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태양 여신(8)
큐앤지 레이블 사옥.
데뷔하기 전, 연습생들을 위한 트레이닝 룸.
새로 뽑힌 연습생들은 함께 TV를 시청했다.
"와, 선배님들. 부럽다."
"나도 부럽다."
어색한 한국말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다이애나.
원작자가 편곡자의 상을 대신 받는 아름다운 모습.
-어.... 도하나 씨 축하드리고요. 음, 그래요.
솔라는 얼마나 대단한 그룹인가.
큐앤지가 낳은 최고의 걸그룹이었다.
"너희 그거 알아? 우리 면접관 중에 정수호 팀장님."
"아, 댄싱머신?"
"응. 그분이 솔라를 혼자서 다 키우셨대."
"나도 들었어."
한지아는 동기들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이런 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 아닌가.
"선곡뿐만이 아니라 탑아이돌, 재벌가 시집가기, 방탈출 메이즈...."
솔라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작품들.
굵직한 작품들을 혼자서 전부 따왔다니.
"팀장도 아니고 로드 시절부터 날아다니셨다고 하더라."
"...."
지올의 협찬을 받고, 마미 시상식에서 상을 휩쓰는 솔라.
한때, 소미는 그저 자신과 같은 평범한 중학생이었는데.
'.... 부럽다.'
이제는 올려다볼 수도 없는 까마득한 높이에 올랐다.
아마 함께 고등학교에 가면 아는 척도 안 하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2부 마지막 수상 시간.
TV에서는 올해의 대상 후보들을 하나씩 보여주고 있었다.
솔라는 '올해의 노래상' 후보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와, 솔라 선배님들!"
"너무 멋있어."
드르륵─
그때, 보컬 트레이너 민신애가 들어오며 소리쳤다.
"너희 지금 TV 보는 거니!?"
"아, 그, 그게...."
"라떼는 연습하느라 밤낮이 없었어.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죄쏭합니다!"
첫 수업이지만, 민 선생의 악명은 자자했다.
연습생 사이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통했다.
"너희 큐앤지에 놀러 왔니?"
"아, 아닙니다!"
민신애는 팔짱을 낀 채로 꼰대짓을 시전했다.
"예지는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하는지 알아?"
"솔라 예지 선배님이요?"
"그래. 데뷔하고 나서 창법을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걸 하는 친구라고."
"아...."
연습생에게 연예인 이야기는 가장 큰 관심사였다.
언젠가 그들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닌가.
"니들도 열심히 연습해야 데뷔하지!"
"네에!"
곧이어, 민신애는 한 명씩 붙잡고 레슨을 시작했다.
첫 번째 수업이라 꼼꼼하게 장단점을 기록했는데.
".... 한지아?"
"예?"
민신애는 어이가 없는 눈으로 지아를 바라봤다.
"보컬 수업은 아예 처음 받아보니....?"
"네에!"
"신상 예중 나왔다며."
"네. 맞아여!"
".... 말투 뭔데."
보통 예고보다 예중이 훨씬 들어가기 어렵다.
진짜 영재들만 모이는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저는 작곡 특기로 입학했어여!"
"흐음, 그래?"
무려 정수호 팀장이 직접 선택한 아이라고 들었다.
'.... 스타성인가.'
기본기가 전혀 없는 것치고 음색은 좋았지만.
별처럼 빛나는 외모에 비해 평범한 노래 실력.
정말로 원석일 수도 있으니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겠지.
"지아야, 발성부터 다시 시작하자."
"네? 어떻게여?"
".... 아까부터 왜 자꾸 그렇게 말해."
"헤헤."
민신애는 피식 웃으며 손을 자신의 볼에 가져갔다.
"자 스마일하고, 뺨을 손바닥으로 잡고 올려."
"이러케여?"
"그 상태로 노래하면 머리에서 울림이 발생해. 그게 공명이야."
"오.... 공명."
기초부터 가르치는 수강생 맞춤 수업.
오히려 백지상태라 채워넣기는 편했다.
"그럼 재갈을 물고 연습하면유?"
"응?"
"재갈공명! 헤헤."
"...."
백지가 아니라 백치였냐.
무거운 수업 분위기를 가볍게 만드는 매력.
귀엽게 혀를 내미는 모습에 미소가 나왔다.
순간, 옆방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우와아아아아아─!!!"
남자 연습생들이 수업을 받는 곳 같은데.
다른 연습실에서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선생님."
"응?"
".... 대상 탔나 봐요."
"아."
민신애는 TV 리모컨으로 급하게 엔넷 채널을 틀었다.
마미 시상식 최고의 상 중 하나.
신인이 탈 수도 있기는 했지만.
-올해의 노래상, 솔라의 Sunrise And Sunset! 축하드립니다!!
솔라의 곡은 올해 K팝 시장의 정점에 올랐다.
데뷔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부터 솔라에 대한 기사로 포탈 메인이 도배됐다.
[엔넷 마미 시상식 최대 이변! 올해의 노래상의 영광은 솔라에게 돌아가....]
[지올의 신임 수석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시스루 드레스의 가격은....]
엔넷 마미 시상식의 여파는 상당했다.
지금도 축하 메시지가 밀려들었으니.
".... 똥촉으로 여기까지 왔네."
최근에 간지러운 뒤통수가 '신호'를 자주 보냈다.
내 마음에 쏙 들면 망하고,
내 취향이 아니면 성공하고.
이젠 시장을 분석하고, 안목을 키우는 게 오히려 손해였다.
그러다 역배가 정배가 되면 어떡해.
앞으로 그냥 쭉 이렇게 살아야겠다.
띠리리링─
이내, 박 실장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실장님."
-오늘 대표님께서 찾으신다.
"여왕님이요?"
-아니, 공유환 대표님.
"...."
큐앤지 레이블의 공동대표.
공세원 전 실장님의 아버지.
'.... 성격이 엄청 인자하시다고 하던데.'
중소 엔터라 직접 솔라를 키우고 싶으셨을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세세한 일정이나 육성에 전혀 터치하지 않으셨다.
-아마 격려 차원에서 부르시는 걸 거야.
"네, 바로 출근하겠습니다."
-그래.
그만큼 마미 시상식 결과가 예상 밖이라는 거겠지.
성과급이나 좀 더 챙겨주면 좋겠다.
아파트 대출 이자도 갚아야 하니까.
잠시 후,
나는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박수 세례를 받았다.
우리 팀원들은 물론, 옆 부서 사람들도 방문했다.
"정수호 팀장님, 축하드려요!"
"뭔 저한테 축하를...."
"SAS는 솔라!"
그거 칭찬 맞냐.
"수호야."
이내, 박 실장님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대충 짐을 풀고, 실장님과 함께 대표실로 향했다.
똑, 똑─
노크를 두드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오, 정수호 팀장 왔는가?"
"네. 대표님."
"차라도 한 잔..."
"아뇨, 마시고 왔습니다."
"흐음."
이렇게 공유환 대표님과 직접 독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자네 덕분에 회사가 얼마나 크고 있는지 몰라."
"제 덕분은 아닙니다."
솔라랑 루나 멤버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이지.
이제 1본부의 위상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으니.
"아직도 로드처럼 직접 뛰어다닌다면서?"
"네. 대표님."
"재능 낭비 아닌가? 스케줄 관리도 힘들 텐데."
"아뇨. 지금도 좋습니다."
똥촉이 오는 스케줄은 대부분 현장이었다.
Tvm 피디랑 지올 디자이너를 만난 것도.
"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보게."
"...."
필요한 거 많지.
당장 밴부터 구식이라 바꾸고 싶은데.
"역시, 듣던 대로 겸손하구만."
아니, 뭘 부탁드릴지 생각 중인데요.
공 대표님, 성격이 엄청 급하시구나.
"그럼 솔라 콘서트라도 준비해 주면 되겠나?"
"음, 그러기엔 레퍼토리가 아직 부족해서...."
"솔라 정규 앨범까지 내 달라는 거구만."
"...."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요.
"그래. 큰 맘 먹고 정규 앨범을 내주겠네."
"...."
너무 좋은 보상 아닌가.
아이솔레이션도 정규 1집은 못 냈잖아.
"역시, 그 정도로는 부족한 모양이네."
"???"
충분하지 않나.
정규 앨범 내려면 돈이 얼만데.
"내년에는 솔라 단독 콘서트라도 꼭 잡아주겠네."
".... 감사합니다."
"이제 만족하는 모양이야."
원래도 만족했어요.
"저는 지금처럼 2본부 아티스트를 믿고 맡겨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야 물론이지."
"감사합니다."
"한 번씩 들러서 커피나 한잔하자고."
"네. 대표님."
커피 마시러 여기 오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대표실을 벗어났다.
"후우, 부담스러워."
작년 이맘때쯤 큐앤지 레이블로 발령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이런 상황을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고작 1년 만에....'
정말로 많은 게 바뀌었다.
어쩌면, 내년 말쯤 되면.
'드림 에이전시에서 나를 부를지도 모르겠네.'
똥촉만 영원하다면 쌉가능이지.
* * *
프리 프로덕션.
영화 제작에 필요한 사전 준비를 하는 단계.
투자 확보와 캐스팅, 촬영지 헌팅을 포함했다.
"조감독, 스탭들 상태는 어떤가?"
"다들 사기가 장난 아닙니다."
"그렇겠지."
여배우, 장은서 원톱의 액션 영화.
아이돌 멤버의 연기력을 걱정하는 스탭들도 더러 있었지만.
솔라의 승승장구는 영화의 흥행에 분명한 청신호를 보냈다.
"감독님, 내년 초에 크랭크인 할 수 있을까요?"
"배우님들한테 달렸지."
"...."
주연 배우 장은서와 스턴트우먼 양주희.
두 사람이 준비를 마치는 대로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띠리리링─
그때, 정수호 팀장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팀장님."
-감독님, 잘 지내셨죠?
"그럼요. 하하."
솔라의 성공은 영화의 흥행에 큰 거름이 될 터다.
국내 아이돌 판에서 솔라의 화제성은 최고였으니.
-연말 가요제까지만 끝나면....
김춘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은서랑 주희, 바로 촬영 스케줄 잡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오오, 알겠습니다!"
-편하실 때 액션 스쿨 방문하셔도 됩니다.
"오늘 가봐도 될까요?"
-네. 지금도 연습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액션 연기 수업을 거의 마친 모양이다.
정 팀장이 이렇게 자신만만한 걸 보면.
"조감독, 나갈 준비해."
"알겠습니다."
고작 몇 달 만에 스턴트 액션을 마스터할 수 있을까.
그것도, 무대 연습에 스케줄을 동시에 소화했으면서.
'정 팀장이 허투루 말할 사람은 아니지.'
곧장 운전대를 잡고 액션 스쿨로 향했는데.
체육관에는 이전에 없었던 시설이 추가됐다.
높은 뜀틀, 인공 벽, 다이빙대.
타다다닥─
누군가 인공 벽을 맨손으로 올라갔다.
"와, 여기 스탭들 수준이 높네요."
"그러게."
안전 장비도 없이 파쿠르 액션을 시도하는 여성.
그녀는 예고 없이 다이빙대에서 매트로 몸을 던졌다.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떨어질 때 한 치의 오차만 있어도 위험했을 상황.
그런데, 다른 무술 스탭들은 평온한 상태로 바라봤다.
'잠깐만....!'
김춘수 감독은 그 모습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거 우리 영화 시나리오 장면이잖아!"
"아, 대박."
"오아....!"
그야말로, 자신이 생각하는 장면을 그대로 재연했다.
아마 무술 스탭이 장은서와 양주희에게 시연을....
"저분, 무술 스탭이 아닌데요?"
".... 양주희였어!?"
가장 힘든 장면으로 예상한 씬을 가볍게 수행했다.
심지어, 안전 장비도 없이 맨몸 파쿠르 액션으로.
'진짜 괴물이구나.'
저분이 엔넷 시상식장에서 고양이춤 추던 사람이 맞나.
한편, 장은서의 실력도 눈에 띄게 발전했다.
양주희가 계속해서 채찍질하며 가르쳤으니.
"근데 왜 양주희가 장은서를 가르치냐."
"그니까요."
무술 감독을 제외하면, 아무도 주희의 피지컬을 감당하지 못했다.
".... 양주희 씨는 왜 걸그룹을 할까요?"
"음, 태릉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액션은 양주희만 믿고 가자는 정수호 팀장.
그 말뜻의 진짜 의미를 이제서야 깨달았다.
"액션 준비를 마친 게 아니었어."
"네. 이미 촬영 장면까지 전부 준비한 상태였네요."
"액션 스쿨은 졸업해도 되겠군."
내일이라도 당장 촬영에 들어가도 될 것 같다.
촬영 준비를 마쳤다는 게 이런 뜻이었다니.
이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할 줄을 몰랐는데.
"오히려 스탭들 준비가 안 끝났는데요?"
"...."
* * *
12월도 어느새 중반을 훌쩍 넘어섰다.
연말 삼사 가요제 시즌을 앞두고.
스케줄이 미친 듯이 밀려들었다.
솔라와 루나의 일정 관리만 해도 하루종일 걸릴 지경이다.
"지유야, 하나씩 정리해봐."
"일단 예능은 군대사나이, 전챙시, 베이비시터."
"오케이."
일단, 뒤통수에서 조금이라도 느낌이 오는 건 다 잡았다.
「방탈출 메이즈」 덕분인가.
소미에게 예능 스케줄이 많이 들어왔다.
"소미, 내년 초쯤에 군대사나이 나갈 수 있을까?"
"이제 고등학교 올라가는데?"
"군필 여고생은 귀한데요."
".... 본인은 싫어할 것 같지만."
"그래도 가야지."
게다가, 내가 출연해야 하는 스케줄도 있었는데.
"전지적 챙김 시점, 진짜 나가려고?"
"1월에 스케줄 잡아봐."
"와아, 오빠도 방송 욕심이 있었네?"
".... 그런 거 아냐."
솔직히, 졸라 하기 싫지만.
똥촉이 자꾸 신호를 보냈다.
"일단, 장기 출연은 말고 단발성으로 잡자."
"오케이."
"아! 은서랑 주희는 스케줄 전부 다 뺄 거야."
"응?"
내년 상반기에는 영화 촬영만 잡아야지.
거기에 내 소중한 대출금도 걸려 있다고.
"주희 언니도? 단체 스케줄도 빼고 영화 촬영만?"
"당연하지."
"오빠, 너무 스윗하자너."
"응?"
"영화 촬영 때문에 배려해 주려고....!"
"???"
뭔 소리야.
내 돈이 걸려있다니까.
"주희 언니가 알면 감동할 거야."
"...."
걔는 감동 같은 거 할 줄 몰라.
아직도 주희 성격을 모르겠니.
"오빠, 광고도 엄청 들어온 거 알지?"
"응. 광고 쪽도 정리해볼까."
"이게 다 광고야."
"...."
광고는 이미지 소모가 가장 큰 업계 중 하나였다.
많아야 두 개, 아니면 하나 정도만 잡을 생각이다.
"뭐가 이렇게 많아?"
"솔라잖아."
셀 수 없이 많은 광고 제안서와 콘티들.
한 번씩만 훑어봐도 한세월일 것 같다.
"메이저 광고는 이쪽이야."
"그래?"
식품이나 화장품, 명품 브랜드 등.
이미지 관리에 좋은 광고들이었다.
어떤 광고가 좋을지 하나씩 살펴보며 시간을 보내던 중.
'게임 광고....?'
뒤통수에 스멀스멀 간지러운 감각이 찾아왔다.
유명한 외국계 게임 회사.
병맛 광고라는 말이 있잖아.
"광고 하나 잡아야겠네."
"오, 역시 화장품 광고지?"
"아니. 태양 여신 솔라."
"????"
「나만 봐」 뮤비 때 컨셉과 비슷했다.
게임 캐릭터 같았던 느낌을 그대로 이어갔다.
'역배각을 놓칠 순 없지.'
태양 사제, 마법사, 궁수, 기사, 야만전사.
이 컨셉을 다시 찾을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오빠, 솔라 이제는 탑스타야."
"나도 알아."
소미는 이제 중학교도 졸업하잖아.
고딩이면 사춘기 나이는 지났겠지.
"우리 초심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