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태양 여신(6)
큐앤지 레이블에 몰려든 수많은 연습생 지원자들.
솔라와 루나의 성공 덕분일까.
이젠 대기업도 부럽지 않았다.
오디션 참가자들의 실력은 다들 상향 평준화됐으니.
"오늘 실력자들이 많이 왔네요."
"그러게요."
다른 면접관들은 온종일 내게만 의견을 물었다.
간지러운 신호가 안 오는 참가자가 대부분인데.
'.... 다 떨어뜨릴 수도 없고.'
어쩌면, 오늘 한 명도 느낌이 안 올 수도 있으니까.
"정수호 팀장, 의견은?"
"어, 음. 노래 잘하시네요."
"영혼이 없는데?"
"소울은 있어서요."
"앗, 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의 참가자.
솔직히 요즘 애들은 노래를 다 잘해서.
"와아, 정 팀장님은 너무 착해서 모진 말을 못하시네요."
"그러게. 나는 불합격이었는데."
"...."
딱히 모진 말을 못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내 귀에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진짜 노래를 다 잘하잖아.'
데뷔 초의 예지랑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니까.
음색 깡패들이 기타 치면서 잘하는 척만 해도.
"흠, 이번에도 평범하네요."
"저도 마찬가지요."
이게 왜 평범하지.
졸라 잘 하는데요.
"수호 생각은?"
".... 저도 동감입니다."
"역시, 사람 생각은 비슷하네요."
"그러게요."
원래 오디션이 이렇게 어려웠나.
새삼스레 서바이벌 심사위원들이 존경스러웠다.
'나중에는 스케줄 있다고 빠져야겠네.'
다음 지원자는 중형 기획사 연습생 출신.
실력이든 외모든, 무척 기대되는 참가자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똥촉에 걸리는 참가자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이내, 당당한 걸음으로 면접실에 들어선 연습생.
곧장 자신감 넘치는 보이스로 노래를 불렀는데.
'졸라 잘하네.'
하필이면 뒤통수도 간질간질하고.
"이분은 스타성이 안 보여요."
"엥? 노래도 외모도 좋은데?"
"그렇긴 한데."
너무 느낌이 좋아서 문제야.
뒤통수도 간질간질하니까요.
'.... 학폭일 수도 있어.'
어린 나이에 외모는 뛰어나고 성격도 인싸인 아이들.
연예계에서 학폭 문제가 괜히 생기는 게 아니었으니.
"그냥 이번 참가자는 저 믿고 걸러요."
"오케이, 정수호니까."
"감사합니다."
워낙 많은 참가자들이 몰려들어서 하루 만에 끝낼 수는 없었다.
".... 오늘 마지막 참가자네요."
"한지아, 소미랑 같은 학교 출신이군요."
"게다가, 서광예고 작곡과에 입학 예정이라."
"음악 좀 하나 봐요."
서광예고도 어느 정도 유명한 학교지만.
특히, 예중 출신이 진짜 천재들이 많았다.
"SNS 스타네. 팔로워도 많은데?"
"다른 회사에서 캐스팅 제안 좀 받았겠네요."
"사진빨일 수도 있죠."
"보면 알겠지."
이내, 눈부신 외모의 참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우, 브라보."
"진짜 예쁘네요."
아이돌 중엔 중학생부터 '태'가 다른 아이들이 있었다.
어깨에 기타를 메고 당당하게 걸어와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유."
"???"
우리는 벙찐 얼굴로 소녀를 바라봤다.
"아, 긴장하면 사투리가. 헤헤."
"아.... 예."
이내, 가볍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시작하는 한지아 참가자.
사실, 가창력은 '객관적으로' 봐도 평균 이하의 실력이었다.
"나만 봐, 나만 봐."
".... 다시."
"아, 실수."
다른 면접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투리 고칠 수 있겠어요?"
"노력해볼게욥!"
"...."
얼굴과 비교하면 실력이 못 따라간다.
'.... 별로긴 한데.'
어쩌면, 새로운 탈모 제조기가 될지도 모를 소녀.
그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뒤통수를 긁고 있었다.
"수호야, 네 생각은 어떠냐."
"저는...."
사투리는 고치면 되는 거 아닌가.
심지어 노래도 마음에 안 드니까.
"너무 좋은데요."
내게 한지아는 역배다.
* * *
한편, 수호와 함께 오디션 면접을 보는 매니저.
구현식은 오늘 수호의 심사평을 전부 기록했다.
'어렵네.'
안목 천재가 정해놓은 기준은 뭘까.
연습생의 어떤 면을 보고 뽑는 건지.
차라리 무언가 확실한 스탠다드가 있으면 좋겠다.
심지어, 얼굴 천재에게도 혹평을 아끼지 않았으니.
`스타성? 가창력? 춤?'
구현식은 그의 심사평을 들을 때마다 머리가 복잡했다.
누구보다 솔라를 먼저 알아본 선구안.
그 레이더에 걸리는 기준이 있을 텐데.
그 와중에, 사투리를 쓰는 귀여운 참가자에서 의문이 커졌다.
"수호야, 네 생각은 어떠냐."
"저는...."
외모는 뛰어나지만, 노래 실력은 평균 이하.
당연히 떨어트릴 생각이었던 연습생이었다.
"너무 좋은데요."
"저, 정말유!?"
"네. 스타성이 보여요."
"????"
아이돌은 단어 그대로 10대의 '우상'이 되어야 하는 직업.
외모, 실력, 체형, 말투까지 대중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저기, 정수호 팀장님."
"네?"
"지, 진심이세요?"
"그럼요. 안 보이세요? 저 친구 스타성이."
"...."
순간, 구현식은 뇌 정지가 찾아왔다.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수호의 눈빛.
자신이 초심을 찾기로 마음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내가 아직도 선입견을....'
이내, 다시 한번 한지아 연습생을 바라봤다.
편협한 시선을 떼어놓고 보니 완벽한 '체형'이 눈에 들어왔다.
'팀장님은 꿰뚫어보시는구나.'
아주 작은 머리와 큰 키에, 길쭉한 팔다리까지.
신체 비율은 돈으로도 만들 수 없는 절대 가치.
"드디어 보이네요. 스타성이요."
"오, 정말요?"
"네. 신체 비...."
"노래가 좋잖아요."
"아."
노래였어? 평범했는데?
잠재력을 보는 거였구나.
다시 한번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수호의 매서운 눈.
마치 프렌즈 엔터 시절 '의장님'의 눈빛과 비슷했다.
'고음은 연습으로 고칠 수 있겠지.'
노래 실력은 뭔가 2프로 부족하지만, 성장 잠재력은 보였다.
타고난 음색은 쉽게 바꾸기 어렵다.
맑고 청아한 보이스는 보물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깨끗한 음색은 상당한 매력 같군요."
"제 말이 그 말이거든요."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박철민 실장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수호야, 가스라이팅하니."
"그런 말도 아세요?"
".... 죽을래?"
"아니욥."
아무튼, 정수호 팀장님의 기준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역시, 진짜 안목 천재의 실력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스타성, 메모.'
구현식은 수호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오늘 얼마나 많이 배우고 가는지 모르겠다.
"크으. 감사합니다, 센빠이."
"구 매니저님이 저보다 연예계 선배죠."
"우리 회사 선배 아닙니까."
"저도 작년에 입사했는데."
"아무튼."
연예계는 실력이 경력이고 인기가 선배인 시장이니까.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 * *
한편, 같은 시각.
큐앤지 레이블 작업실.
다이애나는 열심히 만든 비트에 마침표를 찍었다.
부담감을 내려놓으니 작곡 작업이 훨씬 수월했다.
"연습생 중에 괜찮은 작곡가도 있으려나."
딸깍, 딸깍─
벌써 새 작곡명으로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 트랙이 몇 곡인가.
누구나 편하게 들어와서 곡을 감상하는 저장소.
사클은 올리자마자 저작권 보호가 돼서 편했다.
"뭐야, 이 사람 또 쪽지 보냈네."
[To Dohana. Please let me talk to....]
하루에도 수십 통 영어로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
가끔은 한국말 번역기를 돌려서 메시지를 보냈다.
"어휴, 안 팔아요. 안 팔아."
오늘도 대충 쪽지를 무시하고 기지개를 켰다.
'정수호 팀장님.'
언제부턴가 그분은 솔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당장 리더 언니부터 수호바라기 아닌가.
자신 역시 항상 그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러니까, 내가 부담이 안 되는 게 더 이상하지."
한국말도 못하고, 미디만 만질 줄 아는 바보를 천재 프로듀서로 이미지 메이킹했으니.
솔직히, 미디로 악기 소리를 표현하는 건 정말 쉬웠다.
그냥 아무나 음악을 살짝만 공부하면 할 수 있는 건데.
드르륵─
그때, 소미가 작업실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 이런 애가 천재지.'
일본어를 일주일 만에 마스터할 때 얼마나 놀랐는지.
수리에 언어 능력까지, 문이과를 동시에 씹어먹었다.
"소미야, 요즘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는 하고 있어?"
"입학은 확정이고, 그냥 반 배정 시험이야."
"아무튼, 그거."
소미는 잠깐 고민하더니 대화를 이어갔다.
"글쎄. 딱히 공부는 안 하고 있는데."
"바빠서 못 하는구나. 연습이랑 스케줄도...."
"아니, 시험 전날 벼락치기 할 거야."
"응?"
시험 과목이 다섯 개라고 들었는데요.
보통 시험 전날 공부하면 망하지 않나.
"너 수학이랑 과학만 잘하는 거 아니었어?"
"그야, 다른 과목은 기본 상식으로만 푸니까."
"...."
세상에, 대체 뭐 하는 괴물인 거야.
그냥 수능 공부해도 성공했겠는데.
"언니야, 아무튼 내가 온 이유는 그런 게 아니고."
"왜 왔는데?"
"내가 팀장님한테 말해줄까?"
"무슨 말?"
"솔직히 좀 너무하잖아. 편곡자 바꿔버린 거."
"???"
이내, 소미는 스마트폰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저작권 협회에 등록한 곡을 벌써 발견했는지.
"도하나가 누군데 언니를 밀어내!"
"...."
그게 나야.
연말 시상식 솔라와 루나의 합동 무대.
두 곡을 합쳐 편곡한 노래를 내놓았다.
"아무리 들어도 언니 노래가 더....! 응? 더...."
"그냥 솔직히 말해도 돼."
"오케이, 도하나가 편곡한 노래도 솔직히 나쁘지는 않아."
".... 그럼 됐지."
"그래도 우린 팀이잖아! 나는 언니 노래가 더 좋아."
"흠, 나는 팀장님 선택을 리스펙트해."
"와우, 대인배 스멜."
왜냐면 그 편곡 작업도 내가 했으니까.
"언니야, 우리 같이 도하나 뒷담이나 할래?"
"아우, 유치하게. 그만 가!"
"나는 지금 언니 편들어주려는 건뎅."
"그건 고마워."
신소미의 여린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도하나 편곡이 더 좋은 모양이다.
"소미야, 우리 마미 시상식 후보에 올랐잖아."
"응. 그치."
"노래가 더 중요해."
"아...."
소미가 위로하는 모습을 보니 강한 확신이 들었다.
역시, 틀에 갇히지 않고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 때.
'.... 최고의 작업물이 나오는구나.'
정수호 팀장님이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니까.
앞으로도 계속 갱스터 랩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사도 계속 써야징. 헤헷.'
오늘따라 가사가 술술 써지는 기분이었다.
와이 두 유 해브 쓰리 마더.
인 유어 헤븐, 뻐킹 이디엇.
* * *
마침내 다가온 12월.
엔넷 마미 시상식까지 고작 일주일을 남겨놨다.
나는 오랜만에 루나와 솔라의 연습실을 찾았다.
"지유야, 12월 10일까지 딱 일주일 남았다."
"응. 알지."
최근에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연습생 관리, 솔라와 루나의 스케줄.
영화 프리 프로덕션도 신경이 쓰여서.
"오빠, 한지아 연습생 말이야."
"응? 걔가 왜?"
"너무 예뻐서 얼굴만 보고 뽑았다는 소문이 있어."
".... 그 소문은 어디서 나오니?"
"원래 엔터가 다 그렇잖아."
그 친구는 언젠가 진가를 발휘할 때가 올 터였다.
일단 트레이닝 시스템에 따라 열심히 굴려봐야지.
"원래 연습생 평균 기간이 2년이야."
"그렇긴 하지."
"일단 묵혀놔야지."
존버하다보면 복이 온다.
영화에 투자한 내 돈처럼.
우리는 연습실 뒤쪽에 들어가 멤버들을 확인했다.
"지유야, 무대 의상은 어떻게 됐어?"
"하아, 아이솔레이션은 명품 브랜드에서 협찬한다고 하더라."
"걔들은 대기업이잖냐. DK 뮤직."
"치, 솔라가 더 인기 많은데."
솔직히, 브랜드 입장에선 빅 4가 먼저였다.
그 회사 다른 아티스트랑 계약도 있으니까.
"다시! 둘둘 셋넷."
안무 선생님 레드와인은 솔라와 루나의 안무를 점검했다.
"후우, 5분 쉬고 다시 간다."
"네에."
마치 연습생 때처럼 열심히 하는 멤버들 모습.
땀에 푹 절은 아이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팀장님, 오셨어요."
"네. 선생님."
홍주 선생은 내게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SAS 고양이춤 덕분에 저도 떡상했네요."
"하하. 잘하신 덕분이죠."
"그래도 감사합니다."
예지가 창작하고 레드와인이 만진 안무.
너튜브로 유입된 해외 팬들도 상당했다.
"제가 내년 중순쯤에 방송 하나 들어갈 것 같은데요."
"무슨 방송이요?"
"댄스 배틀."
"아하."
"혹시 나중에 게스트 출연에 관심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만 들어서는 별 느낌이 없었다.
"정 팀장님, 합동 무대는 어떤 것 같으세요?"
".... 연습만 보고 어떻게 알겠습니까."
"뭔가 의상으로 한방이 있으면 좋을 텐데."
"의상이요?"
"네. 드레스나."
그동안 의상 준비는 조유미 씨에게 잘 맡기고 있었다.
딱히 똥촉을 건드리지는 않지만, 무난한 실력이었으니.
"한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안무에 방해만 안 되면 괜찮아요."
"그럼요."
며칠 뒤.
적금을 들어놨던 역 베팅이 고개를 쳐들었다.
일본 예능 「토모쿠미」 촬영장에서 만났었나.
-저번에 명함 주셨었죠.
".... 사쿠라여?"
-네. 맞아요.
이분한테 전화가 올 줄은 몰랐는데.
듣기로는, 일본과 서양의 혼혈인.
그녀는 능숙한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에 지올에서 협찬을 하려고 하는데요.
".... 지올이요?"
-아, 얼마 전부터 지올 본사 수석 디자이너를 맡게 됐습니다.
"그 나이에!?"
-그냥 운이 좋았네요.
그게 운으로 된다고....?
아방가르드 패션으로 눈길을 끌었던 디자이너.
괴상한 패션 때문에 그냥 명함을 건넸을 뿐인데.
'그럼 이분이....'
문득,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본 「지올」의 기사를 떠올렸다.
21세 최연소 패션 천재가 수석 디자이너가 됐다는 뉴스 기사.
'미친, 똥촉 성능 확실하네.'
이러니까 내가 과학이라고 하지.
* * *
얼마 후, 엔넷 시상식 당일.
뷰티 샵에서 옷을 갈아입는 솔라 멤버들.
소미는 예지를 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언니, 이게 맞아?"
".... 맞겠지."
팔다리에 구멍이 숭숭 뚫린 드레스.
내부에도 따로 디자인이 있긴 한데.
"혹시 22세기에서 온 패션인가."
"그냥 그런 걸로 하자."
"...."
우리의 정수호 팀장님이 협찬받은 옷이니까.
무려, 지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만든 옷이니까.
"근데 시원해. 안무에도 안 거슬리고."
"어.... 음."
솔라 멤버들은 드레스를 입고 밴으로 향했다.
"아오, 갑자기 빡친다."
"은서야, 참아."
"아놔."
사실, 정수호에 대한 예지의 믿음은 신앙이었다.
그의 말은 항상 정답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
"매니저님!!"
"어, 그래."
만족스러운 미소로 패션을 바라보는 정수호 팀장님.
그는 여느 때처럼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 옷 예쁘네."
예지는 그의 한마디에 움츠러든 어깨를 활짝 폈다.
"정말요?"
"으응."
역시, 정말로 예뻐서 하시는 말씀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