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61화 (61/200)

[61] 태양 여신(7)

국내 삼대 음반 유통사 CW ENM이 주관하는 시상식.

12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엔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삼사 가요제를 포함, 한국의 가장 큰 음악 축제였다.

오늘 하루를 위해 얼마나 많은 K팝 아티스트들이 칼을 갈았을까.

"민식아."

「마미」 총괄 프로듀싱을 맡은 구현석 피디는 담배를 피우며 FD와 대화를 나눴다.

"아이솔레이션은 무빙 라이트보다는 파 위주로 가자고."

"에이, 형님. 당연히 세팅했죠. 장사 하루 이틀 하나."

"그리고 피날레는...."

일단, 1부는 데뷔한 지 3년 이내의 아이돌 그룹들이 무대를 꾸몄다.

국내외 팬들은 라이브로 방송을 시청했다.

그중, 가장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은 무대.

"오늘 1부 피날레, 솔라랑 루나 합동 무대가 핵심이야. 알지?"

"오케이."

가장 최근에 1위를 찍은 두 아이돌 그룹.

올해 큐앤지 레이블 최대 아웃풋이었다.

"형은 오늘 상을 누가 탈 것 같아요?"

"글쎄. 여자 신인상은 거의 확정이지."

"아, 솔라."

최민식 FD, 무대 디렉터는 담뱃재를 털며 대화를 이어갔다.

"신인상이 끝일걸요. 원래 엔넷은 대기업을 좋아해요."

"뭐, 그럴 수도 있고."

"사실은 제가 들은 게 있거든요."

"뭔데?"

"큐앤지에서 프렌즈 엔터 인사팀장을 스카웃했다네요."

"...."

걔가 내 친동생이야.

스카웃 아니고 신입.

"그 친구 영입하고 나서 솔라가 스케줄이 엄청 많아졌거든요."

"...."

동생이 바쁘긴 하더라.

요즘 잠도 잘 못 자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뭐긴요, 큐앤지 레이블에서 돈독이 오른 거죠."

"별말을 다 하네."

"진짜에요."

사실, 요즘 솔라 스케줄이 많아지긴 했다.

그냥 TV만 틀면 수도꼭지처럼 나오니까.

"그냥 SAS로 떡상해서 스케줄도 많아진 거야."

"당연히 여자 신인상은 솔라가 타겠지만, 나머진 또 몰라요."

"아주 악담을 해라."

"어후, 저도 걱정돼서 그래요."

"야 인마, 연예인 걱정은 하는 거 아니야."

"그건 인정."

구 피디는 FD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만 가자. 담배 피울 맛 안 난다."

"넵. 이따 봬요."

사실, 데뷔하고 나서 연습량을 줄이는 경우는 많았다.

뜨고 나면 연습실 근처도 안 가는 아이돌도 흔했으니.

'.... 갑자기 불안한데.'

현식이랑 종종 안부를 묻긴 했지만.

솔라 스케줄을 물어보지는 않으니까.

"전화라도 한번...."

아니, 됐다.

지금쯤 헤메코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무대 의상만 좀 잘 준비했으면 좋겠다.

띠리리링─

이내, 조연출이 스마트폰에 전화를 걸었다.

-피디님, 아이솔레이션 도착해서 포토존에 섰어요.

"어, 내려갈게."

-근데 의상을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응? 왜 그래."

-어, 음, 그게....

자신과 함께 수많은 시상식 연출 경험이 있는 베테랑.

조연출이 이런 말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물을 입고 왔는데요?

"...."

거기 브랜드 협찬이라고 하지 않았냐.

* * *

드레스 내부의 스포티한 패션이 훤히 드러나는 의상.

시스루라고 하기엔 너무 다 비치고.

망사라고 하기에는 야하지가 않고.

그래서 기자들은 그녀들의 패션을 '그물'이라고 불렀다.

"나수린 씨, 그물 패션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여기 좀 봐주세요!"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코디했나요?"

"협찬입니까?"

"코디가 안티인가요?"

나는 포토존에서 살짝 떨어져 솔라 멤버들을 기다렸다.

'어휴, 쟤들 울겠네.'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의 세계.

정말 많은 명품 브랜드가 이런 식이었다.

"오빠, 우리 언니들은 괜찮을까?"

"반응 보면 알겠지."

패션은 자신감이라고들 하잖아.

그냥 당당하게 들어와야 할 텐데.

"오, 저기 언니들 온다!"

"와아아아아─!"

순간, 뒤쪽에서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이내, 아이솔레이션 이어 레드카펫을 밟고 다가오는 그룹.

다섯 명의 솔라 멤버들은 우아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왔다.

"와아, 사람이 명품이네."

"아이솔레이션이랑 뭔가 비슷한 시스루...."

"비슷한데 다른 느낌이야."

"오케이, 타이틀 나왔고."

기자들의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그물과 패션은 한끝 차이였으니.

이내, 예지는 포토존에 들어서 나수린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랜만이네?"

"넵!"

「탑아이돌」 때부터 묘한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팀.

이내, 한 기자는 두 걸그룹을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잠시만요! 사진 좀 찍을게요!"

"...."

기자의 요청을 듣고, 나수린은 자세를 잡으며 패션을 뽐냈는데.

"아, 솔라 좀 찍을게요! 비켜봐요!"

"아니, 쒸."

"쫌! 언제까지 서 있어요! 솔라 좀 찍자고!"

"나도 찍어줘!"

"그물, 안 비켜?"

아이솔레이션의 멤버들은 씩씩대는 나수린을 챙겨 포토존을 벗어났다.

나수린 저 친구도 한 성깔 하네.

저번에 주희한테 맞고 울더니만.

"오빠, 이런 걸 패싱이라고 하나."

"....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누구?"

솔라랑 맞춰서 들어온다고 했거든.

"저기 온다."

이내, 레드카펫을 밟고 사뿐사뿐 다가오는 사쿠라 상.

지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솔라를 위해 직접 방한했다.

"헬로우."

이내, 솔라의 옆에 다가가 가볍게 손을 흔드는 사쿠라.

예지는 가벼운 인터뷰 도중에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지올 사쿠라 수석 디자이너님께서 협찬을 주셨습니다."

"그럼 이 분이...."

기자들은 흔치 않은 풍경에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와아....! 어쩐지 멋있더라고."

"그럼 오직 다섯 벌 드레스를 맞춤 제작한 건가요?"

"이게 패션이지!"

원래 유명해지면 뭐를 싸도 박수를 받는다고 하더라.

지올 수석 디자이너 작품쯤 되면 뭘 하던 예술이었다.

'.... 이걸 살리네.'

일단, 의상보다 더 중요한 건 오늘 보여줄 무대.

아이솔레이션이 얼마나 준비했을지 모르겠지만.

"오빠, 우리보다 열심히 준비한 그룹은 없겠지?"

"당연하지."

내 취향과는 별개로, 연습은 실전처럼 빡시게 했다.

매일 밤에 잠을 줄여가면서 연습했지.

그것도 바쁜 일정을 전부 소화하면서.

"지유야, 시상식 끝나면 솔라 스케줄 정리하자."

"그거 알아? 엑스레이는 활동 기간 중에 팬싸만 50번씩 한다던데."

"50번은 솔직히 너무 오바 아니냐."

"그렇지. 고작 석 달인데."

"...."

이러니, 보이그룹이 대중성을 잃어버리지.

팬 사인회는 극단적인 고인물 팬 문화니까.

"우리도 1월쯤에는 팬싸 한번 잡자."

"알겠어."

재하가 팬싸 좀 하라고 애원하더라.

"일단, 스케줄은 나중에 생각하고...."

"응, 이제 이동한다."

"우리도 가자."

마미 시상식장, 컨벤션 센터 내부.

나는 멤버들과 함께 솔라 대기실에 들어갔다.

무대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의상을 점검했다.

"팀장님, 오늘 의상 반응 어땠어요?"

"아주 좋았어."

"정말요?"

"응."

예지는 굳이 내게 다가와 한 번 더 질문을 건넸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반응을 살필 수 없었겠지.

"오늘 너희가 베스트 드레서일 거야. 내일 기사도 뜰걸?"

"와아, 다행이다."

"나도 그래."

이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미소를 지는 멤버들.

나는 함께 따라온 코디님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유미 씨, 루나 무대 의상 점검 좀 부탁해요."

"네. 팀장님."

똑, 똑─

그때, 스탭이 대기실 문에 노크를 두드렸다.

오늘 편성한 무대 순서 큐시트를 건넸는데.

".... 뭐냐."

음방 1위의 솔라와 루나의 합동 무대.

어느 정도 뒷 순서를 예상하긴 했지만.

"왜요, 왜요?"

"뭐에요?"

호랑이 없는 굴에선 여우가 1등이라고 한다지.

월드스타가 없는 공연장에선 솔라가 탑이었다.

심지어, 공룡 팬덤을 보유한 보이그룹까지 전부 제치고.

".... 우리가 1부 피날레 무대야."

순간, 대기실에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 * *

화려한 무대의 연속.

바쁜 일정을 쪼개가며 연습한 성과를 보여주는 무대.

몇몇 월클을 위시한 K팝 아이돌은 급속도로 팽창했다.

'와우, 수준 진짜 높네.'

지올의 새로운 수석 디자이너 사쿠라.

그녀는 우아한 자세로 다리를 꼬았다.

함께 참석한 조수 겸 통역사는 주변의 인사를 대신 전달했다.

"흠, DK 뮤직 선임 프로듀서시라고요."

"네. 여기 명함이라도."

"아, 예."

이내, 통역사는 대신 명함을 받고 보관했다.

상대해 주는 시간은 딱 10초.

그 이상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아무도 20대 초반의 소녀에게 불만을 품지 않았다.

전 세계 패션업계에는 나이가 없었다.

오직 센스와 감각을 요구할 뿐이었다.

"저기, 사쿠라 상."

"네."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사쿠라는 조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솔라를 편애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흐음, 그게 궁금해요?"

"네. 한국에서는 인기가 있지만...."

사실, 솔라를 편애하는 이유 따윈 없었다.

선택은 자신이 아니라 저쪽이 했으니까.

"정수호 팀장님이요."

"토무쿠미에서 만나셨다는....?"

"네. 그때 저는 그냥 코디 보조였거든요."

"오, 인연이군요."

"네. 정 팀장님의 안목을 믿는 거죠."

그분은 패션을 좀 아는 분이거든.

"그때까지 제 포트폴리오를 알아본 사람은 한 명뿐이었어요."

"피앙코 경."

천재들만 모인다는 지올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그분 외에는 처음으로 자신의 패션을 인정했다.

"시작하네요. 솔라랑 루나 합동 무대."

"와아, 조명이...."

사쿠라는 마미 1부 피날레 무대를 지긋이 감상했다.

'역시, 대단하네.'

예지와 류시아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펼쳐진 두 걸그룹.

솔라와 루나는 처음부터 같은 그룹인 듯 자연스러웠다.

부드럽게 동선을 누비는 9명의 아이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후방 스크린은 웅장함을 자아냈다.

순간,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소녀들은 무대 위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새하얀 스포트라이트가 예지와 시아를 비추었다.

'이 정도일 줄은....'

두 사람의 하모니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애초에, 두 곡의 원곡자와 편곡자는 동일 인물이 아닐까.

그게 아니면 이렇게 한 곡처럼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한 곡처럼 자연스럽죠."

"원곡자와 편곡자가 같을 거야."

"아뇨, 원곡은 다이애나랑 류시아가 작곡했네요."

"이번 곡은?"

".... 도하나."

한국 사람인가 보네.

저 회사는 인재가 끊임없이 나오는구나.

큐앤지 레이블 같은 작은 중소 엔터에.

문득, 자신의 패션을 알아본 그 사람이 떠올랐다.

'정수호 팀장님.'

시선을 돌려, 뒤통수를 긁적이는 사내를 발견했다.

수호는 객석 한쪽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팬들의 환호에도 그는 표정을 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 만족 못 해!?'

전임 수석 디자이너, 피앙코 경이 항상 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만든 디자인도 쓰레기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욕망의 화신이네.'

* * *

모든 1부 공연을 마치고, 무대 앞에서 멤버들을 바라봤다.

"오빠, 언니들 너무 멋있어."

"응."

".... 그게 끝이야?"

"뭐가."

솔직히, 실력 면에서는 더이상 깔 게 없었다.

처음부터 내 마음에 드는 곡이 아니었을 뿐.

MC들은 신인상 수상을 앞두고 가수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나수린 씨, 오늘 여자 신인상은 누가 탈까요?"

"저요?"

"네. 작년에 아이솔레이션이 신인상을 타셨잖아요."

".... 아마."

솔직히, 여자 신인상의 주인은 정해져 있었다.

올해 솔라만큼 파급력이 있는 신인은 없었으니.

"솔라요. 존경할 만한 후배죠."

마지못해 말하는 거 졸라 티 나네.

MC도 껄끄러운 사이인 거 알면서.

'신인상보다 궁금한 건.....'

엔넷 마미 시상식의 대상은 총 세 개였다.

올해의 가수상, 노래상, 앨범상.

모든 후보는 차트를 점령한 명가수와 명곡.

그중, 「SAS」는 올해의 노래상 후보에 올랐으니까.

"저기요."

그때, 뒤에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휴, 정수호 팀장님 아니세요?"

"누구....?"

"오늘 무대를 담당한 최민식 FD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엔넷에서 「탑아이돌」 찍을 때 한 번쯤 본 것도 같았다.

"와, 솔라랑 루나는 매일 성장하네요."

"감사합니다."

"아까 무대 할 때 전율이....!"

"네. 하하."

리액션이 조금 과장된 분인 것 같다.

"여기, 명함인데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핫."

".... 네."

인상이 참 선하고 좋아 보이는데.

왜 뒤통수는 살살 간지러운 걸까.

'몰라. 그냥 걸러야지.'

이제는 느낌이 좋다가도 뒤통수가 간질간질하면 거부감이 들었다.

반대로, 뭔가 별로일 때 간지러운 감각이 느껴지면 다시 보게 되고.

잠시 후, 수상자 발표 시간.

MC는 무대 위에서 여자 신인상 후보를 발표했다.

솔라, 루나, 비걸즈, 케이돌스, 핑크레몬.

이 정도면 「탑아이돌」 정모 수준이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솔라에게 여자 신인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눈물을 질질 짜면서 감사한 사람들을 호명하는 멤버들.

그중, 내 이름을 제일 많이 불러서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오빠, 후보 몇 개나 올랐지?"

"솔라는 일곱 개."

솔라와 루나는 총 열 개 분야의 후보에 올랐다.

댄스 음악상, 뮤비 작품상, 퍼포먼스, 인기상 등.

보이그룹과 경쟁도 있기에, 솔라도 3관왕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설마 이 상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MC들은 호기롭게 편곡상 수상자를 호명했는데.

"Sunrise And Sunset의 편곡상을 받을 도하나 작곡가 님, 축하드립....!"

"잠깐만요, 참석을 안 하셨어요."

"아, 그러네요."

뭐지, 도하나가 다이애나잖아.

참석했는데 상을 줘도 못 받죠.

"그럼 솔라가 대신 수상을 해야죠."

"원곡자인 다이애나 씨, 올라와 주세요."

"???"

본인 상을 본인이 대리 수상할 수도 있는 건가.

'나중에 밝혀지면....'

걸그룹 역사에 남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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