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68화 (68/200)

[68] 복수 소녀(1)

원래 솔라라는 그룹에는 관심이 없었다.

소속 래퍼가 꽂힌 천재 비트메이커 도하나.

사클에서 발견한 보석에만 관심이 있을 뿐.

"핀 브라운 씨, 즐거워 보이시네요."

"물론이지."

핀은 비서와 대화를 나누며 LOKA의 리허설 무대를 감상했다.

대형 음반제작사 RSB의 제작 프로듀서 핀 브라운.

미국 음반시장에서 그 이름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AI 걸그룹 로카, 신선하잖아."

"곡명이 New phase."

"그래. 이름 잘 지었어."

대형 스크린 속, 무대를 휘어잡는 네 명의 게임 캐릭터들.

그들을 실사화한 네 명의 LOKA 멤버들이 마이크를 들었다.

"특히, 저기 메인보컬은...."

"김예지입니다."

"그래. 그 친구."

도하나와 협업하는 솔라의 멤버라고 했던가.

반가성을 통해 믹스보이스를 체화한 케이스.

피지컬이 안 되는데 고음을 올리기 위해서는.

'.... 독하게 연습했어.'

무대만 봐도 딱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연습을 열심히 했는지.

"이 곡 편곡을 도하나가 맡은 건가."

"네. 맞습니다."

"역시."

New phase로 도약하는 곡명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모든 악기 소리가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들어맞았으니.

단순히, 재능이 뛰어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비트를 찍어내는 기계.

도하나의 편곡 실력은 틀림없는 천재였다.

이 곡을 1년쯤 붙잡고 작업한 게 아니라면.

스윽─

핀 브라운은 시선을 돌려 정수호 팀장을 바라봤다.

혹시 도하나 프로듀서를 직접 키웠을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그 사람은 오직 그가 키운 걸그룹 '솔라'하고만 협업했으니.

심지어, 정수호를 통하지 않으면 연락도 닿지 않았다.

"혹시 저 사람이 신경 쓰이십니까?"

"나를 처음 봤을 때 아는 체도 안 하더라고."

"...."

미국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 시장에 발을 들이자마자 천재로 통했으니까.

"아마 알아봤을 겁니다."

"물론 그러겠지."

당연히 알아봤지만 별로 감흥이 없었겠지.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거야.

'.... 나처럼.'

슬쩍 시선을 돌려 걸그룹 로카를 바라봤다.

그중에서 두 명은 저 사내가 키우고 있다지.

"도하나 프로듀서는 무조건 잡아야 해."

"네. 알겠습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제작 중인 히어로 무비.

영화 삽입곡 음반 작업에 필요한 인재였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비트, 오직 음악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으니.

가사가 있는 OST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

이 정도의 인재는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 어려울 수도.'

오늘 정수호 팀장을 마주쳤을 때, 그 심드렁한 표정을 보고 확신했다.

자신만의 신념을 지니고 일하는 사람.

그냥 돈을 쫓는 인물이면 편했을 텐데.

"어떤 조건을 걸지 벌써 두려워지는군."

".... 제게 맡겨주십시오."

"레이첼, 영화 크랭크인 전까지 비밀 유지가 생명이야.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핀 브라운과 비서는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걸그룹 LOKA가 리허설 무대를 마칠 때까지.

".... 끝났네."

"한국인 메인 보컬 실력은 대단합니다."

"저 친구 랩도 나쁘지 않아."

김예지와 다이애나.

신선한 페이스와 그에 못지않은 실력.

한국에서만 놀기에는 실력이 아까웠다.

이미 K팝은 두려울 만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니.

"하이엔드와 블루숄츠."

"네?"

어쩌면, 그들의 뒤를 바짝 추격할 K팝 후발 주자가 될 수도.

조만간 정수호 팀장은 유명한 프로듀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기대되는군."

* * *

리허설 무대를 마친 후.

나는 숙소에서 혼맥을 하며 RSB 음반제작사를 검색했다.

프렌즈에서 인수를 시도하고 있는 회사.

어쩐지, 스탭들 반응이 심상치 않더라니.

핀 브라운.

미국 음반 시장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인물.

그냥 적당히 높은 직급 정도로 생각했건만.

"뭐여 시봉."

이분 개쩌는 사람이었잖아!?

슈퍼스타를 두 명이나 발굴한 탑 프로듀서.

제법 젊은 나이에 영화 같은 인생을 살았다.

"이런, 미쳤다. 저스틴 하비랑 칼리 잭슨에...."

처음 한국에서 전화했을 때 도하나 연락처를 요구했었던가.

이런 사람이 선뜻 먼저 연락할 정도면.

진짜 도하나 실력은 어느 정도인 걸까.

그리고, 내 빌어먹을 귓구녕은 얼마나 막귀인 건지 모르겠다.

핀 브라운, 이분은 엄청 바빠 보이던데.

그래도 명함 받았으니까 인사는 해야지.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강요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정중하게.

띠리리링─

그런데, 상대는 곧바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헬로우.

"핀 브라운 씨, 정수호 팀장입니다."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도하나 씨와 작업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정확합니다.

내가 연락했지만, 용건은 상대에게 있었다.

-영화 음원 작업 건으로 미팅을 잡고 싶습니다.

"아, 그래요?"

-근데 촬영 일정까진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음."

상대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대화를 이어갔다.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 측 사람이 한국에서 미팅을 잡아도 될까요?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럼. 연락드리죠.

뚝.

가볍게 용건만 꺼내는 상대.

이 정도로 거물은 처음이라.

".... 숨 막혀."

어차피 저쪽에서 온다고 하니까.

다이애나 의견은 나중에 물어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연예계 관련 뉴스를 검색했다.

드림 에이전시 이수연 배우의 새 작품 소식.

제목이나 배역을 보니 무난하게 성공할 것 같다.

".... 는 아니네."

뒤통수가 간지럽구나.

망하면 어쩔 수 없고.

내가 부모님도 아니고, 매니저도 아닌데 어쩌겠어.

띠링─

그때, 예지에게 톡이 날아왔다.

[매니저님, 바쁘세요?]

직접 찾아오면 괜한 소문이 날 수도 있으니.

기특한 마음에 냉큼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지야, 어쩐 일이야."

-팀장님, 오늘 펌킨크러쉬 보컬 분이랑 찍은 사진 SNS에 올려도 돼요?

"너 완전 기계치잖아."

-아니거든요!

이럴까 봐.

그쪽 매니지먼트에는 미리 말해놨지.

"그래. 올려도 돼."

-네! 근데 벌써 소미 예능 방영한 거 아세요?

"무슨 방송?"

-군대사나이 소미편이요!

".... 아하."

음, 그게 벌써 나왔나.

편집이 졸라 빠르네.

예지는 친절하게 다시보기 링크까지 보내주었다.

-이거 보시고 소미한테 응원 톡 보내주세요!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 고마우면.

"응?"

-아, 아니에요!

뚝.

뭐야, 싱겁게.

나는 예지가 보낸 링크를 눌러 다시보기를 틀었다.

스크롤을 쭉 드래그해서 중간 지점을 시청했는데.

-으아아앙─!

-엄마아아─!

화생방 훈련을 받고 있는 여군 부사관 후보생들.

악마 조교놈은 그 와중에 군가를 부르게 시켰다.

"오, 소미 안 우네?"

선즙필승인데 1위 놓쳤구나.

그러면 울어도 의미가 없지.

-....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오히려 소미 혼자 군가를 부르는 모습에서 강인함이 느껴졌다.

"이거 반응 좋겠는데."

스마트폰으로 관련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역시는 역시.

게시글은 소미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소미 커여워 ㅋㅋㅋㅋ

ㄴ조교한테 애교 미쳤다고 ㅋㅋㅋ

ㄴ혜미 이후로 레전드 짤 탄생 ㄷㄷ

ㄴ평생 소장한다

-소미는 뭐든 열심히 함

ㄴ밥도 열심히 먹음 ㅋㅋㅋㅋㅋㅋ

ㄴ내가 알던 지니어스 맞냐

ㄴSAS는 참았는데 소미 때문에 입덕했다

ㄴSAS를 버티다니 ㄷㄷ

우리 소미가 달라졌구나.

소미는 언제나 '노력'과 거리가 멀었으니까.

연습생 때도 항상 중간만 가자는 마인드로.

".... 나태 천재."

군대 가서 정신 차린 것 같아.

이제 연습도 좀 열심히 하려나.

* * *

「리그컵」에서 펼쳐진 AI 걸그룹 LOKA의 무대.

지유는 소미와 함께 너튜브로 영상을 시청했다.

"우리 언니들, 진짜 멋있다."

"인정."

정말로 AI 캐릭터와 실존하는 가수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게임 속 캐릭터가 스킬을 쏠 때마다 터지는 특수효과.

다이애나가 'Q'를 쓰는 연출과 함께 폭죽이 날아갔다.

"아우, 나도 저 무대에 올랐어야 했는데."

"대신에 너는 군대 갔잖아."

"...."

지유는 소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요즘 예능이 미친 듯이 들어와."

"나만?"

"응."

다른 멤버도 나와주기만 하면 넙죽 받겠지만.

방송국들도 소미가 예능캐란 걸 알고 있었다.

"공포 예능 고정으로 들어왔는데."

"놉. 절대 안 해."

"오키."

어차피 정수호 팀장님이 돌아와서 결정할 문제였다.

"언니 오늘도 영화 촬영장 가?"

"응. 수호 오빠도 오니까."

"촬영장에 구현식 매니저님 계시잖아."

"그래도 가봐야지."

아마 오늘 저녁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텐데.

오자마자 영화 촬영장부터 방문한다고 하더라고.

"영화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던데."

"무슨 문제?"

"돈 문제."

하여튼, 진짜 열심히 해.

한집에 사는 우리 엄마 아들이랑 비교된다.

그래도 아버지 투자 회사에 들어갔으니까.

"엄재하도 이제 밥값은 하겠지."

"엄재하?"

"아, 우리 오빠."

"음....?"

문득, 소미는 얼마 전 팬 사인회에서 비슷한 이름을 들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워낙 특이한 이름이라.

엄.... 굳이 말할 필요는.

"아무튼, 소미야."

"응?"

"회사 잘 지키고 있어."

"나는 멍멍이가 아니에요."

"알지."

소미는 지유의 손을 붙잡고 말을 이었다.

"빨리 와야 해."

"알겠어."

두 언니는 미국에, 나머지 둘은 영화 촬영으로 바쁘고.

군대 갔다 오니 혼자서 예능 찍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오늘 예지 언니랑 다이애나도 올 거니까."

"응. 기다릴게."

지유가 사라지고, 소미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얼마 전에 공개된 「리그」의 국내 광고.

너튜브에 올라온 CF 영상 댓글을 확인했다.

-태양 여신은 영원하다 ㅋㅋㅋㅋㅋ

ㄴ??? : 마법사(물리)

ㄴ예지는 여신 맞음 ㅇㅇ

ㄴ정규 앨범 태양 여신 컨셉이라던데?

ㄴ이 세계관을 또?

ㄴ나는 태양 여신 좋아

-솔라 설 특집 아육대 왜 안 나옴 ㅠㅠ

ㄴ양주희 영화 촬영 중이라고 함

ㄴ출연은 장은서뿐인데?

ㄴ주희가 대역이래

ㄴ스턴트 액션을 한다고? ㄷㄷ

ㄴ영화 개봉 언제함

소미는 댓글창을 내려 자신과 관련된 내용을 확인했다.

-소미가 제일 잘 어울림 ㅎㅎ

ㄴ야만? ㅋㅋㅋㅋ

ㄴ소미 군대사나이 너무 커엽

ㄴ위문공연각?

ㄴ솜 사랑스러워 ㅠㅠ

ㄴ소미는 드라마 안 찍나

ㄴ222222

옛날보다 솔라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이제 국내에서 인지도는 최상이었다.

"나도 드라마 찍고 싶은뎅."

외우는 건 뭐든 자신 있어서.

법정물이나 의학물 같은 거.

공포만 아니면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 공포는 싫은데."

공포 예능 고정 들어왔다며.

팀장님이 시키지는 않겠지.

* * *

비밀리에 입국한 인천국제공항.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팬클럽에서는 우리 스케줄을 꿰고 있었다.

다행히 매너 있는 태양빛 팬들 덕분에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매니저님, 바로 촬영장 가신다고요?"

"응. 너희는 박 실장님이 데려다 주실 거야."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래."

박 실장님은 주차장에 밴을 세워놓고 대기했다.

"수호야, 고생했다."

"아닙니다."

어떻게든 성공리에 마무리한 미국 일정.

AI 걸그룹 덕분에 해외에 기반을 쌓았다.

"너는 이거 운전해라. 나는 얘들 데리고 가볼게."

"네. 감사합니다."

실장님께 차 키를 건네받고, 옆에 세워둔 차에 올라탔다.

"정신이 없네."

비행기에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연락을 하나씩 정리했다.

아버지 회사 인턴으로 들어갔다는 엄재하.

어쩐지, 태양빛 카페지기가 2명이 됐더라고.

".... 잘됐어."

매일 백수처럼 지내는 게 좀 미안했다.

괜히 카페 활동 때문에 그런 것 같아서.

술 한잔하자는 연락을 주고, 다른 톡을 확인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내게 이상한 연락을 남겼다.

".... 이수연 배우?"

이분이 갑자기 왜 이러시나.

[정수호 팀장님]

[할 말이 있어서요]

[저기요....?]

[?]

[자니?]

[이수연 님이 선물을 보냈습니다]

[안 속네]

술 먹고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얼마 전에 이수연 씨 들어간 작품 느낌 좋던데.

문제는 느낌만 좋고, 뒤통수까지 간지럽더라고.

"본인이 선택한 작품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자."

어차피 이미 촬영도 들어간 것 같아서.

대충 답장을 보내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릉─

이내 운전대를 잡고 촬영 장소로 이동했다.

원래 이렇게 급하게 갈 필요까진 없었지만.

'.... 출연료 미지급이라니.'

보조 출연자들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매니저가 아닌 투자자로서 하는 방문이었다.

이내, 영화 촬영장에 차를 주차하고 스탭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팀장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조명팀, 소품팀, 촬영팀, 의상팀, 음향팀, 액션팀.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다들 영화 촬영 때문에 지쳐 보였다.

게다가, 촬영 소품을 스윽 둘러보니 뭔가 묘했다.

'.... 경차로 액션을 찍어?'

스크립트나 콘티에서는 분명히 고급차였는데.

누가 돈을 뜯어먹은 건 아닌지.

혹시 내가 잘못 짚은 건 아닌지.

잠시 고민하던 찰나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매니저님!"

"오랜만이네요."

"은서, 주희. 잘 지냈어?"

"네에!"

휴식시간을 갖는 주연 배우의 옆자리.

쉬고 계신 김춘수 감독님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오, 정 팀장님."

대충 오늘은 인사만 하고 돌아서려고 했는데.

"정 팀장님, 이쪽은 조감독."

"어, 음. 안녕하세요."

선한 인상의 스탭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한눈에 봐도 엄청 사람이 좋아 보이지만.

".... 왜죠."

"네?"

똥촉의 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뒤통수가 가려워서 참을 수가 없네요.

"저랑 10년 동안 함께한 가족 같은 놈이에요."

"가.... 족 같은?"

어쩌면, 제작비를 해처먹은 사람이 있을지도.

그게 내 눈앞에 있는 조감독님일 수도 있지.

'.... 제작비 슈킹.'

의혹이라고 할 수도 없는, 갑자기 머릿속에서 피어난 의심.

물론, 김춘수 감독님과 제작진 일동을 신뢰하고는 있지만.

뭔가 구린 냄새가 난다.

내가 굳게 믿는 만큼.

뒤통수가 가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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