 출신이 왜 로드를 뛰겠는가.
"실장님, 저는 정수호 팀장님이 결국 독립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솔라 계약 기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 2년."
확실히, 그는 큐앤지 레이블이 품을 수 없는 그릇이었다.
솔라는 탑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그녀들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군대에 가라면 가고, 미국에 가자면 따라가고.
'정 팀장 허락이 없으면....'
회사는 솔라의 계약 기간을 연장할 수가 없겠지.
그녀들은 회사가 아닌, 정수호 팀장을 따르니까.
"아직 모르는 거 아닌가."
"네. 독립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아무도 모르지."
그 천재 프로듀서의 복잡한 마음을 누가 알겠어.
어쩌면, 자신도 선택의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후배가 세운 회사에 들어갈 날이 올 수도 있겠네.
'.... 회사 차릴 돈은 있을까.'
혹시, 그쯤에는 큰손 투자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
* * *
오, 이번 달 성과급도 개꿀이네.
이러면 내가 드림 에이전시 안 돌아가지.
좋소기업에 말뚝 박고 충성을 다해야겠다.
똑, 똑─
그때, 담당자가 사무실에 노크하며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금성 프로덕션, 김현배 제작실장.
「복수 소녀」의 제작 책임자였다.
'일단 촉은 안 오는데....'
일단, 상대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대화를 좀 나눠보면 똥촉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김 실장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말씀하시죠."
"제작비 빼돌렸어요?"
"...."
상대의 표정 변화를 캐치하는 게 중요했다.
무적의 똥촉이 있으니까.
어떤 반응이라도 있겠지.
그런데, 상대는 뜬금없이 의외의 인물을 언급했다.
"이미 방 마담께서 왔다 가셨습니다."
"방 마담?"
"네. 그분께서 이미 한바탕 뒤집어엎었습니다."
"...."
그분 혹시 깡패인가요.
"제작사 비리 직원은 퇴사했고, 촬영 스탭만 신경 쓰면 될 것 같습니다."
"....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네?"
"맡겨주세요."
그럼 이제 조감독만 남은 거네.
"아, 여기 정수호 팀장님께 전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요?"
"방 마담께서."
"...."
직원은 내게 가벼운 봉투를 건넸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수표가 있었다.
"돈이네요."
"네. 성의 표시라고...."
"안 받겠습니다."
"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돈을 받을 순 없지.
솔라와 관련해서 들어오는 청탁이 한두 번인가.
"이런 거 다 받으면 체해요."
"역시, 이럴 줄 알고 계셨답니다."
"...."
너무 수상한 사람이야.
옛날 같았으면 돈에 혹했을지도 몰랐지만.
영화에 투자만 해도 돈에 쪼들리진 않아서.
"스탭들 중 누가 범인인지 색출하고 있습니다. 계좌 내역을 통해...."
"그건 제가 알아요."
"네? 어떻게요?"
"...."
직원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분께서도 정 팀장을 신뢰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를요?"
"네. 자신처럼 영화 고르는 안목이 좋다고."
"...."
그냥 뒤통수 똥촉이 골라줘서 투자한 건데.
내 취향이랑 거리가 먼 느와르 액션이니까.
"특히, 요즘 장은서 배우님께 완전히 꽂히셨다고 하셨습니다."
"???"
태양빛 팬클럽 회원이신가.
솔라는 할머니 팬도 있었나.
"그럼 저는 그만 일어나볼게요."
"네. 필요하면 연락주십쇼."
조감독은 우리 회사에서 따로 처리하면 될 것 같다.
곧바로 사무실을 벗어나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는데.
".... 본부장님?"
잠시 후,
큐앤지 레이블 사옥.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본부장실에 불려 갔다.
똑, 똑─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격하게 반겨주시는 본부장님.
"정 팀장! 미국 스케줄 힘들지는 않았고?"
"아뇨. 괜찮습니다."
"많이 바빴다며."
"???"
전혀 안 바빴는데요.
예지랑 다이애나 연습하는 거 구경만 했지.
미국에서 스케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핀 브라운 같은 거물을 물어온 거야?"
"아, 그건 한국에서부터...."
"아하하하."
"???"
본부장님은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부터? 벌써 자네는 다 계획이 있었구먼?"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한국에서 이미 익명의 전화가 왔다고요.
근데 그게 핀인지 브라운인지 몰랐다고.
"RSB 음반사, 그쪽에서 도하나 작곡가랑 음악 작업을 하고 싶은 듯합니다."
"아, 작년에 SAS 편곡자로 계약한 그 친구?"
"네. 맞습니다."
"도하나 작곡가는 무조건 자네랑만 연락한다며."
"네. 소심한 성격이라."
"결국, 그 친구도 자네가 찾은 인재 아닌가."
"...."
회사에서 찾았겠죠.
연습생도 했는데요.
"자네는 역시 큐앤지의 보물이야."
"....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그렇지. 그 운은 항상 자네만 따르고."
"으음."
다이애나가 도하나라는 걸 회사에도 계속 숨겨야 하나.
그냥 숨겨야지.
괜히 또 슬럼프 와서 작업물 안 나오면 어떡해.
"그래서, 뭐 필요한 건 없고?"
"하나 있긴 합니다."
"오오, 말해보게."
"법무팀이든 감사팀이든, 횡령 사건 하나만 조사해주세요."
"누구를....?"
영화 「복수소녀」의 조감독.
촬영 끝나는 대로 정리해야지.
"아아, 물론이지. 솔라는 우리 회사의 중심인데."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당연한 걸로."
"그래도 감사합니다."
내 돈이 들어간 영화니까요.
괜히 뒤탈이 없었으면 해서.
잠시 후.
나는 사무실에서 지유와 함께 솔라의 스케줄표를 정리했다.
"오빠, 진짜 괜찮겠어?"
"뭐가."
"예지 언니, 요리 예능 들어가는 거."
"...."
괜찮겠냐. 거의 핵폭탄급인데.
먹어본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일단 고고."
뒤통수가 살랑살랑 간지러웠다.
"그럼 소미 공포 예능은?"
".... 그것도 고고."
솔직히, 나도 소미한테 이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방탈출 촬영 때 허접한 좀비 분장에도 기겁했으니.
"소미 울지도 몰라."
"어쩔 수 없어."
이제 서광 예술고등학교 입학할 때 됐잖아.
"고등학교 입학선물 겸 추억이라고 생각하자."
"선물 맞아?"
"그냥 그런 걸로 하자."
"...."
대신 친구랑 같이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아.
한지아라던가, 아니면 루이팽 선수라던가.
"한지아는 요즘 어떻게 지내?"
"아, 그 연습생?"
"응."
이내, 지유가 내게 한지아에 대한 월말 평가서를 내밀었다.
[노래 : 평균 이하]
[춤 : 평균 미만]
[스타성 : 높음]
그래도 스타성 하나는 다들 인정하나 봐.
비주얼이랑 체형은 누가 봐도 예쁘니까.
"실력은 별론가 봐?"
"이것도 많이 발전한 거라던데."
"음."
그 친구 서광예고 작곡가로 입학한다며.
"혹시 작곡 실력은 어때?"
"그건 아직 모르겠어."
"나중에 내가 한번 봐야겠네."
"응."
일단 한지아는 나중에 생각하고.
"당분간 개인 활동은 예지랑 소미 위주로 갈 거야."
"알겠어."
장은서랑 양주희는 영화 촬영.
다이애나는 작업으로 바쁘니까.
"소미 잘 타일러줘."
"으음."
* * *
어찌 하늘은 나를 낳고 정수호 팀장님을 낳았는가.
"공포 예능이라니!?"
소미는 충격적인 스케줄을 받고 한동안 쇼크 상태에 빠졌다.
군대 갔다 오고 정신 차렸거늘.
아직도 부족하다고 이러시는지.
"소미야, 나는 요리 예능이래."
"이건 차별이야!"
발가락으로 해도 예지 언니보다 요리를 잘할 자신이 있었다.
"복수할 거야."
".... 복수?"
커피에서 휘핑크림을 빼든지.
아니면, 은근슬쩍 반말하거나.
그때, 정수호 팀장님이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얘들아, 스케줄표 받았지?"
"네에!"
"...."
소미는 대답 없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다 너희를 위해 잡은 스케줄이야."
"저는 좋아요!"
헤실헤실 웃는 예지 언니를 힐끔 보고 콧방귀를 꼈다.
"아이고, 머리가 간지럽넹."
소미는 머리를 가운데 손가락으로 긁기 시작했다.
이내, 정수호 팀장님은 자신을 보고 입을 열었다.
"소미야, 왜 그래?"
"응? 뭐가?"
"???"
소미는 어깨를 으쓱이며 반말을 이어갔다.
"나 오늘은 연습 여기까지만 할래."
"어, 그럴래?"
"안녕히 계세여."
"어디가."
소미는 대답도 하지 않고 나가더니 연습실 문을 쿵 닫았다.
'아, 이건 실수로 세게 닫았다.'
복수를 너무 심하게 했나.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드르륵─
소미는 다시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바람 때문에 닫혔어요!"
".... 미닫이 문인데?"
"그니까요!"
복수 많이 해서 시원하네.
그래도 공포 예능은 싫어.
한편, 연습실에 남은 수호는 예지와 대화를 나눴다.
"소미 사춘기야?"
"아뇨. 군대 갔다 오고 철 들었는데. 이상하네."
"군대 한 번 더 보내야 하나."
"군대를 두 번....?"
"그건 좀 잔인한가."
"네. 조금."
수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인성 교육에는 공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