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57화 (57/200)

[57] 태양 여신(3)

정통 액션 연기.

남자 배우도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걸 신인 걸그룹 멤버에게 시키려고 하다니.

"정수호 팀장은 보통 사람이 아니야."

"동감입니다."

"신인 걸그룹이 액션 영화라니."

"네. 쉽진 않겠죠."

큐앤지 레이블 2본부장실.

권석동 본부장은 박 실장과 대화를 나누었다.

"양주희는 괜찮다고 하던가?"

"네. 아직 연기에 도전하기는 좀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스턴트우먼은 괜찮고?"

"네. 재밌을 것 같아서 하고 싶답니다."

"...."

아육대에서 7관왕 할 때부터 알아봤다.

나작텔 보니까 양두팔 트레이너 조카라던데.

"그 친구는 산에 들어가서 수련했대?"

"네. 고등학생 때까지."

"...."

대체 그 집안은 뭐하는 사람들이야.

"아, 본부장님, 무술 감독은 정 팀장이 직접 알아본다고 하더군요. 안전 문제라."

"그래야지."

걸그룹 멤버의 스턴트우먼 도전이라니.

흥행만 하면 크든 작든 주희에게도 이슈가 되겠네.

"요즘 투자금을 모으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흠, 그래서 은서를 캐스팅하려는 거겠지."

"네. 아마도."

유명 아이돌 멤버가 있으면 투자금 모으는 건 쉽지.

액션 영화 특성상, 투자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박 실장, 지금 들고 온 게 그 작품이지?"

"네. 여기요."

권 본부장은 박 실장이 건네는 시나리오를 확인했다.

[복수 소녀 <극본 : 김춘수>]

뭔가 시니컬한 제목의 액션 영화.

첫 페이지를 넘겨 분위기를 살폈다.

"감독이 직접 썼나 보네."

"네. 영화감독은 보통 그렇게 하니까요."

"흐음."

"영화감독 김춘수라.... 처음 들어 봐."

"그분이 10년 무명 시절을 겪었다고 하더군요."

"허, 참."

은서의 이름값이면 무명 감독과 영화를 찍을 필요가 없지 않나.

'그래도 정수호 팀장 픽이니까.'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처음부터 몰아치는 도주 장면에 눈길이 갔다.

'.... 재밌잖아!?'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의 매력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도주하는 과정에서 피와 살육이 난무하는 총격전.

모든 장면이 그림처럼 전부 머릿속에서 이어졌다.

"박 실장, 읽어봤어?"

"네. 좋았습니다."

진심으로 느와르 형식의 느낌을 잘 살렸다.

연출만 제대로 해주면 명작이 탄생할 수도.

"이것도 정수호 팀장이 발견했다고?"

"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합니다."

".... 우연히."

연예계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장.

이제 정수호가 우연이라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강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이고, 예외 없이 성공시키니까.

"박 실장, 그날 정수호 팀장이 받은 명함이 30장이야."

"아마 넘을 겁니다."

"그중, 단 한 명이랑 미팅했지."

".... 김춘수 감독이요."

"그래."

권석동 본부장은 「복수 소녀」의 시나리오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거 영상만 잘 뽑으면 진짜 장난 아니겠는데.

러닝타임 내내 극한의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겠어.

다만, 은서와 주희가 잘 살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그럼 은서는 당장 액션 스쿨 등록하고...."

"일단 주희랑 은서의 체형을 비슷하게 맞춰야죠."

"...."

이 영화에서 액션은 생명이었다.

스턴트 액션 티가 나면, 몰입은 깨지고 졸작으로 남을 수밖에.

당연히 감독이 생각하는 액션이나 연출은 길을 잃을 것이다.

"주희한테 연기 선생도 붙여준다고 합니다."

".... 그것도 정수호 팀장 생각?"

"네. 스턴트우먼도 연기력이 필요한 작품이라고."

"...."

세상에, 스턴트우먼에게도 연기력이 필요한 작품이라니.

말 한마디 없이 어깨의 떨림만으로도 수많은 감정을 표현하려고.

"정수호 팀장, 나중에 양주희도 연기를 시키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여자 마동식 같은 독보적인 캐릭터로 쓰려고."

"역시, 정수호!"

대체 정 팀장은 얼마나 먼 미래까지 생각하고 움직이는 걸까.

"영화는 내년 초에 크랭크인 할 겁니다."

"일단 캐스팅 건은 대표님 허락부터 구하고."

"네. 본부장님."

장은서와 양주희의 시너지를 통한 영화 데뷔.

아마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큰그림을 그렸겠지.

"그럼 솔라 단체 활동은....?"

"지금 지상파 삼사에서 2주 연속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단하구만."

아이돌과 배우 육성.

둘 다 놓치지 않겠다는 뜻이네.

* * *

"누가 너희를 태양 여신이라고 부르던데."

".... 과분하네."

뒷자리에 앉은 멤버들은 각자 한 마디씩 덧붙였다.

"나는 태양인. 근육 보이셈?"

"그럼 난 태양혈!"

"박 실장님은 태양권."

"그만."

화장으로 눈꼬리가 야옹이처럼 올라간 멤버들.

데뷔 때랑 비교하면 여러모로 많이들 바뀌었다.

춤, 노래, 연기.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저변을 넓히는가 싶더니.

오늘 마침내 올해 첫 트리플 크라운에 도전했다.

"얘들아, 오늘 음방 무대 무조건 찢어야 해."

"네에!"

"당연하죠!"

"이─지."

"...."

공중파 삼사 음방에서 3주 연속 1위를 하면 주어지는 호칭, 트리플 크라운.

오늘 결과에 따라 12월 엔넷 마미 시상식에서 받는 상이 바뀔 수도 있었다.

"은서랑 주희, 내일부터 액션 스쿨에서 싸우지 말고."

"제가 양주희랑 왜 싸워요."

"장은서가 안 깝치면 안 싸움."

".... 취소. 싸우자."

"콜."

벌써 어질어질하네.

"근데  우리 캐스팅 확정이에요?"

"아직은 아니야."

아마 대표님 결재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어쩌면, 주희 때문에 좀 더 걸릴지도 모르고.

끼이이익─

어느새, SBC 방송국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얘들아, 내리자."

"트리플 크라운 가즈아!"

"가주아!"

멤버들은 지유와 함께 내려 방송국으로 향했다.

'일단 오늘 음방이 중요하니까....'

순간, 축 처진 다이애나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걸음을 맞췄다.

"다이애나, 요즘 많이 힘들어?"

"네?"

"곡 작업 말이야. 슬럼프 왔다며."

"아...."

원래 소심했는데 오늘은 특히나 더 의기소침했다.

오늘 음방 때도 이렇게 텐션이 떨어지면 곤란했다.

'.... 부럽다.'

저작권자면 금융치료도 안 되나.

나 같은 월급쟁이는 어떻게 먹고살라고.

"그냥 옛날 같지가 않아요. 제가 만든 곡이 다 별로예요."

"왜 그러지? 이상하네."

"뭐가요?"

요즘 찍어내는 비트가 훨씬 내 취향이거든.

감성적이면서 세련된 멜로디랑 잘 어울리고.

"나는 요즘 비트가 더 좋아."

"거짓말."

"진짜야."

진짜, 진짜야.

왜 안 믿어줘.

"피이, 됐어요. 그냥 대충 이렇게 막살래요."

".... 대충 저작권 재벌로?"

"몰라요."

우리 외국인 노동자 멤버님.

스무 살에 사춘기가 찾아왔나.

"다이애나, 그럼 작곡명 하나 만들어보는 건 어때?"

"네? 작곡명이요?"

"응. 그냥 새로운 이름으로 너튜브나 사운드 클라우드에 마음껏 올려도 돼."

"진짜요?"

"응. 예명이니까 편하게 생각해."

"오, 좋아요."

스무 살이 견디기엔 솔라가 너무 많이 컸지.

어린 나이에 부담감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흐음, 이름은 뭐로 하지."

"너는 본명이 영어니까 한국이름으로."

"하나만 지어주세요."

"음, 하나만?"

다이애나랑 비슷하면서 예쁜 한국이름.

".... 도하나?"

"하나도. 원모어! 레쓰 겟잇!"

"...."

한국이름을 지었는데 굳이 다시 영어로 바꾸냐.

"고마워요. 매니저 오빠."

"고맙긴."

뒤통수에 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느낌이 좋았다.

이름을 바꾼다고 슬럼프를 극복할 순 없겠지만.

"앞으로는 평생 제가 하고 싶은 음악만 할게요!"

".... 잠깐만."

갑자기 불안한데.

"도하나.... 도하나. 이름이 예뻐서 좋아요."

"그래, 그건 다행이네."

"그러면, 작곡명은 저랑 매니저님만 아는 거예요. 그래야 새로 만든 의미가 있으니까."

"응? 멤버들한테도 말 안 해주려고?"

"소미가 알면...."

"아하."

바로 이해함.

"지니어스는 개인방송에서 팬들한테 다 말하겠네."

"아무튼, 저는 리허설 준비하러 갈게요."

"어. 그래."

곧이어, 지유는 멤버들을 배웅하더니 내게 다가왔다.

"오빠, 갑자기 다이애나 표정이 밝아졌네?"

"응. 그냥 적당히 위로해줬지."

"역시, 우리 천재 매니저님."

".... 천재란 말은 좀 빼자."

다들 너무 익숙해져서 모르는 것 같은데.

드림 에이전시 시절에는 폐급이었다니까.

'그게 진짜 내 실력이지.'

그저, 민감한 뒤통수를 물려주신 할머니께 감사할 따름이다.

띠리리링─

그때, 스마트폰에 저장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엔넷 뮤직스타 구현석 피디님]

"여보세요. 정수호 팀장입니다."

-엔넷 마미 시상식 무대 프로듀싱을 맡은 구현석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근데 이름이 조금 익숙하네.

-혹시 솔라랑 루나 합동 무대를 준비해 주실 수 있습니까?

"합동 무대요?"

-네. 아마 수상에 반영될 겁니다.

"그럼 해야죠."

앞으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

* * *

-1위 축하드립니다! 솔라의 Sunrise And Sunset!

올해 처음으로 터진 트리플 크라운.

SBC 음방 피디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얼마 만이냐."

"작년에 하이엔드 이후로 처음이죠."

"...."

솔라 멤버들은 이제 1등이 익숙한 듯 여유롭게 앵콜송을 준비했다.

청순한 외모에 고양이처럼 섹시한 몸짓.

안무와 곡, 가사도 전부 멤버들이 짰다던데.

"살짝 블루숄츠 느낌이 나네."

"그 정도예요?"

"어. 그 정도야."

솔라는 월드 클래스의 향기를 풍겼다.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팬들에게 손을 흔드는 멤버들.

마치 데뷔 10년 차 베테랑 가수처럼 절제된 무대 매너였다.

"이게 1년 차 신인 걸그룹이라니, 말이 돼?"

"블루숄츠도 데뷔하자마자 떴어요."

음방 피디는 조연출에게 어깨동무하며 화면을 가리켰다.

"여기, 이 사람 보여?"

"누군데요?"

"프렌즈 엔터 전 인사팀장 구현식."

"아, 이 사람이구나."

요즘 방송가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큐앤지 레이블 신입 로드매니저로 들어갔대."

"미친, 스카웃 된 게 아니었어요?"

"중고 신입이라고!"

"세상에."

하이엔드 멤버 중 한 명을 연습생 때 알아본 천재 캐스팅 디렉터.

그런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좋소기업에서 로드매니저를 뛰는지.

"정수호 팀장이 영입했다는 소문이 있어."

"아, 그건 저도 들었어요."

솔라를 국내 탑 걸그룹으로 올려놓은 천재 프로듀서.

모든 멤버들의 스케줄을 '혼자서' 통제한다고 들었다.

망해가던 루나를 심폐 소생한 것도 정 팀장의 공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금 솔라, 마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거 알지?"

"신인상이요? 알죠."

"신인상 말고."

".... 그럼."

올해의 가수, 올해의 노래, 올해의 앨범.

신인 걸그룹이 3대 상의 후보에 오른 게 얼마 만인가.

"와아, 원래 CW ENM은 좋소엔터한테 상 절대 안 주잖아요."

"올해는 또 몰라. 프렌즈 엔터도 한때 좋소였다고."

"...."

그만큼 올해 연말에 터진 솔라의 상승세는 어마어마했다.

더욱이, 올해는 월드스타들이 자리를 비운 '빈집'이었으니.

"다음 달에 큐앤지에서 연습생 뽑는다고 하더라. 우리 조카도 오디션 보러 간대."

".... 엄청 모여들겠네요."

"아마도."

제2의 김예지가, 제2의 류시아가 되기 위해 모여들겠지.

'정수호 팀장, 그 사람은 대체....'

그런 천재 프로듀서가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을까.

순간, 정수호 팀장이 카메라에 찍혔다.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짓는 모습.

'저 사람한테는....'

트리플 크라운도 대수가 아니구나.

* * *

회사 근처 소고깃집.

큐앤지의 첫 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축하하는 회식 자리.

우리 회사 직원들은 솔라를 중심으로 넓게 둘러앉았다.

"예지야, 한마디 해."

"저요?"

"으음, 우리를 위해 힘써주신 직원분들...."

정말 어려운 걸 솔라가 해냈다.

그동안 힘겨웠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드림 에이전시에서 욕먹어가며 버틴 세월.

너튜브에 박제된 수많은 영상들.

나작텔 출연분과 루나 리허설 무대에 올라 춤을 췄을 때에도.

오늘의 달콤한 과실을 따기 위한 하나의 시련이 아니었을까.

"오빠, 오빠!!!"

"어. 지유야."

"무슨 생각을 해?"

"응?"

어느새 직원들은 전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지 언니가 오빠한테 건배사 넘겼잖아."

"...."

솔직히, 가끔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 안목과 감각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지금처럼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개떡 같은 센스를 유지하기를.

그래서 내 부족한 뒤통수가 헷갈리는 일이 없기를.

"치얼스!"

이내, 박철민 실장님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밖에서 담배나 피까."

"...."

저어는 그렇게 꼴초가 아닙니다.

그리 마다하는 타입도 아니지만.

칙, 치익─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수호야, 액션 영화 말이야."

"네. 대표님 승인 났어요?"

"그래."

각종 커뮤에서 고양이춤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팬카페 규모나, 음원 차트에 너튜브 반응까지도.

"오늘 트리플 크라운이 컸지. 솔라는 니가 다 키운 거니까."

"그 정돈 아니고...."

"이번 영화도 무조건 성공해야 해."

"저 못 믿어요?"

"믿지, 인마."

박 실장님은 내 어깨를 툭 치더니 다시 담배를 물었다.

"나 여친 생겼거든. 돈 모아서 결혼할 거야."

".... 아하."

빡빡이 선배님 부끄러워하시는 거 킹받네요.

띠리리링─

그때, 김춘수 감독님꼐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캐스팅 소식을 전해드려야 했으니.

-저기, 정 팀장님. 제가 투자를 받으려면 내일까지는 확답을....

"은서랑 주희, 캐스팅 승인받았어요."

-오, 정말요?

"그리고...."

흥행 보증 수표 영화는 돈이 되니까.

내가 코인은 못 해도 이건 할 수 있지.

"저도 투자할게요. 영혼까지 모아서."

솔직히 미친 듯이 불안하다.

피 같은 돈을 꼬라박아도 될지 모르겠지만.

살랑─

순간, 뒤통수에서 간질간질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영화 대박 날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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