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뉴 페이즈(4)
현역 1티어 아이돌 출신 여배우, 장은서.
이전 작품에서는 풍부한 감정 연기가 돋보였지만.
한 작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흔했다.
김춘수 감독은 차분하게 대본을 점검했다.
'.... 괜찮아.'
어디까지나 이번 작품의 핵심은 스턴트 액션이 아닌가.
액션에 연기도 되는 여배우가 국내에 몇 명이나 있다고.
10년 무명 생활의 짬바는 어디 가지 않는다.
촬영 중 감독의 의도를 드러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주연배우의 대사는 수많은 미장센 중 하나일 뿐이었다.
"감독님, 은서 씨가 안 돌아오네요."
"아직 휴식 시간이니까."
"제가 한번 가 볼...."
드르륵─
이내, 정수호 팀장과 함께 주연 배우가 돌아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
이내,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에 앉는 장은서.
그녀의 기색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전까진 조금 귀여운 구석도 있었는데.
싸늘한 냉기를 풀풀 날리는 모습에, 현장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럼 다시 시작할까요?"
"씬 14부터."
조연출은 이어지는 장면의 상황을 설명했다.
"여동생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레아, 분노에 찬 상태로 상대를 바라본다."
"...."
스윽─
순간, 은서는 서늘한 눈으로 상대 배우를 노려봤다.
"내가 너 죽일 거야."
은서의 눈빛을 받아낸 배우는 등골에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영화에서는 대사보다 살아있는 눈빛과 표정이 더 중요했다.
"하, 네까짓 게 나를?"
"신기하네."
숨도 쉬기 힘들 만큼 무거운 분위기 속.
은서는 차분한 음성으로 대사를 뱉었다.
".... 시체가 말을 다 하고."
은서의 비릿한 미소와 함께 남자 배우는 몸을 흠칫 떨었다.
초반부, 비중 있어 보이는 캐릭터의 사망.
짧지만 강렬한 임팩트를 주는 장면이었다.
몰아치는 액션 속에서 나직하게 퍼지는 은서의 독백씬.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정확히 필요한 감정을 드러냈다.
'내 뜻을 정확히 파악했어.'
김춘수 감독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짝, 짝짝짝─
은서의 연기에 불만을 품었던 원로 배우 포함.
배우들은 손뼉을 치며 그녀의 연기를 칭찬했다.
"은서 씨,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
"감사합니다."
장은서의 분노 연기는 거의 메소드에 가까웠다.
저 어린 소녀가 평소에 화를 낼 리는 없을 테니.
'정수호 팀장....'
김춘수 감독은 슬쩍 눈길을 돌려 누군가를 바라봤다.
그와 휴게실 한번 다녀오더니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은서.
그 짧은 쉬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정 팀장이 바꿔놓은 거야.'
혹시 은서의 연기 선생이 정수호 팀장이라면.
마인드 세팅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결과였다.
'.... 대단하네.'
이렇게 확 변한 은서의 모습을 보니, 그의 트레이닝 실력도 보통은 아닌 듯했다.
주희의 스턴트 액션도 그렇고,
은서의 메소드 분노 연기까지.
역시 일류 걸그룹을 혼자 키우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법.
과연, 솔라를 1년 만에 정상급에 올려다 놓은 프로듀서였다.
'어디까지 성장할지....'
장은서는 아직도 성장할 여지가 남은 듯했다.
고작 스물두 살에 이런 깊은 내면 연기라니.
'벌써 촬영이 기대되는군.'
* * *
얼마 후.
대본리딩을 마치고, 영화는 곧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이미 홍보팀은 기자들에게 관련 보도자료를 뿌렸다.
[솔라 멤버 장은서 주연 영화 「복수 소녀」, 크랭크인! 한 소녀의 처절한 복수극을 그리는....]
빠르면 두 달, 길면 석 달간의 촬영 기간.
그 이상은 제작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수호야."
박 실장님이 내려와 질문을 건넸다.
"지올 수석 디자이너랑 미팅 잡았다며?"
"네. 미국 출장 가서요."
"그동안 영화 촬영은 지유가 케어하나?"
"네. 구현식 매니저님도 같이 할 겁니다."
"그래."
미국 가기 전엔 나도 종종 들를 생각이었다.
일단, 오늘은 예지도 개인 스케줄이 있어서.
"단체 활동은 당분간 자제하려고요."
"잘 생각했어."
영화 촬영 중, 은서와 주희는 최소한의 스케줄만 잡았다.
"그나저나, 1본부에서 뽑았다는 남자 연습생들 말이야."
"아, 네. 프로필 받았어요."
"괜찮은 친구 보이냐?"
"글쎄요."
프로필만 봐서는 딱히 역배각 보이는 멤버가 없었다.
조만간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해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연습생 평가 때 1본부에 들러볼게요."
"뭐, 그래. 그건 그렇고."
박 실장님은 민머리를 문지르며 대화를 이어갔다.
"소미 전역일은 얼마나 남았지?"
"며칠 안 남았어요."
"그러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서운한 건 어떻게 풀어주지.
"그날 부대 앞에서 멤버들이랑 같이 전역 축하해 줄 거라며."
"네. 근데 그날 미국 가는 날이라."
미안하지만 맛있는 건 다음에 사줘야지.
"소미 얼굴만 보고 바로 인천국제공항 가야죠."
"흠, 소미가 은근히 감성적이야. 눈물도 많고."
"저도 알아요."
군대 갔다고 군필 여고생이 꼰대가 돼서 나오진 않겠지.
사소한 기쁨에도 감동하는 친구니까 앞에서 기다려 주면.
'.... 조금은 풀리려나.'
일단, 오늘 예지 개인 스케줄부터 하고 와야지.
"오늘 스케줄은 뭔데?"
"레드와인이요. 홍주 선생님."
"아, 그 댄스 서바이벌?"
"네. 맞아요."
예지는 고양이춤 안무 창작자니까.
선생님을 위해 인터뷰 하나 따주러.
"잘 갔다 오고."
"네. 실장님."
곧장 예지를 찾으러 연습실로 이동했다.
드르륵─
트레이닝룸에서 AI 걸그룹 곡을 연습 중인 예지와 다이애나.
다섯 멤버들이 땀 흘리던 공간을 두 명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 엄청 휑하네.'
소미는 군대로 사라졌고.
영화 촬영 멤버도 없었다.
"매니저님!"
"어, 예지야."
리그 내 게임 캐릭터로 구성한 가상의 걸그룹.
예지와 다이애나는 각자 하나의 멤버를 맡았다.
"예지야, 스케줄 가자."
"네에!"
이내, 홍주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
예지에게 이번 달 스케줄을 공유했다.
「New phase」 곡이랑 안무 연습은 충분히 했고.
이제 슬슬 미국에 가서 무대 준비를 해야만 했다.
"다음 주쯤에 미국행 비행기 탈 거야."
"엥? 그럼 전챙시는요?"
"그건."
엄지유가 하기로 했어.
아직 말하진 않았지만.
"너희, AI 걸그룹 나머지 두 명이 누군지 알지?"
"네. 들었어요."
미국에서 꽤 영향력 있는 두 아티스트.
어쩌면, 솔라한테 좋은 인맥이 될 수도.
"역시, 매니저님은 처음부터 알고 수락하신 거예요?"
"응? 뭐를?"
"이거 점점 규모가 커지는 것 같아서요!"
"...."
그러게, 뉴스에도 나오더라.
처음엔 뭔지도 몰라서 괜히 찝찝하고 거슬렸던 AI 걸그룹.
그 윤곽이 드러날수록 큰물에서 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편곡은 도하나가 했으니까....'
나중에 미국 진출의 발판이 될 수도 있겠지.
"빨리 가자. 홍주 쌤 기다리신다."
* * *
며칠 뒤.
공세원 본부장은 연습실에서 평가를 준비했다.
올해 새롭게 런칭할 보이그룹.
제트킥의 동생 그룹, 「싸커킥」 후보 연습생들이 모여들었다.
"본부장님, 팀 명이 싸커킥은 좀 그렇지 않아요?"
"그건 내가 지은 게 아냐."
"네? 그럼...."
"서연정 대표님."
"아하."
이번에는 어떤 세계관의 싸커킥이 탄생하려나.
태양 여신 컨셉이 오히려 양반일 수도 있겠어.
"그나저나...."
공세원은 연습생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거의 열댓 명에 가까운 남자 연습생들.
다들 우월한 외모와 피지컬을 자랑했다.
"얘들아, 너희 연말평가 일정 당겨졌다고 연습 대충한 거 아니지?"
"아닙니다!"
"다들 정 팀장님 알지? 바쁜 사람 힘들게 불렀으니까 오늘 제대로 해라."
"네!!!"
현재 2본부는 정수호가 팀장을 달고 나서 날개를 달았다.
제트킥은 하락세, 솔라는 상승세.
루나까지 더 잘 나가고 있었으니.
아무리 아버지가 큐앤지 레이블의 공동대표라고는 하지만.
'.... 실적이 필요해.'
드르륵─
그때, 공세원 본부장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물을 확인했다.
"오, 정수호 팀장! 그동안 잘 지냈어?"
"네. 본부장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하하. 여기 앉아."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이어갔다.
"조만간 미국 출장 간다며."
"네. 괜히 저 때문에 연말 평가도 앞당겨서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식구끼리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아.... 식구. 하하."
"아무튼, 그럼 바로 시작할까?"
"네. 좋습니다."
사실, 일정이 당겨져서 힘든 건 면접관들이 아니었다.
연습생들은 더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그럼 바로 한 명씩 볼까요?"
"그래야지. 1번!"
연습생들은 갈색 마룻바닥 뒤쪽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는데.
그중, 한 명이 남아 패기롭게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연습생 김준성입니다!"
준성은 지시와 함께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시원한 기럭지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춤선.
공 본부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퍼포먼스를 감상했다.
이어지는 칼박자 댄스와 시원 깔끔한 보컬.
보통 가장 에이스를 앞 순서로 배치했으니.
'김준성 정도면....'
당연히 싸커킥 데뷔조에 들어가야겠지.
좋은 점수를 주고 정 팀장을 바라봤는데.
"개인적으로 음색이 좀 별로네요."
"???"
순간 화기애애한 연습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솔라를 키운 안목 천재의 기준은 너무 높았다.
"정 팀장, 준성이 실력이면 연습생 중에서 최상위권인데."
"네. 저도 그렇게 생가.... 아니."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젓는 정수호 팀장.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제 음악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세요."
"...."
그렇게 수준이 한심하다는 건가.
공 본부장은 심장이 쿵 하나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버지께 독설을 들었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내가 대중성에서 멀어진 건가.'
프로듀서로서 정수호 팀장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야말로, 대중의 마음을 읽는 데에는 천재 중의 천재니까.
그 증거로, 자신이 직접 루나를 키울 때는 실패했지만.
정수호가 팀장을 달고 나서 루나는 음방 1위를 찍었다.
"정 팀장, 그래도 다음 참가자는 볼 거지?"
"그럼요."
".... 다행이네."
이후로 연습실 분위기는 정수호 팀장이 완벽하게 주도했다.
연습생들은 그의 칭찬을 듣기 위해 몸부림쳤다.
허나, 정 팀장은 싸늘한 평가를 내릴 뿐이었다.
"음, 개잘하.... 아니, 느낌이 오지 않네요."
'느낌'은 없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칭찬이었다.
데뷔조로 뽑을만하다는 뜻.
그래도 '별로'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으니.
'.... 쉽지 않구만.'
그놈의 개인적인 기준은 언제 통과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실력자 라인은 전부 지나갔고, 실력이 부족한 연습생만 남았다.
"정 팀장, 이제 그만할까?"
"아뇨. 계속 볼게요."
"이제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참가자만 남았는데."
"모든 연습생에겐 똑같은 기회를 주셔야죠."
"그건 맞지."
작년에 데뷔조, 솔라와 루나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루나만 데뷔하고 솔라를 포기했다면.
지금의 솔라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었겠지.
"안녕하십니까! 최강욱이라고 합니다."
"이름 멋있네."
부족한 실력에 비해 너무 씩씩한 목소리.
역시, 최강욱의 실력은 하위권이었는데.
곧이어, 정수호 팀장은 그의 안무를 보더니 자세를 고쳐 잡았다.
'뭐야? 갑자기 반응을....'
공 본부장은 최강욱의 프로필을 재확인했다.
이제 서광 예술고등학교 올라가는 17살 소년.
동기들이 인성갑이라고 부른다는 특징 외에는.
'.... 별거 없는데.'
당장 지금 보여주는 실력도 연습생 평균에 못 미쳤다.
혹시 정 팀장은 그의 스타성을 발견했다는 의미일까.
".... 좋네요."
"아."
오늘 처음으로 정수호의 입에서 '극찬'이 나왔다.
"미세하긴 한데 이 친구는 느낌이 왔어요."
"오, 느낌이라면...."
"저는 좋은 느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키고 그의 입을 바라봤다.
"역 베팅각."
"???"
"역시, 베팅은 각을 잡고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죠."
"아하."
대충 베팅할 맛이 난다는 뜻인가 보네.
"싸커킥 데뷔는 언제쯤 생각하십니까?"
"글쎄. 반년 정도 잡고 있는데."
오늘 수호에게 무난한 평가를 받은 연습생은 네 명.
유일하게 칭찬을 들은 최강욱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데뷔곡 나오면 말씀해 주십쇼."
"오, 들어보려고?"
"그럼요. 사후 관리는 해야죠."
"하하. 고맙구만."
* * *
며칠 뒤, 마침내 다가온 소미의 전역일.
나는 지유와 함께 숙소로 가서 멤버들을 픽업했다.
"지유야, 가자."
"응."
소미를 보러 모든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리그」 무대를 준비하는 예지와 다이애나.
영화 촬영 때문에 고생하는 은서와 주희까지.
"오빠."
지유는 뭔가 떠오른 듯 내게 말을 걸었다.
"얼마 전에 싸커킥 데뷔조 후보들 봤다며."
"응. 봤어."
솔라 데뷔 전이랑은 비교도 안 될 수준이었다.
같은 똥촉도 간지러운 정도에 따라 다르니까.
"우리 솔라 데뷔 전이 훨씬 잘해."
"역시, 우리 매니저님!"
뒷자리에 앉은 예지는 기대감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 오늘 오후에 미국 가잖아요!"
"응. 여권이랑 다 챙겨왔어."
"가면 어디서 자요?"
"호텔이지."
"아하, 옆방이겠네."
"???"
다음 달 초에 있을 '리그컵' 무대까지 보름 정도.
지올 수석 디자이너님과의 미팅까지 잡았으니까.
"아마 바쁠 거야."
잠시 후,
나는 부대 앞에 도착해 스탭들에게 인사를 돌렸다.
황 피디님은 스탭들과 함께 장비를 세팅하고 있었다.
"피디님, 안녕하십니까."
"오, 팀장님!"
황 피디님, 일주일 사이에 얼굴이 폭삭 늙었네.
그럼 우리 소미는 군대에서 얼마나 고생했겠어.
"소미 씨, 이번에 정말 사랑스럽게 잘 찍혔습니다."
"오, 그래요?"
"네. 제가 진짜 기깔나게 편집해 볼게요! 하하."
"...."
그 말 들으니까 더 걱정되는데요.
곧이어, 군부대 안에서 베레모를 쓴 여인들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소미는 말년 병장처럼 휘적휘적 걸어왔다.
"소미야!"
이내, 솔라 멤버들을 발견하자마자 도도도 뛰어오는 막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언니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렸다.
"엄마아아아."
"괜찮아, 괜찮아."
소미 얼굴이 많이 탔네.
겨울인데도 이 정도냐.
스윽─
이내,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걸어오는 막내.
'뭐야, 눈빛 뭔데.'
소미는 장폭스처럼 날카롭게 눈을 치켜떴다.
이내, 내 앞에 다가오더니 씨익 미소를 지었다.
"팀장님, 라떼는 말인데요."
".... 응?"
잠시 후,
나는 멤버들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군대 얘기를 들어야만 했다.
".... 군대에서 축구한 썰 들려 드릴까요?"
"축구도 했냐."
소미는 쉬지 않고 군대 썰을 풀었다.
"소미야, 귀에서 피 날 것 같아."
"아, 피난다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제가 야간에 불침번 설 때...."
"...."
띠리리링─
그때, 감사하게도 누군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에서 걸려 온 국제 전화.
「리그」 관계자일 수도 있었다.
"소미야, 조용히 해 봐."
"조용히 하라니까 생각난 건데, 제가 시끄러운 동기 때문에 얼차려를...."
".... 여보세요."
혼자 떠드는 소미를 뒤로한 채 전화를 받았다.
-헬로우, 아임 콜링 투 큐앤지 레이블.
".... 예쓰?"
낯선 사람과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혹시 도하나 프로듀서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도하나?"
-네. 같이 협업하는 아티스트가 솔라라는 그룹 뿐이라고....
"음, 그건 맞습니다만."
-도하나 씨가 자꾸 쪽지를 보내도 무시해서요.
".... 그쪽은 누구시죠?"
계속 연락하던 담당자가 아닌, 처음 듣는 음성.
느낌상, 「리그」 쪽에서 연락한 게 아닌 듯했다.
-죄송하지만, 누군지 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
뭐냐 이 쉑, 장난하나.
도하나가 누군지 알고.
-미국 매니지먼트라고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혹시 도하나 씨 연락처를 알 수 있습니까?
"개인 정보라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그만 끊겠...."
-아니, 그러지 마시고.
순간, 뒤통수에서 간질간질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일단 미팅이라도 잡으시죠. 그럼 누군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미국에서요?"
-네. 본사는 LA에 있습니다.
"근데 제가 괜히 가서 총 맞으면 어떡해요?"
-.... 아.
똥촉 믿고 미팅 한번 잡아볼 만도 한데.
"제가 묵는 호텔로 와주실 수 있습니까?"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죠.
"네. 그럼."
뚝.
이내, 뒷자리에서 듣고 있던 다이애나가 내게 물었다.
"매니저님, 누구예요?"
".... 미국 지인."
"미국 지인한테 총 맞을 걱정을 해요?"
"그러게."
누군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똥촉이 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