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태양 여신(5)
JTBS 방송국, 「아는동네형님」 세트장.
솔라 멤버들은 MC들과 합을 주고받으며 촬영을 이어갔다.
워낙 유명한 방송이기도 하고, 진행자들도 전부 프로였으니.
"무난하네."
"그러게."
대박도 아니고 쪽박도 아닌-, 말 그대로 '무난'했다.
이래서 내가 똥촉을 못 끊어.
매번 시청률로 증명했으니까.
"오빠, 그래도 팬분들은 엄청 좋아할걸."
"뭐, 그렇겠지."
"보통 예능은 짤 만들기 편하거든."
"너는 거의 전문가네."
"응. 나도 예고 나왔잖아. 서광예고 연출부."
"아 맞네."
조만간 소미가 얘 후배 되겠어.
지유도 작년에 졸업하지 않았나.
"뭐, 아무튼."
일단, 솔라와 루나의 스케줄은 연말까지 가득 찼다.
팬덤 관리, 페이 높은 행사, 메이저 예능.
연말 가요제나 시상식 관련 무대 연습까지.
"너도 이번 주 스케줄표 확인해."
"알겠어."
"구 매니저님 있어서 훨씬 편하지?"
"응. 열정맨이셔."
지유는 씨익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오빠, 예지 언니도 드라마 들어오던데."
"아직 안 돼."
"왜? 주조연급도 있어."
"...."
예능이든 드라마든, 고정 출연은 무조건 똥촉이 올 때만 잡을 생각이었다.
대충 아무거나 집어삼키면 필모 조지는 수가 있어.
웹드라마 찍었으면 '흥행' 로코나 전문가물이 맞지.
"지금도 대본 들어오는 건 다 보고 있는데."
"전부 다 별로야?"
"어. 그닥."
지유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빠, 엄청 신중하구나."
"당연하지."
솔라는 업어키운 걸그룹이니까.
처음으로 성공시킨 연예인이고.
"앞으로도 이렇게만 키울 거야."
"오오...."
계속 내 눈에 별로인 작품만 골라서 가져올 거야.
"오빠, 뭔가 엄청 멋있어."
"멋있긴."
"방금 드림 에이전시 대표님 같았어."
".... 그 회사 얘긴 하지 말자."
"왜, 돌아가려는 거 아니었어?"
"글쎄."
요즘엔 그냥 큐앤지가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영화로 돈 벌면 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고.
"아무튼, 나 저녁에 재하랑 치맥하기로 했는데."
"우리 오빠랑?"
"너도 낄래?"
"아니, 나는 엄 씨랑 겸상 안 해."
".... 니가 엄 씨야."
언제나처럼 로드매니저 업무는 기다림의 연속.
촬영 시간과 대기 시간 내내 멤버들을 지켜봤다.
그러던 녹화 중간, 쉬는 시간에 소미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이요! 우리 팀장님이에요!"
"와아, 솔라 멤버들이 어찌나 칭찬하는지."
"저요?"
국내 탑급 MC 한 분은 웃으면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짝이 전설의 그 댄싱머신!?"
"아."
너튜브에 박제된 거 못 내리냐.
아니, 평생 어떻게 이러고 살아.
"댄싱머신! 솔라 댄스도 출 수 있어요?"
".... 잘 모르겠습니다."
"에이, 빼지 말고!"
저한테 왜 이러세요.
이 방송 괜히 나왔네.
"오케이, 팀장님은 루나 안무만 외운 걸로."
"SAS갓 솔라를 버려!?"
"와우, 팀장님 야수의 심장이네."
나는 MC들의 공격을 자연스럽게 흘려버렸다.
"엄지유가 고양이춤 잘 춰요."
"오, 옆에 계신 매니저분!?"
"네."
".... 오빠?"
엄지유는 원망 섞인 눈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곧장 시선을 돌려 피디님께 도움의 눈빛을 보냈지만.
"크흠, 이게, 필름이 떨어졌나."
"필름 카메라 아니잖아요."
"에잉, 배터리 나갔네."
"거짓말하지 마세요."
MC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유를 몰아붙였다.
"엄 매니저님, 안 올라오고 뭐 하시나!?"
"으아."
나만 당할 순 없지.
지유는 MC의 권유에 못 이겨 터덜터덜 걸어갔다.
원래 기쁨과 행복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했지.
"지유야, 너는 좋은 매니저였다."
".... 오빠."
거 참, 좋은 매니저 커트라인 엄청 높네.
* * *
"형님, 방송에 맛 들렸나 봐."
나는 자취방에서 엄재하와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누군 하고 싶어서 하냐."
"요즘 솔라 팬들이 형 얼굴 다 알아."
".... 이제 지유 얼굴도 알아보겠네."
사실, 이미 나작텔에서부터 얼굴은 전부 다 팔렸다.
"아는동네형님이면.... 지유 얼굴 전국에 다 팔리겠네."
"그만 놀려라."
"이참에 둘이 같이 전챙시에 나가보는 거 어때?"
"내가 미쳤냐."
전지적 챙김 시점.
매니저의 일상을 다루는 예능이었다.
"됐고, 너 언제까지 덕질만 할 거냐?"
"형님, 태양빛 관리도 중요해."
"집에선 공무원 공부하는 걸로 안다며."
"그렇긴 하지."
지유처럼 인턴으로 아버지 회사라도 들어가는 게 낫지 않나.
"텀블 인베, 요즘 상승세야. 나중엔 인턴 자리도 못 들어갈걸."
"알겠어. 한번 생각해 볼게."
"아 근데 치킨은 언제 오냐. 배고파 죽겠네."
"오, 밖에 누구 왔다."
띵동─
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기다리는 치킨은 안 오고 웬 박스가 도착했다.
"뭐냐, 택배 안 시켰는데."
"그거 내가 시켰어."
".... 내 집에?"
엄재하는 택배를 받아 포장지를 뜯었다.
"곧 할머니 기일이잖아. 선물 부모님 드려."
"아, 벌써 연말이긴 하네."
작년 이맘때쯤 재하랑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진짜 시간이 이렇게 빠를 줄이야.
그 사이에 솔라는 탑스타가 됐다.
"나도 산소에서 벌초 좀 해야겠다."
"뭐야, 형은 산소 잘 안 가잖아."
"이제 가려고."
할머니께 축복받은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까.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나.
"형님, 근데 아까부터 내가 거슬리는 게 하나 있거든."
"뭔데."
재하는 원룸 구석에 있는 커다란 곰 인형을 가리켰다.
"방에 저딴 게 왜 있어?"
"...."
예지가 첫 정산 받고 나한테 준 선물.
진짜 쓸모도 없고 자리만 차지하니까.
"누가 선물해줬어."
"뭐야, 징그럽게 무슨 곰인형."
"너 주고 싶어도 준 사람 성의도 있어서 못 주겠다."
"누가 달래? 줘도 안 가져."
"...."
예지가 직접 선물해 준 거야.
본인 돈으로 사서 안겨줬다고.
".... 예지 사인 티셔츠는?"
"태양 여신 사인 티는 없어서 못 구하지. 구해주쉴?"
"꺼져. 니가 구해."
"팬 사인회를 열어줘야 구하지!"
"나중에 봐서."
재하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내뱉었다.
"에휴, 됐다. 형이 무슨 힘이 있겠냐."
"응?"
"팀장 달면 뭐해. 실장이 실세겠지."
"나도 힘 있어. 지유가 말 안 해주냐?"
"걔랑은 겸상도 안 해."
".... 엄."
너희는 남매끼리 대화라는 걸 좀 하고 살자.
어쩐지, 나한테 아무것도 안 물어보더라고.
"재하야, 나 얼마 후에 연습생 오디션 있다."
"형, 오디션 보게?"
".... 내가 면접관이라고."
"아하."
그 정도면 회사에서 인정받는 거 아닌가.
"어쨌든, 요즘 너 카페지기 활동은 잘하고 있어?"
"아오, 죽겠다. 지금 회원 수가 계속 늘어나."
"SAS 이후로 많이 늘었지?"
"당연하지. 계속 1등이잖아."
"흠, 좋네."
얼마 전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는데.
아직도 음원 차트 1위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다이애나는 이런 곡의 트랙을 직접 만들었으면서.
'슬럼프라니....'
천재들의 세계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 * *
다음 날.
은서와 주희는 액션 스쿨에서 수업을 받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스턴트 액션에 익숙해졌다.
"은서야, 쟤 뭐냐."
"누구?"
주희는 자신을 바라보는 한 남자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저 사람이 자꾸 개인적으로 말 걸었잖아."
"아, 저 배우."
「복수 소녀」에 출연하는 감초 역할.
딱히 사이가 나쁠 이유는 없었지만.
"저분이 아까 나한테 밥 먹자고 하던데."
".... 거절했어?"
"당연하지."
양주희는 삐딱한 시선으로 남자 배우를 바라봤다.
'저 쉑, 은서를 넘봐?'
자주 티격태격하지만 그래도 솔라.
외부의 적이 있을 때는 팀이었으니.
"자자, 그럼 일단 가볍게 몸을 풀면서...."
그때, 트레이너가 나타나 오늘 처음 수업받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영호 씨, 처음이니까 주희 씨랑 가볍게 검술 연습하면서 몸 좀 풀까요?"
"에이, 그래도 제가 어떻게 솔라를 때려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거 고무라서 안 아파요."
"어휴, 그럼 저는 살살할게요."
"...."
트레이너는 어이가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영호 씨, 오늘 주희랑 처음 연습하는 거죠?"
"네. 다른 영화 촬영 끝나고 와서."
".... 예."
잘 나가는 배우라는 걸 어필하고 싶은 걸까.
아까부터 안 궁금한 내용을 자꾸 털어놓는다.
쓴웃음을 지으며 영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트레이너.
"조심해요."
"???"
이어서, 양주희는 다가오는 영호를 보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주희 눈나, 팬이에요."
".... 일만 하시죠."
"헤헤. 태양빛도 가입했습니다!"
"그럼 팬이시네."
"네! 그러니까 오늘 제가 살살 해드릴게요."
"세게 하셔도 되는데."
"네?"
현재 액션 스쿨에서 주희를 무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근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운동을 하며 자랐으니.
"저도 세게 할 거라."
"???"
삐이익─
이내, 주희는 휘슬과 함께 고무로 된 몽둥이를 휘둘렀다.
"으악! 눈나 나 주거."
"그 주둥이 좀."
"누, 눈나! 나 진짜 죽어. 으아악! 살려줘! 진짜 죽어!"
"...."
잠시 후, 영호는 말 잘 듣는 고양이처럼 주희의 말을 따랐다.
"자, 그럼 합을 다시 맞춰볼까요?"
"넵. 누나."
"누나 말고 주희 씨."
"넵. 주희 씨."
은서는 지유와 함께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쟤는 걸그룹 안 했으면 깡패가 됐을지도 몰라."
"응. 솔라라서 다행이야."
안 먹어도 근육이 붙는 축복받은 유전자.
일단, 걸그룹이라 식단을 조절하고 있지만.
"쟤 고딩 때 벌크업한 사진 봤어?"
"아뇨."
"그냥 괴물이야."
"...."
은서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지유에게 물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언니는 괴물이랑 매일 싸우잖아요."
"원래 괴물이랑 싸우려면 괴물이 돼야지."
".... 안 싸우면 되잖아요."
"쉽지 않아."
마음속에 화를 품고 살아간다는 게 원래 쉽지 않다.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부모님을 잃었을 때였나.
"언니, 어릴 때부터 많이 힘들었구나."
"그렇지, 뭐."
지유는 토닥토닥 위로의 손길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집이 가난한 건 언니 잘못이 아니에요."
"...."
가난하다고 한 적은 없는데.
"지유야, 너는 텀블 인베 대표님 딸이라며."
"맞아요."
"니가 말하면 설득력이 없잖아."
"아하."
* * *
시간이 흘러,
길거리에서 연말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보니까.
"시간 빠르네."
영화 「복수 소녀」의 프리 프로덕션 과정은 순조로웠다.
"이제 남자 주인공도 캐스팅한 건가."
딱히 똥촉에 걸리는 인물은 아니라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드림 에이전시 배우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톡, 토톡─
나는 인터넷 뉴스를 보며 요즘 이슈를 확인했다.
역시, 「복수 소녀」 관련 뉴스 기사가 메인이구나.
순간, 다른 뉴스에도 눈길이 갔다.
".... 지올 수석 디자이너 교체?"
[지병 악화로 은퇴한 '피앙코'에 이어, 21세에 최연소 「지올」 수석 디자이너가 된 패션 천재는 일본계 영국인으로....]
신기하긴 한데 그냥 다른 세상 이야기.
대충 뉴스를 넘겨보며 회사로 향했다.
"내년 초쯤에는 촬영을 들어가려나...."
띠리리링─
박 실장님은 아침부터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실장님."
-오늘 연습생 면접이라니까.
"회사 앞이에요."
-아, 그래?
"네. 사무실에서 스케줄만 정리하고 올라갈게요.
-알겠다.
나는 사무실에 출근해 일정을 확인했다.
엄지유랑 구현식 씨.
두 사람 덕분에 진짜 팀장급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일단, 액션 스쿨은 계속 다니고....'
양주희는 연기 수업도 받아야지.
액션 위주니까 어렵진 않을 거야.
"다이애나 곡은...."
도하나로 바꾸니까 직원들 반응도 좋았다.
실장님도 편곡자 소개해 달라고 하시더만.
'그래도 숨기는 게 좋겠지.'
그래야 곡 작업이 된다는데 어떡하겠어.
원래 천재는 예민하니까 이해해 줘야지.
딸깍─
나는 다이애나가 알려준 사클 주소를 입력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새로운 곡들이 올라왔으니.
"후우.... 이건 뭐."
음악 감상을 하다가 멈추고 한숨을 뱉었다.
솔라 이름으로 냈으면 팬들 다 떨어져 나가겠네.
얘는 무슨 이런 살벌한 영어 랩을 좋아하는 건지.
"팀장님!"
그때, 사무실 구석에서 누군가 나를 불었다.
"네. 현식 씨."
"오늘 연습생 오디션인 거 아시죠?"
"압니다."
구 씨 형님은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대기실에 지금 지원자들이 바글바글해요."
"그러게요."
솔직히, 내가 오디션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뒤통수 원툴이라, 그거 말고는 도움도 안 될 텐데.
"같이 가시죠."
"좋습니다."
구현식 씨만 믿고 가면 되겠지.
프렌즈 엔터 인사팀장 출신이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곧이어, 면접실 근처 복도에 들어서는 순간.
"어! 정수호 팀장님이다."
"대박이야."
"와아아아아─!"
어쩌다 보니 텔레비전에 열심히 출연해서 그런가.
"아, 안녕하세요."
"잘생겼어요!"
무슨 오디션이 아니라 팬 사인회 온 것 같다.
그저 기분 좋게 면접실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사랑해요, 댄싱머신!!!!"
".... 누구야."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