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50화 (50/200)

[50] 사전 준비(2)

달콤한 추석 연휴를 마치고.

회사에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오빠, 언니들 숙소에서 잘 데리고 왔어."

"어. 그래."

"은서 언니 마지막 촬영 일정도 나왔어. 일주일 뒤에...."

"잘 됐네."

짜장면은 소화가 안 되고, 냉면은 그저께 먹었고.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해?"

"응? 아."

지유의 질문을 듣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점심 어떡하지."

"아 점심때 Tvm 미팅?"

아니, 점심 메뉴.

"오빠, 그냥 여행지만 확정하면 피디님이 알아서 찍을 거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 그래?"

삼겹살은 너무 무겁고, 샌드위치는 너무 가볍고.

"하아.... 고민이네."

팀원들이 다 보이는 팀장 자리.

여기만 앉으면 없던 고민도 생기곤 했다.

'.... 점심때 진짜 뭐 먹지.'

지유는 슬쩍 눈치를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오빠, 컴백 앞두고 고민이 많구나?"

"큰 고민은 아니고."

"내가 더 열심히 할게!"

".... 그래."

이내, 눈새 후배놈이 다가와 슬쩍 말을 걸었다.

"팀장님, 여기 결재 좀 해주세요."

"아, 루나 스케줄표."

"네! 공중파 예능도 들어왔어요!"

"굿. 잘했어."

상모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팀장님, 지금 머릿속으로 리얼리티 예능 기획하시는 거 맞죠?"

"아닌데."

점심 뭐 먹을지 구상하고 있는데.

"점심때 미팅 있으시잖아요."

"응. 점심 때문에 엄청 고민 중이야."

"크으, 역시! 팀장님께선 추석 내내 시장 분석만 하셨을 것 같아요!"

"내가?"

"네. 솔라랑 루나 활동 계획이랑 음원이랑...."

"흠."

전혀 아니야. 푹 쉬었어.

일주일쯤 더 쉬고 싶어.

존나 아무것도 안 하고 돈만 많이 벌고 싶다.

내 촉은 왜 오직 연예계에서만 통하는 걸까.

'리얼리티 예능....'

당장 오늘 점심때 만날 Tvm 예능국장님.

어느 정도 여행지를 고민해 보긴 했는데.

"수호야."

그때, 사무실 뒤쪽에서 박 실장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솥뚜껑만 한 손으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어젯밤에 나작텔 시청률 봤어? 미쳤더라."

"아, 네. 저도 봤어요."

<나의 작은 텔레비전> 시즌 3는 첫 방송부터 잭팟이었다.

요즘 너튜브나 OTT 때문에 시청률 올리기도 어려울 텐데.

"어떻게 그 밤늦은 시간에 8프로대가 나오냐."

"아마 어제까지 추석인 것도 있고...."

"그건 상관없지. 오늘이 근무일이잖아."

"그렇긴 하죠."

예상컨대, 아육대의 영향이 컸을 확률이 높았다.

걸그룹 멤버 중에 오직 주희밖에 안 보였으니까.

"함 피디님께 연락 왔어요. 고맙다고."

이제 한동안 예능보다 단체 활동에 집중해야지.

"아, 근데 소미 예능은 끝났어요."

"응?"

이제 Tvm <방탈출 메이즈>도 슬슬 마무리 단계였다.

"우승은 힘들겠습니다."

".... 좀비 때문에?"

"네."

다음 촬영이 마지막이라고 봐야 했다.

좀비 분장만 봐도 겁에 질리는 친구라.

"이제 탑 3라서 데스매치도 없이 탈락이에요."

"그래. 너무 몰아붙이는 것도 아동학대야."

"어쩔 수 없죠. 겁이 너무 많아서."

"흐음."

당장 중요한 건 솔라의 컴백 무대.

결국, 리얼리티 예능도 홍보가 목적이니까.

"오늘 Tvm에서 미팅 있다며."

"네. 팀장님."

"잘 갔다 와라."

띠리리링─

순간, 갑자기 걸려온 국제전화.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보세요. 정수...."

-모시모시.

"예?"

갑자기 일본어가 왜 나와.

-한고쿠 말, 조금 합니다.

"네. 누구시죠?"

거의 방송가에선 공개된 번호라서.

이런 전화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후지티비 시마켄 프로듀서입니다.

"...."

내가 아는 어떤 형이랑 이름이 비슷하네.

* * *

큐앤지 레이블 연습실.

멤버들은 신곡 「Sunrise And Sunset」의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하아, 하아, 좀만 쉴까?"

"그래. 5분만 쉬자."

예지는 은서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피곤해 보이네.'

드라마 일정 때문에 밤샘 연습에 시달리는 그녀.

은서는 연습생 때부터 악바리 근성이 있었다.

알바를 해서라도 갖고 싶은 건 사야 직성이 풀렸으니.

"딱 5분만 쉬고 다시 하자!"

"응!"

이내, 예지는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의 톡을 확인했다.

벌써 수십 번은 봤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너희 절대 안 버릴 거야. 걱정하지 마]

자신이 쓴 편지에 대한 매니저님의 짧은 답장.

무뚝뚝하면서 사려 깊은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렇게 톡을 보내는데 얼마나 고민하셨을까.

"예지 언니, 프렌즈 엔터...."

"절대 안 가신대!"

"뭐? 무슨 말이야. 프렌즈 엔터 추미령 작곡가님."

"아."

은서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 노래 진짜 좋은 것 같아."

"맞아. 이 정도면...."

어쩌면, 처음으로 음방 1위 후보에 오를 수도.

현재 여왕님께서 독주하는 음원 시장의 바통을 이어받아서.

"매니저님이 최종 컨펌하셨잖아. 좋은 게 당연하지."

".... 곡은 다이애나랑 추 작곡가님이 쓰셨는데."

"그것도 알지."

"...."

국내 탑급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추미령 작곡가님.

언제부턴가 그런 업계 탑급 송 라이터와 작업을 했나.

'정수호 매니저님 덕분에....'

프렌즈 엔터테인먼트의 스카웃 제의.

추석 전에 편지를 안 썼다면 떠나셨을 것이다.

최근에 엄청난 기세로 성장하는 회사 아닌가.

보이그룹 '하이엔드'는 별 중에서도 별이니까.

팀장급 매니저로서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언니."

예지는 은서의 부름에 상념을 깨트렸다.

"저번에 나작텔 소원권 썼어?"

"왜?"

"그냥 궁금해서."

"당연히 썼지."

"응? 뭐에 썼어?"

"솔라의 미래를 위해 투자했지."

"읭....?"

지금의 프렌즈 엔터를 만든 '하이엔드'처럼.

그분이 계속 옆에 있어주시면 가능할 수도.

"우리도 언젠가는 미국 가야지!"

"???"

아무튼, 편지로 매니저님 마음을 돌린 것 같아서 내심 뿌듯했다.

드르륵─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며 양주희가 들어왔다.

두 손에 엄청난 양의 택배 박스를 들고 있었다.

"뭐야, 헬스장 다녀온 거 아니었어?"

"맞아."

"뭘 이렇게 많이 샀어?"

"아, 이거 다 장은서 거야. 프로틴 하나 빼고."

은서에게 툴툴거리며 박스를 내려놓는 양주희.

"아 장은서, 내가 네 시녀야, 뭐야."

".... 명품 가방도 샀네."

예지는 택배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쟤가 원래 돈을 펑펑 쓰잖아."

"그냥 적당히 쓴 거지."

은서는 콧노래를 부르며 택배를 뜯었다.

"땡큐!"

이 정도면 정산받은 금액의 거의 전부를 썼을 텐데.

아무리 요즘 솔라가 잘 나간다고는 하지만.

협찬도 아니고, 이렇게 돈을 막 쓰다 보면.

"은서야, 연예인 한철이야. 돈 아껴서 집 사야지."

"괜찮아, 돈은 또 벌면 돼."

"...."

작년까지 알바해서 열심히 살던 은서는 어디 갔나.

사실, 그때도 알바비 들어오면 전부 다 쓰긴 했다.

'아니, 근데....'

그때랑 지금의 수입은 차원이 다를 텐데.

"언니, 여기 할머니 선물도 샀다구."

"오, 그럼 그 명품 가방이...."

"아니, 명품 말고."

"???"

유독 눈에 띄는 새하얀 모시옷 한 벌.

옆에 있는 에르비투 가방과 비교되었다.

"옷 예쁘지? 우리 할머니 모스트 픽이야!"

".... 이건 좀."

* * *

뜬금없이 잡힌 일본 스케줄.

물론, 아직 확정은 아니었다.

"오빠, 그래서 일본은 어떡할 거야?"

"글쎄."

아직 뒤통수에서 신호가 오지는 않았다.

"고민 중이구나?"

"뭐, 그렇지."

솔직히, 해외 일정은 나중으로 미루고 싶었다.

그동안 기껏 쌓아올린 탑이 해외 활동으로 무너진 케이스가 한둘인가.

종종 해외에서 대박이 나고 오히려 한국의 입지가 좋아지기도 했지만.

'솔라는 잃을 게 없는 팀이 아니잖아.'

아이솔레이션을 겨우 따돌렸는데 일본 가서 망한다면.

게다가, 프렌즈 엔터 대형 신인도 데뷔할 예정이니까.

딸랑, 딸랑─

Tvm 방송국 앞 초밥집

예능국장님과의 약속 장소.

약속 장소에 도착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선배님!"

그때, 한 남성이 손을 들고 반갑게 나를 맞았다.

예능국장님은 안 계시고 익숙한 얼굴만 보였다.

".... 김지훈."

<방탈출 메이즈> 덕분에 친해진 후배님.

익숙한 남성은 씨익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리얼리티 솔라빔 피디 김지훈입니다!"

".... 국장님은?"

"조금 늦으신대요."

그래. 그건 알겠는데.

"Tvm 방송국에는 피디가 너밖에 없냐."

"하하. 이번 방송으로 몸값이 천만 배는 뛰었거든요."

"데뷔작이니까. 이전에는 몸값이 없었겠지."

"그게 그거죠."

그래도 김지훈 피디 실력이 좋은 건 확실했다.

데뷔하자마자 시청률과 작품성을 잡았으니까.

"너는 안 바빠?"

"그럼요. 이제 방탈출도 보름이면 끝나는데요."

"흐음."

공백기도 없이 괜찮으려나.

"보름 뒤에 바로 여행 가시죠. 저는 준비 끝났어요."

".... 준비도 없이 가?"

"에헤이, 가서 뭐 할지 포맷은 옛날부터 다 짜놨어요."

"여행지가 어딘데?"

"그건 이제 정해야죠."

방탈출 게임도 전부 다 직접 기획했다고 하더니.

확실히, 우리 대학 후배들이 똑똑한 친구가 많다.

'.... 나만 빼고.'

공부와 일 머리는 별개니까.

"선배는 어디 생각하고 계셨는데요?"

"글쎄. 제주...."

순간, 살살 간지러운 뒤통수의 감각에 눈을 감았다.

"크으, 제주도 좋죠! 돌! 바람! 해녀! 해산물! 혼저 옵서예? 바로 제가 제주도 풀코스로...."

"아니면, 하와...."

하와이도 아니구나.

정답이 있나 본데.

"오케! 하와이! 제가 그쪽 바닥은 훤해요. 여행도 다녀왔고."

"조용히 좀 해봐."

"넵."

문득, 오늘 전화가 걸려온 일본 스케줄이 떠올랐다.

'해외 일정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는데.

그 역시 무능한 내 판단일 뿐이었다.

".... 일본은 어때?"

"아오, 일본 끝내주죠! 곤니찌와 와타시와 지훈 데스."

"머리 아파."

"에에에에!? 센빠이, 이따이?"

"텐션 뭔데."

정말 거지 같은 판단력.

만약 지금 뒤통수가 살살 간지럽지 않았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에 건너가지 않았겠지.

'엄청난 기회를 놓쳤을 수도....'

당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 최악이야."

"제, 제가요?"

너 말고 나 말이야.

* * *

며칠 뒤.

나는 멤버들을 모아 일정을 공유했다.

앨범 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스케줄은 홍보가 아닐까.

인기와 별개로, 앨범 발매 소식을 알려야 의미가 있으니.

"와, 일본 스케줄?"

"여행 겸 예능도 찍고 올거야."

"보름도 안 남았네요."

"응. 일본어 공부해."

"흐음."

나는 어제 좀비 게임에서 탈락한 소미에게 눈길을 주었다.

"소미야, 왜 이렇게 의기소침해 있어."

"어제 루이팽 오빠한테 졌어요."

"괜찮아. 어쩔 수 없...."

"진짜 이길 뻔했는데."

뭐지, 두 명이 같은 편이었잖아.

황인우랑 루이팽이 결승전 갔고.

"루이팽 오빠가 한 손만 썼는데도 제가 졌어요."

".... 방탈출 메이즈 말하는 거 맞지?"

"아뇨. 리그 게임이요."

"아."

어차피 좀비 게임은 이길 마음이 없었구나.

어쩐지, 시작하자마자 기권부터 하더라고.

"어쨌든."

솔직히, 아무도 예상 못 했는데 탑 3에 들은 것도 대단하지.

"우리 소미, 진짜 잘했어요!"

"고생 많았죠. 우리 막내."

언니들의 칭찬을 듣고 귀엽게 혀를 내미는 신소미.

이미 지나간 건 잊고, 앞으로 스케줄만 생각해야지.

"멤버들 중에 일본어 좀 하는 사람?"

".... 저 쪼금."

이내, 은서가 슬쩍 손을 들었다.

"오, 어느 정도?"

"그냥 기본 소양?"

".... 그럼 나머지는."

소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 보름 정도 남은 거 맞죠?"

"어. 그 정도."

"그때까지 공부하면 되는 거 아닌가."

"...."

방금 조금 재수가 없었어.

아무리 똑똑해도 그렇지.

"보름 만에 일본어를 마스터한다고?"

.

.

.

.

.

보름 뒤.

나는 멤버들과 함께 소미의 유창한 일본어 회화를 감상했다.

"탁시니 노루 바쇼와 도코데스까?"

일본 현지 사람에게 택시 타는 곳을 물어보는 모습을 보니.

혹시 몰라서 데려온 통역사는 그냥 돌려보내도 될 것 같다.

"택시 타려면 저쪽으로 가래요."

"아, 어. 그래."

이걸 진짜 마스터했네.

"아 빨리 와요!"

"가고 있어."

소미야, 너는 여기 현지인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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