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63화 (63/200)

[63] 뉴 페이즈(1)

정수호 팀장님은 왜 우리에게 초심을 찾으라고 하는가.

데뷔 1년 차 신인인데 초심을 찾으라니.

즉, 초심을 잃었다고 생각한다는 뜻일까.

"얘들아 모여봐."

김예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솔라의 멤버들을 불러모았다.

방에서 혼자 음원 작업을 하던 다이애나도.

영화 대본을 보며 연습하던 은서와 주희도.

솔라 멤버들은 리더의 부름을 듣고 거실에 모여들었다.

"앉아 번호 하나."

"하암."

".... 셋."

"넘버 포."

"한 명이 없네."

"소미 어디 갔냐."

짬순에 의거, 넷째는 숙소를 돌아다니며 막내를 찾았다.

"헤이! 소미, 커몬."

"읭?"

헤드셋을 끼고 한창 게임 중이던 막내.

소미는 영문도 모른 채 거실로 불려 왔다.

"뭐야, 언니들 왜 이렇게 심각해?"

".... 소미."

김 리다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역시, 너였구나."

"응?"

정수호 매니저님이 초심을 잃었다고 판단한 근거.

뭐든 30분 만에 끝내고 빈둥대는 막내 때문이었다.

재능과 별개로, '-꼰-'의 의지는 나태한 성격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터였다.

"소미야, 너 예능 잡혔어."

"오, 나만? 이번에도 단독 예능이야?"

"응. 너만."

"뭔데, 뭔데? 무슨 예능인데?"

"군대사나이."

"!!!!"

소미의 나태한 정신 상태를 바로 잡기 위해 잡은 스케줄이 분명했다.

"군대 가라고?"

"응."

중학교 졸업한 이후, 고등학교 입학식 전까지.

비는 시간 동안 절묘하게 군대 예능을 잡았다.

"언니, 나 16살이야. 내가 거길 어떻게 나가!"

"내년에는 17살이지."

".... 아."

솔라의 모든 스케줄은 오직 정수호 팀장님 혼자 전부 관리했다.

초심을 찾으라는 말과 함께 이 컨셉을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일종의 경고.

솔라에겐 엄 씨와 구 씨 매니저님이 있었으니.

언제든 루나에게 신경을 분산할 수 있다는 뜻.

"소미야, 솔라 데뷔곡 뮤비 촬영 때 기억나?"

"나만 봐 뮤비?"

"응. 그때 컨셉 기억하지?"

"당연하지."

야만전사의 굴욕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하다못해 양 씨도 마법사(물리)가 아니었나.

"우리 게임 광고 잡혔다."

"응?"

소미는 예지가 건넨 콘티를 슬쩍 보고 화색이 돌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리그 게임!

이 게임의 광고가 들어오다니.

"거 봐, 소미만 초심을 잃었네."

".... 야만전사 좋은데?"

"응? 진짜?"

"응."

리그 게임이라면 말이 달라지지.

"뭐야, 우리 막내 철 들었구나?"

"원래 철은 들었지."

"군대도 그럼."

".... 그건 싫어!"

예지는 마지막까지 엄마처럼 그녀를 닦달했다.

"소미, 입학시험 공부는 하고 있니? 반 배치 고사라며."

".... 대충 풀 건데."

"흐음."

신소미는 이전까지 게임하던 방에 다시 들어갔다.

남은 사람들은 막내를 걱정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언니, 소미 많이 삐쳤나 봐."

"그러게."

아무리 정수호 팀장님 지시라고 하지만.

군대와 야만전사 콤보는 너무 강력했다.

"근데 소미가 시험공부를 원래 열심히 했었나?"

"보통 공부 안 하고 상식으로만 풀었지."

"아하."

그럼 똑같네.

* * *

갑자기 예지가 좀 이상해졌다.

꼭 숙제 검사를 받는 아이처럼.

요즘 톡으로 멤버들의 일과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띠링, 띠링─

[팀장님, 연말 가요제 무대 연습 영상이에요]

[은서랑 주희는 액션 스쿨 졸업했어요]

[다이애나는 무슨 곡 작업하는지 저한테 안 알려줘요 ㅠㅠ]

[소미는 오늘 입학시험 ㅎㅎ]

엄지유하고 알아서 잘 연락하는데.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있지.

".... 왜 이럴까."

태양 여신 광고에 대한 무언의 시위 같은 건가.

사실, 솔라 스케줄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똥촉이 선택한 광고를 찍고, 방송국 스케줄을 잡을 뿐이었다.

"수호 오빠!"

이내, 지유는 사무실에 들어오며 내게 말을 걸었다.

"소미 시험장에 데려다 주고 왔어."

"그래, 잘했어."

"입학시험 잘 봐야 할 텐데."

"...."

솔직히, 입학시험을 공부할 시간도 없었다.

말이 입학시험이지, 그냥 반 배치 고사니까.

"그거 시험 좀 못 봐도 괜찮아."

"음, 그래, 가요제 연습이 더 중요하지."

"어차피 걔는 똑똑하니까."

수학이나 과학은 알아서 적당히 잘하겠지.

"그나저나, 다음 주에 소미 졸업식이네."

"응. 요즘 12월 조기 졸업식도 많나 봐."

"그러게?"

12월 중에 빠른 졸업식을 진행하는 신상예중.

공백 없이 긴 방학과 자기계발을 가질 수 있었다.

"멤버들이 졸업식 때 깜짝 방문하는 거 알지?"

"알지. 연습 스케줄도 정리했어."

"잘했네."

"근데, 오빠."

지유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대화를 이어갔다.

"게임 광고 촬영 일정을 너무 급하게 잡은 거 아냐?"

"그건 어쩔 수 없어."

"12월은 이제 보름도 안 남았는데?"

"응. 그 안에 끝내야지."

당장 연말에 가요제도 있고, 내년 1월에 은서랑 주희는 영화 크랭크인.

우리의 군필 여고생도 군대사나이 입소해야 하니까 시간은 금이었다.

"우리 언니들, 요즘 너무 바빠서 팬 사인회도 못 잡겠어."

"1월에 한번 잡자. 너는 오늘 실장님이랑 같이 MBS 군대사나이 미팅 갔다 와."

"응. 알겠어."

"오늘 나는 게임사 광고 미팅에...."

띠리리링─

그때, 스마트폰에 대표님 전화가 걸려왔다.

[서연정 대표님]

직접 통화는 잘 안 하시는데.

"대표님, 정수호 팀장입니다."

-잠깐 올라오실 수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유야, 실장님께서 군대사나이 계약하는 거 잘 보고 배워."

"응. 오빠."

박 실장님은 근육질에 민머리라서 그런가.

계약 조건을 진짜 엄청 유리하게 잡으시거든.

잠시 후, 대표실 문에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수호 팀장, 왔어요?"

"네. 대표님."

공 대표님 사무실과 비교하면 훨씬 더 예술적인 느낌.

이전에 못 보던 앨범이나 음악 장비가 눈에 띄었다.

애니메이션 포스터는 앨범 표지랑 관련이 있는 건가.

"정수호 팀장."

"네?"

서 대표님은 이내 슬쩍 미소를 짓더니 대화를 이어갔다.

"게임 광고 잡으셨다면서요."

"아, 네. 대표님."

"흐음."

화장품이나, 브랜드도 아니고 게임 회사 광고.

솔직히, 마음에 안 드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제 세계관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실 줄은 몰랐네요."

"네?"

"나의 광야로 들어온 태양 여신 솔라!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아."

본인이 만든 세계관에 심취해 황홀한 표정을 짓는 여왕님.

이분은 찐이셨구나.

애니메이션 덕후였어.

"사실, SAS 때는 컨셉을 포기한 게 너무 마음이 아팠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하지만!"

여왕님은 급발진하며 눈을 부릅떴다.

"잠깐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죠! 저는 처음부터 정 팀장을 믿었다구요!"

"어, 음...."

"앞으로도 쭉 이 컨셉으로 가는 거죠?"

".... 예."

저 광기로 가득 찬 눈빛 앞에서 어떻게 아니라고 말해.

"정 팀장만 믿을게요!"

"...."

내년에 정규 앨범 작업도 할 텐데.

조금은 험난한 고난 길이 예상된다.

* * *

얼마 후, 신상 예술중학교 졸업식 날.

소미는 언니들을 찾으며 숙소를 돌아다녔다.

".... 다들 어디 갔지?"

언니들은 오늘 졸업식인 것도 모르나 본데.

리그 게임 광고는 좋다니까.

아직도 삐쳤다고 생각하나 봐.

터벅, 터벅─

소미는 혼자 교복을 입고 숙소를 벗어났다.

숙소 앞에는 지유가 밴을 세워놓고 기다렸다.

"소하! 소미 하이라는 뜻."

"언니!"

엄 매니저를 보니 당장 눈앞에 펼쳐진 스케줄이 떠올랐다.

내일은 게임 회사 광고 촬영.

다음 달에는 군대사나이 예능.

"스케줄 언니가 잡았어?"

"아니, 팀장님."

"...."

주변 친구들은 전부 여신이라고 불러주는데.

딱 하나 흑역사를 꼽으라면 데뷔곡 뮤비였다.

".... 야만."

"소미야, 벌써 의상도 준비 끝났대."

"응. 알겠어."

"좀만 고생하자."

솔직히 리그 게임 광고는 할 수 있지만.

군대사나이는 정말로 너무 가기 싫었다.

잠시 후, 신상 예술중학교 졸업식 현장.

당연히 예상대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오늘도 변호사 부부는 당연히 불참이었다.

너무 바빠서 미안하다고 톡을 보내셨지만.

찰칵─

소미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 앞에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소미 씨, 졸업하시니까 어떠신가요?"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지유의 보호를 받고 강당으로 향했는데.

강당 뒤쪽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저쪽에.... 언니들!?"

먼저 도착한 멤버들은 이미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도 안 해주고 갑자기 이렇게 서프라이즈를 할 줄은.

울컥─

순간, 가족을 본 것처럼 눈물이 흘러나왔다.

"소미야, 졸업 축하해!"

"서광예고에서도 꽃길만 걷자."

"지니어스 야만!"

"...."

이어서, 케이크과 꽃다발을 건네는 정 팀장님.

그의 모습에 감동을 느껴 눈물을 펑펑 흘렸다.

"눈물 닦고, 졸업 축하해."

"힝, 감사해요."

군대 때문에 삐쳐서 말도 안 걸었는데.

마음속의 응어리가 눈처럼 녹아내렸다.

"소미야, 입학시험 잘 봤다며."

"이잉, 그냥 봤어요."

"기특하네."

팀장님의 말을 듣고, 살짝 양심에 찔렸다.

수학이나 과학은 다 맞았겠지만.

인문 쪽은 책도 안 보고 풀었다.

"다음에는 더 잘 볼게요."

"응. 지금처럼만 해."

소미는 시선을 돌려 졸업실장을 바라봤는데.

순간, 강당 한가운데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한지아!"

"어, 으응?"

소미는 함께 따라온 기자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그녀에게 걸어갔다.

"우리 같은 회사잖아."

"아, 알고 있었....?"

"당연하지. 같은 회산데."

원래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같은 회사, 한솥밥 먹는 식구 아닌가.

"너도 서광예고라며. 같이 다니면 되겠다."

"정말루?"

"응. 나도 친구 없어."

음악 시간에 자주 눈길이 갔던 친구였다.

특히, 노래할 때 '감정'이 느껴지는 아이.

"아무튼, 연락해!"

".... 번호가 없."

소미는 지아의 말을 듣지 못하고 다시 멤버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한편, 정수호는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서광예고 입학처장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기, 소미 매니저분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입학시험, 변별력 조절에 실패한 시험이었어요."

"무슨 뜻인지....?"

불지옥 난이도의 수학, 과학 시험에서 100점.

2등과 점수 차이를 고려하면 상식을 벗어났다.

"소미 학생에게 장학금도 주고, 학교 홍보 모델로 쓸 수 있을지...."

"연예인 장학금이 아니고 성적 장학금이죠?"

"그럼요."

정수호는 뒤통수를 긁으며 생각했다.

'홍보 모델이면....'

안 그래도 개인 스케줄이 바빠서.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한데.

'.... 해야겠네.'

* * *

유명한 외국계 게임사 광고 촬영장.

나는 분장하는 멤버들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지유야, 입학처장이 했던 말 기사 떴어?"

"응. 벌써 떴네."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는 기사로 쓰기 좋은 소재겠지.

소미의 천재 이미지는 독보적이었다.

국내 걸그룹 멤버 중에서도 희소했다.

"오빠, 홍보모델은 하는 거야?"

"어. 소미만 괜찮으면."

그때, 솔라 멤버들이 분장을 마치고 촬영장에 들어섰다.

"매니저님!!"

순간,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예지.

코스프레를 하니 정말 여신이 따로 없었다.

"매니저님, 저 어때요?"

"응. 예지야. 예뻐."

"진짜요?"

사실, 데뷔 전부터 외모는 거슬렸던 적이 없었다.

도저히 흠을 잡으려야 잡을 수가 없는 외모였으니.

"오빠, 예지 언니는 완전 태양 여신이야."

"음.... 예쁘네."

"그냥 예쁜 게 아니라."

"알았어. 나도 알아."

개인적으로 혼혈인 다이애나가 가장 잘 어울렸다.

"소미 씨, 먼저 개인 촬영 갈게요!"

"예에."

얼마 전까지는 삐쳐서 말도 잘 안 하던 지니어스 막내.

소미는 야만전사 코스프레를 한 채 카메라 앞에 섰다.

'.... 좀 미안하네.'

해외에서도 워낙 유명한 게임이라.

전 세계적으로 얼굴이 팔릴 텐데.

특히, 영미권 국가에선 솔라보다 야만전사로 기억할 터였다.

"헬로우."

그때, 옆에서 명품 양복을 입고 내게 다가오는 인물.

얼마 전에 미팅도 했었던 오늘 광고의 총책임자였다.

"오늘 멤버들 모습이 정말 잘 어울리는군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

"네?"

상대는 내게 서류 한 장을 건넸다.

"리그에서 AI 걸그룹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그런 게 있어요?"

"아뇨. 새로운 시도죠. 하하."

"...."

너무 새로운 시도 아닌가.

"솔라 멤버들 중에 보컬, 래퍼 한 명씩 스케줄 내주시죠."

"보컬이랑 래퍼면.... 예지랑 다이애나?"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AI 걸그룹이라는 거죠?"

"네. 게임 캐릭터로 만든 걸그룹이죠."

"...."

뒤통수에서 슬슬 간지러운 감각이 밀려들었다.

"혹시 제안이 고민된다면 천천히 생각해 주십시오."

"아뇨. 게임 산업도 4차 산업의 산물 아니겠습니까."

"예? 그럼...."

"조건부터 들어볼게요."

자세한 건 모르겠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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